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Blasted Reincarnated Life RAW novel - Chapter 154
〈 빌어먹을 환생 155화 〉 심문
잠깐의 대치. 정적. 까득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헤모리아는 얇게 뜬 눈으로 유진을 노려보다가, 쥐고 있던 주먹을 슬쩍 펴보였다.
수화?
유진은 피식 웃어버렸다. 헤모리아가 손으로 보인 것은 수화가 맞긴 했다. 다만, 그 뜻을 해석하는 것에 로베리안의 도움은 필요 없었다.
그만큼 노골적이고 쉬운 수화였기 때문이다. 쭉 뻗은 검지를 까딱거리는 것. 유진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발을 앞으로 뻗었다.
“심문관도 결국은 성직자라서인지, 참 자비로우셔.”
수백 년 만에 나타난 성검의 주인. 그 실력을 알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이해는 간다. 이단심문관을 하는 만큼 전투에도 자신이 있을 거고.
설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럴 리가 없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머리에 심각한 장애가 있는 것이리라. 보아 하니 자존심과 고집이 꽤 강해 보이는데, 마음에 드는 구석도 없고 제 스스로 납득도 되지 않아 시비나 건 것일 터.
물론 유진은 그러한 시비는 환영이었다. 헤모리아가, 아니, 이단심문관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유진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성검의 주인이라며 대놓고 추켜세우는 것도. 되도 않는 꼬투리를 잡아대는 것도.
“얼굴.”
유진은 대뜸 그렇게 말했다. 헤모리아가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알 바가 아니었다. 발을 크게 앞으로 뻗었다. 단순한 걸음은 아니었다. 가속 된 마나가 유진의 몸을 앞으로 밀어냈다. 유진은 그 한 걸음으로 넉넉하던 거리를 제 간격으로 만들었다.
그 뒤에는 경고했던 대로 휘둘렀다. 쐐액! 헤모리아의 단발이 바람에 찰랑거렸다. 직접 닿지는 않았다. 유진의 발은 말 그대로 헤모리아의 코앞에서 지나갔다.
탁, 타탁.
그렇게 발길질을 한 번 하고서, 유진은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히죽거리며 웃는 얼굴. 아직까지 까딱거리던 손가락이 다시 주먹으로 쥐어졌다.
헤모리아가 움직였다. 그녀는 과감히 앞으로 파고들며 주먹을 짧게 끊어서 내질렀다. 터억! 옆구리를 쑤셔박으려던 주먹이 유진의 손에 잡힌다. 그 순간, 헤모리아의 주먹이 활짝 펴져 유진의 손가락에 얽혀왔다.
손가락을 뒤로 젖히는 강렬한 힘. 유진의 눈이 이채를 발했다. 얽혀있는 손가락. 유진은 그곳에서 마나의 움직임은 느끼지 못했다. 단순하고 무식한, 마나의 사용 없이 그냥 힘이 센 것이다.
‘저 체격에 이 정도의 힘. 몬스터 같은 특이체질인가?’
단련으로 얻을 수 있는 힘은 아니다. 유진은 가동범위의 한계까지 꺾이는 손가락을 보며 생각했다. 이대로 가면 뼈가 부러질 것이다.
바보처럼 가만히 있다면 말이다. 파악! 유진의 발이 지면 위를 훑었다. 걷어차인 발목, 헤모리아가 움찔하고 물러섰다.
‘단단해.’
유진은 다시 한 번 의아함을 느꼈다. 발목을 박살낼 생각까지는 없었지만, 꺾을 생각으로 찼다. 그런데 흔들림이 없다. 관절이 없는 통짜 쇳덩어리를 걷어 찬 느낌이다.
‘밀도 자체가 인간과 다르군.’
약물? 아니면 마법을 섞은 수술? 어느 쪽이든 헤모리아의 몸은 인간답지 않았다. 유진은 꺾일뻔 했던 손을 쥐었다 펴며 헤모리아를 쳐다보았다.
“까득.”
마스크 안의 소리. 물러섰던 몸이 다시 앞으로 향했다. 어깨가 움찔거리고, 팔이 들춰진 순간.
유진은 헤모리아의 주먹이 궤도에 올라 뻗는 것을 기다리지 않았다. 퍼억! 유진의 주먹이 헤모리아의 명치에 꽂혔다. 양발이 붕 떠오를 만큼의 무거운 충격이지만, 헤모리아의 입에서 비명은 새어나오지 않았다. 표정에도 고통은 번지지 않았다.
다만, 의문 가득한 눈으로 유진을 쳐다 볼 뿐이었다. 아래로 파고 든 주먹. 위력도 위력이지만 빨라서 대응이 불가능했다. 처음의 발길질도 그랬다. 모션은 읽었는데, 대응하기 힘들 만큼 빨랐다.
방금 전도 그랬다. 오히려 읽히고 막힌 것은 헤모리아 쪽이었다. 독특한 가속… 신체능력만을 사용한 것은 아니다. 만약 그런 것이라면 헤모리아가 압도될 리가 없었다.
대련을 지켜보던 아타락스의 두 눈이 얇아졌다. 저 헤모리아가 근접격투에서 압도되고 있다. 헤모리아의 노림수는 모조리 다 직전에 차단당하고, 헤모리아가 대응할 수 없는 순간에 정확하게 공격이 꽂힌다.
‘뭔가 섞여 있군.’
마나의 가속이 단순하면서 독특하다. 무언가 섞여 있는데… 라이언하트의 백염식? 아니, 다르다. 섞인 것은 기술이 아닌 마나 쪽이다.
퍼억!
헤모리아의 양발이 다시 한 번 더 위로 떠올랐다. 이번에도 신음은 없다. 벌써 몇 번이나 명치에 주먹을 꽂았는데, 헤모리아는 마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대응해 왔다. 지금도 그랬다. 유진은 제 몸을 붙잡기 위해 다가온 양팔을 힐긋 보고서, 반대편 손으로 헤모리아의 손목을 낚아챘다.
곧장 헤모리아의 팔을 꺾어서 등에 올려붙였다. 분명 관절을 꺾는데, 헤모리아의 팔은 힘이 줄지가 않았다. 그녀는 꺾인 팔을 뒤틀며 유진의 몸을 통째로 휘두르려고 했다.
그래서 미련 없이 팔을 놓아주었다. 팔을 휘두르며 텅 빈 옆구리에 파고들어 주먹을 처박았다. 벌써 몇 번을 두드렸지만, 인간 같지 않게 단단한 늑골에서는 삐걱거리는 느낌도 전해져 오지 않았다.
‘확실하군.’
유진의 눈썹이 구겨졌다. 유진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눈치 채지 못할 것이다. 그야, 코어에서 끌어낸 마나를 낭비 없이 완벽하게 회수하는 것은 전생부터 유진이 가진 특별함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유진은 타격 하나하나에서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마나가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우연이 아니라 헤모리아가 의도하는 것이다. 검강이나 마법을 쓴 것도 아닌데, 유진의 몸 안을 흐르는 마나가 헤모리아의 몸과 접촉 할 때마다 그녀에게 스며들고 있다.
‘드레인 계열의 마법? 그런 것치고는 너무 은밀한데.’
빼앗은 마나가 헤모리아의 힘이 되는 것도 아니다. 무언가 쓰임새는 있기에 빼앗는 것이겠지만, 당장 헤모리아는 빼앗은 마나를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건방지게.’
가벼운 대련. 그렇기에 서로가 손속에 여지를 두고 있다. 두들겨 팬만큼 헤모리아가 아파했다면 진즉에 주먹을 거뒀을 거다.
그런데 아픈 소리도 내지 않고, 찔끔찔끔 마나를 빼앗아 가면서, 무언가를 노리려 하는 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단두대의 헤모리아. 유진은 그녀가 왜 단두대라고 불리는 것인지는 알지 못했고, 그 이유를 아는 것보단 저 마스크 안쪽에서 까득거리는 소리 말고 신음과 비명소리를 듣고 싶었다.
ㅡ파직.
유진의 주변에서 번개와 불씨가 튀었다. 그 폭발적인 가속에 아타락스의 눈매가 움찔 떨렸다. 놀란 것은 아타락스 뿐만이 아니었다. 길레이드와 클라인도 유진의 움직임에 놀랐다. 오직 제노스만이 당연하다는 얼굴로 유진을 보며 가슴 벅차오르는 감격을 느꼈다.
‘과연 하멜님이시다.’
이 장소에서 유진의 정체를 알고 있는 것은 제노스와 메르 뿐. 유진이 그 하멜이라는 것은 절대로 알려져서는 안 된다… 그래서 제노스는 재빨리 표정을 가다듬었다.
헤모리아는.
관전하는 사람들과 같은 놀람을 느끼지도 못했다. 너무 가깝고, 느끼기 전에 겪어버렸기 때문이다. 이전과는 비교가 안될만큼 빠르고, 무거운 공격이 옆구리에 꽂혔다.
헤모리아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그녀는 몸을 제대로 붙들지 않고, 양팔을 휘둘러 반격을 꾀했다. 유진은 그 손을 차분히 걷어낸 뒤, 텅 빈 가슴 중앙에 주먹을 처박았다.
“커흡.”
비명은 참아도 숨이 턱 막히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헤모리아는 비틀거리며 물러서려 했지만, 유진은 헤모리아의 멱살을 틀어쥐고서 가까이 끌어왔다. 콰직! 올려 찬 무릎이 헤모리아의 몸을 들썩거리게 만들었다.
연달아 꽂은 공격. 유진은 그를 통해 스며드는 마나가 어디로 모이는지를 확인했다. 심장 근처의 코어가 아니다. 헤모리아의 몸에 스며든 마나는 배꼽 아래의 단전에 모이고 있다.
‘단전?’
저곳에 마나를 모으는 수련법도 있다고는 들었는데… 유진은 헤모리아의 몸을 살폈다. 헤모리아는 심장 근처에 코어를 두고, 단전에는 유진에게서 은밀히 빼앗은 마나를 축적하고 있었다.
“허락은 받아야지.”
유진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헤모리아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뻐억! 유진은 정확하게 단전을 노리고서 주먹을 처박았다. 단 한 번도 신음을 흘리지 않았던 헤모리아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유진은 금속 마스크 안쪽에서 헤모리아의 헐떡거리는 신음을 들었다.
반응도 격했다. 헤모리아의 몸이 크게 뒤틀렸다. 관절의 가동범위를 한참 벗어난 움직임. 지면을 훑으며 올라 온 주먹이 유진의 얼굴을 노렸다. 제대로 맞는다면 머리가 바늘 찔린 풍선처럼 펑하고 터질 만한 위력이었다.
‘화났군.’
아까보다 강한 힘. 속도도 올랐다. 그렇다고 유진과 헤모리아의 차이가 메워지진 않았다. 유진은 이 조건의 근접전에서 패배를 상상할 수가 없었다.
분노가 헤모리아의 등을 떠민다. 그러나 느끼는 분노를 온전히 유진에게 때려 박지는 못했다. 헤모리아의 움직임은 완전히 유진의 손바닥 위에 있었다.
유진은 집요하게 한 곳만을 노렸다. 빼앗은 마나가 모여드는 단전. 그곳에 공격을 꽂을 때마다, 마스크 안쪽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커헉!”
몇 번째인지 모를 주먹이 한 번 더 단전에 처박혔을 때. 헤모리아는 더 버티지 못했다. 단전에 모였던 마나가 완전히 흩어졌다. 쿨럭거리는 기침에 금속마스크마저 벗겨졌다. 헤모리아는 비틀거리며 물러서려 했지만, 유진은 그렇게 두지 않고 헤모리아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한 번 더 단전에 주먹을 처박았다. 정확히 꽂힌 일격에 헤모리아의 몸이 붕 떠올랐다. 그녀는 깊이 몸을 숙이고서 고통스런 신음을 토했다. 유진은 헤모리아의 다리가 파들파들 떨리며 오므려지는 것을 보고, 한 번 더 주먹을 꽂아 넣었다.
결국 헤모리아는 더 버티지 못하고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유진은 더 때리지 않고, 보란 듯이 양손을 들고서 뒤로 물러섰다. 헤모리아는 제 배를 양손으로 감싸고서 쿨럭쿨럭 기침을 토했다. 벗겨진 금속마스크는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흠.”
유진은 들었던 주먹을 흔들며 헤모리아의 얼굴을 빤히 보았다.
왜 그리 까득거리는 소리가 나나 했더니. 헤모리아의 이빨은 도저히 인간이라 여길 수 없을 만큼 날카로웠다. 헤모리아는 쿨럭거리며 피를 토하다가, 마스크가 벗겨졌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 순간. 헤모리아의 두 눈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격정적으로 타올랐다. 그녀는 헐떡거리다가 말고 대뜸 유진에게 달려들었다. 쩍 벌린 입, 맹수처럼 날카로운 이빨이 유진의 몸을 물어뜯으려 들었다.
물론 유진은 헤모리아의 바람대로 살을 내주지 않았다. 그는 즉시 뒤로 물러서면서 손바닥을 휘둘러 쳤다. 쩌억! 헤모리아의 머리가 옆으로 돌아갔다.
땅에 나뒹군 헤모리아는 더 이상 달려들지 않았다. 대신, 터진 입술을 일그러트리며 손가락으로 땅을 움켜쥐었다. 눈동자가 더욱 붉게 물든다. 뚝뚝 떨어지던 피가 끓어오르고, 상처가 재생되었다. 달싹거리는 입술의 앞에 붉은 핏방울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만.”
아타락스가 외쳤다. 포옹! 헤모리아의 입술 앞에 모여들던 핏방울이 터져서 사라졌다.
그 외침은 유진도 들었다. 하지만 유진은 못들은 척 하기로 했다. 헤모리아의 입술 앞에 핏방울이 모였을 때, 유진은 이미 헤모리아의 바로 앞에 도착해 있었다.
뻐어억!
걷어 찬 발이 헤모리아의 배에 꽂혔다.
“카학!”
헤모리아의 입에서 피가 뿜어졌다. 발길질의 충격에 헤모리아의 몸이 날아간다. 유진은 휘둘러 찬 발을 천천히 땅에 내리고서 하하 웃었다.
“조금만 더 빨리 말해주시지.”
“하악…! 카학! 케흑!”
멀찍이 날아간 헤모리아는 배를 감싸 쥐고서 고통스런 신음을 토했다. 쩍 벌어져 떨리는 입술에서 피와 침이 뚝뚝 떨어졌다.
“…제자가 고집이 워낙 강해서 말입니다. 승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떻게든 이겨보려 애를 쓰곤 하죠.”
“패배를 납득하는 표정이 아닌데.”
유진은 헤모리아를 힐긋 보며 말했다. 간신히 호흡을 가다듬은 그녀는 입가의 피를 벅먹 문질러 닦으며, 땅바닥에 떨어진 금속 마스크를 주워들고 있었다.
“아타락스님이 제지할 것 없이, 저는 더 해도 상관없는데요.”
“아뇨, 그랬다간 저희가 곤란해 질 겁니다.”
“왜?”
“유진님은 충분히 여유가 있으시겠지만, 헤모리아에게는 여유가 없으니까요. 더 해버렸다간 헤모리아가 대련의 선을 넘어버릴 겁니다.”
“제 걱정을 해주시는 겁니까?”
“설마요. 제자를 걱정하는 겁니다.”
아타락스는 그렇게 말하며 헤모리아에게 다가가, 망토를 어깨에 둘러주었다.
“과연 유진님. 가벼운 대련이었다고는 하나, 유진님의 체술에는 결점이랄 것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자가 이만큼 압도당한 것도 당연하고, 설령 저일 지라도 속절없이 당했을 겁니다.”
“겸손이 지나치십니다.”
“제 얼마 없는 장점 중 하나가 솔직함이죠.”
아타락스는 농담처럼 말하며 웃었다.
“방금 그건 혈마법 아닙니까?”
로베리안은 웃지 않았다. 그는 헤모리아의 입을 덮은 금속 마스크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오래 전에 사장 된 고대마법의 하나. 아롯에도 제대로 된 원전이 남지 않은 마법인데…?”
“과연 적탑주님. 설마 이 오랜 마법을 알아보실 줄은.”
아타락스는 태연한 얼굴을 하고서 로베리안을 돌아보았다.
“말레피카룸은 빛의 신앙이 존재했을 적부터 교의 적과 맞서 온 조직입니다. 저희는 성직자이자 사냥꾼이고, 성기사이자 도살자입니다. 그런 저희가 신성마법 외에 다른 마법을 쓰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잖습니까?”
“…물론 그렇지만, 의외라 생각했을 뿐입니다. 혈마법은 아롯에서도 복원에 실패한 고대의 마법. 작금에 이르러 원전조차 남지 않은 것은, 신성제국이 오래 전에 혈마법을 이단이라 선언하고 박해했기 때문이잖습니까.”
그건 오래 전에 신성제국이 일으킨 마법 사냥이다. 그때의 신성제국은 신성력 외의 여러 마법을 이단으로 선언하고, 흑마법으로 취급해 사냥했었다. 그 무차별적이고 독선적인 사냥은 마법뿐만 아니라 정령술사들에게도 가해져서, 수많은 정령술사와 마법사들이 신성제국의 이단심문관에게 살해당했었다.
“…오래 전의 일이죠.”
아타락스는 동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신성제국은 이미 그 죗값을 치렀습니다. 전 대륙에 세운 빛의 신전. 부모 없는 아이들과 괴롭고 힘든 이들을 보살피는 시설, 무상의 복지 등. 마법사냥 이후 긴 세월 동안 신성제국은…”
아타락스가 떠벌리는 말은 귀 기울일 가치가 없었다. 피해를 준 것보다 많은 보상을 했다는 것인데, 유진이 듣기에 저 주장은 유폐의 마왕과 다를 것이 없었다. 당장 유폐의 마왕도 300년 전의 전쟁의 보상이랍시고 각국에 전쟁보상금을 쥐어주었잖은가.
“혈마법은 이단이 아닙니다.”
아타락스는 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피를 매개로 쓰는 것에 오해가 있었던 것이죠. 신성제국은 오래 전에 혈마법을 분석하고, 흑마법처럼 사악하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래서 독점하고, 사용하고 있다?”
“독점이라는 말은 듣기 괴롭군요. 아롯만 하더라도 여러 위대한 마법들을 독점하고 있지 않습니까?”
“엄밀히 말하자면 보호하고 있는 거지. 오래 전에 어떤 놈들이 마법사냥이란 미친 짓을 벌였으니 말이지.”
멜키스가 코웃음을 치며 이죽거렸다. 아타락스는 그런 멜키스를 힐긋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그것은… 안타까운 일이었죠. 누구나 성숙하지 못한 어린 시절이 있기 마련입니다. 만약 이 혈마법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말레피카룸의 본사를 찾아와 주십시오. 저희는 가르침을 베푸는 것에 많은 제한을 두지 않습니다.”
“빛의 세례를 받는다면 말이지.”
“신을 섬기는 것에 어려운 결심이 필요한 것은 아니잖습니까?”
아타락스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까득.
헤모리아의 마스크 안쪽에서 다시 이빨 소리가 흘러나왔다.
*
“성급했습니다.”
아타락스는 한숨을 푹 내쉬며 군모를 벗었다.
“이빨을 드러내도 된다고는 말한 적이 없잖습니까.”
헤모리아는 양손을 등허리에 얹은 자세로 서서 고개를 푹 숙였다. 아타락스는 주눅 든 제자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뭐… 단전을 집요하게 노리던 것을 보면, 진즉에 간파했던 모양입니다만… 아무리 분노했어도 제 허락 없이 이빨을 드러내선 안됐습니다. 아, 항변하고 싶다면 해도 상관없습니다.”
그러자 헤모리아가 양손을 들었다.
‘죄송합니다.’
수화로 전해진 사과. 아타락스는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당신도 많이 참았고, 많이 맞았으니 따로 징벌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조금도 남지 않은 겁니까?”
‘네.’
“아무리 단전을 공격당했다지만… 조금도 남지 않은 것은 이상한데?”
‘유진 라이언하트의 마나는 이상합니다.’
‘알아차린 것도 너무 빨랐습니다.’
‘빼앗은 마나는 모두 다 사라져버렸습니다.’
계속되는 수화에 아타락스의 표정이 구겨졌다. 마나에 무언가가 섞여 있다. 그건 보는 것으로도 알 수 있었다. 백염식의 불꽃… 이질적인 번개.
‘헤모리아가 마나를 담아왔다면 해석할 수 있었을 텐데.’
아타락스는 어쩔 수 없는 아쉬움을 느꼈다. 성검의 인정을 받은 용사. 인성은 모르겠지만, 그 자질과 실력은 진짜였다. 피차 제한이 있던 상태에서 헤모리아가 완벽하게 압도당했다.
‘…피를 빼앗았다면.’
“라이언하트의 영지에서?”
아타락스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거친 방법으로 확인하려 했지만, 헤모리아. 성검의 용사는 우리의 적이 아니란다.”
‘스승님은 그 자가 용사에 합당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가 성검을 쥔 것은 사실이지. 그리고 용사다운 일도 하지 않았느냐? 찌꺼기일 뿐이라도 마왕의 잔재를 해치웠으니 말이야.”
아타락스의 웃음소리가 잦아들었다.
“…하지만… 또 라이언하트라니… 신께서도 참으로 짓궂으시지. 수많은 신도를 내버려 두고, 또 라이언하트… 그것도 마왕의 잔재에 유혹된 타락자와 같은 세대에 성검의 주인을 내리시다니.”
‘성검만이 특별한 것은 아닙니다.’
헤모리아가 수화를 이어갔다.
‘신성제국에는 찬란한 빛의 성녀가 계십니다. 아직은 후보이지만, 그 신실한 아니스님과 똑같은 외모를 가진 크리스티나 보좌주교가.’
“…아아… 그렇죠. 저희에겐 성녀후보가 계시죠.”
아타락스는 믿음으로 반짝이는 헤모리아의 눈을 들여 보며 웃었다.
‘제가 성검의 주인이 되었다면 좋았을 텐데.’
까득. 헤모리아는 이빨을 갈면서 수화를 이었다.
“어쩔 수 없죠.”
화륵.
손가락에 들린 성냥에서 불꽃이 피어났다. 아타락스는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이며, 성냥을 흔들어 불을 껐다.
“신실함만으로는 성검의 주인이 될 수는 없는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