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best friend is a Korean lady RAW novel - Chapter 5
4회
“아……”
“뭐여? 본 거여? 신고가 들어와서 그려. 거…..뭐더라? 한복 입은 여자가 맨땅에 주저앉아 있었다는디?”
“헐….. 어떤 양심 있는 인간이 신고는 했나보네?”
여자가 혼잣말을 지껄이는 사이, 편의점 안을 두리번거리던 홍 경사와 낯선 이를 경계하던 윤설의 눈이 마주쳤다.
“잉? 저, 저 사람 아닌감? 어? 맞네. 한복 입었구먼.”
홍 경사가 확신에 찬 얼굴로 몇 걸음을 옮기자 흠칫 놀란 윤설의 표정이 박 양의 시선에 담겼다.
그것은 마치 도움의 손길을 애타게 원하는 것만 같았다.
간절함이 닿는 순간, 박 양이 날쌘 너스레로 그를 붙잡았다.
“홍 경사님, 무슨 오해가 있었던 모양인데요? 저긴 제 친구에요.”
“으잉? 친구라고 혔어? 오늘은 아무 날도 아닌데 한복은 뭐고…. 또 길에 주저앉았다는 건 뭐여?”
“아, 그거요? 제 친구가 알바를 하거든요. 사극 엑스트라요. 홍 경사님, 엑스트라, 그거 얼마나 힘든 건지 모르시죠? 에휴, 말도 마세요. 대기하는 시간도 장난 아니고 언제 끝날지도 모른다고요. 하루 종일 일하느라 애가 완전히 녹초가 다 된 거 있죠? 이 시간까지 밥도 못 먹었으니 당이 떨어질 만도 하죠. 안 그래요? 저를 만나러 오던 친구가 잠깐 어지러워서 앉아있던 걸 가지고 길 가던 사람이 오해했나 봐요.”
윤설 쪽으로 다가서던 홍 경사가 걸음을 멈추었다.
“워매, 그랴? 아이고 그럼. 당 떨어지면 큰일이지. 좋은 일 하는 친구를 뒀구먼. 나 사극 좋아하는디…. 그거 이름이 뭔지 알 수 있는감?”
“아, 아이고….. 우리 홍 경사님, 참 성미도 급하시지. 그걸 보고 스포 유출이라고 하는 거예요. 일체 비밀 엄수, 아시죠? 제목도 스토리도 완전 비밀이라고요. 아, 그래야 그쪽 사람들도 먹고 살죠. 푸힛…..”
“아이고, 알았네. 알았어. 암튼 박 양 너스레는 당할 수가 없다니깐……. 저어기, 친구 분, 많이 드시고 힘내세유. 다시는 길에 주저앉고 그러면 안 되는디…..”
윤설은 자신을 향해 뭐라고 지껄이는 남자의 말을 도통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가만히 목례했다.
지금은 아무 것도 알아내지 못한 상황이었다.
혼란스런 가운데 새로운 누군가와 얽히는 것은 너무나 두려운 일이었다.
우선은 예로서 대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한 그녀였고 그런 판단은 적중했다.
“워매, 사극에 출연하신다더니 진짜 조신하구먼. 자, 그럼, 나는 가야겠네. 박 양, 친구랑 재밌게 노셔.”
“예, 홍 경사님, 불철주야 수고가 많으십니다! 오늘도 파이팅하세요! 아자 아자!”
뒤돌아 나가던 남자가 박 양을 향해 손사래를 치더니 껄껄 웃으며 사라졌다.
“휴우………”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 두 여자가 서로의 시선을 마주하자마자 피식 웃고 말았다.
“자, 어서 먹어봐요.”
이리 저리 돌아다니며 무언가를 주섬주섬 담아온 박 양이 가져온 것을 내밀었다.
잠시 수건의 온기로 눈을 진정시켰던 윤설은 제 시야를 채운 것들에 믿을 수 없다는 듯 몇 번이고 눈을 비볐다.
여자가 말한 것을 제대로 알아듣진 못했지만 허기를 채워주기 위해서라면 놋그릇에 국밥정도는 나올 거라 예상했었다.
아니, 남의 집에서 잠시 신세를 지는 입장으로 그런 호사는 바라지도 않았다.
사기그릇에 담긴 숭늉, 거기에 가마솥 누룽지라도 감지덕지했다.
하지만 여자가 내민 것은 이곳 사람들의 행색만큼이나 요상하기 짝이 없었다.
알록달록한 색감으로 무장한 것들은 하나같이 반짝이는 옷을 입고 있었다.
도저히 뭘 어떻게 먹어야 할는지는 좀처럼 짐작할 수 없었다.
“왜요? 설마…. 인스턴트는 취급 안 하는 거예요? 헐, 정말 그래요? 하긴, 평범한 날, 그렇게 고운 한복을 입었다면 웰빙을 실천하는 분일 수도 있겠네요. 에고… 어쩌나…. 아시다시피 여긴 다 이런 것들뿐이라……..”
여자의 겸연쩍은 미소가 윤설의 시선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 순간 불현 듯 미안한 마음이 스며들었다.
‘남의 집에서 얻어먹는 처지에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바랐구나.’
“아, 아닙니다. 그저 고맙습니다. 허나…. 이, 이것들을 어찌 먹어야 할지 몰라서….. 좀 가르쳐주시겠습니까?”
윤설은 여자의 성의를 생각해 용기를 냈지만 맞은편에 앉은 그녀를 더욱 당황스럽게 만들고 말았다.
직감적으로 실수를 했다고 여긴 윤설이 사과하려던 찰나였다.
“저기…. 혹시….. 청학동에서 오셨어요?”
“예에?”
“요즘 청학동은 좀 달라지지 않았나? 알다가도 모를 일이네. 그러니까 이걸 어떻게 먹는지 모른다고요?”
윤설에게 반은 알 수 없고 반은 알아들을 수 있는 질문이었다.
점점 더 민폐를 끼치는 것만 같았지만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은 솔직함일 뿐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녀를 바라보는 박 양의 얼굴에 의심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뭐지? 이 여자? 어쩐지 무서워지는 걸? 설마…. 고운 한복 차림을 하고선 나쁜 짓을 하진 않겠지? 일단 배고픈 건 확실하니까, 좀 먹이고 나서 자초지종을 들어봐야겠다. 그래, 어디 지리산 오지에서 살다가 서울 구경 왔을 수도 있잖아? TV에 그 프로그램 뭐더라? 그래, 거기에 보면 산속에서 나물이나 그런 것만 먹는 사람들도 꽤 많더만….. 그래, 좋게 생각하자고. 그간 갈고 닦은 나의 사람 보는 눈을 좀 믿어보자.’
낯선 이에 대한 경계를 누그러뜨린 박 양이 이내 배시시 웃더니 나무젓가락을 뜯어 여자의 손에 쥐어주었다.
“자, 이건요. 컵라면이라는 거예요. 뜨거운 물을 부어 먹는 건데…..음….. 뜨거우니까 조심해서 드세요. 그리고 이건 삼각 김밥. 김밥은 아시죠? 이거 이렇게 화살표 방향으로 뜯어야 손에 안 묻고 잘 먹을 수 있어요. 우리 손님들 중에 요거에 실패한 분들이 꽤 있다니깐요. 자, 이건 내가 능력자니까 나에게 맡겨요. 크크…. 자, 그리고 이건 물이에요. 약소하지만 많이 드세요.”
얼떨결에 젓가락을 받아든 윤설의 시선이 낯선 여자의 설명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였다.
뜻을 알아들을 수 있는 말과 그렇지 못한 말은 여전히 섞여 그녀를 혼란하게 만들었지만 여자의 호의는 고맙지 않을 수 없었다.
“저기….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만…..”
“말해요. 뭔데요?”
“이, 말간 것이….. 물이라고 하셨습니까?”
“말간 것? 아, 투명한 거요? 네. 물이에요. 그런데 왜요?”
“그, 그러니까…… 사람이 마시는 물이란 말입니까?”
고개를 끄덕인 박 양이 대수롭지 않게 입을 열었다.
“당연하죠. 하긴, 부자들은 생수로 세수도 한다지만 에이, 우리 같은 서민들이야 그럴 수 있나요? 사실 먹는 걸로 장난치는 거라고 여기면 그런 거 하나도 안 부럽다능….”
-딸랑-
아까 들었던 방울 소리가 또다시 들려오자 윤설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소리 나는 쪽을 향했고 박 양은 부리나케 일어났다.
“어서 오세요.”
싹싹하고 밝은 목소리가 도드라진 자리로 남녀 한 커플이 들어왔다.
혼란함으로 어쩔 줄 몰라 하던 윤설의 시선이 저절로 두 사람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무언가 해답을 얻고 싶은 본능이었다.
남녀는 팔짱을 낀 채 웃으며 걸음을 옮겼고 커다랗고 투명한 유리 앞에서 무언가를 골랐다.
‘세상에나…. 남녀가 유별한데 저리도 붙어있다니….. 아무리 정혼을 했다 하여도 어찌 저럴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이곳은 어찌 모든 것이 훤히 다 들여다보이는 것이지? 벽도 투명하고 문도 투명하고….. 저 사람들도 주술을 쓰는 걸까? 휴우….정말 알 수가 없구나. 게다가 날 도와준 분은 여기에서 뭘 하는 거지? 인사를 하는 걸 보면 무엇을 파는 곳 같은데…… 그럼, 여긴 먹을 것을 파는 주막인 것인가?’
혼자만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동안 다정한 남녀가 계산대로 걸음을 옮겼고 그들의 차림새를 자세히 보게 된 윤설이 제 입을 막고 말았다.
‘세상에나…… 저 여인네는 속곳만 입고 나온 것인가? 해괴망측하구나.’
짧디 짧은 치마 아래로 훤히 드러난 맨다리는 윤설에게 충격 그 자체였다.
기녀들의 저고리가 보통의 아녀자들과는 다르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었지만 치마가 짧다는 건 금시초문이었다.
금세 낯이 뜨거워진 윤설이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무언가 해답을 얻으려 할수록 자꾸만 늪으로 빠지는 기분이었다.
-꼬르륵-
분명 입맛이 없어야 할 상황이었지만 때를 지나친 배꼽시계는 단단히 성나 있었다.
윤설은 하는 수 없이 식탁 위에 놓인 것들을 응시했고 세모난 모양의 것을 검지로 톡톡 두드려보았다.
박 양이 정성껏 껍데기를 벗겨놓은 것은 그나마 낯익어서 저절로 마음이 갔다.
모양은 독특했지만 김과 밥은 그녀가 먹어본 것이었다.
투명하고 반짝이는 보자기를 손끝으로 만져보던 그녀는 신기함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안에 든 것을 꺼냈다.
손에 든 것을 이리저리 바라보던 윤설이 조심스레 한 입을 베어 물었다.
‘어?’
조심스러웠던 행동이 서서히 빨라지고 있었다.
참기름과 간장의 맛……
게다가 잘게 갈아 볶은 소고기의 맛은 그녀가 아는 것이었다.
드디어 낯설지 않은 것을 마주하자 윤설의 마음에 펄펄 끊던 불안함이 조금씩 사라지는 듯했고 무언가 해답의 실마리를 발견한 기분마저 들었다.
카운터에서 계산을 마친 박 양의 시선이 테이블을 향했다.
처음보다 조금 긴장이 풀린 듯, 여자는 삼각 김밥을 제법 맛있게 먹는 중이었다.
‘잉? 손에 묻지 말라고 일부러 비닐을 남긴 건데…. 불편하셨나 보네?’
피식 웃는 찰나, 의심이 걷힌 자리로 원인 모를 흐뭇함이 피어올랐다.
‘그래, 인생 뭐 있어? 이렇게 좋은 일도 하며 사는 거지. 안 그래? 배고픈 사람 살리는 셈 치니까 요거 참 뿌듯하네. 훗……’
혼잣말을 지껄이는 사이, 또 다른 손님 몇 명이 안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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