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Younger Sister Is a Genius RAW novel - Chapter (140)
EP23 – Sing A Star (31)
순간,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바다를 품고 불어오는 바람에 윤하준의 답답한 머리카락이 흩날린다. 어두운 밤인데도 불구하고 어쩐지 그 모습만은 선명하게 보인다.
그리고 그가 한 말이 지워지지가 않는다.
‘그리고 너도.’
마치 잊을 수 없는 영화의 한 장면을 본 것같이 그 모습이 사라지지가 않는다.
파르르 하고 한고요의 입술이 떨렸다.
그가 많이 달라졌다는 사실은 한고요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달라진 것이 그만이 아니라는 사실도.
그런데 설마 그가 저렇게 직설적으로 그 사실을 말할 줄은 몰랐다.
그때, 한고요는 ‘Drama’를 듣고 처음 ‘탓’을 들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감정을 울컥하게 하는 그런 느낌.
그래서 이해가 되지 않았다. ‘Drama’는 사랑스러운 노래다.
자신이 사랑하는 감정을 속이지 않고 전부 표출하는 그런 노래.
그러나 자신에게 그런 감정, 애정이 있을 리가 없다.
그래서 한고요는 계속 혼란스러워했던 것이다.
태어나면서 부모한테 방치되었다. 시끄럽게 울지 말고 조용히 하라는 이유로 고요라는 이름을 받았다.
그나마 이모에게 잠시, 아주 잠시 애정을 받은 적도 있었지만 그 애정은 곧이어 애증으로 바뀌었다.
그렇기에 한고요는 애정을 거절했다.
그 달콤함을 알기에, 그리고 그 달콤함에서 이어지는 쓰디쓴 맛을 알기에 애정을 받는 것도 주는 것도 전부 거절하였다.
그런데 그 멀리하고 거절했다고 생각하는 애정이 어느 순간부터 자신에게 스며들어 있었다.
그것을 깨달은 한고요는 애써 그 애정을 노래라고 생각했다.
그 노래를 만든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이 만든 노래를 애정하는 것이다. 애써 스스로의 마음을 속이며 그렇게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저도 모르게 애정이 튀어나올 때가 있었다.
예를 들면, 저번에 윤수연이 윤하준이 하루 종일 자신의 생각만 하고 있다고 말했을 때.
그때,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가 자신에게 특별한 감정을 가져서 자신을 생각하고 지내는 게 아니라 Sing A Star에서 우승하기 위해서 자신을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러나 저도 모르게 다른 생각을 하고 말았다.
그렇게 믿고 싶었기에.
그가 자신에게 자신과 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기에. 그는 그저 작곡가로서 자신의 노래를 부를 가수가 필요한 것이기에.
자신처럼 바보 같고 더러운, 아무것도 없는 사람에게 애정을 받아 봐야 불쾌한 기분만 느낄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필사적으로 마음을 억눌렀다.
그런데 그가 지금 말하고 있다.
너에게 애정을 받아 자신이 변했다고.
그리고 그 애정을 자신도 가지고 있다고.
물론, 그가 자신에게 가지고 있는 애정은 자신이 그에게 가지고 있는 애정과는 조금 다를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그가 자신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가 자신의 애정을 기분 나빠 하지 않고 받아들여 준다는 사실만으로도 지금 심장이 터질 것만 같이 벅차오르고 있으니까.
정말 이래도 괜찮을까.
자신이 이렇게 행복해도 괜찮을까.
한고요는 손을 들어 자신의 심장이 있는 부분을 움켜쥐었다. 피부를 통해서 지금 자신의 심장이 얼마나 빠르게 뛰는지 느껴진다.
“있잖아.”
“응?”
한고요가 윤하준을 부른다. 윤하준이 한고요를 쳐다본다. 둘의 시선이 마주친다.
평소에는 나른한 표정을 지은 채,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던 눈동자가 이제는 다른 누군가를 확실하고 담고 있다.
‘아아, 그렇구나.’
그 눈동자를 보며 한고요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깨달았다.
아무것도 흥미가 없다는 듯이 무심하게 사람들을 쳐다보던 눈동자가 다정함으로 물든다.
“만약에 내가 결승에 오른다면.”
“응.”
“내 이야기를 들어 줄래?”
다소 뜬금없는 한고요의 말에 윤하준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가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를 듣는 것 자체는 그다지 어렵지 않으니까.
“고마워.”
그 대답에 한고요는 그렇게 말하며 바다를 바라보았다.
분명, 평소와 똑같은 바다다. 어둠에 물들어서 출렁거리는 바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저 바다가 반짝이는 별이 담긴 우주처럼 보였다.
다음 무대는 준결승, 그것만 통과하면 우승 무대에 오를 수 있다.
그리고 거기서 한고요는 윤하준에게 자신의 모든 이야기를 할 생각이었다.
* * *
밤 산책을 한 다음 날.
우리는 바쁘게 강릉을 돌아다녀야만 했다. 뭐, 바쁘게 돌아다닌다고 이것저것 체험까지 하는 건 아니고 카페를 가서 무언가를 마신다거나 여러 가지 음식들을 먹어야만 했다.
“이러다가 살찌면 어떡하지?”
두부로 만들었다는 케이크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수연이가 중얼거린다. 그러나 그 얼굴은 행복함으로 물들어 있었다.
수연이만이 아니다. 고요도 초코 두유를 마시며 행복한 듯이 미소를 짓고 있다.
흐음, 어쩐지 고요의 표정이 어제보다 더 밝아진 것 같은데.
“이거 먹고 또 뭐 먹어요?”
“저녁만 먹으면 끝이에요.”
“으, 여기다가 저녁까지 먹어야 하다니. 이러다가 분명히 살찌고 말 거야.”
“그러면 안 먹으면 되는 거 아니야?”
“이것도 일이잖아. 여기 마을에서 홍보 요청 받았다고 하잖아.”
프로 방송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렇게 말하는 수연이를 보며 코웃음을 친다.
어디서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그냥 솔직하게 먹고 싶다고 말하지.
그렇게 디저트를 전부 먹은 뒤에, 예약이 된 음식점으로 이동하기 위해 카페에서 나온다.
그 순간, 교복을 입고 있는 학생들이 우리를 보며 중얼거리더니 소리를 질렀다.
“윤수연이다!!”
“언니, 귀여워요!!”
“고요 언니, 엄청 예뻐요, 진짜!!”
자신을 부르며 꺅꺅거리는 여고생들의 모습에 수연이는 기쁜 얼굴로 손을 흔들어 주었다. 아마도 자신을 알아봐 줘서 기쁜 것 같다.
반면, 고요는 수연이보단 조용하지만 그래도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어 주고 있었다.
얘가 이런 팬 서비스를 해 줄 줄은 몰랐네.
그 모습을 보며 작게 하품을 하는데 옆에 있던 정윤이 내게 말했다.
“부러워?”
“네?”
“여고생들한테 인기 많은 동생이나 친구가 부러운 것 같아서.”
“아, 딱히? 그렇지는 않아요.”
내 노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많은 것은 좋지만 그렇다고 동생의 친구나 팬을 보고 부러워할 정도로 열등감이 심한 편은 아니다.
그것보다 수연이나 고요 여자 팬이 굉장히 많네. 가끔 학생들을 마주칠 때마다, 환호성을 내지르는 건 여학생들이었다.
태영이가 보면 부러워서 눈물을 흘릴 만한 광경이구만.
그렇게 잠깐 팬 서비스를 해 준 뒤에 음식점으로 이동한다.
이제 여기서 저녁만 먹으면 오늘의 일정은 끝이다.
음식점으로 이동해 우리를 반겨 주는 상 한가득 채워진 음식들을 맛보기 시작했다.
음, 역시 두부가 맛있기는 해.
그렇게 두부를 먹고 있는데 갑자기 수연이가 나를 보며 말한다.
“오빠.”
“응?”
“이제 슬슬 다시 머리 좀 자르지?”
“아, 그럴까?”
그렇게 답하며 손으로 앞머리를 당겨서 바라본다.
확실히 머리가 많이 자라기는 했네. 뭔가 답답해진 것 같기도 하고.
흐음, 이번에 머리 자르면서 이미지 변신도 좀 해 볼까? 딱히, 외모를 꾸미거나 하는 데 큰 관심은 없지만 그래도 방송에 나오는 거니까.
어느 정도 신경을 써야 하기는 한다.
“너희는 Sing A Star가 끝나면 뭐 할 거니?”
어떤 식으로 이미지 변신을 할까 고민하는데, 진세희가 우리를 보며 물었다.
그 말에 먼저 대답한 것은 수연이었다.
“콘서트 하고 촬영하고, 바로 앨범 준비하지 않을까요?”
“데뷔?”
“네, 저희 오빠랑 같이요! 그리고 학교도 다시 가야죠. 어쨌든, 아직 학생이니까.”
“그러면 고요는?”
“저도 비슷할 거 같아요. 바로 데뷔 앨범 준비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말하며 고요가 나를 바라본다. 프로듀싱 해 줄 거지? 그렇게 묻는 것만 같은 얼굴에 크흠, 헛기침을 한다.
약속했으니까 해 줘야지.
“그러는 하준이는?”
“저요?”
“응.”
“저는 잘 모르겠네요. 딱히, 촬영을 할 것 같지도 않고. 콘서트 때도 그냥 무대 연출만 하면 되니까, 그냥 방학이나 즐기지 않을까요?”
“어, 오빠 방송 출연 안 하려고?”
나의 말에 수연이가 놀라서 되묻는다.
여기서 말하는 방송 출연이란 Sing A Star가 끝나자마자 출연하기로 결정된 프로그램을 말한다.
개인이 아니라 Sing A Star 준결승까지 진출한 참가자들 전원이 출연하는 프로그램들.
그것만 내가 알기로 너덧 개가 되는 걸로 알고 있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한다.
“나야, 뭐, 출연자가 아니니까.”
“으음, 아쉽네.”
“나는 좋아. 방송 출연하는 거 생각보다 더 힘들더라고.”
“그러면 방학 어떻게 즐기려고?”
“여행이나 다녀올까, 고민 중이야.”
“여행?!”
“응, 배낭여행. 길게는 아니고 한 일주일 정도?”
이건 예전부터 생각했던 거다. 이번에 작업을 하면서 여러 가지 경험을 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으니까.
여행을 하면서 얻은 경험을 모티브 삼아서 곡을 만들 수도 있고, 잘하면 영감을 받을 수도 있다.
뭐, 영감까진 바라지 않지만.
“여행이라니, 부럽다. 나도 여행 가고 싶어.”
“여름방학 때 가.”
“혼자?”
“엄마랑 같이 가족 여행으로.”
나의 대답에 수연이는 그제야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고요는 그런 수연이를 부럽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 * *
2박 3일 여행의 마지막 늦은 밤.
오늘도 윤하준은 혼자 산책을 갔고, 멘토 둘은 2층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VJ들은 카메라만 설치해 두고 펜션에서 나섰다.
그러니까 펜션 1층에는 윤수연과 한고요.
단둘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곳저곳에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긴 하지만 윤수연이나 한고요는 그것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이 할 일을 하는 편이다.
“수연아.”
그때, 한고요가 윤수연의 이름을 불렀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한고요의 목소리에 윤수연이 놀라서 한고요를 쳐다본다.
“지금 저 부른 거예요?”
“응.”
“와, 순간 소름 돋았어요.”
윤수연은 그렇게 말하며 팔을 긁었다.
설마, 한고요가 자신의 이름을 성도 붙이지 않고 부를 줄이야. 지금까지 한고요가 윤수연을 부를 땐, 늘 성을 붙여서 불렀으니까.
뭐, 그 이전에 둘은 그렇게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지만.
“그래서 무슨 일로 부르셨어요?”
“잠시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
“여기서 할 이야기는 아닌가 보네요.”
한고요의 말에 눈치 빠른 윤수연이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무래도 한고요는 카메라가 없는 곳에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자고 하는 것 같다.
“바로 밖에 카메라도 없던데 그리로 갈까요?”
“좋아.”
그렇게 둘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이동했다.
바닷가라 그런지 바람이 쌀쌀하다. 그 쌀쌀함에 윤수연은 안에서 챙겨 온 따듯한 커피로 손을 녹이며 말했다.
“으, 춥다. 그래서 무슨 말 하려고요? 솔직히 언니랑 저랑 나눌 이야기 딱히 없다고 생각하는데.”
윤수연은 보기 드물게 경계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윤수연에게 있어서 한고요는 정말로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었다.
한고요가 은연중에 자신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것도 알고 있고, 무엇보다 그녀의 노래 실력이 도통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른바 질투다.
“별로 대단한 말은 아니고, 그냥 하준이에 대해서.”
“오빠요? 왜요?”
윤하준의 이름이 나오자 윤수연의 표정이 살짝 날카로워진다.
‘이 언니가 오빠에 대해서 할 이야기가 뭐가 있을까? 설마, 뻔뻔하게 결승 무대에서 오빠를 빌려 달라는 말은 하지 않겠지?’
만약에 그렇다면 윤수연은 있는 힘껏 한고요를 비웃으면서 거절할 생각이다.
오빠가 한고요의 앨범을 도와주는 것까진 반대하지 않겠지만, 자신을 뒤로하고 먼저 한고요를 챙겨 주는 것은 절대로 허락할 수 없다.
그런 생각을 하는데 한고요가 말한다.
“원래는 하준이한테 먼저 하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떨리더라고. 그래서 너한테 먼저 하려고.”
“예? 뭐를요?”
‘오빠한테 먼저 하려고 했는데, 나한테 먼저 한다고?’
대체 무엇을?
윤수연의 표정에 지어진 경계가 심해진다.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드는데. 싫은 기분. 마음 같아선 저 입이 열리지 않도록 꾸욱 하고 다물게 하고 싶다.
그러나 그런 윤수연의 마음과 상관없이 한고요의 입이 열린다.
“이번 결승 무대에서 난 하준이한테 내 모든 이야기를 할 생각이야.”
“예?”
그리고 한고요의 입에서 나온 말은 윤수연 입장에서 굉장히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모든 이야기를 할 생각이라고?’
“……그냥 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그거야 그냥 하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런 걸 동생한테 먼저 이야기 하는 이유는 뭐야.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 언니라니까.’
윤수연이 그런 생각을 할 때, 한고요가 멀리서 들려오는 바닷소리를 들으며 중얼거리듯이 말을 이었다.
“맞아, 하면 되는 거지. 그래서…….”
한고요가 윤수연을 쳐다본다. 윤수연도 한고요를 쳐다본다.
그리고 윤수연은 무언가를 깨달았다. 한고요의 표정이 평소와는 다르다.
“나, 하준이 좋아하고 있다고, 솔직하게 말하려고.”
이어지는 말에 윤수연이 눈을 깜빡인다.
‘응? 뭐라고?’
동생이 천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