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after returning home RAW novel - Chapter 139
139화 러시아 정화 작업
수많은 하급 정령들과 노에르.
많고 많은 4대 속성의 정령들의 힘을 다룰 수 있는 진우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령과의 계약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치르지 않았다.
[대지모신이 미소 짓습니다.]다른 누구도 아닌 눈 앞에 있는 질투의 여신님 덕분에 말이지.
그래도 하나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선지자가 원한다면야 어쩔 수 없겠지. 힘이 있어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테니.]정령왕급의 계약은 순순히 승낙해 주는 자비로움.
이 모든 것은 사실상 이 순간에도 진우는 그를 노리고 있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고맙다, 몸에 좋고 맛도 좋은 뱀들아.’
이미 보약으로서 희생된 스바프니르를 포함.
추후의 보약들에게도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하는 것도 잠시.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정령과의 계약 방법이었다.
앞서 언급했듯 누구누구의 방해 덕택에 이번에 제대로 된 계약을 행하는 것이 처음인 진우다.
짐꾼 생활 동안 얻은 정보 속에서도 정령사에 대한 정보는 워낙 희귀해서 제대로 들어본 적도 없었다.
다만 크게 걱정할 일은 없었다.
“엘라인 님부터 순서대로. 모든 정령왕과 계약을 하고 싶습니다.”
처음이라면 이제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면 그만일 뿐.
뭐가 그리 문제겠는가?
이미 앞의 4대 속성의 정령왕들은 모두 다 진우와 계약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는 상태인 터.
한마디로 주도권은 진우에게 있다, 이 말씀이다.
– 아이야. 정말로 우리 넷의 기운을 몸에 담을 수 있겠느냐?
“대지모신 님께서 지금까지 쌓은 친화력이라면 괜찮다고 하시더군요.”
– 흐음, 그분께서 그리 말씀하셨다면 괜찮겠지.
– 하지만 기다려라. 인간은 이곳에 오래 머물 수 없다. 우리 모두와의 계약이 체결되려면 10시간으로도 부족해.
“그럼 걱정할 것 없겠네요. 아직 13시간으로 넉넉하게 남아 있으니까요.”
– ……!
– 이건 또 놀랍군. 전대의 로열 엘프도 6시간이 한계였거늘.
– 과연. 그분의 사랑을 받는 자라는 건가.
스승 체르에게 단련된 언변과 스바프니르의 혀로 인해 정령왕조차도 금세 진정시키는 진우의 말솜씨였다.
티격태격하며 자기들부터 계약을 진행하겠다는 그들.
이제 진우에게는 자그마치 4개체의 정령왕들과 계약을 체결하는 것만이 남아 있었다.
* * *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 공항.
러시아를 찾는 관광객부터 게이트 공략을 위해 찾아오는 헌터 등.
가지각색의 이유로 러시아를 방문하는 이들이 늘 존재하는 탓에 많은 인파를 자랑하는 곳이지만 오늘만큼은 유독 그 인파가 더욱 삼엄하다.
그도 그럴 것이,
“경호원들이 뭐 저렇게 우글거리는 거냐?”
“오늘 뭐 유명한 사람이라도 오는 건가?”
“연예인? 유명 헌터보다도 더 북적북적한 것 같다?”
“경호원이 문제냐. 기자들이 더 들끓고 있는데.”
공항의 중심에 모인 살벌한 기세를 풍기고 있는 경호원들.
물론 언제 어디서 테러라던가, 변종 게이트 등.
사고가 터질 가능성은 있기에 경호원은 상시 배치되는 편이지만, 닭 잡는데 소를 잡는 칼을 쓰지는 않는 법 아니겠는가?
“당연히 경호원이 문제지. 저 사람 카리브 벨랴코프잖아. 대통령 직속 경호원인.”
“……그러고 보니 그렇네?”
“저런 사람이 버티고 있으니 기자들도 제대로 힘을 못 쓸만도 하지.”
대통령의 직속 경호원 카리브 벨랴코프.
S등급 헌터답게 한 때는 러시아 대형 길드의 장을 맡을 정도였으나 모종의 이유로 블라트의 경호원으로 돌아선 인물이다.
그러한 인물이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는 대상은 결코 평범하지 않을 터.
하지만 생각했던 것과 달리 모습을 드러낸 것은 뜻밖에도 아시아의 젊은 남성이었다.
“뭐야, 아시아인? 중국인이야?”
“일본인인 건가?”
“키는 아시아인 치고는 그럭저럭 큰 편인데?”
평범해 보이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자꾸 쳐다보게끔 만드는 마성의 매력을 지닌 인물상.
허나 카리브 벨랴코프로 인해 모여든 인파 중에서는 해당 인물을 알아보는 이도 당연히 존재했다.
“기, 김진우다! 김진우!”
“어라? 지, 진짜잖아!”
“실물이 더 괜찮은 것 같은데?”
예전에 한 차례 러시아에 납품된 농작물들도 그렇지만 최근 홀로 막아낸 몬스터 웨이브로 인해서 해외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것이 바로 진우의 뉴튜브 채널이다.
뉴튜브가 금지된 중국과 달리 그나마 자유로운 러시아이기에 꽤나 잘 알려진 진우의 활약성.
이 기회를 놓칠세라.
러시아의 각종 언론 기자들은 남몰래 사진을 찍어 냈다.
한국도 그렇지만, 전 세계 어디에나 사생활이나 초상권 따위는 간단히 무시해 버리는 기자들이 존재하는 법.
허나 기자들의 행동은 채 이루어지지도 못했다.
파즈즈즉-
파즉-!
사진을 찍으려는 찰나 어째서인지 화면이 흐려지며 카메라들이 하나둘 박살 나기 시작했고, 화들짝 놀란 기자들은 머지않아 이 현상의 원인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나라 얼굴에 먹칠하지 말고 조용히 쓰레기들 챙겨서 꺼지시죠.”
“히끅!”
가볍지만 무게감 있는 카리브의 진중한 협박.
저것은 결코 장난 같은 것이 아니다.
다른 나라도 아닌 러시아.
자칫 잘못했다가는 진짜 쥐도 새도 모르게 숨진 채 발견될 수도 있을 터.
“죄, 죄송합니다.”
“실례가 많았습니다!”
박살 난 카메라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할 생각도 못 한 채 걸음아 나 살려라 라는 심정으로 빠르게 기자들은 달아났다.
그렇게 모든 방해물이 다 사라지고 나서야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던 카리브는 언제 그랬냐는 듯.
유순한 표정으로 진우를 맞이했다.
“환영합니다. 김진우 씨. 먼 곳까지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아닙니다. 배려해 주신 덕분에 편하게 왔네요.”
현재 진우 앞에선 모든 것이 을의 입장에 위치한 러시아다.
1등석 왕복 비행기표부터 시작해서 문제 될 만한 것들은 전부 배제시켜 버린 러시아의 화끈한 처리 방식.
장장 몇 시간에 이르는 비행시간은 꽤나 고역이긴 했지만, 이미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익숙해진 진우에게 러시아 정도쯤이야 그리 고된 일도 아니었다.
“……러시아어를 굉장히 잘하시는군요?”
“만약을 위해서라도 기본은 배워 둬야죠.”
“백번 지당하신 말씀이지요. 아, 혹시 식사는 하셨습니까? 괜찮다면 블라트 나자르프께서 괜찮은 곳을 예약하셨는데 시간 괜찮으십니까?”
그건 그렇고 카리브 벨랴코프라고 했던가?
말할 때마다 비행기를 태우는 것도 그렇고, 기자들을 대할 때와 자신에게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천지 차이다.
그러나 진우 역시 평범한 이십 대 청년은 아니었기에 그 정도에 금세 헤벌쭉하진 않았다.
‘블라트의 측근. ……그리고 전 마피아의 보스였던가?’
적을 알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처럼.
러시아에 찾아오기 전 이미 요정 찻집을 통해 정보를 구매해 놓았다.
중국이나 일본.
다른 여타의 나라들도 그렇지만, 협조를 해도 언제 뒤통수를 칠지 모르는 게 사람인 법.
그렇기에 진우는 카리브와 그 일행들과 깊숙하게 연관될 생각은 추호도 없었으니,
“아뇨, 식사는 기내식으로 괜찮게 했습니다. 피차 서로 바쁜 몸인데 일부터 처리하도록 하죠.”
“……흐음, 그것참 아쉽게 되었군요. 그럼 알겠습니다. 차량은 미리 준비해 두었습니다.”
정수아나 유리 자이스처럼 하하호호 웃는 비즈니스 파트너가 아닌.
일말의 정 없이 순수하게 돈과 유석의 파편으로만 엮인 관계.
진우에게 러시아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 * *
척 보기에도 으리으리하게 준비된 진수성찬.
허나 많이도 준비된 요리들 속에서 앉아 있는 인물은 단 한 명뿐이었다.
“그래서 만남 주선은 거절했다, 이건가?”
원래였더라면 초대받은 손님과 함께 친목을 다지며 식사를 즐겼을 공간이 되었어야 했겠으나 블라트는 혼자서 식사를 하게 생겼다.
– 예. 죄송합니다. 대통령님.
“뭘, 자네가 사과할 일이 아니야. 정말이지 저번 만남 때에도 그렇지만 참 건방진 친구라니까. 아, 그리고 우리끼리 대화할 때는 편히 하라고 늘 말했잖나 카리브. 그래. 만나 본 소감은 어떻던가?”
– ……보통 놈이 아니야. 그저 손만 마주 잡았을 뿐인데 실로 강대하고도 깨끗한 속성의 기운이 느껴지더군. 그 정도면 필히 상급 이상의 정령이 아니면 설명이 안 된다.
“정령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놈은 농부라고. 물론 몬스터 웨이브를 막아낼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긴 했지만, 정령을 다루는 건 목격된 적이…….”
– 블라트. 너도 알고 있을 텐데. 내가 한참 마피아를 운영할 때 자이스 가문의 강경파와 연줄이 있었다는 것을. 덕분에 정령사를 보는 눈은 정확하다고. 김진우. 그 녀석에게는 정령이 깃들어 있다.
“허어, 기가 막히는군. 그놈은 환골탈태라도 한 건가? 아니면 다른 세계에서 살다 오기라도 한 건가? 이십 대 중반의 나이에 무슨 그 정도의 경지를 이룩할 수 있는 건지 원.”
– 그거야 나도 모르지. 그래도 하나 확실한 건 적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는거다. 블라트. 기분이 많이 상했을 테지만 참아라. 김진우. 그놈과는 아군이 될 수 없을지언정 척을 져서는 더욱 안 된다.
“큭큭. 걱정 마. 자존심 따위 진즉에 버린 지 오래니까.”
러시아인에게 있어 자존심을 빼면 시체나 다름없었지만, 블라트는 대통령이다.
철없던 시절이라면 모를까.
정치에 발을 담근 이후로 이미 몇 번의 프레임 공격은 우습게 받아 왔을 정도.
권력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야 그깟 자존심 따위가 대수겠는가?
달그락- 달그락-
“음, 맛이 제법 괜찮군.”
블라트 나자르프.
대부분의 정적들은 제거하고, 몇몇 극소수를 제외한 아군들도 두려워하는 독재자인 그에게 혼밥은 일상이었다.
* * *
기본적으로 장기간 몬스터 웨이브가 진행된 곳은 더 이상 사람이 살아갈 수 있을 만한 환경이 되지 못한다.
독충이나 독초들과 같은 환경들이 동화되는 경우는 기본이요,
최악의 경우 한국의 강남 게이트 때처럼 강력한 수압이 동반된 물로 가득 찬 수중 공간과 같은 곳도 수두룩하다.
이번에 처음으로 찾아갈 러시아의 섬, 사할린은 명백히 후자에 속한다.
수중 공간까지는 아니지만 어떻게 보면 그보다도 더욱 심하다고 볼 수 있다.
‘용암 지대라…….’
몬스터 웨이브가 발발하고 환경 동화가 진행된 지 벌써 6년.
그곳의 게이트의 환경이 들끓는 용암 지대인 영향으로 인해 사할린은 그야말로 하나의 거대한 화산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당연하게도 사람의 발길은 이미 끊어 버린지 오래요, 찾아갈 수도 없다.
그나마 섬에 위치해 있기에 몬스터가 넘어오지 않고 서로 잡아먹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피해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계속해서 확장되는 환경 동화 탓에 넘쳐흐르는 마그마.
그것이 러시아의 타타르 해협으로 스며들면서 바다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러한 것을 보면 확실히 게이트의 존재는 축복이면서 동시에 재앙이기도 하다.
‘대체 어느 놈이 게이트를 발생시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다른 이들은 몰라도 ‘야생을 받아들여라’의 특성으로 인해 굴린이나 릴리아나와 같은. 여타의 네임드 몬스터들에게 얻은 정보들로 인해 그들도 원해서 침략을 하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던 진우다.
허나 그렇기에 말로 설득해서 보낼 수 없다는 것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용암 지대라. 준비가 안 되었다면 꽤나 곤란했겠지만, 이제는 아니지.’
진우가 소환하는 나무 정령도, 폴튼 트렌트의 덩굴도 불에는 다소 취약한 편이었으나 현재로써 진우는 속성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
그야 당연하지 않겠나?
– 크핫핫! 용암이든 불이든 태초의 불인 나 샐리온 앞에서는 모두 다 하룻강아지일 뿐이지.
어느덧 진우의 곁에서 호탕하게 웃어 보이는 자그마한 불씨.
그것은 다름 아닌 불의 정령왕 샐리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