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econd Life as an Idol RAW novel - Chapter 182
182
기대는 하지 말아야지.
스케줄 조율 끝에 김주영은 무려 사흘간 강원도에 머무를 예정이었다. 그가 ‘귀촌 생활’을 찍으러 강원도로 간 이튿날, 이안은 ‘희빈 장씨’의 김춘택 역할로 국내 3대 영화제 중 하나에 초청받았다.
‘내가 유상에 초청되는 날이 오네.’
유상예술대상. 시상 부문은 영화와 TV로 나뉘는데 드라마와 예능, 연극과 뮤지컬까지 다방면의 수상 부문을 두고 있으며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권위 있는 종합 예술 시상식이었다.
수상 후보에 들었다는 것만 해도 커리어에 도움이 될 정도로 영향력이 있었다.
[신인상부터 노미 될 줄 알았는데 바로 조연상인 거 보니까, 상 탈 각인데?]‘왜?’
김용민 시절에는 문턱도 넘지 못한 시상식에서 이안이 후보로 오른 부문은 인기상과 남자 조연상이었다.
[데뷔한 지 3, 4년 된 무명 배우도 신인상 후보로 오른 적 있으니까.]‘그래?’
후보에 올랐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쁜 일이었는데, 진의 말을 들으니 괜히 기대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설마 나 상 타나?’
진은 심드렁하게 말했다.
미래에서는 ‘희빈 장씨’가 TV 드라마 대상과 극본, 연출상까지 주요 수상 부분에서 트로피를 거머쥐게 된다.
[전생에 연준서가 연기를 괜찮게 했었다면 받았을 수도 있었겠지만…. 연기를 못해도 너무 못했었지.]‘희빈 장씨’의 주조연 배우들도 모두 연기상 후보에 올랐다. 하지만 상대 배우가 쟁쟁했기 때문에 배우들이 연기상을 타는 일은 없었다.
‘아냐, 기대는 하지 말아야지.’
그렇게 생각은 했지만, 막상 시상식 날이 오자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안이 유상 가지?”
맞춤 정장을 차려입고 숍에 들른 이안에게 그의 전담 헤어 디자이너가 말을 걸었다.
“네.”
“아까 임혜지 씨 왔었거든. 주영이 강원도 가 있니?”
“네, 혜지 누나가 주영이 얘기를 했어요? 뭐래요?”
‘귀촌 생활’을 찍고 있는 조민환과 임혜지도 도중에 나와 시상식에 참여할 예정이었다.
이안이 묻자, 헤어 디자이너가 푸흡 웃으면서 말했다.
“김주영 ‘님’이라던데?”
“진짜요?”
“주영이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고 ‘귀촌 생활’ 끝나도 주영이 데리고 살고 싶다고 그러더라? 걔는 가서 뭘 했길래 혜지 씨가 그렇게 찬양해?”
역시 예상이 맞았다. 이안은 애써 웃음을 참고서는 모른 척 대답했다.
“주영이가 일을 잘하나 보죠.”
“혜지 씨가 그렇게 누구 칭찬하는 타입은 아닌데… 머리는 어떻게 할까?”
“실장님은 어떤 게 좋을 거 같아요?”
고민하는 헤어 디자이너 옆으로 메이크업 아티스트까지 합류해서 거울 속 이안을 감상했다.
“너는 뭘 하든 잘 어울리는데… 아직 운동 중이지?”
“네.”
이안은 ‘Z-Day’ 촬영 때문에 체중을 감량했었고, 한창 몸을 만드는 중이었다.
“반만 깔까? 이런 식으로….”
“앞머리로 이마 다 가리기는 아깝다. 완전히 뒤로 넘기는 건 어때요? 턱선 강조하면서….”
그들의 고심 끝에 헤어와 메이크업까지 멋지게 마친 이안은 숍 직원들의 응원을 받고 삼성동에 있는 전시관으로 향했다.
-오늘 유상 뭐가 대상일까
영화는 미래는 없다? 드라마는 희빈장씨겠지?
└희빈장씨지ㅇㅇ
└받고 최우수랑 조연까지 받지 않을까
-최이안이 벌써 남조상?
유상에서 아이돌한테 상을 주겠냐? ㅈㄴ보수적인데ㅇㅇ 끽해야 인기상이지
└근데 안주면 이상한거아냐? 작품 좋았지 연기 잘했지 화제성까지 씹어먹었는데 최이안 아니면 누가 받아?
└엥? 걔가 왜타ㅋ
└인기상이나 주겠지 팬많잖아
└난 최이안 남조상 탈거같은데 작년에 걔만한 신드롬이없었어ㅇㅇ
유상예술대상이 유명 시상식 중 하나다 보니 시작도 전부터 관심이 뜨거웠다.
심지어 평론가들의 주관적인 평과 시청률, 브랜드 평가 순위 같은 것을 조합해서 누가 탈 것인지 미리 예상하는 기사까지 올라가 있었다.
[핫스타TV] 2021 유상예술대상, 차세대 ★는 누구?20대 남배우 기근이라고? 최이안 잇는 차세대 ‘연기돌’은 누구일까
넷 상에서 유상예술대상 관련된 얘기만 꺼내고 있으니, 시상식 키워드를 끼워 넣고 클릭 수를 유발하려 우후죽순으로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명품 조연’ 엄지환, 물오른 연기… 조민환·김민재·최이안 잇는다.
엄지환, 훈훈한 일상 사진 공개에 네티즌, “최이안 닮았다”
-내돌 기사보려고 검색했더니 다른 배우가 더 나옴ㅡㅡ
엄지환 언플 너무 심한 거 아냐?
└야 나도ㅋㅋ언플 수듄ㅋ
└나는 내배우 검색했는데 내배우 머리채잡히고 있더라
└내배우랑 작품안했으면좋겠음
그 와중에도 엄지환의 언론 플레이가 독보적이었다.
[엄지환 쪽 소속사가 언플을 더럽게 하기로 유명하고 더럽게 못하는 거로도 유명하지.]‘역시….’
오늘따라 유독 이안을 비롯해서 유상예술대상에 참석하는 다른 배우들까지 싸잡아 끌고 와서 언플하는 느낌이었다.
“다 왔다. 오늘 상 타 올 수 있지?”
“에이, 형. 벌써 부담 주는 거예요?”
“부담은 아니고…. 기대되잖아.”
김명진이 입구에 밴을 세웠다. 이안은 경호원이 문을 열어 줄 때까지 마지막으로 옷매무새를 점검했다.
“떴다!”
“꺄아아아악!”
이안이 밴에서 내리자,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이 셔터를 눌렀고 팬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이안은 긴장되지 않은 척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는 발을 내디뎠다.
[쿨한 척하기는.]‘닥쳐.’
이안은 넓은 보폭으로 레드 카펫 위를 걸어갔다. 그가 포토월 중앙에 서자, 플래시 불빛이 아플 정도로 그의 시야를 어지럽혔다.
“포토 타임 있겠습니다. 오른쪽 먼저 봐 주세요.”
이안이 자세를 잡았고, 진은 익숙하게 표식을 띄웠다.
‘우리 팬들도 많이 왔네.’
아위의 응원봉을 든 팬들이 이안의 이름을 부르짖고 있었다. 이안은 그 팬들 쪽으로 손을 흔들었다.
그는 행사장 경호원의 안내를 받으며 시상식장 안으로 들어섰다.
“꺄아아악!”
“이안아!”
미리 자리에 앉아 있던 관객들이 소리를 질렀다. 홈마가 찍은 사진이 박힌 비공식 슬로건까지 들고서는 흔들고 있었다. 이안은 그쪽에게도 손을 흔들었다.
“이안 씨! 여기!”
관객들의 환호성 속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그를 불렀다. ‘희빈 장씨’의 박표현 감독과 윤미숙 작가였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주희랑 엠플릭스 작품 같이했다며? 다음에는 나랑도 또 해요.”
“하하, 말만으로도 감사해요.”
이안은 윤 작가에게 상체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윤 작가는 립서비스가 아니라 진심이었다. 그녀는 요즘 장시간의 휴식을 그만두고 대본 집필에 몰두하고 있었다.
“말만 이러는 거 아닌데? 소속사로 대본 보내 버릴 거예요?”
그거참 든든한 소리를 하시네. 이안이 활짝 웃었다.
“저야 윤 작가님이 부르시면 당연히 달려가야죠. 스케줄이 되는 한.”
“이안 씨 스케줄 괜찮지 않아요?”
“곧 바빠질 거 같아서요.”
조태웅도 복귀하겠다. 이제는 그룹 활동에 중점을 두지 않을까. 회사에서는 다음 앨범 발매도 멀었는데 벌써 콘서트 장소를 물색하고 있었다.
“다른 작가보다 내 대본부터 먼저 검토하는 거 알죠? 이안 씨는 나랑 쭉 같이하는 거야.”
그룹 활동이 아닌 다른 작품에 들어가는 것이라 오해한 윤 작가가 소유권 주장을 했다. 그녀의 표정을 보아하니, 진심으로 말하는 것 같았다.
윤미숙 이름 석 자가 브랜드가 되어 버릴 정도로 대박 작가인데, 그 작가와 지속적인 작품 활동이라….
‘앞으로 연기로 굶어 죽지는 않겠네.’
[굶어 죽는 게 아니라 배 터져 죽겠는데?]어쨌든, 좋은 소식이었다.
이안은 윤 작가의 옆에 서 있던 박 감독이 내민 손을 맞잡았다.
“감독님, 우리 너무 자주 보는 거 아니에요?”
“난 더 자주 보고 싶은데.”
윤 작가에 이어 박 감독도 진심이 섞인 농담을 말했다. 박 감독의 옆에는 안동재가 앉아 있었는데, 표정이 그렇게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동재 형, 안녕하세요.”
“어, 이안아. 오랜만이다.”
숙종 역할을 맡은 안동재도 남자 주연상에 후보로 올랐다. 안동재는 이안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주머니 속 핸드폰을 꺼내 의도적으로 이안을 무시했다.
‘…뭐지?’
‘희빈 장씨’가 방영된 이후 주연보다 조연이 더 인기가 많아지자, 안동재는 이안에게서 점점 거리를 두더니 종방연에서도 나타나지 않았었다.
‘설마 그거 때문에 이러는 건가.’
[원래 그런 거야. 게다가 안동재 쟤는 속도 오지게 좁거든.]‘아쉽네.’
그래도 촬영 시작했을 때만 해도 안동재가 많이 챙겨 주고 친하게 지냈었는데. 이안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이안은 안동재를 지나쳐 자신의 이름이 붙은 좌석에 앉았다. 그의 옆자리는 임혜지의 자리였다.
‘언제 오시려나.’
임혜지가 오면 김주영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다. 하지만 다른 배우들이 하나둘 자리를 채워 가는 와중에 임혜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이안은 뒤를 돌아 관객석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관객들이 소리를 질렀다.
“이안아.”
시상식이 시작하기 바로 전에 도착한 임혜지는 곧바로 이안의 옆자리에 착석했다.
“혜지 누나, 강원도에서 바로 온 거예요?”
“어. 진짜, 진짜 고맙다, 이안아.”
고맙다는 말의 의미는 아마 김주영을 소개해 줘서 고맙다는 거겠지. 차마 숍 실장에게 들었다는 소리는 할 수 없어서 이안은 모른 척 대답했다.
“뭐가요?”
“우리 주영이 말이야.”
김주영은 강원도에서 겨우 하룻밤을 보냈을 뿐이다. 그런데 벌써 ‘우리’ 주영이라니…. 이안은 애써 웃음을 참았다.
“주영이가 거기서 뭘 많이 했나 봐요?”
“어우, 진짜 아침 식사 메뉴부터 달라지더라니까? 살림을 어쩜 그렇게 잘하니?”
“역시, 주영이가 우리 그룹 엄마예요, 엄마.”
“그럴 거 같더라.”
임혜지와 몇 마디 얘기를 나누자마자 식장 무대의 조명이 달라졌다. 성우의 소개 멘트와 함께 시상식의 MC들이 무대 중앙으로 들어왔다.
임혜지는 이안의 귀에 속삭였다.
“공구는 이안이 니가 가져가라고 했다며? 진짜 그거 없었으면 우리 설거지도 못 했을걸?”
“저도 가져가라고는 했는데 진짜 가져갈 줄은 몰랐어요.”
물론 당연히 거짓말이다. 이안은 아위 내에서 무당이라 불리고 있으며 멤버들뿐만 아니라 매니저들, 소속사 직원까지 이안의 말을 맹신하고 있었다.
“이따 가서 주영이가 해 주는 맛있는 밥 먹어야지.”
“와, 진짜 주영이가 큰일 했나 보네. 방송 기대해도 되는 거죠?”
“그럼, 너네 컴백한다며? 방송 시기랑 너희 컴백 시기랑 비슷할 거야.”
임혜지의 김주영 찬양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어차피 시상식 도중에는 사진도 많이 찍히고 방송 카메라에도 송출되고 있으니 대놓고 딴짓을 할 수는 없다. 차라리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편이 나았다.
“어, 누나 카메라에 불 들어와요.”
무대 위 스크린 화면에 이안이 잡히자, 관객들의 함성이 더욱 커졌다. 이안은 멋쩍게 웃었다.
연극, 뮤지컬 부문의 시상이 끝나고, TV 부문으로 넘어왔다. 전년도 수상자가 시상자로 나와 큐 카드의 밀봉을 풀었다.
“2021년 제59회 유상예술대상, 인기상. 두 분이십니다.”
시상자가 큐 카드에 있는 글을 읽었다.
“125만 표를 획득한 조민환 선배님, 그리고.”
이안은 마른 입술을 축였다. 조연상까지는 바라지 않았다. 적어도 빈손으로 숙소로 가는 일은 없었으면 했다.
“147만 표를 획득한 최이안 님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이안이 벌떡 일어나 무대 위로 향했다. 적어도 상 없이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게 되어서 다행이었다.
‘좋아.’
하지만 무대로 올라가는 계단을 한 칸 한 칸 오르면서 점점 욕심이 차오르고 있었다.
‘…오늘 조연상까지 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