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Blasted Reincarnated Life RAW novel - Chapter 144
〈 빌어먹을 환생 145화 〉 잔재
가슴을 파고든 손끝에서 심장의 고동을 느꼈다.
‘분쇄추는 살육의 마왕의 무기.’
서열 5위. 300년 전에 가장 먼저 죽었던 마왕.
살육의 마왕은 월광검을 모른다. 그때 베르무트는 월광검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성검이 살육의 마왕의 목을 베었었다.
마왕성 근처의 평야. 밤새도록 이어진 격전은 주변의 땅을 모조리 붕괴시켰고, 그렇게 평야가 구릉지가 되었다. 그 밑바닥의 던전. 언제 만들어진 것인지도 모를 고대의 유적지에서, 월광검을 발견했다.
‘마왕의 잔재. 하지만 살육의 마왕은 월광검을 몰라.’
그에 공명하는 것 같은 이오드는 정확하게 월광검을 알아보았다. 월광검의 존재는 라이언하트에도 전해 내려오지 않았다. 지금의 시대에서 월광검을 기억하는 것은, 그 시대부터 살아 온 장생족이나 환생한 하멜 뿐이다.
“이거 참.”
유진은 입술을 일그러트리면서 손가락을 굽혀, 심장을 움켜쥐었다. 두근, 두근, 두근. 심장 뛰는 소리가 빠르다. 분노와 증오와 뒤섞여 살의가 되었다.
“다시 봐서 존나 반갑다, 이 씹새끼야.”
살육의 마왕은 월광검을 모른다.
하지만 참혹의 마왕은 월광검을 알고 있다. 당연히 알 수밖에. 참혹의 마왕은 월광검의 빛에 갈기갈기 찢겨 죽었었다.
이오드의 몸을 휘감은 어둠의 정령. 템페스트는 저 존재의 본질이 마왕의 잔재라고 했다. 그건 유진도 느끼고 있다. 그는 300년 전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그때 싸웠던 마왕들이 얼마나 역겹고 불길하며 끔찍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기억한다.
유진은 저 어둠의 정령에게서 살육의 마왕과 참혹의 마왕을 느꼈다. 그 존재감은 마왕 2명분이라 하기에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작았으나,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었다. 저건 300년 전에 뒈진 마왕들의 비참한 말로다.
“추하군.”
유진은 들끓는 살의를 숨기지 않았다.
“뒈졌으면 얌전히 소멸할 것이지. 제 무기에 찌꺼기를 남겨서 연명했나? 이제 슬슬 괜찮을 것 같아서 서로 손잡고 부활이라도 꿈꾸는 거야?”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이 계속해서 뛴다. 유진은 제 심장을 진정시키지 않았다. 오히려 마나를 일으켜 심장을 더욱 빨리 뛰게 만들었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이그니션.
유진의 머리카락이 위로 치솟았다. 불꽃이, 번개가, 더욱 격렬하게 타올랐다.
“내가 여기 없었다면 말이야.”
이미 월광검도 꺼냈고, 성검도 꺼냈다. 이그니션은 뒤가 없다. 그게 뭐 어쨌다는 건가? 뒤가 없는 것이 걱정된다면, 걱정할 필요없이 모조리 쓸어버리면 된다. 게다가 저 추악한 존재들을 눈앞에 두고서 제 안위를 걱정할 수는 없었다.
저 마법진. 제물. 뭔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둠의 정령이 마왕 2명의 잔재가 섞여 태어난 놈이라면, 마법진과 제물이 무엇에 쓰일 지는 뻔한 일 아닌가.
여기서 막지 않으면.
아니, 여기서 죽이지 않으면. 300년 전에 기껏 2명으로 줄여놓은 마왕이 1명 더 늘어 3명이 될 지도 모른다.
“대체 무슨…?!”
잘린 팔을 지혈하고 물러서던 헥토르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는 어둠과 함께 허공에 떠오른 이오드와, 믿을 수 없을 만큼 격렬한 불꽃을 몸에 두른 유진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헥토르는 이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다.
흑사자 기사단의 1번대 대장. 도미닉 라이언하트는 흑사자와 라이언하트에 아무런 자긍도 가지고 있지 않다. 제 자신을 특별하다 여기는 심리는 마땅한 선민의식을 만들지만, ‘라이언하트’는 도미닉을 특별하게 취급하지 않았다.
조부가 라이언하트의 살아있는 전설이라 불리던 불사의 백사자일 지라도, 그 조부가 가주가 되지 못한 이상 도미닉의 가문은 방계였다.
그로 인한 불만은.
방계인 유진이 본가의 양자가 되면서 더욱 커다랗게 일그러졌다.
“…넌… 대체 뭐냐?”
도미닉은 헛웃음을 흘리며 몸을 일으켰다. 방금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힘. 도미닉이 살아 온 평생, 이만큼이나 죽음을 가까이 느낀 적은 없었다. 도미닉이 느낀 죽음의 형태는 달빛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강한 거지?”
치미는 핏물을 삼켰다. 마창은 그 끔찍하던 달빛에서도 부서지지 않았지만, 그를 쥐었던 도미닉의 몸은 부상을 피하지 못했다. 역류한 마나가 코어에 손상을 주었고, 한걸음 물러서는 것이 늦었던 왼쪽다리가 짓이겨졌다.
“지금은 또 뭐고?”
라이언하트의 방계 중에는 도미닉과 같은 불만을 품는 자들이 여럿 있다. 물론 그들은 대놓고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은밀히 집회를 가지며 라이언하트의 미래에 대해서 멋대로 떠들며, 어떻게 해야 방계가, 아니, 자기들이 다음 시대의 주역이 될 수 있을 지를 몽상한다.
도미닉은 그들의 존재를 잘 알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흑사자 기사단의 존재 목적 중 하나가 저들처럼 가문의 안쪽을 좀먹는, 가치 없는 벌레들을 사냥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다가가는 것은 쉬웠다.
흑사자인 도미닉이 보기에, 가문의 벌레들은 조악하기 짝이 없는 집단이었다.
하지만. 버러지로 취급 받으며 본가에서 쫓겨난 장남을 써먹자는 계획은 마음에 들었다.
“다 됐었는데.”
모든 것은 우연.
아니, 운명이었다.
어둠의 정령은 그 이름처럼 어둠에 깃들어 있다. 그 어둠은 빛이 꺼져 시커먼 것만을 의미하진 않다. 밝음과 어둠을 명확히 구분 할 수 없는 인간의 마음. 불을 켜도 밝혀지지 않기에, 인간의 마음은 그 무엇보다 어두워지기도 한다.
도미닉은 정령의 목소리를 들은 적은 없다.
하지만 가슴 깊은 곳에서 어떠한 충동을 느꼈다.
친가에 구금 된 이오드에게 남몰래 접근하는 것에 ‘흑사자’의 지위는 아주 편리했다. 이오드를 감시하는 흑사자의 눈을 돌리고 만난 밤. 충동적인 만남이었지만, 도미닉은 제 행동에 의문을 품지 않았다.
쓰레기 취급받는 장남. 도미닉이 느끼기에도 이오드는 쓰레기였다. 하지만, 도미닉은 이오드의 눈동자 깊은 곳에 도사린 시커먼 어둠을 보았다. 제 어미와, 외조부와, 보사르 백작가의 수많은 식솔을 향한 살의 아닌 악의를 느꼈다.
애당초의 계획은 이오드에게 흑마법의 촉매를 전해주는 것이었다. 그렇게 이오드가 흑마법사가 되면, 라이언하트의 위상은 정말 나락까지 떨어져 버린다. 흑마법사가 되어 날뛰어 주면 더욱이 좋다.
어차피 도미닉은 가문에 더 이상의 미련도 없었기에, 제 손으로 본가를 망치고서 분쇄추를 가지고 헬무드나 다른 외국에 망명할 생각이었다.
이오드의 눈을 보았을 때. 도미닉은 흑마법의 촉매가 아닌, 분쇄추를 건넸다.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의 마음에 어둠이 깃들었을 때부터, 도미닉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유진은 양팔을 활짝 벌렸다.
이그니션으로 폭주하는 코어. 통제 불능이라 느껴질 만큼 거대하게 부푸는 마나. 그 모든 힘이 아카샤에 집중되었다.
아카샤가 빛을 뿜었다. 거대한 마법진이 먼저 나타나고, 그보다 작은 마법진 수십 개가 겹쳐졌다. 유진은 지금 느끼는 감정을 그대로 퍼부을 수 있을 만한 강력하고 파괴적인 마법을 바랐다.
그렇게 펼치는 마법을 메르가 보조했다.
수십 개의 마법이 동시에 펼쳐졌다. 무엇이 먼저고, 어떻게 연결되는지. 도미닉과 헥토르는 그를 제대로 인지할 수가 없었다. 다만, 눈앞에서 터져 이 덮쳐오는 공격을 마법적 재해라고 느꼈다.
“아아아!”
도미닉은 고함을 지르며 마창을 내질렀다. 마법이 현상시킨 빛속에서도 마창의 어둠은 번져나갔다. 하지만 그 어둠과는 별개로, 도미닉의 육체가 버텨내지 못했다. 헥토르도 도미닉의 곁에 붙어서 어떻게든 공격을 막으려고 애를 썼다.
“아카샤.”
시커멓고 붉은 눈을 뜨고 있던 이오드가 중얼거렸다. 그는 천천히 손을 뻗더니, 길쭉한 손가락으로 눈앞을 톡하고 두드렸다. ㅡ파앙! 어둠에 넓게 번져가던 물결이 터졌다. 덮쳐오는 마법이 어둠에 먹혀 사라졌다.
“위니드와 성검, 월광검, 거기에 아카샤까지.”
유진은 대답하지 않고 이오드의 얼굴을 보았다. 검고 붉은 눈. 핏기 없이 창백한 얼굴. 감정 없던 입술에 섬뜩한 미소가 걸렸다.
“…유진, 너는… 내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구나.”
유진은 대답하지 않고 웃어주었다.
저 말을 통해, 유진은 눈앞의 이오드가 어떤 존재인지를 알았다.
어둠의 정령. 마왕의 잔재. 놈의 영향을 받으며, 기억의 일부를 받아먹었다. 하지만 이오드의 정신에 군림하는 것은 마왕이 아니다. 단지, 300년 전에 뒈진 두 마왕의 찌꺼기를 소화하려 애쓰는 분수를 모르는 애새끼일 뿐.
‘알아.’
무너진 마법. 흩어지는 마나가 모조리 유진에게 되돌아왔다. 이그니션으로 날뛰는 코어가 마나를 되삼켰다. ㅡ키이잉! 아카샤 유진의 주변에 겹겹이 방어결계를 구축했다.
‘마왕 본인이 아니라 해도, 그 비슷한 존재에게 마법으로 승부를 거는 것은 과한 오만이지.’
아카샤가 있기도 하고, 유진 본인도 제 마법실력에 꽤 자신은 있었다. 하지만 마왕 비슷한 존재와 마법전투를 펼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300년 전에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세냐와 베르무트 둘 뿐이었고, 유진은 아직 그 수준에 오르지 못했다.
“커으으으…!”
휩쓸린 잔해 속에서 도미닉이 몸을 일으켰다. 그는 입에서 피를 쏟으며 제 양팔을 바라보았다. 기괴하게 뒤틀린 양팔에 마창이 걸쳐져 있었다.
헥토르는 그 곁에 실신해 쓰러져 있었지만, 도미닉에게 헥토르를 신경 쓸 의리와 여유는 없었다. 그는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서려 했지만, 이상하게도 너덜거리는 팔은 앞으로 나아갔다.
“…그만…”
이렇게 무식한 싸움은 바라지 않았다. 출력에서 밀린다면 다른 공략법은 얼마든지 있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마창’은 도미닉의 뜻을 듣지 않았다.
마법의 재해에서 도미닉을 보호해 주었던 어둠.
그것이 몽글몽글 솟아나더니, 도미닉의 팔을 휘감았다. 도미닉은 덜덜 떨리는 눈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뚜둑.
뚜두둑.
너덜거리던 양팔, 찢어진 살과 근육, 으스러진 뼈가 하나로 엉킨다. 그렇게 새로이 만들어진 팔은, 사람의 팔이라기보다는 비늘이 달라붙은 울퉁불퉁한 살덩어리 보였다.
“…하하…”
도미닉은 멍한 눈으로 제 팔을 쳐다보았다. 기괴하게 변한 팔, 손가락은 창에 달라붙어 있다. 그렇게 연결되었고, 도미닉의 머리는 마창에 남은 사악한 기억들에 침식되었다.
끼릭…
도미닉은 실실 웃으면서 창을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양팔 모두를 들고서 창을 받치고 있는 그 자세는, 유진의 머릿속에도 있는 자세였다. …뚜둑… 뚜둑! 팔에서 번져나간 비늘이 도미닉의 어깨와 가슴, 등을 뒤덮었다. 이윽고 도미닉의 등 뒤에서 한 쌍의 팔이 더 돋아났다.
“놀라지 않는 구나.”
이오드는 제 키만큼이나 거대한 분쇄추를 쥐고서 유진을 내려다보았다.
“…넌… 참 신기해.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거지? 시엘도, 시안도, 이곳에 온 모두가 두려움을 느꼈는데.”
유진은 그쪽을 의식했다. 다행히 나무에 매달린 이들의 신변에 문제는 없었다. 아직, 제물로 사용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군.’
유진은 천천히 몸을 낮췄다.
‘저건… 마왕의 잔재가 폭주한 거야.’
월광검에 대한 기억. 300년 전의 패배. 굴욕감과 분노, 증오… 그런 여러 요인이 잔재를 폭주시켰다. 유진은 일단 그렇게 판단했다.
“…지금의 난…”
이오드는 벙긋 웃으며 분쇄추를 쳐다보았다.
“유진, 널 쓰러트리고… 이 숲의 모두를 제물로 삼을 수 있다.”
“그래?”
유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몰라.”
유진은 그러한 전말까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깊이 관여하고, 알게 될 것이다. 이 사건이 어떻게 시작되었건 간에, 결말은 이미 정해져 있다.
죽인다.
“네가 뭔 생각을 하는지. 왜 이렇게 됐는지. 하나하나 따져 묻고 싶은 생각은 없어.”
시야가 일그러지다가 확장된다. 유진은 제 양손에서 미쳐 날뛰고 싶어 하는 폭력과 파괴를 느꼈다.
“그냥 죽이면 끝이잖아. 도미닉도, 헥토르도, 이오드, 너도, 정령도, 찌꺼기도. 그렇게 죽이면 다 끝나. 이유? 정 필요하다면 내가 너희 죽이고서 붙여줄게.”
유진은 양팔을 활짝 벌렸다. 이그니션으로 폭주하는 코어. 통제 불능이라 느껴질 만큼 거대하게 부푸는 마나. 그 모든 힘이 위니드와 월광검에 집중되었다.
“너희는 병신이라 이런 일을 벌인 거고.”
메르는 이만큼이나 격렬한 살의는 알지 못했다. 일말의 인정도 자비도 없는, 상대의 존재를 죽여 말살하는 것만을 생각하는 순수한 살의. 메르는 그 포악한 감정에 몸을 떨면서 눈을 질끈 감았다.
지금부터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메르는 그를 알고 싶지도, 보고 싶지도 않았다. 그녀가 아는 유진은, 하멜은. 이만큼 두려운 사람이 아니었다.
말릴 수는 없었다. 지금 저 분노와 증오와 살의는 타당했다. 단순한 흑마법사나 마족이라면 저렇게 분노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눈앞의 저것은 마왕이 아니다. 하지만 마왕이었던, 마왕이 될 지도 모르는 잔재기에. 300년 전에 제 손으로 죽였던, 직접 목은 베지 못했어도 수십 수백 번 가슴을 찌르고 팔다리를 썰었던 마왕이.
“등신이라서 뒈지는 거야.”
소멸하지 않고 남아, 이오드 라이언하트의 몸을 그릇삼아 눈앞에 나타났다.
폭풍이 터졌다.
미쳐날뛰는 바람이 땅을 뒤집고 어둠을 밀어냈다. 전진하는 폭풍에 맞서 도미닉이 몸을 날렸다. 그는 알 수 없는 희열과 증오를 느끼면서 머리 위의 마창을 4개의 팔로 잡았다.
생김새도, 덩치도 다르지만. 유진은 그 모습에게서 300년 전에 죽인 참혹의 마왕을 떠올렸다. 마왕성의 정상, 놈은 4개의 팔로 마창을 현란하게 다루며 용사들을 밀어붙였었다.
“역겹다.”
흉내일 뿐. 마왕과 같은 끔찍한 힘은 없다. 하지만 마창이 내뿜는 시커먼 마기가 유진으로 하여금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들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아니, 그건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 아니다. 결국 그 싸움에서 패배한 것은 참혹의 마왕이었으니. 유진에게 있어서 그때의 기억은, 우쭐대며 회상할 수 있는 영광스런 무용담이었다.
이렇게 다시 맞닥트리지 않았다면 말이다.
“오오오오!”
콰르르르! 4개의 팔이 창대를 회전시킨다. 시커먼 어둠이 창을 집어 삼킨다. 그보다 조금 뒤에서, 분쇄추를 쥔 이오드가 앞으로 전진했다.
많은 것이 보인다. 많은 것이 느껴진다. 많은 것을 깨닫는다. 이오드는 강렬한 전능감에 몸을 떨었다. 머릿속에 새겨지는 정보. 그건 인간이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해서도 안 될 흑마법의 진리.
라이언하트의 피가 더 필요하다. 진리를 통해 판단한 바, 마법을 완성하고 정령을 ‘정령왕’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이보다 많은 라이언하트의 피가 필요했다. 그 중에서도 진한 피. 본가의 젊은 쌍둥이로는 부족하다.
눈앞의 저것.
위대한 베르무트 이후 300년, 그 어떤 라이언하트보다 진한 피를 가진 후손. 이오드는 300년 전의 시조님은 본가의 초상화나 동상으로밖에 만나본 적이 없었으나, 신기하게도 지금 머릿속에서 ‘위대한 베르무트’의 모습을 생생히 보았다.
새하얀 불꽃을 두르고. 대군과 마왕의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창백히 빛나는 달빛을 손에 쥐고서 전진하는ㅡ
“…그래…”
유진을 보았다.
도미닉이 내지른 마창이 달빛에 걷혔다. 이어 휘두른 폭풍이 어둠을 분쇄했다. 도미닉은 비명인지 탄성인지 기합인지 알 수 없는 소리를 내지르며 앞으로 달려나갔다. 4개의 팔을 자유로이 다루는 기괴한 창술. 하지만 압박할 수가 없었다. 유진이 휘두른 달빛은 도미닉의 팔을 종잇장처럼 쉽게 찢었고, 어느새 손에 들린 성검은 어둠을 밝히며 도미닉의 몸을 꿰뚫었다.
“…너처럼.”
그 광경에 이오드는 알 수 없는 희열을 느꼈다. 그는 저 불꽃을 동경한다. 성실하게, 평생토록 백염식을 수련해 봤자 이오드는 저러한 불꽃에 도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탐이 난다. 아버지가, 라이언하트의 모두가 인정하던 저 재능이 부럽다.
그래서 이오드는 머릿속의 진리를 기쁘게 받아들였다. 정령이 정령왕이 되기 위한 제물에 유진 라이언하트가 필요하다고? 필요하지 않다 해도 이오드는 유진을 제물로 바치고 싶었다. 3년 전. 기분 좋던 꿈을 억지로 깨운 것이 바로 유진이었다. 그날 이오드는 꿈에서 깨어나 지독한 현실을 마주했고, 그 현실에서 살아가기 위해 스스로를 바꾸었다.
그것이 유년기의 끝이라면,
이제는 성인식을 바란다. 아직 치루지 못한 성인식. 꿈에서 깨운 유진을 제물로 삼아, 정령을 완성하는 것으로 성인식을 마치리라.
분쇄추가 하늘 높이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