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econd Life as an Idol RAW novel - Chapter 19
19
우리 유배 가는 거야?
데뷔 전, 대형기획사 연습생 때부터 좋아했다고 했다. 다이아몬드 데뷔 후에도 거의 모든 스케쥴에 따라다녀서 늘 봤었던 얼굴이었다.
심지어 소송에다가 군대를 겪었어도 꾸준히 예전 사진을 업로드 하던 김용민 탑시드 홈마였다.
‘헐 누나?’
‘너 여기 나온다고 해서 무작정 와 봤어.’
프.아 방송 전 팬들을 만나는 자리에도 있었던 사람이었다. 데뷔시킨다고 응원 광고를 지하철에 걸기도 했고, 배우 전향해도 간간이 팬카페에 탈덕 안 했다고 보고 싶다고 글을 올렸었던.
‘와, 소름 돋네.’
과거 기억이 희미하게 남아 있어 얼굴 떠올리는 게 늦었다. 어떻게 몸이 바뀐 지금에도 나를 찾아올 수 있지? 이안은 장민희의 방향을 힐끔 쳐다보면서도 손은 기계적으로 앨범에 사인을 했다.
[이거 마음이 꽃밭이네. 아직 덕질 하고 있다고 글 싸지르는 건 쉬워. 너 공백기 동안 다른 애들 팬질 안 했을 것 같냐?]그건 맞는 말이다. 홈마라고 무조건 한 가수만 따라다니지 않는다. 여유 되면 다른 그룹까지 두 탕 세 탕까지도 뛰는 사람들이니까.
‘그래도 팬싸까지 따라온 정성이 흔하냐?’
이안은 괜히 내적 친밀감에 들떴던 마음이 식었다. 그렇게 각별했던 팬도 탈덕하고 다른 가수로 갈아타는 법이다.
이안의 경우가 특이한 것이다. 김용민과 최이안의 영혼이 같은 사람이었다고 누가 생각하겠나.
‘그래도 뭔가… 아쉽네.’
다시 덕질 해도 자신이라는 게 신기해서 기뻤다가도, 그래도 저 사람만은 김용민을 끝까지 좋아해 줄 줄 알았는데 하는 씁쓸한 마음이 교차했다.
팬이랑 가수 사이는 딱 이 정도다. 서로 일방적이지만 언제든 떠나는, 먼 거리에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
아위가 공중파 음악방송과 끝나고 팬사인회를 바쁘게 돌아다닐 무렵, 회사에서는 섭외 요청이 들어왔다.
상대는 금요일 음악방송에서 그들을 지켜봤던 연말 방송 담당자였다.
“우리 애들 섭외가 들어왔다고요?”
근처에 지나가던 이사 서수련이 회의실로 들어왔다.
“네, 29일에 나와 달라는데요.”
“좋네. 하겠다고 했죠?”
“네, 근데요 이사님….”
연말 무대는 꿈도 못 꿨는데 웬일이람. 서수련은 웃으며 의자에 앉았다. 신인이 연말무대에 섭외되다니, 무조건 오케이였다.
그런데 섭외를 담당하는 담당자의 표정이 썩 좋진 않았다.
“설마….”
서수련이 한숨을 쉬며 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우리 노래 안 하는구나?”
“네. 커버 무대 좀 해 달라고….”
“어쩐지 이미 섭외 다 끝났는데 신인 왜 내보내나 했어.”
악독한 방송국 놈들. 서수련이 이를 잘근잘근 씹었다. 연말 무대는 시청률을 끌어 올리기 위해 인지도 높은 아이돌부터 우선해서 섭외가 들어간다. 대형 기획사 신인들이 간혹 들어가지만, 중소 신인은 꿈도 못 꿀 무대다.
“이번엔 누구래요?”
“M.U.N.이요.”
“노래는 뭐 해 달래요?”
어렵사리 들어가나 했더니 본인들 노래는 부르지도 못하고 다른 그룹 커버곡에 살짝 꼽사리 낀 거다. 그것도 대히트곡이 아닌 하락세 탈 때 발매했던 곡을 해달란다.
“진짜 언제적 M.U.N.이야 걔네 말이 좋아 1세대 아이돌이지 그냥 아이돌 시조새급이잖아.”
“그러게요. 근데 이사님도 그분들 팬이었다고 하지 않았어요?”
서수련이 뜨끔 직원의 시선을 피했다. 그녀는 아쉬운 듯 계속 궁시렁거렸다.
신인들 끼워서 옛날 아이돌 커버시키는 건 방송국의 고정 레퍼토리였다. 2세대 중에서도 이름 알린 그룹 많고 좋은 곡도 많은데 늘 1세대다.
“블랙러시도 같이 출연하는데 신경 좀 써 주지.”
“저도 그 얘긴 해 봤는데 이미 자리 다 찼다고 안 할 거면 빨리 연락 달래요.”
“요즘 제사도 안 지내는 마당에 조상님 코스프레라니.”
“그럼 안 한다고 다시 연락할까요?”
그건 또 얘기가 다르지. 서수련은 고개를 저었다. 섭외 온 것도 감지덕지 해야 했다. 그래도 연말에 몇 분 나오는 게 좋으니까.
내년에는 무대 배정 받을 수 있겠지. 서수련이 행복회로를 돌렸다.
“그리고 31일에도 나와 달라고 연락 왔어요. 여긴 그래도 커버곡은 안 시켜요.”
“31일? M사? 좋네. 한다고 했죠?”
서수련의 표정이 다시 밝아졌지만 직원은 또 갸륵한 표정을 지었다.
“근데… 무대 위치가요….”
이어지는 말에 서수련의 표정이 오만상이 되었다.
***
[야 너네 조졌어.]‘갑자기 무슨 개소리야?’
사녹을 마치고 본방까지 무한 대기를 하고 있던 때였다. 사라졌던 진이 뿅 하고 나타나 불길한 말을 전해 주고는 다시 사라졌다.
‘무슨 일이야? 어디가?’
그리고 그런 진의 자리를 대신하듯 매니저 박동수가 모두를 호출했다.
“얘들아 너네 연말무대 잡혔어.”
“헐 진짜요? 대애박.”
“우리 연말 못 나간다고 하지 않았어요?”
자고 있던 멤버들이 벌떡 일어났다.
“일단 29일에 K사. M.U.N. 커버무대야.”
“우리 곡은 안 해요?”
이주혁의 말에 매니저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멤버들이 아. 하며 약간의 실망감을 내비쳤다. 다른 듣보돌이 들으면 배부를 소리 한다겠지만 이왕이면 자신들의 곡으로 나오고 싶었다.
“그래도 대선배님 커버곡이니까 준비 잘해야 된다. 안무 선생님 붙여 준대.”
“그래요?”
“이 곡 들어 본 사람?”
그래도 다들 무대 욕심이 있던 터라 표정이 진지해졌다. 벌써 배정받은 곡을 찾고 있었다.
“나 알아. 주혁이 형도 알지?”
“나? 모르는데?”
이안에겐 친숙한 곡이었으나 역시 한 세대 젊은애들은 금시초문인 듯한 얼굴이었다.
설마 이래도 이주혁이 모르나? 이안이 한 소절 불러 봤음에도 고개를 젓는다. 세상에. 나름 레전설 찍었던 아이돌인데.
“그래도 연말이면 친척들도 다 보겠죠?”
“울 엄마가 좋아하겠네. 이모가 맨날 우리 이름 모른다고 돈도 못 벌겠다고 그랬단 말이야. 그 말을 언제 들었는지 알아? 데뷔 딱 4일 넘겼을 때였어!”
내가 진짜 더러워서. 우린 빨리 유명해져야 돼. 박진혁이 특히나 투지에 불타고 있었다. 박서담이 어깨를 추욱 늘어뜨렸다.
“울 엄빠도 동창회 가서 그런 소리 들었었대요….”
그의 말에 주변의 수많은 친척들과 엄친아 자랑하는 부모 지인들의 시기 섞인 말이 뇌리를 스쳐 지나가면서 모두의 의욕이 상승했다.
“와 진짜 너무하네.”
“우리 그럼 무대 어떻게 꾸밀까요?”
“리믹스? 원곡자에 대한 예의가 없어 보이려나?”
7명은 어느새 동그랗게 모여 앉아 무대에 대해 속삭였다. 오늘도 역시나 파티션 대기실이기 때문에, 다른 그룹에게 민폐는 끼치면 안 됐다.
“안무를 좀 변형하는 것도 괜찮지 않아?”
“1절은 그대로 가고 2절에 바꾸는 건 어때?”
이안도 의견을 덧붙였다. 근데 이 정도면 조진 게 아닌데? 진은 이런 일로 호들갑 떨지 않는다. 이안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는 매니저를 보며 질문했다.
“또 있어요, 형?”
“응 31일. 우리 곡 할거고, 너네한테 5분 정도 준대. 새해 타종도 같이 하고.”
“타종이요?”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곳은 아니겠지? 이안이 허공의 진을 찾았다. 어느새 팝콘을 들고 온 진이 팝콘을 허공에 흩뿌리고 있었다. 남의 불행은 나의 기쁨을 실천하고 있는 진이었다.
“음… 일단 거기가 많이 추울 거야.”
매니저는 말없이 본인이 받은 문자 메세지를 그들에게 보여 줬다. 모두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장소: 파주 임진각평화누리공원]‘오… 시발.’
[심심한 애도의 말씀 올린다. 잘 가라.]“임진각…? 실화?”
“우리 유배 가는 거야?”
연말 가요행사의 유배지 임진각이 부활했다. 안 그래도 바람이 차원이 다른 북부지방인데 거기서 추위에 덜덜 떨면서 공연을 해야 하는 것이다.
“유배라니 얘들아 그래도 신인이 연말무대 가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
매니저가 표정을 굳혔다. 혹시나 누가 들을까 낮은 목소리였다.
“남들이 유배라고 불러도 너넨 그러면 안 돼. 이 무대마저 못 가서 숙소에서 티비로 보는 애들이 태반이야.”
“…….”
“입 조심해야 한다, 얘들아. 안 그러면 내년엔 유배지에도 못 고 바로 땅으로 묻히는 수가 있어.”
과연 블랙러시를 담당했던 베테랑다웠다. 다이아몬드도 임진각 전용 그룹으로 불렸었지만, 그룹이 망돌테크를 타니 불러 주지도 않았었지.
멤버들이 고개를 숙였다. 그들도 팬사인회에서의 우쭈쭈 분위기, 격려의 말만 자주 듣다 보니 신경이 느슨해진 것이다.
“분위기 다운시켜서 미안한데, 그래도 내 말 무시 하지 말고. 필요한 거 있으면 얘기해 줘.”
“형 그럼 군대에서 쓰는 핫팩 좀 많이 사다 주세요.”
이안이 체념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 * *
아위, 연말무대 출격… ‘폭발적인 무대 선보일 예정’
ㄴ개나소나 아이돌하네 어차피 립싱크 할거면서ㅋㅋ
ㄴ요즘애들 왜 다 게이 같냐;;
ㄴ한 명 빼고 다 빻았음ㅋㅋㅋㅋ
ㄴ웩~~~ 호모냄새
댓글이 최신 순으로 되어 있었나. 이안이 얼굴을 찌푸리며 추천 순으로 바꿨다. 추천 많은 댓글들은 이미 팬들이 총공해서 클린한 상태였다.
“거기서 뭐 해?”
“안녕하세요, 선배님!”
“선배는 무슨, 형이라 불러.”
옆 연습실에서 나온 블랙러시의 멤버 김영현이 이안을 향해 다가왔다. 김영현은 손에 들고 있던 초코 과자를 이안에게 내밀었다.
“너네도 연말무대?”
“네, 저희 임진각 가요.”
아, 임진각. 김영현이 측은한 표정으로 이안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더 먹어. 아니 너네 다 먹어.”
“감사합니다””
김영현이 손에 든 주전부리를 이안의 품에 안겨 줬다. 괜찮다고 거절하기엔 입 안의 과자가 너무 맛있었다.
“활동기인데 연습까지 하려면 힘들겠네.”
“그래도 데뷔전보단 편한 것 같아요.”
연말무대 준비가 촉박한 터라 연습실의 불은 거의 하루 종일 켜져 있었다. 이안도 연습실의 열기가 너무 더워서 밖에 잠깐 나온 것이다.
김영현이 이안의 태블릿 화면을 슬쩍 훑고는 쓰게 웃었다.
“이런 거 벌써부터 보면 안 되는데… 신경 쓰지 마.”
“그래도 계속 보게 되네요.”
최이안도 환생하자마자 습관적으로 들어갔을 정도니 끊을 수 없는 것이다. 거의 중독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무래도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한 직업이라 그런지, 이런 댓글 반응을 아예 안 보는 사람은 있을지언정 한 번만 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포털 댓글은 보지 마. 팬카페나 너네 전용 게시판 커뮤니티만 봐.”
김영현이 패드를 조작하며 몇몇 커뮤니티를 검색해 보여 줬다.
“형도 많이 보시나 본데요.”
“너네도 우리 연차 되면 익숙해져.”
간다. 열심히 하고. 김영현이 정수기에서 물을 한통 받은 뒤 쿨 하게 다시 들어갔다.
[오우. 선배 간지.]‘그래? 간지나?’
[왜? 질투하냐?]‘내가 니 말에 질투하겠냐?’
이안은 진의 말을 무시하고 다시 연습실로 향했다.
멋있는 선배 같아 보이긴 했는데 조금 쓸쓸해 보였다면 착각일까?
익숙해졌다고 무뎌지는 게 아닐 테니까. 과거의 김용민과 지금의 나처럼. 이안은 말을 애써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