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econd Life as an Idol RAW novel - Chapter 202
202
너에 대한 걸 캐묻더라고.
법무법인 서앤우의 정연재 변호사는 늦게까지 사무실에 있다가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어, 이안아.”
(안녕하세요, 이모. 잘 지내셨어요?)
“일에 치어 살고 있지, 너는?”
(저도 잘 지내고 있죠. 혹시 지금 바쁘세요?)
정 변호사는 이안이 왜 전화했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얘가 뭔가 원하는 게 있구나.’
고소 진행 상황은 소속사를 통해 전달받고 있을 테니 고소에 대한 것이 궁금해서 전화를 걸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아무리 바빠도 조카 전화 받을 시간은 돼. 무슨 일이니? 부담 없이 말해 봐.”
(투자를 하고 싶은데, 도와주실 수 있으세요?)
“투자? 그래, 어렵지 않지.”
정 변호사는 펜대를 굴리다가 생각나는 것들을 메모지에 적었다.
(네, 꼭 사례할게요.)
“얘, 어려운 일도 아닌데 뭘 그렇게까지….”
(아뇨, 이런 건 계산이 철저해야죠.)
“그 점은 또 할아버지 닮았네.”
정 변호사가 작게 웃었다.
‘전에 했던 말을 담아 두고 있었나.’
괜히 바람을 넣은 건가 싶다가도 이안이라면 왠지 잘할 것 같다는 묘한 생각도 들었다.
“음, 괜찮은 투자 회사나 대리인을 알아봐 줄게.”
(정말 감사합니다.)
“이 정도는 일도 아니야. 근데, 투자 시작하려고?”
(한번 해 보게요.)
이안은 김용민 시절의 기억을 되살렸지만, 예전에도 관심 있게 지켜보던 것이 아니라서 굵직한 사건 외에는 알고 있는 정보가 별로 없었다.
그나마 진이 이런 쪽의 정보에는 빠삭해서 다행이었다. 그는 최근 들어 적극적으로 변한 진을 이용하기로 했다.
“너무 무리하지 말고.”
(당연하죠, 저 할아버지 손자잖아요.)
“그래, 어련히 잘 가르쳐 주셨겠지. 그래, 이모가 한번 힘써 볼게.”
(네, 다음에 삼촌이랑 또 봬요.)
“그래, 나중에 보자.”
통화를 끊은 이안이 의자에 편하게 기댔다. 국적이 달라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내국민 대우 외국인으로 분류되어 투자에 어려움은 없었다.
“일단 한 걸음 뗐고.”
바쁜 스케쥴 때문에 직접 뛰어들지는 못했다. 도와줄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돈을 불리는 것은 시작일 뿐, 그렇게 우선순위는 아니야.’
그런 이안의 심정을 진이 대변했다.
[인맥도 무시 못 하지.]‘맞아.’
어떻게 할까. 이안의 눈을 빛냈다.
* * *
광고 촬영도 어느 정도 끝나 가고 있었다. 아위 멤버들은 하루 쉬는 시간을 이용해 마이킷 멤버들을 만나러 단체로 숙소 밖을 나섰다.
“어, 왔다. 여기!”
“오랜만.”
미리 식당 안에 앉아 아위를 기다리던 마이킷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일찍 왔네?”
“오랜만에 우리 슈퍼스타 보는데 미리 와서 대기 타고 있어야지.”
“아, 진짜 그러지 마라.”
마이킷 김철민의 능청에 조태웅이 마스크를 벗고는 작게 웃었다.
눈에 띄지 않는 무채색 옷차림과 모자, 마스크까지 꽁꽁 싸맨 아위 멤버들과는 다르게 마이킷 멤버들은 상대적으로 가벼운 옷차림이었다.
“헐, 저기 봐. 아위 아니야?”
“대박.”
파티션이 쳐져 있는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손님 몇 명이 아위를 알아보기도 했다. 등 뒤에서는 누군가가 사진을 찍는 소리도 들렸다.
“다들 잘 지냈어? 일본 갔었다며?”
이주혁은 사람들의 시선을 애써 무시하고서는 말했다. 마이킷 멤버들의 표정이 흐려졌다.
“잠깐 온 거야. 다시 가야 해.”
“진짜요?”
박서담이 물을 마시다 말고 놀라서 소리쳤다. 코로나 시국이 어느 정도 잠잠해지자, 마이킷의 소속사는 일본 활동으로 돈을 좀 만져 봤는지 마이킷을 또 지하돌 생활하라고 일본으로 보냈다.
“그쪽에서 우리가 수요가 되니까….”
“어쩔 수 없지.”
마이킷의 리더, 정지수가 애써 웃으며 대화 주제를 돌렸다.
“이안이 드라마 예고 떴더라?”
“아 맞아. 봤어.”
이안이 촬영했던 엠플릭스 드라마, ‘Z―Day’는 오랜 편집 작업 끝에 내년 초에 공개될 예정이었다.
김철민은 예고편에서 나왔던 이안의 극 중 대사를 읊었다. 나름 연기라고 한 것이겠지만 아주 어설펐다.
“야, 철민아. 진지하게 말하는데 너는 연기 하지 마라.”
“내가 왜!”
김철민과 김주영의 티격태격을 배경음 삼아 다른 멤버들이 저마다 서로 대화를 나눴다.
이안도 맞은편에 앉은 김철민과 박세온의 얘기를 들으며 사진을 찍어 달라고 오는 사람들의 요청을 에둘러 거절했다.
“나도 주영이처럼 자격증 같은 거 딸까 봐. 연예인 관두게.”
“왜?”
김철민이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이안과 김주영이 고개를 들었다.
“이대로라면 그냥 흔한 심해 아이돌 1인이 될 거 같거든.”
[갑자기 훅 들어오네.]이안은 너희가 왜 심해 아이돌이냐며 반박하고 싶었지만, 무슨 말을 해도 안 먹힐 것 같았다. 묵묵히 음식을 집어 먹으면서 그들이 하는 말을 들었다.
“우리 회사가 재계약할 만한 회사도 아니고, 다른 회사가 나를 데려갈지도 모르겠고.”
“…그래?”
“그렇다고 내가 금수저도 아니잖아. 지금이라도 기술을 배워 둬야 할 거 같아.”
아이돌로 데뷔한다는 것은 10대, 20대의 시간을 바치는 것에 비해 성공할 것이라는 보장이 없었기에 리스크가 컸다.
‘그 마음 잘 알지….’
이안이 씁쓸하게 웃었다.
연습생이 된 지 1년도 안 되서 데뷔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렇게 많지는 않다.
보통은 어린 시절부터 연습생으로 들어가는데, 소속사에서 어린 연습생을 선호하기도 해서 더욱 그랬다.
그렇게 몇 년의 시간 동안 연습생 생활을 하다가 데뷔조에 들지 못했거나 회사가 데뷔시킬 여력이 되지 않아서 데뷔 일정이 엎어지는 등 데뷔를 하는 것에서 첫 번째 고비가 찾아온다.
“일본도 솔직히 모르겠어. 지하돌 생활이 얼마나 가겠어. 그쪽도 아이돌 쏟아지던데….”
그렇게 버티다가 간신히 데뷔하게 되면 소속사에서 밀어주는 기간은 2년 정도. 소속사에서 기대한 것 이상의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다음 데뷔 그룹의 성공을 노리거나 한다는 이유로 방치당한다.
“우리는 계약 묶여 있어서 마이튜브 이런 것도 못 하잖아.”
“웃긴 게 뭔 줄 알아? 우리 회사는 알바도 허용 안 해 준다?”
“헐.”
게다가 계약 조건에 따라서는 아이돌 활동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 하게 법적으로 묶이는 것이다.
보통 아티스트 계약이 7년, 남자라면 군대까지 다녀와야 하니 30대가 다 돼서야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게 되는데, 그때 되면 이룬 것도 없고 배운 것도 없어서 막막한 시기가 되는 것이다.
“그래도 일본이라도 돌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잘 모르겠어.”
“중장비 기사 같은 걸 도전할까 봐, 일본 돌면 그래도 중장비 하나 정도는 살 수 있지 않을까?”
“근데 우리 회사가… 아니다.”
김용민 시절의 이안은 악착같이 버티고 버텼지만, 보통은 연예계 활동을 접고 다른 일을 알아본다.
“너네는 잘돼서 다행이다.”
“솔직히 잘 될 줄 알았어. 다들 능력이 좋잖아.”
김철민과 박세온이 씁쓸하게 웃었다. 맞은편에서 듣고 있는 이안과 김주영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김주영은 저런 모습이 아위의 미래가 될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생각이 깊어졌고 이안은 괜히 눈치가 보였다.
* * *
2차 장소로 자리를 옮기면서 이안은 정연재 변호사의 전화를 받았다.
“네, 이모.”
(안녕, 이안아. 전에 부탁했던 일 있잖니? 괜찮은 사람을 구했어.)
“정말 감사드려요.”
(알고 보니 너희 조부님과도 인연이 있더라고. 잘해 줄 거야.)
“진짜요?”
할아버지, 당신은 대체.
어쨌든 좋은 소식이었다. 이안이 활짝 웃었다.
(어쨌든, 너 얘기 하니까 좋아하더라. 맡겨만 달라는데?)
“그럼 언제 같이 모여서 식사해요. 일정은… 나중에 보고 연락드려도 될까요?”
(그래.)
최이안이 되면서 얼굴과 신체 덕만 보는 줄 알았는데, 집안 덕과 운까지 타고났다.
‘운이 좋군.’
[진짜 나라 구한 운이 있나?]이안은 통화를 끊고서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식당 안으로 들어서려는 순간, 옆 골목에서 담배를 피우는 박세온을 발견했다.
“너 담배 원래 피웠었어?”
“아니. 핀 지 얼마 안 됐어.”
홀로 담배를 태우는 모습이 외로워 보여서 이안은 박세온의 옆에서 골목 사이 작은 하늘을 쳐다봤다.
“…사실 우리 회사가 그렇게 좋은 상황은 아닌 거 같아.”
“어떻게?”
“정산이 밀리더라고.”
“그건 좀… 심각한 거 아니야?”
이안이 인상을 찌푸렸다. 다른 일도 못 하게 하면서 정산도 밀리다니.
‘얘네 소속사 어디였지?’
[ST 엔터.]‘너 뭐 기억나는 거 없냐?’
[…없어.]과거 기억을 뒤져 봤지만, ST 엔터나 마이킷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 진도 기계음 소리를 내며 뭔가를 떠오르려 했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병크는 좀 있어도 나중에 괜찮아진 거 아냐? 그래서 기억에 없나?]‘그래?’
정보량이 많은 진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만, 이안은 떨떠름한 감정이 지워지지 않았다.
“뭐, 밀리긴 해도 얼마 들어오긴 했으니 이번에도 그럴 거야.”
심지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구나. 이안이 한숨을 쉬자 담배를 다 태운 박세온이 마지막 연기를 내뱉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자리에서 이런 말 해서 미안하다. 어디 말할 데가 없어서… 너희밖에 없었어. 우리랑 꾸준히 연락하는 사람들이….”
아림픽에서 눈에 띄었던 박세온의 ‘인성갑’ 전략은 반년 정도 반응이 있었다가 빠른 속도로 시들었다. 가끔 박세온의 비매너 캐릭터가 필요할 때 불리는 정도, 일본 활동을 다시 시작한 뒤로는 그마저도 없었다.
“괜찮아, 친구잖아.”
이안도 과거에 망돌 시절을 겪어서 그런가 박세온의 상황이 남 일 같지 않았다.
이안의 대답에 박세온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세계적으로 유명해져도 한결같이 자신들을 대하는 아위 멤버들에게 괜히 푸념만 한 것 같아서 미안함이 짙어졌다.
“우리가 말은 안 하고 있어도 다들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고마워할 일이 뭐가 있냐? 당연한 거지. 다들 기다리고 있는 거 아냐? 이만 들어가자.”
이안이 박세온의 팔뚝을 툭 쳤다. 그들이 식당 안으로 들어서려는 순간, 박세온이 이안의 어깨를 잡았다.
“잠깐, 이안아. 혹시 양인준 기자라고 알아?”
“…어. 그 사람이 왜? 무슨 일 있었어?”
양인준. 이안에게 스폰 제안을 해 놓고 거절하니 이상한 문자 메시지를 보내 놓고 잠잠하던 팩트픽스 기자.
“그게…. 대뜸 전화 와서는 너에 대한 걸 캐묻더라고. 좀… 안 좋은 쪽으로.”
“그래? 뭐라고 물어봤는데?”
“술 문제, 여자 문제 그런 거 있잖아. 그래서 그냥 끊어 버렸지. 뭐가 쎄한 게 대답도 하면 안 될 거 같더라고.”
이안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 버리자 박세온이 급하게 말을 이었다.
“내가 괜한 말 한 거는 아니지? 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니가 알아 둬야 할 거 같아서.”
“아냐, 진짜 필요한 거였어. 알려 줘서 고맙다. 그 사람 팩트픽스 소속 기자거든. 엮여서 좋을 건 없지.”
“와씨.”
박세온이 인상을 찌푸렸다.
“유명해져도 피곤하겠네. 그런 기자 붙으면.”
“너도 조심해. 혹시 모르니까.”
“그쪽이 나 같은 망돌한테 뭐가 관심 있어서? 또 너 관련해서 연락 오면 알려 줄게.”
“고맙다.”
박세온은 그 말을 하고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조태웅이 왜 이리 늦게 왔냐고 핀잔을 주고 있었다.
뒤따라 들어온 이안은 말없이 빈자리에 앉았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눈치챈 아위 멤버들은 일부러 말을 걸지 않았다.
‘진.’
[어.]‘쓸 만한 거 더 없어? 정보 더 내놔.’
양인준, 그 사람. 처음 볼 때부터 맘에 안 들더라니. 이번엔 무슨 개수작을 부리려고.
‘계획을 좀 앞당겨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