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alter ego is becoming a tycoon RAW novel - Chapter (333)
미증유의 거력이 담긴 검이 공간을 가르고 쇄도했다.
그 앞을 막아서는 검붉은 비늘.
카가각! 촤악—!
직후, 쇠가 갈리는 듯한 요란한 마찰음과 함께 선혈이 비산했다.
갑옷과도 같은 비늘이 단번에 찢겨나가며 팔이 너덜너덜해지고 손가락 몇 개가 잘려 나가 허공에 떠올랐다.
“크하하핫! 이거 화끈하구만!”
일반인이었다면 단번에 쇼크사했을 정도로 심각한 부상이었지만, 할리는 자신의 피에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광소를 터트리며 더욱 깊이 파고들었다.
광기에 잠식되어 완전히 이성을 잃은 것처럼, 어떤 피해를 입던 물러서지 않는 야성적인 모습으로.
그러나 그 몸짓 하나하나에 깃든 무의 이치는 그가 전과는 달리 자신의 힘을 더욱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콰아앙!
검붉은 기운에 휩싸여 공간을 찢어발길 듯 날아드는 손끝과 세상의 모든 어둠을 집약한 것만 같은 마검이 재차 정면으로 충돌했다.
충격으로 비명을 지르는 대기와 그 여파로 깨져 나가는 주변 풍경 속.
두 존재가 서로의 눈을 마주하며 사납게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크으! 이쯤이면 슬슬 닿을 때도 된 거 같은데. 거 뒤지게 끈질긴 양반이구만!”
“내가 할 소리다, 이 괴물 놈이···. 아무리 요괴라 해도 정도가 있는 법이거늘. 네놈은 대체 어떻게 되어 먹은 종자냐? 용신의 적자라도 되는 건가?”
“카하핫! 글쎄? 내가 몸에 좋은 걸 좀 많이 먹어서 그런가?”
“네놈 정도 되는 요괴가 홀로 움직일 리는 없을 터. 이건 금오도 전체의 뜻이라고 봐도 되겠지? 그냥 지금까지처럼 얌전히 숨어 지낼 것이지, 괴물 놈들이 명을 재촉하는구나.”
안면으로 날아든 손톱에 자신의 마검을 맞댄 천마가 으르렁거리듯 낮게 읊조렸다.
그 자신감 어린 말에 담긴 어떤 정보에 할리의 입꼬리가 살짝 씰룩거렸다.
‘금오도?’
그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말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자신을 그쪽 세력의 일원이라고 확신하는 것 같은데···.
‘그럼 그렇지. 역시 요괴들로 이루어진 조직이 따로 있었구나.’
그것도 대부분의 요괴들이 속해있을 정도로 상당히 큰 세력인 듯하지 않은가?
그건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이 강환계에 체류면서도 접하지 못했던 정보였다.
심지어 지구에서의 자료 수집과 병행해 명문가 중의 명문가인 제갈세가의 도움까지 받아 현지 세력에 대해 세밀히 조사하고 있었건만!
‘아니, 어쩌면 제갈세가에선 알고 있었을 수도 있겠군. 놈의 말을 들어보니 금오도는 상당히 오랫동안 세상에 나서지 않았던 모양이고.’
생각해 보면 그가 요청했던 자료도 각 지역을 지배하는 세력이 어떤 곳이냐가 쟁점이었다.
이 넓은 땅에 워낙 많은 세력들이 난립해 있다 보니 전부 하나하나 살피는 건 도저히 무리였던 것이다.
‘좋아, 덕분에 알아볼 게 늘었네. 금오도라···.’
그걸 앞으로 어떻게 활용할지는 둘째치더라도, 지금 상황에서 그가 할 말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크하하핫! 그럼 언제까지 우리가 네놈들을 두고 보기만 할 줄 알았느냐! 우린 절대 너희의 음모를 좌시하지 않는다!”
“헛된 꿈을 꾸는구나. 이제 와서 너희들이 어떤 발버둥을 치더라도 이미 늦었다. 이미 우리의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으니.”
상황에 맞춰 그저 되는대로 주워섬겼을 뿐인데 또 하나의 정보를 얻었다.
그의 말대로 이제 와선 돌이킬 수 없다는 자신감 때문인지, 아니면 이쪽이 이미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니까, 이 마교 놈들의 수작이 지금 이 습격 하나만이 아니라는 거지?’
아무래도 강환계에 대한 번천회주의 노림수는 용심을 뜯어내 기맥을 마르게 한 걸로 끝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흘러가는 상황을 파악하고 있자니, 지금까지처럼 태평하게 일을 처리하다간 일을 그르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역시 이쪽에 투자하는 자원을 더 늘려야겠어.’
그렇게 내심 결정을 내린 그가 앞으로의 행보를 수정하고 더 적극적으로 나서고자 마음먹었을 때.
“아미타불— 천마 시주, 빈승도 있다는 걸 잊지 마시오.”
몸을 추스르기 위해 잠깐 이탈했던 소림의 무진 대사가 재차 합류하며 싸움은 점점 더 치열하게 전개되기 시작했다.
쿠르르릉—
가사를 여며 한쪽 팔을 고정한 고승의 몸에서 묵직하면서도 정순한 불가의 기운이 번져 나가며 사방을 잠식하던 천마의 마기와 충돌했다.
기력이 쇠하고 신체 일부를 잃어 전투력이 처음 같진 않았으나, 탱커 할리가 자기 몸이 썰리면서도 천마에게 악착같이 달라붙은 덕분에 그가 좀 더 편하게 공격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졌다.
“하나같이··· 귀찮게 하는구나.”
상황이 그렇게 흘러가자 천마의 미간이 아까보다 더 찌푸려졌다.
사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이렇게 질질 끌릴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저 요괴 놈이 갑자기 툭 튀어나온 이후로 모든 것이 어그러지기 시작하지 않았나.
그는 달라붙는 할리의 가슴팍을 재차 베어내면서 슬쩍 고개를 돌려 전장의 상황을 살폈다.
예상치 못한 암초에 부딪친 것은 그쪽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크아악—! 덤벼라, 이 더러운 마교 놈들! 이 몸이 바로 광마··· 였던···. 으으, 아아악! 이 개 같은 자식! 죽어! 죽어어!”
“큭, 막아라!”
콰드득— 콰아앙—!
그 중심에선 마치 화풀이라도 하듯 광인 하나가 마인들을 틈에 파고들어 이리저리 날뛰고 있었다.
어지간하면 순식간에 목이 떨어져 나갈 위험천만한 짓이었지만, 문제는 그 광인이 화경의 끝자락에 선 무인이라는 것이었다.
사실상 이 자리에선 현경인 천마와 귀검마제가 아니라면 상대할 이가 없는 고수라는 소리였으니.
물론 여기에 신교 소속의 화경의 고수가 없는 것도 아니고, 상대의 내공을 흐트러트리는 비술까지 있으니 저 짓도 오래가진 못하겠지만···.
“지금이 기회다! 밀어붙여라!”
정파의 무인들은 그로 인해 생긴 빈틈을 그냥 지나칠 정도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실전 한 번 겪지 못한 온실 속 화초라면 모를까,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끊임없는 분란과 다툼 속에서 각자의 역량을 키워온 정예들이었으니까.
‘이건 글렀군.’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힌 천마가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했다.
이곳은 불문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소림사.
당연하지만 이곳에도 불도(佛道)를 중심으로 하는 진법과 술법 등이 빼곡하게 깔려있었다.
지금까진 기습과 더불어 철저한 사전 준비로 그를 어느 정도 무마할 수 있었으나, 마(魔)와 상극인 이런 장소에 오래 있어봤자 좋은 건 하나도 없었다.
[“교주님, 용의 아이를 확보했습니다.”]그렇게 그의 마음이 한 곳으로 기울어지고 있을 때, 그에 쐐기를 박는 수하의 전음이 전해져 왔다.
[“현재 이송 부대가 금강불을 따돌리고 전장을 이탈하여 운반을 시작했습니다.”]사실상 그들이 이곳에 온 가장 큰 목적이 달성되었다는 소리였다.
수하의 전음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그가 다시 좌중을 둘러보았다.
자신의 앞을 막아선 채 맹공을 퍼붓고 있는 신승 무진 대사와 갑자기 나타나 계획을 방해한 정체불명의 요괴.
그를 지나 난장판이 된 소림사 경내의 치열한 전장으로 향한 천마의 눈길이 그들 중 한 명에게 고정되었다.
한층 더 성장한 경지를 바탕으로 다수의 마인들과 맞서 싸우며 일을 훼방 놓는 데 한몫하고 있는 청년.
이 차원의 바깥에서 온 이세계인에게로.
“후우.”
그의 입에서 작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정말 오랜 시간을 침묵하던 신교가 본격적인 행동에 나서면서 벌인 첫 행사였다.
그래서 용의 아이를 확보하는 김에 자신이 직접 나서서 정파의 동량들을 한꺼번에 쓸어버릴 생각이었건만.
‘역시 모든 일이 생각대로 되진 않는 법이군. 당장은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예상치 못한 상황과 맞닥뜨려 어그러지긴 했으나 어차피 이건 겸사겸사 벌인 일에 불과했다.
생명력이 기괴할 정도로 질긴 이 요괴 놈을 확실하게 처리하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텐데, 그동안 교의 피해 또한 눈덩이처럼 불어나 버릴 터.
그건 앞으로의 거사를 생각하면 그리 좋지 못한 선택이었다.
“뭐, 좋다. 아쉽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
마침내 결정을 내린 그의 음성이 막대한 위압감을 품고 사방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직후.
자신의 목숨을 도외시하고 맹목적으로 달려들던 마교도들의 움직임이 일시에 멈추고, 마치 자로 잰 듯 대열을 갖춰서 순식간에 물러나기 시작했다.
“따라가지 마! 대열을 유지해라!”
“경계를 유지하고 부상자들을 수습해!”
그에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건가 싶어 당황한 정파 무인들이 무기를 치켜든 채 경계심을 높였지만, 일제히 물러난 마교도들은 그들을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갑자기 소강상태로 접어든 전장에 싸늘한 긴장감이 맴도는 가운데.
“오늘은 인사차 왔다고 생각하마. 예상했던 것보다 제법이었다. 썩어도 준치라고, 과연 무림맹의 이름을 들먹일 정도는 되는군.”
장내를 진동시키듯 울리는 천마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 와중에도 끈질기게 들러붙는 할리의 팔 한 짝을 베어내면서.
“물론 방해꾼이 없었다면 그것도 여기서 끝이었겠으나···. 그 또한 운이라고 봐야겠지. 과연 그 운이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겠다만.”
그의 시선이 언제 회수했는지 잘려 나간 자신의 팔뚝을 다시 붙이고 있는 할리에게로 향했다.
역시 아무리 봐도 징그러운 놈이었다.
“흐— 어찌되었든 너희는 지금 살아남았음에 기뻐해도 좋다. 과연 그게 언제까지 갈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말이지. 흐흐—.”
그렇게 마지막까지 뭔가 있는 듯한,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 천마가 마지막으로 휴고를 재차 흘깃 쳐다보고는 점점 더 높은 곳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그와 발을 맞추듯 마교의 전투 부대도 썰물처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하아.”
“후우, 후우···.”
하지만 남은 이들은 그들이 후퇴하는 걸 보면서도 차마 그 뒤를 쫓을 수 없었다.
전투가 한창 진행되는 동안에는 흥분에 차서 무작정 무기를 휘둘렀지만, 이렇게 여유가 생기자 슬슬 주변 상황을 인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끄으윽—.”
“사··· 살려···.”
“······.”
피를 흘리며 신음을 흘리는 이들과 기력이 떨어져 그조차 할 수 없는 동료들, 그리고···.
이미 숨이 끊어진 채 싸늘하게 식어가는 지인들의 주검까지.
결국 그들은 살아남았고 적들도 물리쳤으나, 이 자리에서 그걸 승리라고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빨리빨리 움직여!”
“의원들은?!”
그렇게 적도들이 모두 물러간 직후, 남은 이들은 서둘러 사상자들을 수습하고 피해 상황을 파악했다.
전투에 참여한 이들 중 멀쩡한 이들은 한 명도 없었다.
못해도 경상이었고 부상자들도 수두룩했다.
···그래도 그게 아예 목숨을 잃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그러나 그렇게 발생한 인명 피해 중에 경상이나 부상, 사망 모두에 해당하지 않는 이가 한 명 있었으니.
소림사의 고위층 사이에서 작은 소요가 흘러나온 직후, 몇몇 이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소림사에 의탁했던 황가의 핏줄, 주강인.
이번 난리에서 발생한 유일한 실종자였다.
그리고 실종자는 아니지만 싸움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갑자기 모습을 감춘 이가 또 하나 있었는데···.
“아니, 이 자식은 또 어딜 간 거야!”
낯선 이들 속에서 뻘쭘하게 혼자 남게 된 전 광마 목인광의 외침이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
소림사와 상당히 멀리 떨어진 어느 산지.
“퉤.”
그 정상에 선 천마가 피가 섞인 침을 뱉어냈다.
싸움 내내 유효타는 한 대도 허용하지 않은 그였으나, 이 세상엔 존재하지 않는 ‘신성력’이라는 이질적인 힘을 무리하게 사용한 대가였다.
물론 그 효과에 비하면 이 정도야 아주 소소할 뿐이었지만.
“그래, 여기까지 쫓아오다니. 아예 끝장을 내고 싶다는 말이구나.”
손을 뻗어 자기 뒷목을 주무른 천마가 천천히 몸을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그곳엔 조금 전까지 그의 치를 떨게 했던 요괴 하나가 팔짱을 낀 채로 가만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파하핫! 그렇지! 한번 시작한 싸움을 그렇게 찝찝하게 끝내는 건 취향이 아니라서!”
“허, 내가 힘이 모자라서 물러났을 것 같으냐?”
그 능청스러운 반응에 천마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애초에 싸웠던 장소가 소림사 내부가 아니었다면, 쓸모 있는 수하들의 손실을 신경 쓰지 않았다면 이렇게 물러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저 질기디질긴 목숨과 함께 귀찮게 굴었던 신승 역시 확실하게 수급을 베어냈겠지.
“제 무덤을 찾아오다니. 그래, 그렇게 죽고 싶다면야. 이렇게 된 마당에 너만이라도 확실하게 처리해 주마.”
천마가 다시 자신의 마검을 뽑아 들었다.
사실 그가 이곳까지 온 것도 상대가 쫓아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일부러 그리 한 것이었다.
기껏 부하들의 손실을 줄이려고 물러났는데 저 요괴 놈이 그걸 헛되이 만들면 안 되니까.
“카하핫! 거 잠깐만 기다려 보라고, 친구! 나도 그렇게 깨져 놓고 혼자 덤빌 정도로 멍청한 건 아니니까 말이야!”
막 출수하려던 천마가 상대의 그 태연한 대답에 일순 멈칫했다.
그래, 아무리 상대가 생각이 없어 보여도 뇌라는 게 있다면 이대로 혼자 덤벼들 리가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누굴 더 데려오든, 이 세상에서 자신을 상대할 수 있는 이는 없···.
오싹—
그때 문득.
무언가가 그의 본능을 건드렸다.
익숙하면서도 생소한 기운.
‘···마기?’
딱딱하게 굳은 그의 얼굴이 서서히 옆으로 돌아갔다.
직후, 그는 그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었다.
비틀린 조소와 함께 이쪽을 바라보는 검은 머리카락에 검은 눈동자, 그리고 짧게 친 검은 수염을 가진 냉혹한 인상의 중년인을.
“크흣— 네가 천마로구나.”
“···누구냐, 네놈은?”
그 괴인은 그저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일대의 공간을 얼어붙게 만들고 있었다.
천마의 입꼬리가 경련하듯 꿈틀거렸다.
상대가 가진 마기는 분명 그에게도 익숙한 것이었지만···.
‘아니, 아니야. 전혀 다르다. 저건···.’
본능적인 경계심과 함께 온몸의 솜털이 곤두섰다.
경지에 오르고 천마의 이름을 계승한 이후로 한 번도 없었던··· 아니, 딱 한 번 겪어보았던 신체의 변화였다.
그래, 이건 바로—.
‘···공포? 공포라고? 이 내가?’
이를 악문 그가 눈앞의 괴인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잠깐 떠오른 그 생각을 곧바로 부정했다.
이건 그저 갑작스러운 적수의 등장에 긴장한 것뿐이다.
일단 상대가 범상치 않은 건 틀림없으니 경계하며 긴장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지 않은가?
“내가 누구냐라···. 흠, 그래. 아무래도 소개가 필요하겠구나. 크크큭.”
하지만 상대가 어떤 반응을 하건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그 괴인이 저 혼자 웃음을 터트렸다.
일촉즉발의 침묵 속에서 조용히 울려 퍼지는 섬뜩한 웃음소리.
그의 다음 말이 이어진 것은 천마의 인내심이 거의 한계에 다다랐을 무렵이었다.
“나는 만마를 지배하는 군주이자—.”
검 손잡이를 쥔 천마의 손아귀에 저도 모르게 서서히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지상에 공포를 퍼뜨리는 절망이며—.”
이미 그의 시선은 상대에게 못 박힌 채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세상의 끝을 선언하는 종언이니—.”
시간마저 얼어붙은 것 같은 공간 속, 괴인의 눈가가 휘며 입꼬리가 비틀리듯 올라갔다.
왠지 모르게 괴리감이 느껴지는 웃음.
“—내가 바로, 마왕이니라.”
그날, 하늘의 마를 자처하는 이 앞에 마의 왕이 강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