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after returning home RAW novel - Chapter 57
57화 달의 아이
나가모리 카나에.
비록 무각성자의 처지이긴 했으나,
그녀가 쌓은 입지는 순전히 일왕의 딸이라는 것만으로 완성시킨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을 단번에 사로잡을 수 있는 언어를 취사선택하여 늘 최선의 길을 개척해 나가는 것.
좌우를 막론하고 일본의 정치인들은 카나에와 토론이나 대화하길 극도로 꺼렸다.
날고 긴다는 4, 5선 의원들도 두려워하는 카나에의 언변 솜씨.
20대 중반의 어린 나이임에도 이러한 재능을 갖춘 카나에는 일본에는 더할 나위 없는 보물이나 마찬가지였었다.
허나,
“어, 어째서. 생각이…….”
머리가 굳기라도 한 듯.
멈춰버린 생각.
살아오면서 지금 같은 경우를 겪어 본 것은 단언컨대 처음이다.
미국의 대통령을 만났을 때도 당당했던 자신이 이렇게나 무력해지다니?
하지만 생각이 굳었다고 해도 카나에는 본인이 이렇게 된 원인을 모를 정도로 무지하지 않았다.
“……대체 저한테 무슨 짓을 한 거죠?”
“예? 저는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
“거짓말을 하시는군요.”
굳어 버린 생각 속에서도 다행히도 번뜩이는 그녀의 신묘한 기운.
그것은 눈앞의 사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알려 주었으나 안타깝게도 지금 그것이 빛을 발한 것은 카나에에게 있어서 그리 좋은 의미라고 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렇게 되었던 건가…….]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던 카나에만의 신묘한 기운.
허나 제아무리 꽁꽁 숨긴다 해도 대지모신.
신의 눈까지 피할 수는 없는 법.
[이걸 보세요, 선지자.]거기에다가 선지자 바라기이기도 한 대지모신은 정보를 고스란히 진우에게 일러바쳤다.
“……!”
[월석 제어기(측정 불가)]* 분류 : 유물
* 사용 조건 : 달의 아이
* 모든 능력치+1 (연결된 대상의 성장에 따라 강화됩니다.)
※ 달빛 제어 : 거리, 차원에 상관없이 달이 존재하는 곳 어디에서나 지정한 대상을 향해 달빛의 버프를 선사합니다. (사용 제한)
– 하늘 위의 달빛은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달의 아이에게 힘을 전해 줍니다. 옳은 선택을 내릴 수 있게끔 길을 안내해 줍니다. 단, 아직 깨달음이 부족한 상태입니다. 달의 아이로서 각성하기에는 힘과 계기를 필요로 합니다. 그전까지 모든 종류의 각성이 제한됩니다.
※ 달의 아이 외의 직업으로 각성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확인된 것은 다름 아닌 ‘측정 불가’ 등급의 유물.
진우의 왼손에 새겨져 있는 ‘신성한 세계수의 뿌리’와 같은 등급이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 강탈하고 싶은 욕구를 샘솟게 만드는 성능.
그러나 월석 제어기는 아이템 같은 것이 아니다.
진우의 왼손에 새겨진 문신처럼 카나에의 몸에 새겨져 있는 상태.
덧붙여서 그 위치에 대해서도 이미 알게 되었다.
‘심장이라니…….’
한마디로 월석 제어기를 얻기 위해서는 일왕의 딸을 죽여야 한다.
욕심만으로 치르기에는 너무나도 무모한 행동.
하물며 그렇게 해서 얻게 되었다 한들 쓸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 사용 조건 : 달의 아이
애초에 사용 조건 자체가 ‘달의 아이’다.
드루이드를 직업으로 가지고 있는 진우에게는 결코 불가능한 조건.
그렇지만 방법이 아예 전무한 것은 아니다.
[대지모신께서 자신을 믿고 따르는 신실한 선지자에게 힌트를 줍니다.]언제 어느 순간에서나 치트키 같은 성능을 뽐내 주시는 우리의 대지 누님.
대지의 어머니께서 빛으로 가리키고 있는 것은 뜻밖에도 진우의 옆에 남모르게 위치해 있는 용혈 가방 속 들어 있는 아이템이다.
‘이건…….’
[달빛을 머금은 흑표범의 가죽 갑옷 – 호루스의 깃털 탑재(신화)]진우의 아이템 중 천둥석 건틀렛과 함께 쌍두마차 격으로 귀한 신화 등급의 무구인 가죽 갑옷.
그런데 어째서 이게? 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달빛을 머금은’의 이름을 보면 어쩐지 이유를 알 것도 같다.
[흑표범의 가죽에 깃든 달빛. 이거라면 달의 아이로 각성하게 되는 계기로 충분하지.]‘그런데 이거 아이템이 소멸하거나 약화되는 일은 없겠죠?’
[그랬으면 제안도 안 했지. 오히려 그 반대. 힘과 힘은 서로 만남으로서 더욱 증폭될 것이야.]‘진짜요?’
[신은 거짓말 안 해.]무구가 약화되는 것이 아닌 반대로 강화가 될 수 있다는.
심지어 그것도 확률이 아닌 확정적 강화.
어디 그뿐만일까?
흑표범의 가죽 갑옷에 깃든 달빛으로 충족된 계기.
그것이 이루어진다면 나가모리 카나에는 각성자가 될 것이다.
심지어 ‘달의 아이’라는.
척 보기에도 엄청난 귀족 중의 귀족으로 보이는 느낌을 주는 직업.
그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상부상조.
‘그 이상이지.’
아니, 이건 기브 앤 테이크.
등가교환의 원칙을 아득히 넘어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의 국력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시아에서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일본이라는 나라에 지우게 될 엄청난 무게의 빚.
무각성자인 일왕의 딸의 숨겨진 힘을 일깨워 준다면 그 순간 진우는 은인이나 마찬가지로 취급된다.
다만, 문제는 그런 일을 벌이고 난 이후에 발생할 파장이다.
일본이란 나라가 바보도 아니고 수십 년 동안 무각성자였던 일왕의 딸을 생전 처음 보는 직업으로 각성시킨 이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을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떡하니 주어진 기회를 걷어차기에는 눈앞의 유물이 너무나도 탐스럽다.
유물에 의한 무구의 강화.
거기다가 잊어서는 안 될 것 중의 하나가 가죽 갑옷에 붙어 있는 기본적인 효과다.
* 달빛을 받을 때 마나의 회복 속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달빛을 받는 상태에서 마나의 회복 속도를 ‘대폭’ 상승시켜 준다는 옵션.
마나는 언제 어디서나 그 쓰임새를 가지고 있는 능력치 중의 하나다.
천둥석 건틀렛도 그렇고, 많은 숫자의 덩굴과 나무 정령을 소환하기 위해서는 마나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 버렸다.
그런 와중에 어느 곳에서나 달빛을 선사해 주는 월석 제어기라는 유물이라니.
사실상 달빛을 받을 수 있는 밤이 아닌 낮에도 해당 효과를 받을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사기적인 힘.
아, 이건 못 참지.
“후우…….”
숨을 고르면서 1초도 되지 않는 고민 끝에 진우는 결정을 내렸으니,
“저기요.”
“예?”
“혹시나. 만약에 각성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하실 건가요?”
“……네?”
“진우 씨? 그게 무슨?”
에잇! 남자로 태어났으면 일단은 지르고 봐야 하는 법.
애당초에 이런 기회가 또 언제 올 줄 알고 걷어차겠는가?
이미 미국에게서 드워프를 얻게 된 순간부터 유명세를 타게 될 것은 예정된 일.
지금의 선택은 그것이 아주 조금.
“지금 딱 말해요. 할 거예요, 말 거예요?”
아니, 엄청 더 빨라지는 것일 뿐이었다.
* * *
진우가 내뱉은 폭탄 발언.
그것에 당황한 것은 카나에와 유리뿐만이 아니다.
“저 농부 저거 왜 저래?”
“젊은 나이에 노망이라도 난 건가?”
그녀들을 보호하는 목적으로 함께 자리하고 있던 경호원들.
집으로 들이는 과정으로 인해 대부분의 인원은 바깥에서 대기 중이었다. 때문에 따라온 것은 각자 2명씩으로 소수 인원이었지만 진우의 말에 어처구니없는 반응을 보이는 것은 매한가지다.
하긴, 말을 내뱉은 진우도 어이가 없는 것은 똑같은데 오죽할까?
그런데 저들은 알려나 모르겠다.
진우가 마음만 먹는다면 진짜로 카나에뿐만 아니라 평범한 범인들도 각성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선지자를 향한 대지모신의 축복’을 통해 체력 스탯 3을 희생함으로써 누구든지 땅의 정령사로 양성하는 것이 가능하다.
실제 정석우라는 불알친구의 사례도 있고 말이다.
뭐, 그건 그렇고.
어처구니없어하는 반응도 반응이지만, 카나에의 경호원 중에는 증오에 가까운 감정을 보이는 이도 존재했다.
“이봐. 장난을 치는 거라면 그 정도에서 그만해 줄 수 없을까? 우리가 잘못해서 사과하는 입장이긴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왕의 잘못이지, 카나에 님은 죄가 없으시다고. 무슨 연좌제도 아니고!”
“타케시.”
“카나에 님께서 얼마나 각성에 목말라하시는지 알고 그런 소리를!
“더 이상 말하지 마세요. 지금 저희가 이곳에 찾아온 입장이 어떠한지 잊으신 건가요?”
“그, 그렇지만…….”
바득바득 이를 갈아붙이는 경호원.
일단은 경호원 출신답게 각성자일 테고 일왕의 딸을 보호할 정도면 실력자일 터.
그래 봤자 진우에게는 택도 없을 상대라는 것은 마찬가지겠지만.
어쨌든 카나에도 각성에는 상당한 욕망을 보이고 있다.
“장난을 치시는 건 아니시겠죠?”
“제가 뭐 좋을 게 있다고 장난을 치겠습니까?”
뱀의 혀가 활성화된 상황 속.
흐트러진 판단력에서도 이어 나가는 말.
아니, 오히려 판단력이 흐트러졌기에 욕망을 스스럼없이 내보이는 것일 수도 있고 말이다.
뭐가 되었든 진우로서는 나쁘지 않은 일.
“가능한 일이라면 부탁드리겠습니다.”
“후회 없는 선택이 되실 겁니다.”
당사자에게서 떨어진 승낙.
그와 함께 진우는 유리 자이스를 비롯하여 모든 경호원을 바깥으로 내보냈다.
* * *
“카나에님께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겠다!”
“거참. 걱정도 팔자네. 내가 약이라도 한 게 아닌 이상 뭐 좋을 게 있다고 그러겠냐고.”
난리를 피우며 끝까지 진상을 부리는 경호원, 타케시.
뭐, 그래 봤자 의미 없는 아우성일 뿐이다.
제아무리 경호원이라고 하지만 자이스 가문의 여식인 유리 자이스가 질질 끌고 가는데 지가 어쩔 거야?
아무튼 사람들이 다 떠나고 카나에와 진우 둘만 남게 된 상황.
조금 어색하긴 했지만, 덕분에 진우도 눈치 보지 않고 용혈 가방을 뒤적거렸다.
“설마…… 그거 혹시 마법의 가방인가요?”
“음? 알고 계신가요?”
“당연하죠. 저도 하나 가지고 있거든요. 유니크 등급으로. 실력 있는 장인의 것을 운 좋게 얻게 되었죠.”
“호오, 그래요?”
“일이 잘 진행된다면 드릴 수도 있어요.”
“뭐, 사양하진 않겠습니다.”
“2천만 엔 때랑은 너무 다르신 거 아니에요?”
“그건 공짜로 주신 거였고, 이건 제가 할 일을 하고 받는 거니까요.”
이유 없는 공짜가 싫을 뿐이지, 이유가 있다면 얘기가 다르다.
그리고 2억이랑 유니크 등급의 마법의 가방을 어떻게 비교하겠어?
어찌 되었든 이미 용혈 가방도 보였겠다.
진우는 곧장 흑표범의 가죽 갑옷을 가방 속에서 꺼내고는 카나에에게 건네줬다.
“이건……시, 신화 등급? 거, 거짓말이죠, 이거?”
“아이템의 등급과 효과는 알케미스트도 수정이 불가능하다는 걸 아실 텐데요? 당연히 진짜죠.”
“하, 하지만 E등급이 어떻게…….”
“때로는 눈으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닌 법이죠.”
“…….”
라타토스크를 타면서 체르에게서 들었던 조언을 여기서 내가 쓰게 될 줄이야.
지식은 돌고 돌면서 배워 나간다고 했던가?
솔직히 카나에.
이 일왕의 딸에게 용혈 가방도, 흑표범의 가죽 갑옷도 공개해 주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달의 아이로서 각성시키기 위해서는 좋든 싫든 간에 볼 수밖에 없다.
어째서냐고? 그야 당연한 것 아닌가?
“저, 그런데 이걸 왜 저에게 건네주신 거죠?”
“왜긴요. 당연히 입으시라고 드린 거죠. 아, 물론 빌려드리는 거지. 주는 건 절대로 아닙니다.”
“네? 그렇지만 사용 조건이…….”
“사용을 못 해서 그렇지, 착용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으니 걱정 마세요. 사이즈도 착용자에게 알아서 맞춰주는 고급품이니까. 그리고 각성하고 싶으시다면서요? 그럼 어서 착용하세요.”
“네? 각성이 이거랑 무슨 상관이죠?”
“당연히 상관있죠. 그거 착용하는 게 그쪽이 각성하기 위한 조건이니까요.”
“…….”
달빛을 가득 머금고 있는 흑표범의 가죽 갑옷을 착용하는 것.
그것이 바로 달의 아이로서 각성하기 위한 방법이라며 대지모신이 전해 준 사실이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