Munchkin after returning home RAW novel - Chapter 138
138화 태초의 정령들
– 지금 그 말이 정말로 사실인가?
“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 아니,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그저…… 지금까지 살아온 정령생 중에서 그대만큼 오랫동안 머물 수 있는 경우는 처음 봐서 그럴 뿐이야.
태초의 바람.
대충 요약하건대 바람의 정령왕이 있을 법한 곳으로 안내해 주고 있는 실레스틴과 진우는 도착하는 동안 이래저래 궁금한 사항을 서로 주고받았다.
아무래도 4대 속성의 정령을 다루는 입장에서 정령의 숨겨진 특징이라던가 힘을 더 알아내면 좋으면 좋았지, 나쁠 것 없지 않겠나?
그러던 와중에 실레스틴이 건넨 질문인 정령계에 머물 수 있는 제한 시간.
그것은 그다지 어렵게 답할 문제는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남은 시간 14시간 22분)
인내의 숲과 고뇌의 숲 때의 타임 어택 때처럼 진우의 눈앞에 남은 시간이 표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굳이 어렵게 알아볼 필요도 없이,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 진 그도 알고 있지 않겠는가?
– 그대가 평범한 인물은 아닐 거라고 생각은 했다만…….
–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실레스틴 선배. 보통내기의 인간이랑 비교하시면 곤란하다니까요?
– 쯧쯧. 물딩딩이야. 인간뿐이겠냐. 하이 엘프가 와도 못 비비지.
– 노움 이놈은 자꾸 물딩딩이래. 운디네라고 안 해?
– 응, 물딩딩이~
14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정령계에 머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하는 실레스틴.
하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엘프인 알레시아도 정령계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끽 해야 1시간이라고 했었는데 그의 14배를 넘는 시간이라니.
사실상 엘프라는 종족을 넘어선 정령과의 친화력.
이 모든 건 전부 다 ‘대지모신의 축복’ 덕분일 터였다.
아무튼 그렇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도 상급 바람의 정령의 속도에 발 맞춰 이동을 하고 있던 탓일까?
어느덧 도착한 목적지.
실레스틴이 멈춰 선 곳은 뜻밖에도 진우도 잘 알고 있는 장소였다.
“정말 이곳으로 들어가면 되는 겁니까?”
– 그렇다.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
“아뇨, 문제 될 거야 없긴 한데…….”
바로 진우도 잘 알고 있는 세계수.
넓게 뻗은 그 줄기의 한 켠 속에 뻥 뚫린 구멍이 마치 입구처럼 맞이하고 있는 형태.
나무의 집으로 들어가는 식이라니.
특이하긴 했어도 색다른 경험까지는 아니었다.
‘이런 거야 익숙하니까.’
다람쥐의 등에 달린 호텔에도 투숙한 적도 있는 진우다.
살아 움직이는 라타콜 호텔도 있는 마당에 세계수 안 쪽의 집 정도는 무난하다 이 말씀!
“그런데 같이 들어가시는 건 아닌가요?”
– 그분의 옥체는 아직 내가 감히 쳐다볼 수 없는 것. 나의 역할은 안내로 끝이 났다.
“……그렇다면 다음에 또 뵙도록 해요.”
– 그래. 알레시아와 함께하다 보면 언젠가 또 만날 테니. 다음의 만남을 기대하겠다.
“네.”
– 이봐! 나도 나도!
“슈리엘도 다음에 뵙죠.”
– 갸르릉!
알레시아의 바람의 정령들.
각각 중급과 상급의 정령으로 어지간한 실력을 갖춘 헌터들과 맞먹는 개체들이니 계약은 못하더라도 친해져서 나쁠 것 없겠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이다음이려나.”
어떻게 보면 가장 핵심 인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바람의 정령왕.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정령왕의 강함은 업적의 신용도뿐만 아니라 이미 한 번의 만남.
아니, 정확히는 두 번의 만남을 통해서 알고 있다.
첫 번째는 비록 간접적인 만남이었지만, 강남 게이트 때의 사건 당시 진우와 더불어 정수아와 유리 자이스의 목숨을 땅의 정령왕이 직접 구해 주었고, 두 번째는 고뇌의 숲에서 직접 마주했던 어둠의 정령왕인 탈레이만이었으나 그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강대한 힘을 품고 있었다.
‘인맥은 다다익선라 이거지.’
좋은 인맥은 종족을 따지지 않는 법.
전성과 같은 비즈니스 관계도 그렇지만 진우의 농장에 있는 잔나비도, 드워프도, 엘프와 정령도 강력한 인맥의 한 축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꿀꺽.
그래도 티끌만큼 형체화된 탈레이만 때와는 달리 본체인 정령왕과 만나러 가는 것이 긴장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달까?
멀리서도 느껴지는 강렬한 힘의 기척.
그리고 머지않아 몇 걸음 옮긴 진우는 그 거대한 힘의 원천이 ‘하나’가 아니었음을 뒤늦게 깨달았으니,
– ……인간.
– 세상에 이런 기적이…….
– 아, 아아아!
진우의 곁에서 흐느끼듯 감동하는 노움과 운디네 등의 하급 정령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왔는가, 태초를 기르는 아이여.
– 바위는 묵묵하다.
– 꺄하, 반가워. 그때의 포탄은 재밌게 잘 봤었어. 얼마나 만나고 싶었는지 알아?
– 미네르바. 체통을 지켜라. 엘라인과 테라웰을 본받아야 하지 않겠나.
– 뭐래, 샐리온 요즘 인간들 세상의 대세는 그게 아니거든? 하여튼 뉴튜브도 안 보고. 이래서 문제라니까.
– ……난 그런 거에 관심 없다고.
…….
태초의 바람.
즉, 바람의 정령왕이 불렀다길래 찾아온 공간.
그곳에는 하나의 정령왕이 아닌, 자그마치 4대 속성의 모든 정령왕이 집합해 있는 상태였다.
* * *
지나치게 강대한 힘은 원치 않더라도 주변의 것을 파괴하고 변질시키기도 한다.
당장에 정령왕만 해도 그 완벽한 예가 되어줄 터.
아니나 다를까?
“……헉, 허억.”
정령왕들의 본체.
그것도 무려 각자 속성이 상충하는 4개체를 한 번에 마주한 압박감은 실로 상상 이상이다.
대충 비유하자면 잔나비의 우두머리인 시드 정도 되는 이가 한자리에 넷이나 모인 느낌이랄까?
‘하늘 위에 하늘이라는 건가.’
그야말로 천외천.
나름 지구.
특히 한국에서는 S등급의 헌터로서 어지간한 S등급 헌터를 상대로도 승리를 거머쥔 진우라고 해도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는 말처럼 그보다도 압도적인 힘의 위세를 떨치는 정령왕들이었다.
– 이거야 원. 최대한 힘을 조절한 것인데. 역시 부담이 심하려나.
– 쯧. 그래서 내가 하나씩 만나자고 제안하지 않았나.
– 순서 정하기 귀찮다고 한 건 그쪽이거든?
– 바위는 우직하다.
‘미친…….’
심지어 이 압박감이 조절을 한 거라고?
어이가 없다 못해 기가 막히는 것도 잠시.
깊은 물 속에 빠진 것처럼 호흡 곤란 증세를 보이던 진우의 기분도 차츰 나아지기 시작한다.
그 이유는 말할 것도 없었으니,
[이제 좀 괜찮은가 선지자여?]“감사합니다, 여신님.”
여신님의 손은 약손이라는 듯.
어루만져 주는 대지모신의 손길에 언제 압박감이 느껴졌냐는 양 순식간에 찾아오는 안정감.
그렇게 여유가 생기게 된 진우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정령왕들에게로 향한다.
제대로 조절이 되지 않는 강렬한 힘에 의해 숨이 막힐 정도로 고통스럽기는 했지만 무려 4개체의 정령왕을 만나면서 이번에 확보하게 된 진우의 신용도는 1, 10단위의 수준이 아니다.
자그마치 100단위에 속하는 120의 신용도.
이 정도면
어디 그뿐만이겠는가?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4대 속성의 모든 정령을 마주하다’] [신용도가 50 상승합니다.]무슨 컬렉션도 아니고.
4대 속성의 모든 정령을 마주함으로서 추가로 상승한 50신용도까지. 도합 170에 달하는 신용도가 추가로 상승했다.
이 정도면 이가 썩다 못해 당뇨가 올 수준의 달달함 아니겠는가?
게다가 진짜는 이 막대한 신용도가 이제 겨우 시작이라는 거다.
– 이제 좀 진정이 되었는가? 조절을 한다고 했는데. 부담을 주었다면 미안하구나, 아이야.
“괜찮습니다. 그것보다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정령사로써 영광일 따름입니다.”
진우의 시선에 맞춰 미소와 함께 마주 보는 정령왕들.
그들 하나와 연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탈레이만의 경험상 엄청난 힘을 얻을 기회인데, 이번에는 아예 4대 속성의 정령왕 전체이지 않은가?
이미 진우가 4대 속성의 정령을 전부 다룰 수 있다고는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하급 정령이 한계였을 뿐.
정령왕과 계약이라든지, 뭐라도 맺으면 힘이 상승하면 상승했지 나빠지지는 않을 터였다.
다행스럽게도 대지모신 님 덕분에 꾸준히 상승시켜둔 정령 친화력 때문일까?
아니면 ‘태초를 기르는’이라는 표현처럼 태초의 아이인 유진이가 진우를 아빠로 알고 있기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진우의 왼손에 새겨진 유물인 신성한 세계수의 뿌리의 영향인 탓일까?
정령왕들은 진우에게 있어서 전혀 적대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이건 좋은 징조야.’
이제는 척 하면 척.
상인 인맥인 체르와 자주 함께 지내오면서 흥정이나 거래 제안에 있어서는 나이에 맞지 않게 도가 튼 진우다.
4대 속성의 정령왕 전부까지는 안 바라더라도 3개체.
아니, 하다못해 1개체와도 계약을 따낸다면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수확이요,
강해질 수 있는 지름길이 되어줄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다만 질투의 여신님께서 허락해 주실지가 문제긴 한데, 그 부분이야 칭찬으로 어떻게든 극복해 내면 되지 않겠는가?
노움이나 노에르 같이 하급이나 중급 정령이라면 위험할 수도 있겠지만, 정령왕 정도쯤 되는 위치에 있다면 대지모신 님에게도 어느 정도 저항할 수 있기도 할 테고 말이다.
‘내가 강해지는 걸 싫어하지는 않으실 테니.’
추가로 이제는 농사만 지으면서 평화롭게 살기에는 글러 먹은 지 오래인 진우다.
S등급에 버금가는 힘을 지닌 헌터가 되고 영구 능력치를 상승시켜 주는 아이템을 직접 생산해 낼 수 있는 생산직.
더불어 2명의 드워프뿐 아니라 이제는 1명의 엘프까지 추가되었다.
여타의 국가에서 욕심을 안 낸다면 되려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의 전력.
니드호그와 여섯 마리의 뱀도 문제겠으나 늘 그러하듯 세상에서 가장 견제해야 하는 것은 같은 인간인 법이다.
‘후우…….’
어쨌든 그렇게 되었으니 이제 남은 것은 상인답게 입으로 설득하는 것뿐.
가장 공격력이 뛰어난 불 속성과 치유와 버프에 특출난 물 속성, 다재다능한 바람 속성과 튼튼한 것 하나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울 땅 속성.
네 가지 속성 중에서 진우가 최우선으로 계약하고 싶은 정령왕의 속성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괜찮다면 대화를 이어나가도 괜찮을까요? 엘라인 님?”
– 물론. 환영하는 바이다. 아이야.
치유와 버프.
농장을 이끄는 농부의 입장에서나, 소소하게로는 팜오리들을 위해서라도 가장 중요한 물 속성의 정령왕인 엘라인.
그러나 꽤나 힘들 것이라고 예상했던 정령왕과의 계약 건은 생각했던 것보다도 그 난이도가 매우 낮았으니,
– 이봐, 인간. 잠깐 기다려라.
– 뭐냐, 샐리온. 새치기하지 마라. 아이가 먼저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느냐?
– 그러니까 말이야. 아까는 나더러 체통을 지키라더니. 샐리온. 선수 치는 건 체면에 맞는 행동이야?
– 시끄럽다. 미네르바. 내 성정상 지금까지 기다린 것도 기적이라고! 인간 아이여. 단도직입적으로 묻도록 하겠다. 아직 그 어떤 정령과도 계약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만. 어때? 나와 계약하지 않겠나?
– 크흠! 대지모신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인간과의 계약은 바위인 내가 가장 먼저다.
– 이런 친화력은 로열 엘프 이후로 완전 처음이라고! 놓칠 수 있을 것 같나!
진우가 나설 필요도 없이 서로 계약하겠다고 외치는 4대 속성의 정령왕들.
“……응?”
특성인 ‘선지자를 향한 대지모신의 축복’을 통해 지금까지 6시간마다 꾸준히 상승했던 정령들과의 친화력.
진우 본인은 몰랐던 것이지만 그것은 정령계 역사상 역대급으로 높았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