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alter ego is becoming a tycoon RAW novel - Chapter (96)
#96
심연이 열리고 (3)
성흔에 성검을 수납한 하인리히가 봉인지의 석문을 열고 나왔을 때, 그곳은 그가 처음 시련으로 입장했던 장소였다.
그 많은 시련을 거쳤건만, 그 사이를 가로막은 것은 겨우 문 하나가 고작이었던 것이다.
‘성검이 시련을 위해 가상 세계를 구축했을 때부터 알아봤지만. 새삼 생각해도 대단하네.’
그가 손바닥의 성흔을 바라보며 흡족하게 미소 지었다.
‘이 정도면 팔라딘과 정면으로 부딪쳐도 지지 않을 것 같은데?’
거기다 「축복 : 성검」도 다른 능력들과 마찬가지로 단련할수록 더 강해지는 스킬이었다.
당장 그가 얻은 힘이 전부가 아니라는 소리.
“드디어 나왔군.”
그런데 석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는 하인리히를 마중하는 일행들이 있었다.
“수고했네, 하인리히 경.”
“아, 도노반 추기경님!”
피카올 대신전을 책임지는 추기경을 비롯한 정예들이었다.
‘내가 나오는 건 어떻게 알고···. 아니, 멍청한 생각이었군.’
그를 마중 나온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대신전 중심부에서 심연의 구멍을 통해 아크리치가 빠져나왔는데, 교단 측에서 그걸 모를 리가 없지 않겠는가.
‘대비를 하는 게 당연하지. 마침 성검의 시련을 통한 공간 격리도 사라졌으니 더 확실히 감지할 수 있었을 테고.’
그것 때문에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달려오긴 했지만, 그들이 진입하기도 전에 내부의 흑마력이 사라져서 일단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것이다.
혹시나 안에서 시련을 진행 중인 하인리히에게 방해가 될 수도 있었으니까.
“허허허, 혹시나 했는데 역시···. 경이 성검의 주인이 되는 데 성공했군!”
추기경이 하인리히의 손바닥을 보며 놀라면서도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뒤에 있던 다른 성직자들의 반응도 대동소이했다.
“설마 정말로 성공할 줄이야.”
“소문은 들었지요. 불사왕의 심장에 검을 꽂아 넣어 놈을 물리친 성기사라고 듣긴 했는데···.”
“지금 시기에 성검의 주인이 다시 등장하다니! 역시 이건 주신의 뜻이 틀림없습니다!”
300년 만에 등장한 성검에 모두가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불사왕이 돌아오고 심연까지 열린 지금, 용사의 상징인 성검이 다시 등장했다는 건 큰 의미가 있었으니.
“이 또한 운명이겠지. 그래, 하인리히 경. 안에서 뭔가 이상이 발생하지 않았나?”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던 도노반 추기경이 하인리히에게 물으며 그가 나온 문을 흘깃 살펴봤다.
“아, 성검을 뽑고 나서 심연이 이상 증상을 보였습니다. 이후 그곳으로 아크리치 하나가 나오긴 했습니다만···.”
“아크리치?”
“신성 결계의 힘으로 맥을 못 추는 것을 제가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마침 근원을 소지하던 놈이라 그 자리에서 깔끔하게 없애버릴 수 있었지요.”
“역시 그런가···. 그래도 별문제가 없어서 다행이군.”
가벼운 한숨을 내쉰 그가 뒤에 몰려있던 성직자들을 바라보며 석문 쪽을 향해 턱짓했다.
그에 고위 사제와 성기사들이 성검이 봉인되어 있던 석실의 내부로 일사불란하게 들어가기 시작했다.
하인리히가 그들을 의아한 얼굴로 쳐다보니, 추기경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니 경은 밖에서 난 소란에 대해서 모르겠군. 갑자기 심연이 반응해서 많이 당황했겠어.”
“아, 예에··· 그렇습니다.”
사실 바깥 사정이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하인리히는 애매한 표정으로 고개만 끄덕였다.
추기경은 굳은 얼굴로 그에게 사정을 설명해 주었다.
심연에서 그러한 일이 벌어진 이유.
대륙에 열린 두 번째 심연에 대해서, 그리고 또 앞으로의 대응 방안에 대해서.
“이제 성검도 없으니 저 심연의 구멍은 좀 더 철저히 관리해야겠지. 추가로 결계도 설치하고, 만약을 대비해 일부 인원도 상주시킬 생각이네.”
지금 펼쳐져 있는 결계도 절대 부족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실제로 아크리치까지 튀어나왔으니 좀 더 신경 쓸 필요가 있었다.
“안 그래도 일손이 부족한 상황이었는데. 허허헛! 이거 참 엿 같은···. 흠흠, 곤란한 상황이구만.”
저도 모르게 본심이 튀어나온 듯한 추기경이었지만, 그는 아무렇지 않게 헛기침을 하곤 하인리히를 데리고 밖으로 향했다.
“이곳의 일은 저들이 마무리할 테니, 우리는 이만 돌아가지. 경도 앞으로 할 일이 많을 게야.”
아무래도 지금 상황이 상황인지라 느긋하게 굴 시간은 없었다.
그렇게 잠깐의 휴식을 취한 하인리히는 곧바로 로셀리아 대신전으로 돌아가기 위해 게이트 룸으로 이동했다.
우우웅—
서서히 가동하기 시작한 게이트.
하인리히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배웅 나온 도노반 추기경을 돌아보았다.
“공사다망하실 텐데, 이렇게 직접 나오지 않으셔도 됩니다.”
안 그래도 한창 바쁠 시기이지 않은가.
추기경씩이나 되는 이가 직접 배웅까지 나오니, 오히려 부담스럽기 그지없었다.
“허헛, 성검의 주인이 된 이상 경은 이제 일개 성기사가 아니지.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닐세. 뭣보다··· 마지막으로 해 줄 말도 있고.”
하긴 이제 그의 위상도 전과는 차원이 달라질 터였다.
성검의 주인이라는 말은, 이 시대를 대표하는 주신의 검이라는 의미였으니까.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이란···?”
그 말에 추기경이 심각한 표정으로 다가와 그의 귓가에 입을 가져다 댔다.
그 조심스러운 태도에 하인리히가 진지하게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으나···.
“저번에 내가 한 말. 잊지 않았겠지?”
“···네?”
“성녀님 말일세. 응? 다시 설명해 줘야 하나?”
“···아뇨, 기억하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음음, 훌륭하군! 그럼 가 보시게!”
“······.”
팔불출 도노반 추기경에게는 성검의 주인이고 뭐고, 그것과 이건 별개의 문제일 뿐이었다.
***
“어서 오세요, 하인리히 경. 역시 경이 해내실 줄 알았어요!”
로셀리아 대신전으로 돌아온 하인리히는 곧바로 부드러운 미소로 그를 맞이하는 성녀를 마주할 수 있었다.
서로 반가운 인사를 주고받은 후, 가벼운 화제가 이어졌다.
“그러고 보니 도노반 추기경께서는 건강하시던가요?”
“···예. 나이가 상당하시다고 들었는데, 굉장히 건장하시더군요.”
노년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빵빵한 그의 근육을 떠올린 하인리히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답했다.
“후후··· 피카올 대신전으로 가시고 너무 바쁘셔서 걱정했는데, 운동은 아직도 꾸준히 하고 계시는 모양이네요. 여기 계실 때만 해도 절 굉장히 아껴주시던 분이셨는데.”
잠시간 이어지는 소소한 잡담.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었던 만큼, 가벼운 분위기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많이 피곤해 보이시는군요, 성녀님. 역시 일이 많으신가 봅니다.”
“후우— 이번 일이 워낙 규모가 크다 보니, 쉽지 않네요.”
어두운 표정의 성녀가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가장 큰 문제는 두 번째 심연이 열린 문제였지만, 그전에 전 대륙에서 거행된 제물 의식도 만만치 않은 일이기는 마찬가지였다.
“대륙 곳곳에서 수십 개의 제물 의식이 동시에 발동했어요. 작게는 화전민촌부터 크게는 변방의 소도시까지.”
철저하게 마법적 방비가 이루어져 있지 않고, 치안이 허술한 곳을 노린 테러였다.
그것도 어찌나 철저하게 숨겨져 있었는지 발동 전에는 그런 것이 존재한다는 것도 알 수 없었을 정도.
‘이렇게 들으니, 새삼 놈들이 대단하게 느껴지네.’
화전민촌은 그렇다 쳐도, 아무리 변방이라지만 인구가 천 명이 훌쩍 넘는 소도시까지 노릴 정도면 보통 준비로는 어림도 없었다.
“그 피해 규모는 아직 조사 중이지만··· 현재까지 파악한 것만 수만 명. 앞으로 얼마나 더 늘어날지 가늠이 되지 않는 상황이에요.”
그 유례없는 대규모 학살에 대륙의 모든 나라에 비상이 걸린 상황이었다.
물론 목표가 된 이들은 치안이 좋지 않은 곳에 거주하던 평민들이 대부분이었기에, 그 피해 자체는 고위층들에겐 대수로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지도층 입장에서도 경각심이 들 수밖에 없지.’
이 정도까지 일을 벌일 수 있는 위협적인 세력이, 절대 그들을 노리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사실 정말 큰 문제는, 불사왕 한스의 재등장과 두 번째 심연이 열렸다는 사실이지만요.”
남부로 파견된 이들의 정보는 거의 실시간으로 대신전으로 전해졌고, 그들은 지금도 계속 현장을 조사 중이었다.
“이번 심연에서 나온 것은 ‘광기’에요. 다만, 이번엔 천 년 전의 불사왕 때와는 경우가 다르다고 보고 있어요.”
온전히 지상에 강림한 ‘불사왕의 심장’과 달리, 이번에 등장한 광기는 불완전하게 꺼내진 상태였다.
그 탓에 제 형체를 유지하지 못하고 전 대륙에 흩어져 버렸지만···.
“그건 절대 좋은 신호가 아니에요. 어찌 보면 불사왕보다 더 까다롭다고 봐야죠.”
당장은 큰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심연에서 꺼내진 것이 대륙에 좋은 영향을 끼칠 리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서서히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할 터.
거기다 세상을 뒤덮은 광기 때문에 마(魔)를 추적하는 것도 전보다 훨씬 어려워진 상황이었으니, 교단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악재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모든 일을 벌인 불사왕은···.”
교단의 일원들 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본 드래곤을 탄 불사왕.
그는 일부러 현장을 떠나지 않고 기다리다가, 교단 일행을 조롱하고는 유유히 자리를 떠났다.
본 드래곤의 데스 브레스 한 방만을 남기고서.
“···다행히 피해는 그리 크지 않아요. 그곳에 있던 분들도 만만한 분들이 아니니까요. 후속타가 계속 이어졌다면 위험했겠지만···.”
불사왕은 그저, 그대로 떠나갈 뿐이었다.
“바꿔 말하자면 그자가 저희를 얼마나 우습게 보고 있는지 알 수 있죠. 어디 할 수 있는 만큼 저항해 보라고, 자비를 베풀 듯 즐기고 있는 거예요.”
평소의 온화한 인상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굳은 표정의 성녀가 이를 갈며 읊조렸다.
“성녀님···.”
“하아— 잠깐 흥분했네요. 그래도 이건 좋은 소식이에요. 이번 대의 불사왕이 그만큼 오만하다는 방증이니까요.”
그것은 여태까지 비범한 행보를 펼쳤던 불사왕을 노릴 수 있는 빈틈이었다.
확실히 끝낼 기회가 있어도, 자신의 재미를 우선시해 상대를 깔보며 기회를 준다.
전형적인 강자의 사고방식이자.
그 강자들을 무수히 죽게 만든 약점이었다.
“저희는 그 방심을 노리는 거죠. 대륙을 위해서라면 잠시의 굴욕쯤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결국, 최후의 승자는 우리가 될 테니까.”
진지한 표정으로 결의를 다지는 성녀의 모습에, 그에 감화된 하인리히도 열심히 그에 동조했다.
“저도 돕겠습니다, 성녀님. 성검의 도움이 있다면, 이번에야말로 확실히 놈을 처치할 수 있을 겁니다.”
“믿고 있어요, 하인리히 경! 경이야말로 주신께서 선택하신 불사왕 한스의 대적자니까요!”
의욕이 솟구치고 신념이 들어찬다.
하인리히는 성녀와 눈을 마주치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아직도 한스라고 부르네. 한니발 스트라우스라는 멋진 이름이 있는데. 다음엔 좀 더 강조해 봐야겠다.’
속으로는 딴생각을 하면서.
***
땅속 깊은 곳에 파묻힌 석실.
“으응···?”
오랜 세월 정체되어 있던 공기 속에서, 저번에 이어 두 번째 변화가 발생했다.
어둠 속에서 서서히 빛나기 시작하는 한 쌍의 붉은 안광.
“···뭐야, 이건···?”
하지만 굉장히 이질적인 ‘무언가’ 때문에 저도 모르게 잠에서 깨어나 버렸을 뿐, 그 목소리는 여전히 잠에 잠긴 채였다.
완전히 밀폐되어 바깥의 공기가 파고들 여지도 없건만, 그런 물리적인 한계 따윈 무시한 꺼림칙한 무언가가 그 존재를 자극한 것이다.
‘···아, 맞아.’
거기에 일단 깨고 나자 저번에 느꼈던 이상 또한 재차 느껴졌다.
아무래도 클랜에 뭔가 이상이 생긴 것 같았다.
‘일어나야지.’
지금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듯한 정체를 알 수 없는 사태와 클랜에 벌어진 일 모두 보통 일이 아니었다.
서둘러 나서서 직접 확인해야 할 정도로 중대한 사안이었으니까.
그래서 그 존재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기 위해 몸에 힘을 주었다.
“진짜로···.”
아니, 그렇게 생각만 했을 뿐, 그것이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일어나려는 듯 연신 꿈지럭거리는 몸.
하지만···.
“···그래야 하는데, 으하암—.”
자신도 모르게 새어 나오는 하품에 다시 몸이 축 처졌다.
물론 다시 잠들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기에는 주변을 자극하는 기운이 너무 거슬렸으니까.
지금 이 순간도 동면에 빠졌던 육체는 서서히 활성화되는 중이었다.
바로 움직이기엔 무리였지만···.
아마, 그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브로코슬락의 성혈이— 오랜 잠에서 깨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