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111)
114화. 분타의 참사
“하, 한 사나흘 된 것 같습니다요! 본래는 거지놈, 아니, 어르신들께서 드물지 않게 보였었는데, 이분들이 글쎄 단체로 이사라도 갔는지…….”
“…사나흘.”
철면개가 허탈한 목소리를 내었다. 그 틈을 타 상인이 헐레벌떡 봇짐을 챙겨서 자리를 벗어났다.
“걸개.”
이벽이 말했다.
“분타의 위치를 알고 있소?”
철면개가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모르오.”
하오문 만큼의 비밀스런 점조직은 아니라고 해도, 개방 역시 천하 각지에 뻗지 않은 곳이 드문 조직이다.
즉, 개방도라고 해서 천하에 존재하는 모든 분타나 거점의 위치를 꿰고 있을 순 없는 것이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어느 동네를 가건, 거리에 널브러진 거지들을 닥달하다 보면 결국은 그 지역의 우두머리 개방도들과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헌데.
“어쩔 수 없네요. 발로 뛰어야죠.”
공손수가 말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간에… 상식적으로 분타 정도의 인원이 머무르고 있었다면 어딘가에 흔적쯤은 남아있겠죠?”
“…술은 다 먹었구만. 케헤.”
파진성이 푸념을 내뱉었다.
그리고 일행들은 거리를 헤매었다. 이내 저녁을 지나 완연한 밤이 되면서 인적은 점점 드물어졌다.
“이보시오! 미안하오만 혹 이 동네에서 거지들이 자주 모이는 곳을 알고 있소?!”
“딸꾹!”
철면개에게 어깨를 붙들린 취객이 그대로 중심을 잃고 나뒹굴었다.
“진정하시오, 걸개.”
“…미안하오.”
철면개가 취객을 일으켜주었다.
이따금씩 마주치는 행인들은 밤거리를 휘젓는 일행들을 퍽 경계하긴 했어도 도망을 친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만큼 평화로운 동네였다.
거지들은 보통 으슥한 곳에 거처를 삼는 게 일반적이지만, 현내에는 그럴만한 곳조차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일행은 간신히 뒷골목을 찾았다.
횃불을 들고서 그 안을 헤집었다.
그 끝에 거지들이 머무르던 곳으로 추정되는 빈집들을 몇몇 발견했으나, 역시 인기척은 없었다.
주변은 기괴할 만큼 적막했다.
“…다소 위험부담은 있지만 여기서부턴 흩어져서 찾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네요.”
“아니, 잠깐.”
문득 이벽은 무언가를 느꼈다.
선천의 힘에 집중하자 이내 기감이 한껏 예민해졌다. 밤공기에 섞여든 희미한 피 냄새를 맡았다.
“…이쪽이다.”
타닷.
이벽은 여느 집 안으로 들어갔다.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인영 하나가 널브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언미희가 횃불을 가져다 비쳤다.
얼룩진 누더기를 걸친 그 모양은 누가 봐도 거지꼴이었다.
“이, 이보게!”
“누, 누구……?”
덥석, 철면개가 사내의 어깨를 붙들었다.
“으… 으윽!”
사내가 신음했다.
멈칫, 철면개가 흔들렸다.
그제야 사내가 걸친 누더기에 묻은 얼룩의 정체가 온통 시커멓게 굳은 핏자국임을 확인했다.
“정신 차리게! 나 집의당주 철면개일세! 대체 이 동네에 무슨 일이 있었지?! 분타는 어떻게 된 건가? 대체 어디로 가면—”
“으으, 으, 어르신! 다행……!”
쿨럭, 사내가 피를 토했다.
“…상태가 심각한 것 같소. 우선 의원으로 데려가는 게 좋을 것 같군.”
“아, 알겠소……!”
텁.
철면개가 사내를 안아 들려던 그때였다. 사내의 손이 뱀처럼 움직였다.
철면개의 손목을 붙들었다.
“허억, 헉… 허억!”
거칠게 이어지던 호흡이 서서히 안정화되기 시작했다. 눈가에 초점이 또렷해진다.
“부, 분타를 찾으시는군요. 동쪽의… 진량천으로 가시면 다리가 있습니다. 그 아래… 판잣집 안에 입구가 있습지요.”
회광반조(回光返照).
목숨이 마지막 순간에 달했을 때 잠깐이나마 몸과 마음이 반딧불처럼 빛을 발한다.
“다, 다행입니다. 이놈의 숨이 다하기 전에… 어떻게든 소식을 전할 수 있게 되어서—”
“그만! 말을 아끼게!”
찰나의 빛이 꺼져 들어간다.
철면개가 사내를 들쳐 업었다.
“부탁입니다. 부디… 구해…….”
콰앙!
철면개가 거세게 땅을 박찼다.
집을 빠져나온 뒤 새처럼 날아올라 지붕을 밟았다. 지붕과 지붕을 오가며 뒷골목을 빠져나왔다.
일행 역시 부랴부랴 뒤를 따랐다. 거리를 물어 의원을 찾은 뒤 대문을 부수다시피 뛰쳐들어갔다.
황급히 의원에게 거지를 맡겼다.
허나… 살 수 있을 확률은 희박했다. 회광반조가 일어나버린 이상 그 어떤 명의라 해도 살리기는 어렵다.
콰앙!
일행은 다시 거리로 나섰다.
침중한 분위기 속에서 철면개가 발을 굴렀다. 땅 위로 발자국이 움푹 패여 들었다.
“…아무래도 늦은 것 같구만.”
“…….”
“누명개 장로 쪽은 소식이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았던지, 혹은 오는 길에 무슨 일이 있었던 지도 모르겠소. 아무튼간에.”
일행을 둘러보았다.
“…이곳엔 우리들 뿐이오.”
철면개의 시선은 복잡했다.
일행은 그 의미를 이해했다.
마음 같아선 지금 당장이라도 분타를 향해 뛰쳐들어가고 싶을 것이다.
허나… 위험할 것이 뻔한 곳으로 함께 가달라는 말을 일행에게 차마 꺼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럼 다수결로 결정하죠.”
그때 다시 공손수가 나섰다.
“저부터 말할게요. 걸개에게는 죄송한 말이지만… 지금 당장은 아녜요. 너무 무모한 짓이니까요. 가더라도 천천히 작전을 짜서—”
“…저는 갈게요.”
그때 언미희가 말했다.
목소리는 작았지만 확고했다.
“당연하지. 아님 뭐 하러 왔어?”
다음으로는 송영영이 말했다.
“걱정 마. 안 죽어. 내가 있어.”
“…….”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녀는 무당의 제자였고, 눈앞의 상황을 못 본 척 넘어갈 수는 없는 듯했다.
하아, 공손수가 한숨을 내쉬었다. 횃불에 비친 새침한 눈매가 이벽을 향했다.
“네에, 알겠어요. 참고로 오라버니는 굳이 말 안 해도 돼요. 어느 쪽인지 이미 알고 있으니까요.”
“케헤. 그렇담 나는—”
“파 소협도요. 이미 과반수가 넘었으니 파 소협 의견은 안 중요해요. 그냥 닥치고 따라와요.”
파진성이 미간을 찌푸렸다.
“…나도 가자고 하려 했다고.”
“아 네, 협객이 또. 그러던가 말던가 나만 의리 없는 사마외도의 나쁜 계집 만들고.”
“…미안하오.”
철면개가 조용히 말했다.
피식, 공손수가 쓰게 웃었다.
“아녜요, 반쯤 농담이니 걸개가 미안해할 이유는 없어요. 각자의 판단이고 우리는 일행이잖아요?”
“어쨌거나 서두르지.”
이벽이 말했다.
이미 늦었음이 틀림없지만.
그럼에도 혹시 희망이 있다면.
타앗.
일행은 다시 경공을 펼쳤다.
현내의 동쪽으로 향하자 거지 사내의 말처럼 개울물이 모습을 드러냈고, 작은 다리가 나타났다.
아니나 다를까, 그 아래로 다 쓰러져가는 듯한 판잣집이 하나 서 있었다.
일행은 허름한 천막을 걷어내고 안으로 들어섰다. 이내 퀘퀘한 공기가 훅 다가왔다.
쿵, 쿵, 터엉.
공손수가 이곳저곳 발을 굴렀다.
바닥을 두드리며 미묘하게 소리가 다른 부분을 찾아낸 뒤 이벽을 향해 작게 웃었다.
“이거 우리 동네랑 구조가 비슷하네요. 그쵸, 오라버니?”
“그렇군.”
콰직, 끼이익.
공손수가 틈을 잡았다.
허름한 나무판자를 들어내자 마찰음과 함께 이내 지하로 통하는 계단이 나타났다. 그리고.
훅.
“…….”
시커먼 어둠.
악취가 구름처럼 밀려들었다.
평화로운 도시의 발밑. 그 아래에서 마침내 무림의 영역을 알리는 죽음의 냄새가 일행을 맞이했다.
* * *
아귀의 입처럼 벌어진 계단.
그 순간 일행의 머릿속에 공통적인 생각이 스쳤다. 그 안을 감히 엿봐선 안 된다고, 본능이 속삭였다.
“당연히 내가 앞장서겠소.”
철면개가 말했다.
언미희로부터 횃불을 건네받은 뒤 먼저 발을 디뎠다. 삐걱, 계단이 낡은 소리를 내었다.
삐걱, 삐걱.
일행은 말없이 뒤를 따랐다.
낡은 나무계단을 타고 내려가자 이내 정면으로 뻗은 복도가 나타났다.
어둠에 가려진 그 끝은 잘 보이지 않았다.
후욱.
철면개는 벽 곳곳에 불을 붙였다.
내부는 넓었고 개미굴처럼 이곳저곳에 방이 나 있었다. 철면개에게는 퍽 익숙한 구조인 듯했다.
“…진짜 장난 아니네.”
파진성이 중얼거렸다.
소매로 코를 틀어막는다.
말마따나 악취는 나아갈수록 심해져서 이제는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였다.
그것은 단순히 피 냄새가 아니었다. 설명하기는 어려웠으나, 악취는 마치 죽음 그 자체를 닮은 듯했다.
그렇게 일각여를 나아갔을까.
“윽.”
공손수가 작게 신음했다.
마침내 악취의 근원이 나타났다.
퍽 거대한 공간이었다. 본래는 분타를 책임지는 삼결제자와 그 직계 휘하 거지들의 집무 겸 생활공간이었을 테다.
허나.
철퍽.
발밑은 끈적했다.
본래는 거지들의 소굴이었을 그곳은… 이제는 거지들의 무덤이 되어있었다.
“…….”
일행들은 잠시 경계태세를 갖추었다. 숨을 죽이고 입구를 등진 채 각자의 방위를 경계했다.
허나 기척은 없었다.
흉수들은 이미 떠난 듯했다.
일행들은 서서히 경계를 풀었다.
이내 공간의 중앙으로 나아간 철면개가 주변으로 횃불을 한 바퀴 비추었다.
훅.
불빛이 어둠 속의 시신들을 비추고 지나갔다. 허나 그 머릿수는 쉽사리 헤아려지지 않았다.
시신들은 얽히고설켜 있었다.
아마도… 분타의 거의 전원.
그리고 어디를 보아도 이미 죽은 이들 뿐이었다. 그 덩어리 속에서 생존의 기척 따윈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사흘 정도는 지난 것 같네요. 그쯤부터 바깥에서 거지들이 안 보였다고 했으니, 그때엔 이미…….”
무거운 침묵 속에서 공손수가 비교적 침착하게 시신들의 상태를 살피기 시작했다.
파진성이 그 뒤에 따라붙었다.
“아니 이거… 말이 되냐?”
“…그러게요. 병기로 막으면 병기가 부서지고, 몸으로 막으면 몸이 으스러지고.”
“…….”
“대체… ‘무엇’에 당한 걸까요?”
철면개는 말이 없었다.
부르르, 어깨가 떨렸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은 시커멓게 물들어서 분노를 참는 것만으로 한계인 모양이었다.
“…그렇군.”
이벽은 생각했다.
영문이 어떻게 된 일이건, 지금 이곳에는 베어야 할 적도, 구해야 할 목숨도 없다.
그럼에도 진득한 악취가 이벽의 마음속으로 파고들었다. 계속해서 무언가를 자극하고 있다.
후욱.
적파심공이 약동했다.
‘혈기.’
이벽은 인상을 찌푸렸다.
광경은 너무나도 참혹한 나머지 오히려 비현실적이었다. 마치 근래에 이벽이 앓고 있는 꿈을 떠올리게 했다.
제갈소미, 혁대웅, 언미희, 공손수, 파진성.
모두가 이미 죽거나 죽어가고 있었고, 이벽은 그 자리에 혼자 살아남아 있었다.
“…….”
목천의 경지를 깨우쳤으나.
그 이후로 이벽은 아직 마음속의 심마를 정면에서 맞닥뜨리지 않았다. 섣불리 건드리기에는 위험했다.
또한.
자신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이벽은 문득 옆을 돌아보았다.
언미희는 제자리에 서 있었다.
처참하게 죽은 거지들의 모습이 그녀의 마음에 어떤 파문을 일으키고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표정은 없었다.
무림의 본질을 외면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으므로, 오히려 더더욱 눈에 새겨넣으려 애를 쓰는 것 같았다.
이벽은 안타까웠다.
끼긱.
그때였다.
언미희의 등 뒤로 엉켜있는 시신들 사이에서, 작은 움직임이 일었다.
이벽은 우선 눈을 의심했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스스로의 마음을 의심했다.
끼기긱, 끼긱.
허나 그것은 눈의 착각도, 마음의 문제도 아니었다. 이내 시신 하나가 ‘일어섰다’.
허나 관절은 실에 매달린 인형처럼 제멋대로 움직였으며, 매번 뼈가 긁히는 듯한 소리가 났다.
살아있는 이의 동작은 아니었다.
끼긱, 끽.
타앗.
시신이 땅을 박찼다.
속도는 결코 느리지 않았다.
시신이 향하는 방향의 끝에 언미희가 있음을 이해한 순간 이벽도 땅을 박찼다. 언미희를 지나치며 발검했다.
타앙—!!
시신의 팔과 검이 부딪혔다.
적지 않은 내력을 실었음에도 팔은 베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반탄력이 느껴졌다.
“조심해라. ‘적’이 있다!”
이벽이 힘주어 외쳤다.
끼긱, 끼기긱!
“뭐, 뭐야, 씨발?!”
“주, 중앙으로!! 흩어지지 마요!!”
파진성과 공손수가 즉시 반응했다. 그리고 그 외침을 기점으로, 사방의 시신 더미 이곳저곳에서 비슷한 움직임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