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best friend is a Korean lady RAW novel - Chapter 7
6회
흠칫 놀란 윤설과 제법 진지해진 해인의 눈빛이 서로 마주쳤다.
믿지 못했던 이는 장난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고 이러한 상황을 도무지 종잡을 수 없어 당황했던 이는 조금씩 자신이 와 있는 곳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드디어 서로가 서로의 말을 믿게 되는 기적이 두 사람에게 찾아온 것이었다.
해인의 검지가 스마트폰에서 제법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영조 시대에 왔다면…… 적어도 290년이 지났다는 얘기야.”
“그, 그러니까….. 지금, 이곳은…… 내가 살던 시간에서 290년이 지난 후란 말입니까?”
“…… 응…….”
묻는 사람이나 대답하는 사람이나 몹시 당황스러운 순간이었다.
서로가 믿기지 않는 얼굴이었지만 유독 진실을 마주한 윤설의 얼굴에선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이 피어나고 있었다.
해인이 걱정스런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입술을 파르르 떨던 윤설의 어깨가 조금씩 들썩이더니 이내 온몸을 움츠려 떠는 모습이 그녀의 시야에 담겼다.
“괘…….. 괜찮아?”
윤설은 대답 대신 겨우 고개를 끄덕였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해인은 알 수 있었다.
극도로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고 얼마 후, 편의점 문에 달린 방울 소리가 그 침묵을 비집고 들어왔다.
해인의 교대 자였다.
이어폰을 끼고 등장한 그는 두 사람이 앉아 있는 테이블을 힐끗 보더니 다시금 동그래진 눈으로 그들을 응시했다.
늦은 밤, 한복 입은 여자의 존재감이 제법 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의 눈길을 마주한 해인이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너스레를 떨기 시작했다.
“하이, 강 군, 왔어? 오늘 친구가 놀러 와서 말이야. 뒷정리는 다 했으니까 창고만 한 번 봐줄래? 그럼, 나 퇴근해도 되지?”
남자가 무심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창고로 들어갔다.
그를 안심시키고 돌아온 해인은 윤설이 먹은 것들을 차곡차곡 모아 정리한 후, 그녀에게 나직이 속삭였다.
“일단, 나가자.”
요란했던 비가 사라진 자리로 말간 달빛만이 가득했다.
돌아갈 곳 없는 이에게 밤은 더없이 냉정할 뿐이었다.
박 양을 따라 밝디 밝은 처소로 들어갈 때만 해도 일말의 희망을 품었던 윤설이 투명한 벽의 밖으로 나오자마자 절망으로 몸서리쳤다.
늘 이 시간에 퇴근하는 해인은 밤공기가 차갑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시선을 떨군 채 움츠린 윤설을 보자 안타까운 마음이 일기 시작했다.
‘정말 조선에서 왔다면……. 얼마나 암담할까?’
해인이 처음 서울에 올라오던 날, 그 시간도 밤이었다.
지겨운 고향을 떠나 꿈을 찾아보겠다고……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고 말겠다며 울부짖었던 소녀는 화려한 도시의 어둠속에서 떨고 있었다.
낯설고 막막한 마음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었다.
해인은 그때 느꼈던 그 마음이 새삼 떠올랐고 윤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짐작했다.
“저기……. 우리 집으로 갈래? 여기서 멀지 않아. 아, 그리고 나 독립해서 혼자 살거든. 아무도 없으니까 염려하지 마.”
윤설이 해인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뜻밖의 호의가 너무나 따뜻하게 다가와 마음을 감동시킨 덕이었다.
두 사람이 가로등을 의지해 길을 걷기 시작했다.
투명한 처소가 점점 멀어지자 곧 밤이라는 게 실감날 정도로 어두웠다.
윤설은 제 곁을 스쳐가는 낯설고 커다란 것들을 느꼈지만 애써 고개를 들진 않았다.
그저 막막하고 암담한 마음은 새로운 것에 눈길을 줄만큼 흥겹지도 여유가 넘치지도 않았다.
지금은 그저 고단할 뿐이었다.
골목길, 두 번째 집에서 멈춰선 해인은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곧 열쇠를 꺼냈다.
“쉿! 주인아주머니가 2층에 사시거든. 야밤에 소리 나는 거, 제일 싫어하셔. 조용히 따라와.”
주의할 점을 일러준 해인이 조용히 대문을 열어 윤설을 이끌더니 이내 그녀의 한복자락을 잡아주었다.
“저기 계단으로 올라가야 해. 조심해.”
달빛 아래로 윤설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자 해인이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치맛자락을 단단히 붙잡은 채 그녀를 뒤따르던 윤설이 오래지 않아 숨을 헐떡였다.
이렇게 많은 돌계단을 올라본 적은 없었고 이렇게 높은 처소 역시 처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차고 더운 걸 가릴 때가 아니었다.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해 암담한 그녀였다.
호의를 베풀어준 은인에게 그저 감사한 마음은 당연했다.
숨이 턱에 찰 만큼이 되자 겨우 계단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둠속에서 열심히 뒤따르던 윤설은 힘에 부쳐 휘청했고 먼저 올라섰던 해인이 재빨리 그녀의 팔을 잡아주었다.
“괜찮아?”
자그마한 물음에 윤설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돌계단을 손으로 짚어 넘어지지는 않았다.
해인에 의해 드디어 꼭대기에 오른 윤설은 숨을 몰아쉬다가 곧 놀라운 얼굴로 주변을 바라보았다.
높은 곳에 있는 처소답게 주위엔 가리는 것이 없이 시원했다.
하지만 그녀를 놀라게 만든 것은 바로 별을 땅위에 흩뿌린 듯한 풍경 때문이었다.
무수한 반짝임이 하늘의 그것처럼 빛나고 있었다.
마치 하늘을 그대로 반영하는 거울인 것만 같았다.
윤설의 얼굴에 호기심이 피어나자 해인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히잇, 야경이 끝내주지? 사실 고시원에 있다가 옮긴지 얼마 안 됐어. 너무 답답해서 이를 악물고 모았다니깐. 옥탑 방이 바로 내 로망이었거든. 올라오는 거 힘들고 계절마다 불편한 점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 맛에 산다니깐.”
알아듣기 힘든 말이었지만 윤설은 해인의 표정에서 그 뜻을 짐작할 수 있었다.
지금 자신의 눈으로 보아도 아름다운 것은 아마 그녀에게도 동일할 거라 생각했다.
“자, 구경은 천천히 하고….. 들어가자. 피곤하지?”
난생 처음 보는 문이 철컥 소리를 내며 열렸고 곧 밝은 등이 켜지자 윤설이 깜짝 놀라 제 눈을 가렸다.
조금 전, 투명한 처소에서 보았던 빛보단 조금 덜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강렬했다.
“앗, 미안. 눈 아프다고 했지? 잠깐만….. 내가 초를 켤게.”
안으로 들어선 해인이 선반에서 무언가를 가져오더니 이내 불을 밝혔고 곧 은은한 향기가 윤설의 후각으로 스며들었다.
소맷부리에서 가렸던 눈을 살며시 떼어낸 윤설이 한결 편안한 얼굴로 웃었다.
“자꾸 귀찮게 하는 것은 아닌지…….. 미안합니다.”
“아니야. 어서 들어와. 그런데 아까부터 자꾸 나만 말을 놓네? 정말 괜찮으니까 편안하게 말해.”
“그….. 그럴게. 그런데 초에서 향기가 나는 구나? 신기하다.”
“응, 내가 향초를 좋아하거든. 이건 좋은 향을 넣어 만든 거야. 맞다. 앞으로 밤에는 불을 켜지 말고 이걸로 사용하면 되겠다. 히잇. 너도 좋지? 그나저나 계속 그렇게 서있을 거야? 어서 들어와.”
미안한 마음에 서둘러 꽃신을 벗지 못한 윤설이 겸연쩍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렇게 폐를 끼쳐 정말 미안하고 고맙구나. 그럼, 잠시 신세 좀 질게.”
“에이, 무슨….. 부담 갖지 마. 일단, 씻고 옷을 갈아입어야겠다. 한복이 많이 불편하지?”
“아니, 그, 그렇진 않은데…….”
늘 입고 생활하는 의복이 불편할 리 없었지만 무엇보다도 윤설에겐 또다시 신세를 지기 미안한 마음이 컸다.
하지만 그에 아랑곳하지 않은 해인은 벌써 갈아입을 것을 든 채 그녀의 앞으로 다가왔다.
“음, 여기선 다 이렇게 편안한 옷을 입어. 처음엔 어색하겠지만 곧 적응하게 될 거야. 이건 윗옷 그리고 이건 바지. 속옷은 마침 새 것이 있어서 가져왔어.”
생전 처음 보는 의복에 당황한 윤설은 곧 고마움을 느끼고는 그녀의 호의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씻기 위해 있어야 할 것들이 보이지 않자 다시금 당황하고 말았다.
윤설이 겸연쩍은 미소로 입을 열었다.
“저기, 물이며 목욕통은 어디에 있는 것이니? 길어와야 하는 것이면 내가……”
“아……..맞다.”
해인이 손뼉을 치더니 까르륵 웃기 시작했다.
실수를 한 거라 여긴 윤설이 동그래진 눈으로 그녀를 응시하자 해인이 곧 그녀의 손을 이끌고 어느 문 앞에 섰다.
“여기가 바로 화장실 겸, 씻는 곳이야. 자, 내가 천천히 알려줄게.”
곧 단단한 나무문이 열리고 주황빛의 등이 켜지자 윤설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녀의 시선에 닿은 것들이 번번이 상상을 벗어나긴 했지만 자그마한 처소의 안에 든 것들은 정말로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다.
우선 벽과 바닥은 낡지 않았고 심지어 나무도 아니었다.
아니, 나무란 것은 문 이외엔 찾아볼 수도 없었다.
하얗고 둥그런 것들은 높이를 다르게 해서 놓여있었고 벽에는 커다란 무언가가 박혀있었다.
해인에 의해 얼떨떨한 얼굴로 안에 들어선 윤설은 제 얼굴이 또렷이 보이는 면경을 들여다보았다.
제 처소에 있던 자그마한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였다.
신기해하며 거울 안에 비친 것을 이리저리 살피던 윤설이 갑자기 소리를 꽤액 질렀다.
“왜? 왜 그래?”
“뱀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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