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best friend is a Korean lady RAW novel - Chapter 6
5회
“어서 오세요.”
게 눈 감추듯 금세 세모난 밥을 해치운 윤설은 민망함에 어쩔 줄 몰라 했다.
남의 집에서 폐를 끼친 건 아무리 생각해도 미안했지만 낯선 음식이 의외로 맛이 좋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윤설은 손님들을 싹싹하게 대하는 여자를 힐끗 쳐다보았다.
‘이제 보니 저분은 주술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주모인가 봐. 음식을 제법 맛있게 하네. 그러니까 사람들이 이렇게 드나들지. 그런데…. 왜 여기엔 가마솥이 없는 걸까? 음식을 파는 곳이면 음식 냄새가 나는 것이 정상일 텐데…… 사람들이 무언가를 부지런히 가져가는데 도대체 그릇도 보이질 않고….. 차곡차곡 놓인 저것들은 대체 무얼까? 동그란 것….. 네모난 것….. 길쭉한 것…… 모양도 다 다르고 색감이 다채로운 것은 이루 말할 수가 없구나. 눈이 혼란스러울 지경이야. 게다가 투명하고 반짝이는 것은 그 어디에나 흔하구나.’
조금 전까지 느낄 수 없었던 구수한 냄새가 슬금슬금 윤설의 후각을 자극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을 유혹하는 냄새의 근원을 찾아 헤맸고 바로 코앞에서 그것을 발견했다.
이름이 어려워 기억하진 못했지만 자그맣고 둥그런 기둥 모양의 그릇에선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었다.
윤설은 박 양이 건네주었던 젓가락을 들어 그것을 휘휘 저었다.
‘어? 이건? 온면이잖아? 가늘고 긴 모양이 온면이 맞네. 허나 이토록 빨간 국물은 처음인데?’
이번에도 낯익은 맛이라면 윤설은 큰 희망을 건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눈을 반짝이던 그녀가 젓가락에 면을 집어 들어 제 입으로 가져간 순간, 막 계산을 끝낸 박 양이 손님을 향해 살갑게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안녕히 가세요. 또 오세요!”
“윽! 콜록 콜록”
난데없는 소리에 박 양의 시선이 저절로 윤설에게 닿았다.
그녀는 붉어진 얼굴로 기침을 하며 물병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이리저리 기울여 보고 흔들어도 보는 모습은 우스꽝스러웠지만 그녀의 얼굴엔 장난이 아닌 고통이 스며있었다.
“왜, 왜 그래요? 이거, 물 드려요?”
기침을 하던 윤설이 고통스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박 양이 서둘러 마개를 돌렸다.
열린 구멍에서 냉수가 흘러나와 타는 듯한 목을 축인 후에야 비로소 고요가 찾아왔다.
조금 진정된 윤설이 제 가슴을 두드리며 목례했다.
“너무 뜨거웠던 거예요? 아님, 사레들린 건가?”
“그것이 아니라…. 너무 매워서 그만……”
“아, 진짜요? 산에서 매운 걸 많이 안 드셨군요? 하긴 양념 같은 걸 많이 치는 음식이 필요 없긴 할 거에요. 그렇지 않으면 산에서 살 이유가 없겠죠? 앗, 아니신가……?”
“저…… 산에서 살지는 않았고….. 처음 먹어본 이 온면이 맵긴 하지만….. 맛은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오, 온면이요? 아, 네. 뭐……. 맛있다고 하시니 저도 기쁘네요. 천천히 더 드세요.”
먹는 걸 빤히 지켜보기가 민망했던 박 양이 시계를 보더니 의자에서 일어났다.
얼마 후면 교대를 할 시간이었다.
그 전에 정리할 건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게 그녀만의 철칙이었다.
싹싹하고 책임감 있는 모습은 고용주의 마음을 흡족하게 했고 덕분에 그녀는 꽤 오랫동안 이곳에서 일하고 있었다.
서로 간에 배려와 믿음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선반의 물건들을 줄맞추고 쓰레기통을 비우던 여자가 문득 생각에 잠겼다.
‘그나저나 저 사람, 빨리 집에 연락해야 하는 거 아냐? 밤이 깊었는데 집엔 어찌 가려고 그러나? 퇴근하기 전에 해결 좀 해줘야겠다.’
일을 마무리하고 다시 돌아온 박 양이 한복 입은 여자의 맞은편에 앉았다.
막 젓가락을 놓은 그녀는 겸연쩍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덕분에 잘 먹었습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에이, 아니에요. 그건 괜찮은데….. 집에서 걱정하시겠어요. 전화하셔야죠.”
“예에?”
당황스런 낯빛이 피어나자 박 양의 재치가 번뜩였다.
그것은 바로 핸드폰이 없으리라는 판단이었다.
줄곧 그녀가 오지에서 왔다고 생각했기에 가능한 상상이었다.
“자, 여기요. 이거 쓰세요.”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낸 박 양은 마치 선행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에 기분이 좋은 듯 의기양양했다.
그러나 그녀의 기쁜 표정은 오래 가지 못했다.
“저….. 이것이….. 무엇인지요?”
기쁨이 사그라진 자리에 근심이 급격히 돋아나기 시작했다.
‘진정하자. 그래, 이분은 오지에서 오셨어. 그러니까 스마트폰을 모르고 사용하는 방법은 더더욱 모르시겠지.’
“아하하…. 이건요. 전화에요. 그러니까 집 전화는 아시죠? 이건 들고 다니는 핸드폰이라는 거죠. 아, 물론 더 자세히는 스마트 폰이라고 해요. 전화뿐만 아니라 안 되는 거 빼곤 다 되는 녀석이기에 이름이 그런 거예요. 자, 그럼 낯설 테니 제가 걸어드릴게요. 전화번호가 뭐예요?”
“저…… 전화번호가….. 뭔지……”
윤설의 시선에 몹시 당황한 얼굴의 여자가 담겼다.
결코 그녀가 의도하지 않은 일이었다.
자신의 은인에게 폐를 끼치는 것도 모자라 곤란하게 만든다는 건 그녀로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그러니까….. 집에 전화는 있을 거 아니에요? 설마… 전화도 없는 거예요? 그럼, 집에 연락은 어떻게 하죠? 아니다. 집이 어디에요?”
“한성부의 북촌입니다.”
“북촌에 있는 한성 아파트요? 엥? 북촌에 아파트가 있었던가? 헐….. 북촌이라면 한옥 마을 있는 곳 아니에요? 그럼 서울인데 왜 전화가 없지?”
“그, 그것이….. 한양 도성 말입니다. 조선의 한양…… 그곳을 아십니까?”
“……. 아……. 하하…..”
영혼 없는 웃음으로 리액션을 보여준 박 양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기…… 기분 나빠하지 말고 들어주세요. 한복 코스프레 하시는 걸로 봐서 뭐, 사극에 심취하신 분 같은데요. 물론,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자신의 취향 저격에 올인하겠다는 걸 뭐라고 하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그…. 자신과 관련된 기본 정보는 알고 다니셔야 하는 게 아닌지….. 허허….. 길 잃으면 뭐…. 파출소에서 찾아주긴 하겠지만요. 그래도 요즘 하도 험한 세상인지라…. 제가 그쪽을 걱정해서 하는 말이니까 마음 상하신 건 아니죠? 초면에 미안해요. 난 그저 내 또래 같기도 하고 그래서……”
“저는 안동 김 씨 가문의 여식, 김윤설이고 올해 스물입니다. 아버지께선 김 시 자 혁 자를 쓰시며 종일품 판돈령부사를 지내고 계십니다. 저의 행색이나 여러 가지를 이상하다고 여기시겠지만, 저 또한 이곳이 너무나 낯설고 두렵습니다.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으나 어찌 할 바를 알지 못합니다. 실례하지만…. 저를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님께선 제가 이곳에서 처음 만난 분이시고…. 또한 저를 도와주셨으니 믿음이 갑니다. 제발 저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봇물처럼 터져 나온 말은 단정하고 꽤나 간절한 하소연이었다.
그러나 박 양으로선 당체 믿기 힘든 말이었다.
거짓말 일 가능성도 있었다.
사람 마음을 현혹시키는 일이 많은 요즘에 누군가의 말을 백 프로 믿는 건 바보일 수 있었다.
사실 진실이 묻어나는 그녀의 표정에 웬만하면 믿어주고 싶은 마음도 살짝 일었다.
하지만 이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헐….. 지금이 아무리 21세기라지만…. 무슨 타임머신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실사판도 아니고…… 이게 뭐지? 이분 말이 사실일까? 아흑, 간만에 착한 일 한 번 하려고 했는데 뭐가 이렇게 꼬인 거지?’
어지러운 듯 머리를 감싼 박 양이 윤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저기, 그러니까….. 정리를 좀 해보죠. 그쪽은 한성부? 그러니까 조선의 한양에서 온 김윤설. 스무 살. 맞죠? 아버지께서는 음….. 조정의 관직에 계시다는 거……… 그리고 그쪽도 여기가 낯설고 이상하니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거죠. 맞아요?”
드디어 제 마음이 전달되어 한껏 기쁜 표정의 윤설이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가 잘 이해했으니 곧 도움을 주리란 예감이 피어나는 순간이었다.
“우선, 반가워요. 내 이름은 박해인. 나이는 그쪽과 같은 스무 살이에요. 동갑이니까 우리 말 트는 거 어때요?”
윤설에겐 초면에 만난 사람과 말을 놓는다는 게 어색하긴 했지만 지금 그런 걸 따질 형편이 아니었다.
그녀는 희망에 찬 눈빛으로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빨리 해결책을 찾아 돌아갈 수만 있다면 해인이 자신을 언니라고 불러달라 해도 따를 판이었다.
“저기, 있잖아. 동갑내기 친구로서 나도 널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커. 그런데 말이야 지금이 2017년이라지만, 시간을 여행할 수 있는 타임머신이 발명된 것도 아니고 아무리 생각해도 조선에서 왔다는 너의 말은 납득하기가 힘들어.”
해인의 말을 듣던 윤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잠깐만….. 이천 십 칠년이라는 것이 무슨 뜻인지……?”
“현재의 연도 말이야. 날짜. 여기는 2017년 6월이야. 그러니까 네가 왔다고 하는 조선시대가 끝난 이후에도 무려 백년이 넘은 거지. 그게 바로 지금이야.”
납득할 수 없는 것은 윤설도 마찬가지였다.
해인을 통해 실마리를 잡을 수 있으리라 여겼던 그녀는 동그래진 눈으로 그녀의 말을 곱씹었다.
낯선 네 자리 숫자는 금세 잊고 말았지만 조선시대가 끝났다는 것과 백 년이 넘었다는 것은 꽤 강렬하게 그녀의 가슴을 때리고 말았다.
“조….. 조선이…… 멸망한 것입니까? 그 후로 백 년이 흘렀다고요?”
“응. 잠깐, 더 자세히 알려줄게. 그럼 너는 어느 왕 때를 살았던 거야?”
스마트폰을 터치해 검색창을 띄운 해인은 어느덧 윤설의 말을 믿고 있는 자신을 인정하고 말았다.
처음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화를 나눌수록 그녀의 언행에 무언가 묵직한 진실이 담겨진 것을 부인할 수 없었다.
“……왕의 시호나 묘호는….. 붕어하신 후에 지어지는 것이어서……”
“엥? 당최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돌아가신 후에 지어진다는 거지? 그럼, 그 전의 왕 이름은 뭐였어?”
“경종 대왕이십니다.”
“경종? 장희빈의 아들 말이야?”
해인의 물음에 윤설이 깜짝 놀란 듯 고개를 들었다.
“그걸, 어찌 아는지……?”
“당연히 역사 시간에 배웠지. 아니, 드라마를 봤구나. 히잇…. 어쨌거나, 경종 다음이면 뭐 검색할 필요도 없겠다. 태정태세문단세….예성연중인명선…..광인효현숙경영….. 그럼, 영조네. 그의 아들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었잖아. 아, 너무 불쌍했어.”
“그, 그것을 어찌….. 모두가 쉬쉬하던 일이기에 발설하는 것조차 두렵습니다. 조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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