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best friend is a Korean lady RAW novel - Chapter 4
3회
죽음을 목전에 둔 윤설이 두 눈을 꼬옥 감은 채 울먹이기 시작했다.
몸은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부들부들 떨렸고 숨은 가슴에 무언가가 걸린 듯 잘 쉬어지지 않았다.
곧 엄청난 고통이 엄습하리란 예감은 어떠한 생각도 행동도 할 수 없도록 만들고 말았다.
드디어 파르르 떨리는 제 어깨에 무언가가 닿자 윤설은 까무러질 듯이 놀랐다.
“꺄악!”
“어우, 깜짝이야. 저기요! 여보세요!”
멧돼지의 괴성이 들려야 할 귓가엔 어쩐 일인지 사람의 음성이 흘러들었다.
정확히는 아까의 그 여자 같았다.
아니, 여자인지 남자인지……
사람인지 환영인지도 장담할 수 없었다.
윤설은 그저 제 목숨이 아직 붙어있다는 것에 조금 안도할 뿐이었다.
정말 살아있는 것인지를 확인하려던 윤설이 제 얼굴을 가리고 있던 두 손바닥을 살며시 떼어냈다.
성난 멧돼지는 그 어디에도 없었고 다급했던 자리엔 적막이 흐르고 있었다.
거짓말 같았다.
‘너무나 생생했는데…… 꿈이란 말인가? 여긴 정말 이상한 곳이야.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또다시 불안하게 흔들리는 시선 속으로 이번엔 아까의 그 여자가 불쑥 들어왔다.
윤설은 제 앞에 쪼그려 앉은 그녀를 보고 흠칫 놀라 그만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얼굴을 내민 사람은 잔뜩 걱정스런 표정으로 다시금 말을 걸어왔다.
“저기요, 말할 줄 알아요? 뭘 그렇게 무서워해요?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거예요? 어떤 놈이에요? 여기 근처에 파출소 있는데 신고라도 해줄까요?”
“메…..”
“뭐라고요?”
“멧…..돼지는…..어, 어디로……?”
윤설의 말을 진지하게 듣던 얼굴이 갑자기 까르륵 웃더니 다시금 정색을 하기 시작했다.
‘이 여자, 뭐지? 명절도 아닌 평일에 한복 코스프레도 좀 이상하다 했더니만….. 정신 줄이라도 놓은 걸까? 아니 자동차를 보고 무슨 멧돼지 타령이여? 정말 경찰서에 신고라도 해야 하나?’
편의점 여자가 다시금 한복 입은 여자를 바라보았다.
무엇에라도 홀린 듯 정신은 없어보였지만 떠돌이 노숙자 같은 인상은 아니었다.
어딘가 부티가 났고 교양도 있어 보이긴 했다.
편의점에서 일하며 사람 상대한 경력으로 그쯤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향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던 그때……
갑자기 하늘에서 번개가 번쩍 내리치더니 빗방울이 굵어지기 시작했다.
편의점 여자가 윤설의 팔을 붙잡았다.
“저기요, 비가 많이 오니까 일단 안으로 들어가죠. 들어가서 얘기해요. 이러다 정말 감기몸살이라도 걸리면 큰일이라니까요.”
낯선 여자의 손길에 윤설이 움찔했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앉아있을 수만은 없었다.
도대체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를 알아야만 했다.
‘아버지께서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고 하셨어. 그래, 정신을 가다듬자. 반드시 무언가를 알아낼 수 있을 거야.’
편의점 여자에게 의지해 몸을 일으키던 윤설은 잠시 휘청했지만 정신을 부여잡은 채 그녀가 이끄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처소는 참으로 요상했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윤설은 낯선 여자가 투명한 벽을 밀어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에 흠칫 놀라고 말았다.
‘뭐, 뭐지? 이 사람은 주술을 쓴 것인가? 마음을 놓을 수가 없어. 설마 날 잡아 가두는 것은 아니겠지?’
“걱정 말고 들어와요. 이래봬도 우리 편의점이 여성 안심 존이라고요. 들어보셨죠? 그러니까 나쁜 놈이 쫓아오면 그렇게 길에서 서성이지 말고 안으로 들어오면 돼요. 뭐, 물건 팔아달라는 건 아니니까 부담은 갖지 말고요.”
뜻 모를 소리가 흘러나오는 동안 윤설이 처소의 안쪽을 살피기 시작했다.
알록달록한 것들이 제법 많았지만 일정하게 정돈된 모습이 특이했다.
하지만 사방이 대낮처럼 밝은 빛은 여전히 적응이 되지 않았다.
눈에 고통을 느낀 그녀가 제 소맷부리에 눈을 감춘 채 또다시 휘청하자 편의점 여자가 놀란 얼굴로 다가왔다.
“왜 그래요? 어디가 아파요?”
“목이…..”
“목이요? 잠깐, 여기에 좀 앉으세요.”
손님을 의자에 앉힌 후, 후다닥 사라졌던 여자는 곧 다시 나타났다.
“에고, 찬 데 오래 있어서 목이 겹질렸나보네…. 쯧쯧…… 자요, 이럴 땐 그저 뜨끈한 찜질이 최고라고요.”
눈을 소매 춤에 감추고 있던 윤설은 곧 제 뒷목에 올라온 열기에 흠칫 놀라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움직임에 곁에서 수건을 놓아준 여자도 덩달아 놀라고 말았다.
“거기가 아니라…… 여기가……”
윤설이 제 눈을 가리키자 여자가 당황스런 표정을 지었다.
“엥? 거긴 눈이잖아요. 왜 목이라고 했어요?”
“눈 목자가 아닙니까…..”
“헐…… 지, 지금…. 한문으로 말한 거예요?”
당연하다는 듯 윤설이 고개를 끄덕이자 멍한 얼굴로 그녀를 응시하던 여자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제…. 제가 폐라도 끼친 것인지요?”
“풉…… 아니에요. 그냥, 한문 배운 게 언제였던가를 생각한 것뿐이에요. 그나저나 말을 잘 하시네요? 휴우…. 아까는 정말 놀랐잖아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길 가다가 쓰러진 거예요? 아니면 치한이 따라오기라도 한 거예요? 에휴, 요즘 변태들이 많아져서 조심해야 한다니까요.”
또다시 뜻 모를 말들이 이어졌지만 윤설은 어쨌거나 낯선 여자가 자신을 도와줄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호랑이 굴이 생각보다 너무 밝다는 것도 한몫했지만 무엇보다도 그녀의 눈빛에선 상대를 향한 진실함이 느껴졌다.
요상한 무리들을 쫓아주기도 했고 멧돼지로부터 구해주기도 했으며 낯설 만도 한 자신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어주고 따뜻한 곳으로 이끈 것을 봐도 어쩐지 믿음이 갔다.
윤설은 정신을 가다듬고는 가만히 입을 열었다.
“저기…..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헐, 무슨 그런 높임말까지…. 훗…. 암튼 뭔데요? 말해 봐요.”
“제가 죽은 것입니까?”
윤설의 곁에 앉은 여자가 몹시 당황스런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주, 죽다니? 누가요? 그쪽이요?”
윤설은 자신을 향한 그녀의 가리킴에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괜찮으니 솔직히 말씀해주십시오. 아무래도 이곳은 천상이 아닌지요? 제가 죽어서 온 것 같아 묻는 것입니다.”
“어휴, 큰일 날 소리! 그런 말, 함부로 하지 말아요. 사람 목숨이 얼마나 중한 건데……”
“그, 그게 무슨…..?”
“그쪽은 살아 있다고요. 얼라이브! 오케이? 못 믿겠어요? 자, 이렇게 꼬집으면 아프죠?”
윤설이 제 손등의 통증에 옅은 소리를 내며 눈을 찔끔 감자 편의점 여자가 겸연쩍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앗, 미안…. 미안해요. 그것 봐요. 이건 실제 상황이라니까요? 죽으면 영혼인 건데 이렇게 아프겠어요?”
일리가 있는 말이었지만 어쩐 일인지 그것은 윤설을 더욱 큰 혼란으로 몰아가고 말았다.
차라리 죽었다면 너무도 낯선 이곳이 설명될 수 있었다.
천상이라면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으니 그러려니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더욱 미궁 속으로 빠져만 가는 셈이었다.
두려웠다.
윤설은 이제 진실을 아는 것이 두려워지고 말았다.
-꼬르륵-
적막감이 감도는 공간에서 배꼽시계의 소리는 유난히도 강렬했다.
윤설의 얼굴이 창피함으로 붉게 물들자 함께 소리를 들은 편의점 여자가 싱긋 웃기 시작했다.
“오, 살아있다는 거, 인증이네요? 맞죠? 그나저나 밤 9시가 다 되어 가는데 아직 저녁을 못 먹었나 보네. 흐음…. 뭐 먹을래요? 에이, 부끄러워하지 말고 말해요. 혹시 돈이 없어서 그래요? 걱정 말아요. 나, 힘든 사람 상대로 장사할 만큼 그렇게 인정머리 없진 않으니까요. 컵라면? 삼각 김밥? 내가 쏜다니까요?”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어딘가로 종종걸음을 치자 윤설이 제 배를 움켜쥐었다.
그 사이 또다시 야속한 소리가 울려오자 그녀의 얼굴이 난감함으로 일렁였다.
‘분명 살아있는 것은 확실하구나. 혼이 배고플 리는 없을 텐데…… 그렇다면 여긴 도대체 어디란 말인가? 타국인가? 아니야. 저들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순 있으니 그건 아닐 거야. 같은 말을 쓴다면 혹여 조….선? 아니지. 저들의 행색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제가 앉은 요상한 의자와 탁자를 응시하며 똑똑 두드려보던 윤설은 도저히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더니 여자가 두고 간 따뜻한 수건을 눈에 갖다 대었다.
남아있는 온기가 두려움에 떨고 있는 마음을 차분히 녹여주자 윤설의 마음은 조금씩 진정되어갔다.
고작 촛불이나 호롱불만으로 밤을 밝혔던 이에게 지금의 밝기는 해처럼 강렬해 도저히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딸랑-
“어서 오세요! 어? 홍 경사님, 오늘도 밤 근무세요?”
누군가의 등장에 윤설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응, 그려. 그나저나 요 앞에서 누가 쓰러져있었다는디, 참말이여? 박 양이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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