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after returning home RAW novel - Chapter 174
175화 농장의 기묘한 식구들
거대한 아나콘다, 그라프비트니르.
일곱 번째 뱀 중에서 셋째였던 그는 고인과 모인이 하나로 합쳐진 상태가 아닐 때에는 육체적 강함으로만 따졌을 때 가장 강력한 뱀이었다.
어지간해서는 뚫리지 않는 비늘과 거대한 몸.
물론 그라프비트니르는 지능이 얕은 편에 속했다.
단순무식한 사고방식.
그러면서도 거대한 덩치에 걸맞게 폭식을 즐기던 그는 중국에서 남몰래 활동하던 형제들과는 행보의 클래스 자체가 달랐다.
우적- 우저적-
단 3일.
너무나도 짧은 시간 내 북한에 존재하던 대부분의 생명체를 집어삼킨 괴물뱀.
지도자를 잃고 뒤늦게 한국에 도움을 요청하는 북한의 헌터들의 모습에 그라프비트니르는 일부러 그들을 놓아주었다.
– 좀 더 많은 밥이 찾아오겠지.
일곱 마리의 뱀들에게 있어서 인간은 미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생명체들이다.
어쩌다가 마주치면 가지고 놀다가 죽이기도 하는 먹잇감.
그러한 이들이 제 발로 찾아와 준다면 그라프비트니르로서도 좋은 일이니 말이다.
허나 그를 반긴 것은 뜻밖의 이들이었다.
– 그라바크, 오프니르. 지금 뭐하자는 거지? 나더러 인간 따위의 밑으로 들어가라는 거냐?
– 의미 없이 싸울 필요가 없다는 것뿐이야.
– 그게 그 소리 아닌가! 네 녀석은 니드호그님을 버릴 셈이냐?
– 아직도 모르겠어? 니드호그는 우리를 버린 지 오래야. 고인 오빠랑 모인 오빠. 그라프볼루드가 죽을 때에도 아무런 귀띔도 없었던 걸 보면 모르겠어?
– ……형제들이 죽었다고?
자신과 같은 태생의 뱀인 그라바크의 조언.
그녀의 말에 그라프비트니르의 눈이 돌아갔다.
– 그렇다면 놈을 잡아먹으면 내가 첫째보다 강해진다는 소리겠군!
애초에 형제애 따위는 개나 줘 버린 것이 뱀들이다.
형제를 죽인 개체를 집어삼키면 그보다 강해질 것이라는 단순한 믿음을 가질 정도니까.
– 어떡하죠?
– 됐어. 애초에 오프니르, 너처럼 말이 통할 거라고는 생각 안 했으니까. 오히려 이런 방향도 나쁘지 않아.
그 모습을 볼 필요도 없이 그라바크는 이미 결정을 내려 둔 지 오래다.
– 어, 어억! 너, 너 이 녀석 독을……!
– 그러게 누가 멍청하게 주는 족족 받아먹으래? 막내야 꽉 잡아라. 그 인간 놈에게 선물로 주려면 가죽 상하면 안 되니까.
– 알겠어요, 누님.
누누이 말했지만, 일곱 마리의 뱀에게 형제애란 존재하지 않았듯.
생존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한배에서 태어났던 이의 처리를 실행하는 그라바크였다.
* * *
뱀들끼리 동족상잔을 벌이고 있는 한편.
한국의 헌터 협회는 난리가 났다.
“북한 헌터의 말에 신빙성은 있나?”
“보통의 탈북민도 아니고 헌터들이면 나름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을 텐데 온 것 아닙니까?”
“북한 헌터가 가져온 영상 정보도 그렇고. 거짓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거짓말을 해서 이득을 볼 이유도 없고요.”
“이것 참. 환장하겠군.”
휴전선을 뚫고 넘어온 수많은 탈북민.
놀라운 것은 그들 모두가 최소 B등급은 될 정도로 숙련된 헌터라는 점과 그들이 가져온 정보다.
어림잡아 수십 미터는 될법한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는 뱀.
게이트의 출현 이후 등장하는 몬스터의 존재를 생각해 보면 세상에 없을 생명체는 또 아니었다.
이해가 안 되는 것이라면 게이트가 아닌.
사람들의 틈새에서 갑작스럽게 모습을 드러냈다는 점.
이미 앞서 중국에서 사람의 흉내를 내던 ‘뱀’의 존재를 보지 않았던가?
그렇기에 더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북한을 거의 멸망시킨 뱀이 다음 차례로 삼을 대상이 어디일까?
가장 인접한 국가로 치면 당연히 남한이지 않겠나.
“아니면 이미 넘어왔을 수도 있겠지.”
“……가능성이 없지는 않죠.”
사람의 형태를 취할 수 있다는 것은 달리 말하자면 탈북민 중에 섞여서 들어왔을 수도, 혹은 남몰래 한국으로 스며들어 왔을 수도 있다는 소리다.
경계를 아무리 삼엄하게 해도 한계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만약 그러한 괴물이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갑자기 등장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어떤 의미에서는 변종 게이트의 폭주보다도 두려운 인명 피해와 혼란이 발생할 터.
고민을 거듭하던 신승혁이었으나 헌터 협회장의 자리가 주는 무게는 막중한 법이었다.
“우선은 북한에 대한 경계를 강화하고 동맹국에게는 협조를 요청해 두겠다.”
“알겠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메뉴얼대로 대처와 함께 생각을 정리한 신승혁이 몸을 일으켰다.
“나는 김진우. 그 친구에게 이 문제를 상담해 보도록 하겠네.”
“그렇지만 이 정보는 극비리에 붙이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일반 헌터. 그것도 농부일 뿐일 텐데…….”
“어허, 농부라고 무시하지 말게. 이미 실력은 입증된 인물이지 않겠나. 중국에서 숨어 있던 몬스터들을 사냥하기도 한 전문가이기도 하고. 정부 측엔 예산이나 많이 확보해 두라고 하게.”
“도, 돈이요?”
“당연한 것 아닌가. 김진우가 우리 같은 공무원도 아니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애국심을 부르짖는 게 답이 아니라 돈을 써야지. 이럴 때가 아니면 언제 쓰겠나. 세금 잔치 벌이는 정치인들에게 쓰는 것보다는 이게 더 옳게 쓰는 거야.”
몬스터를 사냥하기 위해서 헌터를 찾아가듯, 뱀을 사냥하기 위해서는 땅꾼을 찾아가는 것이 정석일 터.
그러나,
“오랜만이야. 이 모습은 기억하지?”
“진짜로 왔네.”
– 내가 온다고 하지 않았나. 요정의 정보. 그중에서도 여왕인 나 티타니아의 정보력은 차원 제일이라고.
이미 신승혁이 찾아가기도 전.
진우의 농장에는 사람의 모습을 한 뱀이 먼저 찾아온 상태였다.
* * *
“긴말할 필요는 없겠지. 다들 준비해.”
“우끼! 말만 해라, 인간!”
– 바위처럼 단단하게!
인기척을 느끼기 전.
적이 찾아온다는 정보를 접한 진우는 철저하게 준비를 갖추어 두었다.
엔코나 정령을 비롯한 전투원들은 선두에, 그리고 혹시나 있을 인명 피해를 대비해서 이장님과 어르신들은 그룩과 만트에게 부탁해서 만들어 둔 벙커에 모셔 두었다.
설령 두 마리의 뱀이 본모습을 드러낸다 한들 이미 중국에서 세 마리가 합친 것을 처리했던 진우로서는 어렵지 않은 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방심은 하지 않았다.
북한에 똬리를 틀고 있던 동족을 죽인 것에는 남모를 이유가 있을 테니까.
허나 예상했던 것과 달리 그라바크와 함께 온 또 다른 뱀은 전투 의사를 전혀 보이지 않으며 양손을 들어 보인다.
“기, 기다려. 우리는 싸우려고 온 게 아니야. 나랑 오프니르는 이곳에 온 이후로 사람도 잡아먹지 않았다고!”
“그걸 어떻게 믿지? 너라면 믿겠어?”
명백한 항복의 표현.
그렇지만 말뿐인 항복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자고로 진정성을 보이기 위해서는 행동으로 선보여야 하는 법.
특히나 일곱 마리의 뱀에 대해서는 그들의 손아귀에 붙잡혀 있던 그룩의 말도 있지 않던가?
물론 그 정도는 녀석들도 알고는 있는지 준비해 온 패를 꺼내 든다.
쿠웅-
품속에서 액체가 든 병을 꺼내 든 그라바크가 조심스럽게 땅에 놓고는 뒤로 물러선다.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건 그라프비트니르. 네가 중국에서 사냥했던 고인과 모인 다음 가는 뱀이야. 위쪽의 북한 땅에서 사람을 잡아먹고 있던 것을 우리가 처리하고 내가 영약으로서 달여 냈다.”
“흐음, 그러니까 살기 위해서 형제를 죽였다? 그 말은 내 뒤통수를 칠 수도 있다는 소리로 들리는데?”
“그, 그건! 나도 이해하고 있어. 그렇지만 믿어다오. 우리는 형제뿐만 아니라 니드호그. 거기 줄을 서는 게 아니라 너와 대지모신 쪽에 서겠다는 의사를 표현한 거라고!”
무엇이든 한 번이 쉽지.
그다음부터는 쉬운 법이다.
하물며 자신에게 이득이 된다면 아군의 뒤통수를 언제든 칠 수 있는 놈들을 받아들인다?
실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
– 그냥 저 녀석들도 사전에 처리해 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된다, 계약자여.
– 나 또한 같은 생각이야. 저런 놈들은 믿어서 좋을 게 없지.
정령왕과 티타니아의 생각도 진우와 마찬가지다.
괜히 후환을 남겨 둘 바에야 사냥해서 전리품을 얻는 것이 나을 거라는 생각.
허나 뜻밖에도 궁지에 몰린 두 마리의 뱀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한 명의 소녀였다.
“유진아?”
“아빠. 죽이지 마요. 착해지려는 뱀들이잖아요.”
자그마한 걸음으로 앞으로 나서서 그라바크와 진우의 중간지점에 선 유진이가 고개를 저어 보인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유진이의 반응.
어떻게 보면 아직 어리기에 세상 물정을 모르는 것일 수도 있겠으나 지금까지 유진이 태초의 아이로서 행한 행동으로 손해를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신들의 티끌 상점에서 아이템을 강탈하고, 세계수인 위그를 만나고, 또 태초의 정수 등.
판단에 있어서만큼은 충분히 믿음직스러운 아이였으니까.
아마 모르긴 몰라도 유진이의 본능이 이쪽의 손을 들어주는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터.
확실히 사냥해서 얻게 될 전리품도 기대할 만하긴 하지만 일단은 일곱 마리의 뱀 중에 속하던 녀석들이다.
특히 그라바크의 경우에는 척 보기에도 연금술을 다루는 솜씨가 엘프인 알레시아보다 윗줄로 여겨질 정도이니 포션에 대한 부분도 무시할 수 없다.
“기회를 주고 싶다는 거니?”
“응!”
직접 배 아파 낳은 자식은 아니라지만 이미 진우에게 있어서 유진이는 딸이 되어 버린 지 오래.
그리고 본디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좋아. 가져온 것과 유진이를 봐서 한 번은 받아 주지.”
“믿어 줘서 고맙다.”
“가, 감사합니다.”
“감사 인사는 내가 아니라 유진이한테 해. 그리고 나는 너희들 안 믿어. 언제든지 예의주시하고 있을 거고 조금이라도 허튼짓하는 게 보이면 가차 없이 죽일 거다.”
“……명심하도록 하지.”
어제의 적이 오늘의 아군이 되는 경우.
그렇게 진우의 농장에는 기묘한 식구가 둘이나 추가되었다.
* * *
[그라프비트니르의 액체(측정 불가)]* 분류 : 재료
– 그라프비트니르의 시체를 액체화시킨 물질입니다. 특별한 처리로 인해 성질에 대한 손해가 전혀 없으며, 굳힐 경우 무척 단단한 광물로 변화됩니다.
거대한 아나콘다’‘던 것’인 찰랑거리는 액체.
그 크기가 어느 정도일지는 모르겠으나 중국에서 상대했던 녀석들과 비슷하다면 확실히 죽이는 것보다는 살리는 쪽이 이득이긴 했다.
무엇보다도 두 드워프인 그룩과 만트도 스바프니르의 부산물을 손질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요구했던 것을 생각하면 가히 연금술로는 인간의 기술을 뛰어넘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괜히 엘프와 드워프를 인간 세계에서 몬스터가 아닌 동맹.
아군으로서 받아들였겠는가?
과학과 문명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타종족들만의 비기.
특히 그라바크의 연금술은 드워프와 엘프들에게 호기심을 자극하기에는 차고 넘쳤다.
“호오, 신기하군. 이렇게 녹여냈는데 성질이 파괴되기는커녕 오히려 강해졌다고?”
“이걸 용광로에 부어서 주괴로 만들어도 꽤나 쓸 만한 무구가 완성될 것 같은데? 그렇지?”
“일단은 그럴 거다. 그리고 방법에 대해서는 나만의 방법인지라 알려 줄 수는 없다.”
허나 단호하게 선을 긋는 그라바크.
그녀가 셀 수 없는 세월 동안 쌓아온 연구의 결과물인데 그것을 공개해 줄 턱이 있겠는가?
하지만 드워프의 고집도 무시할 수 없다.
“음, 그렇게 나오면 곤란한데. 최대한 협조적으로 나와야 우리도 그쪽을 실드 쳐 줄 수 있지 않겠어?”
“흥! 알려 주기 싫으면 됐어. 하여튼 뱀 녀석들. 나스트론드에서도 지독하게 겪어 봤지만 상종할 수가 없구만.”
“아니, 시간을 달라는 거다. 지금 내 쓸모를 다 공개한다면 언제 죽을지 모르는 것 아닌가!”
“어차피 이거 말고도 숨기고 있는 게 많다는 건 다 알고 있거든. 그냥 곱게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이, 이 빌어먹을 드워프 따위가!”
“아악! 진우야! 그룩 죽는다! 뱀이 드워프를 잡으려고 하네!”
“내, 내가 언제!”
나스트론드에서는 노예와 간수의 관계였지만, 진우의 농장에서는 그 역할이 완전히 정 반대가 되어 버린 지 오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