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best friend is a Korean lady RAW novel - Chapter 98
97회
나직이 비밀을 알려준 이가 이번엔 준을 향해 싱긋 웃었다.
“준이 씨, 제 친구 잘 부탁드려요.”
두 사람이 먼저 출발하자 윤설이 동그래진 눈으로 그들을 응시했다.
바퀴 두 개를 단 것은 소리조차 없었고 가볍게 땅을 디뎌갔다.
“우리도 출발할까요? 윤설 씬 여기에 앉아서 제 허리를 잡으세요. 익숙지 않아 두려울 수도 있지만 곧 적응하실 겁니다. 준비 되셨죠?”
“헌데….부서지는 것은 아니겠지요?”
지금껏 봐온 탈 것 중에 가장 단순해 보였기에 이런 우려도 무리는 아니었다.
순수함을 느낀 그가 싱긋 웃으며 그녀의 뺨을 쓰다듬었다.
“아마 윤설 씨와 비슷한 사람 두 명을 더 태워도 끄떡없을 겁니다.”
준의 친절한 설명과 함께 윤설이 용기를 내어 뒷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서서히 몸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녀가 움찔하고 말았다.
“꺄악!”
“괜찮으세요?”
“예. 소….송구합니다.”
“아니에요. 넘어질 것 같은 느낌 때문이죠? 저도 자전거 처음 탈 때 그랬습니다. 천천히 갈게요. 자아, 꼭 잡으시고…..출발합니다.”
준의 옷자락을 겨우 잡고 있던 윤설이 그의 허리를 꼬옥 붙잡았다.
휘청거려 넘어질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준을 의지한 것은 꽤 마음에 안정을 주기 시작했다.
윤설은 사뿐히 제 뺨을 스쳐가는 바람결은 느끼더니 곧 풍경을 시선에 담았다.
푸르디푸른 것은 비단 산뿐만이 아니었다.
바다 또한 그에 뒤지지 않았다.
‘섬이라고 했던가….바다로 둘러싸인 곳은 조선에선 죄인들의 유배지라 들었거늘….이곳에선 더 이상 그렇지 않구나. 참으로 푸르고 아름답다. 고요와 평화가 흐르는 곳이로구나.’
페달을 밟는 준이 미소를 멈추지 못했다.
흐뭇한 얼굴 위엔 웃음이 끊임없이 피어나왔고 그의 가슴 속으론 설렘의 폭죽이 터지고 있었다.
연인과 함께 하는 시간은 당연히 행복했지만 결정적인 건 지금 제 허리를 꼬옥 잡고 있는 윤설의 손길 때문이었다.
얼굴을 볼 순 없었지만 그녀의 표정은 이미 준의 머릿속에 선명했다.
사랑스러움이 준의 가슴을 간질이는 중이었다.
-두근 두근 두근-
준의 가슴이 요동치는 사이, 윤설의 마음이 그제야 방망이질을 하기 시작했다.
섬이란 곳을 온전히 느끼던 중, 제 양손으로 전해진 낭군의 온기 때문이었다.
그를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긴 했지만 자신을 인도하는 따스함은 이미 체온을 넘어선 지점에 있었다.
낭군에 대한 신뢰는 물론, 사랑이 가득히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낮 동안 섬을 한 바퀴 돌며 모처럼의 여유를 만끽했던 이들이 해질 무렵 다시 마주했다.
늦은 오후의 계획은 일몰 감상이었다.
모두가 해지는 광경을 자세히 본 적이 없을 만큼 분주한 삶을 살고 있었다.
윤설은 세 사람의 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조선에서 자연스러운 것이 후대에선 그렇지 않았고 그곳에서 불가능한 일이 이곳에선 더 이상 특별하지 않았다.
종잡을 수 없을 만큼 어렵긴 했지만 섬에서의 일몰은 그녀에게도 처음이라 기대되었다.
준은 윤설의 손을 잡고 섬 마을의 높은 언덕 위로 올랐다.
탁 트인 전망에 저절로 감탄을 내뱉은 이들이 서로를 응시하며 밝게 웃었다.
자리를 권한 준이 연인의 곁에 나란히 앉았다.
“윤설 씨, 이곳 어때요?”
“참으로 마음에 듭니다. 님께서 직접 택하셨다 들었습니다. 조선에선 엄두를 못 냈을 터인데….매번 저를 배려해주시니 이 은혜를 어찌 같아야 할지요.”
“은혜라뇨. 하핫. 저도 몰랐는데….음….사랑의 힘으로 다 되더군요.”
“예에?”
윤설이 동그래진 눈으로 낭군을 응시하자 그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정말입니다. 저 역시 엄두를 못 냈던 일들을 윤설 씨 덕분에 이뤄가고 있는 걸요? 삭막하고 지루했던 일상에 생기가 감돌고 있으니 참 신기한 일입니다.”
수줍게 웃던 윤설이 멍한 얼굴로 정면을 바라보았다.
커다랗고 붉은 해가 수평선을 향해 스르륵 기울고 있었다.
“저것 좀 보십시오.”
상기된 음성에 준이 반응했다.
“와….정말 장관이군요.”
둘의 마음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감동으로 물들고 있었다.
입을 다물지 못한 채 한껏 몰입해 있던 윤설의 귓가로 나직한 음성이 새어들었다.
“저 해는….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가 또다시 우릴 찾아오겠죠? 사실 지구가 움직이는 거긴 하지만요….”
그녀가 조용히 낭군을 응시하자 그 역시 제 연인을 바라보았다.
“윤설 씨가 돌아간다는 사실은…. 언제나 제 마음을 아프게 하지만….우리, 반드시 다시 만날 거라 믿겠습니다.”
“준이 님…..”
“저 해처럼 또다시 나타나 만날 수 있다고….아니, 지구처럼 한 바퀴를 돌아 해를 마주하는 자연의 법칙이 우리에게도 적용될 거라 믿습니다. 이별이라고 여기지 말아요. 우린 다시 만날 수 있을 테니까요. 당신이 이곳으로 왔으니 이번엔 내가 그곳으로 갈게요.”
윤설과 준이 서로를 응시했다.
감동으로 물든 눈빛이 노을에 반사되어 촉촉해지고 있었다.
두 사람은 아무런 말이 없었지만 이별을 앞둔 마음은 서로가 동일했다.
생각하기조차 싫은 일은 언젠간 겪어야 할 것이었다.
시간을 거슬러 온 것이 본인의 의지가 아니기에 돌아가는 일 역시 사람의 능력 밖이었다.
붙잡고 싶은 마음이 서로의 가슴에 불같이 인다고 해도 속한 곳이 다르다면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윤설은 준의 말을 믿고 싶었다.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 망상일지라도 간절히 붙들고 싶었다.
서글픔을 조용히 삼키던 눈동자에 자그맣고 네모난 것이 담겼다.
준이 제 품안에서 꺼낸 것이었다.
그가 윤설의 눈앞에서 그것의 뚜껑을 열자 그녀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홍옥 가락지가 은으로 둘러져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어찌….이토록 진귀한 것을…..”
“윤설 씨, 당신만을 마음 깊이 사랑합니다.”
준은 가락지를 꺼내어 윤설의 손가락에 조심스레 끼워주었다.
제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녀가 눈물방울을 또르르 떨구고 말았다.
“님의 사랑은…. 언제나 저를……감동으로 물들이십니다. 저….또한….당신을 진심으로….연모합니다.”
준의 눈빛이 애틋함으로 촉촉해졌다.
그는 윤설의 뺨 위로 흘러내린 눈물을 가만히 닦아주었다.
일몰이 절정에 이른 순간, 서로의 눈빛을 마주한 이들이 조금씩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두 입술이 애잔함을 어쩌지 못한 채 포개어졌다.
서서히….조심스레….
두 사람은 가슴속에 간직한 사랑을 서로에게 각인시켰지만 그들의 마음은 여느 연인들과는 달랐다.
평범한 이별이 아니었다.
더 이상 만날 수도…..
찾을 수도…..
소식을 전해들을 수도….
연락조차 할 수 없는…..
마치 생과 사를 가르듯 시공을 초월한 헤어짐….
그 절박함은 아무도 헤아릴 수 없었다.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눈을 감은 이들로부터 이슬이 배어나왔다.
담담했던 준에게서 흐른 눈물이 윤설의 눈물과 만나 하나가 되고 있었다.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
언제나 미소로 서로를 대했던 연인들이 극한의 서글픔을 나누고 있었다.
이른 아침, 네 사람이 짐을 챙겼다.
서울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를 여행이기에 아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더 머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현실은 이별을 앞둔 연인들에게 냉정할 뿐이었다.
준의 스케줄이 더 이상의 여유를 허락지 않는 상황이었다.
윤 매니저의 스마트폰엔 불이 날 지경이었고 잘 터지지 않는 전화로 인해 그는 소속사 대표에게 한 소리를 듣기까지 했었다.
뭍으로 데려다 줄 배가 도착하자 네 사람이 말없이 올랐다.
고단함과 아쉬움은 모두에게 공통된 마음이었지만 윤설과 준에겐 애잔함이 몇 배는 더해 있었다.
준이 곁에 앉은 윤설의 어깨를 감싸 안자 그녀가 그의 어깨에 가만히 기댔다.
행복과 사랑을 느낀 이들이 가만히 미소 지었다.
준은 이번 여행에서 제 모습을 가리지 않은 채 연인을 대할 수 있어서 기뻤다.
그것은 언제나 갈망했던 데이트의 풍경이었다.
하지만 타인의 이목에서 벗어나 자유로이 제 사랑을 표현했던 이는 서울이 가까워질수록 다시 변장 뒤로 한 걸음 물러서고 말았다.
“헐, 대박 사건!”
서울로 향하는 KTX 안, 오랜만에 웹에 접속한 윤 매니저의 음성이 제법 도드라졌다.
곁에 앉은 준은 물론 앞좌석의 해인 역시 동그래진 눈으로 뒤돌아보았다.
“오빠, 왜 그래요?”
“해인아, 당장 접속해봐. 연예계에 핵폭탄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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