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112)
115화. 죽은 자의 습격 (1)
채앵!
이벽은 ‘적’을 밀쳐내었다.
치이익.
적은 두어 걸음 밀려나다가 이내 멈춰 섰다.
“…….”
아니, 그러나.
걸음이라고 말하기에는 어려웠다.
적은 상체를 한껏 낮춘 채 팔과 무릎을 최대한 땅에 마찰시킴으로써 몸을 정지시켰다.
그것은 무학도 뭣도 아니었다.
‘보통의 인간’이었다면, 제대로 싸우기도 전에 살갗이 엉망으로 벗겨지고 말았을 것이다.
끼기긱, 끼긱!
허나 상대는 멀쩡했다.
회잿빛 피부는 나무껍질과 같다.
맨손이 이벽의 검과 충돌했음에도 미세한 흠집만을 남겼으며, 피조차 흐르지 않았다.
“언니! 오라버니! 어서요!!”
그때 공손수가 다시 외쳤다.
이벽은 얼른 뒤를 돌아보았다.
언미희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했고, 나머지 일행은 중앙에 등을 맞댄 채 모여들고 있다.
끼긱, 끼기긱.
시쳇더미들이 움찔거린다.
사방에서 움직일 수 있는 시신들이 뼈와 살점의 틈을 비집고 기어 나온다.
타앗.
이벽과 언미희는 몸을 빼냈다.
일행들의 틈새로 합류했다. 여섯 명은 공간의 중앙에서 등을 맞댄 채 각자의 방위를 향했다.
“…대체 뭐냐, 이 상황? 꿈이냐?”
“헛소리 말고 칼 꺼내요! 명백한 현실이니까요. …아마도요.”
파진성이 멍하니 중얼거리자 공손수가 칼같이 쏘아붙였다.
허나 심정은 크게 다르지 않은 듯했다.
한때는 개방의 거지로서 누더기를 걸친 이들은, 이제는 그 안의 육신마저 누더기가 된 채 억지로 움직이고 있다.
“어, 어찌… 어찌……!”
철면개가 침음했다.
끼기긱, 끼긱.
“온다. 정신 차려. 죽는다.”
송영영이 말했다.
말마따나 생각할 시간은 없다.
타앙!
그 말을 신호로, 전방위에서 시신들이 달려들었다. 움직임은 기괴했으되 기세는 결코 경시할 수 없다.
채애앵!
일행은 시신들과 부딪혔다.
시신들에게는 물론 일 대 일이란 개념은 없겠지만 머릿수는 얼추 비슷했으므로 이내 각자의 싸움에 빠져들었다.
채앵!
“…….”
이벽은 적의 강도를 재확인했다.
팔을 잘라내기에 충분한 내력을 실었음에도 그저 살갗을 할퀴고 지나갔을 뿐이다.
‘어떻게 해야 하지?’
죽여야 한다.
허나 살아있는 적과는 달리 이미 죽은 이들을 그저 베어낸다고 해서 다시 한번 죽일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끼긱, 끼기긱.
심지어 주변의 시쳇더미는 계속해서 움틀거리고 있었다.
안쪽에서 얼마나 많은 시신들이 기어 나오려 하는지는 가늠할 수 없다.
챙, 채앵.
이벽은 청강검식을 펼쳤다.
아홉 개의 방위를 타고 발검식과 회검식 속에서 여섯 개의 무리가 빗발친다.
시신의 온몸을 두드렸다.
끼기긱, 카각!
허나 경직은 없었으며, 그 움직임은 이벽의 청강검식보다도 더욱 변칙적이었다.
인간의 형상을 했으되 그 동작은 인간이 아니었으며 때때로 관절은 있을 수 없는 방향으로 꺾여 들었다.
빈틈은 쉬이 유도되지 않는다.
청강유엽검식을 펼치기 어렵다.
“…….”
문득 이벽은 불안해졌다.
검기가 먹히지 않는다면… 철면개를 제외한 나머지 일행들에게는 퍽 버거운 상대일 수도 있다.
‘서둘러 도와야 한다.’
우우웅.
길게 끌 시간은 없다.
이벽은 강기를 일으켰다.
퍼어억!
이내 시신의 오른팔이 날아갔다.
허나 그 감각은 베어졌다기보다는 오히려 강기의 압력으로 짓이겨낸 것에 가까웠다.
또한.
끼기기긱.
인간과는 달리 팔 하나를 잃고도 시신은 고통을 느끼지 않았으며, 여전히 경직되지 않았다.
팔 하나와 다리 두 개가 남았음을 과시하듯 그 즉시 다음의 공격 동작이 이어졌다.
퍼어억!
왼팔이 마저 찢겨나갔다.
그제야 잠깐의 빈틈이 벌어졌다. 두 팔을 잃은 시신은 무엇으로 공격해야 할지 스스로 판단을 내릴 수 없는 듯했다.
청강유엽검식(淸江流葉劍式).
발검제삼식(拔劍第三式).
강검(强劍).
콰아아앙!!
물론 그 틈을 놓치지 않는다.
이벽의 내력이 훅 빠져나갔다.
흡사 백 년 묵은 나무의 뿌리를 두들긴 듯한 충격과 함께 시신의 허리가 크게 짓이겨졌다.
상하체가 양분되었다.
제각각 땅 위로 떨어졌다.
끼기긱.
그러고도 시신은 움틀거렸다.
허나 팔도 다리도 없으므로 그 이상의 전투는 불가능하다. 이벽은 시선을 돌렸다.
푸욱.
그때였다.
칼날이 파고드는 소리가 들렸다.
공손수의 비수가 맞상대하던 시신의 안구를 파고든 것이다. 검신이 두개골 안쪽을 헤집어놓는다.
끼긱.
시신은 잘게 경련했다.
푹, 그리고 공손수가 비수를 회수하자 이내 시신은 축 늘어졌다. 마침내 정말로 죽은 듯했다.
“좋았어! 머리를 쳐요! 그럼 죽어요! 하지만 두개골이 더럽게 단단하니까 눈을 쑤시는 게 좋아요!”
“케헤, 그렇단 말이지?!”
파바바밧!
파진성의 검이 몰아쳤다.
파도를 닮은 검은 상대가 인간이건 시신이건 개의치 않는다. 불규칙성을 더 큰 불규칙성으로 맞선다.
캉, 카앙!
이벽이 예상대로 파진성의 검은 시신의 사지를 베어내지 못했다. 허나 쳐내는 것은 쉬웠다.
불규칙하되 힘이 실려있다.
베지 못할 뿐, 압도하고 있다.
“근데 어쩌나, 난 그렇게 점 하나 노리고 찌르는 거 잘 못 하거든. 케헤헤!”
끼기긱, 타앗.
그때 이벽은 새로운 기척을 느꼈다.
정면의 시쳇더미 속에서 일어선 또 한 구의 시신이 이벽을 향해 달려들고 있다.
청강유엽검식(淸江流葉劍式).
발검제일식(拔劍第一式).
직검(直劍).
푸욱.
이벽은 검을 뻗었다.
달려드는 그 기세 그대로 검끝이 시신의 눈을 파고들었고, 관통되었다.
슥, 털썩.
이벽은 검을 회수했다.
시신이 허무하게 늘어졌다.
“…….”
끼기긱!
땅 위에는 두 팔과 허리 아래를 잃은 먼젓번의 시신이 여전히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푸욱.
이벽은 다시 눈을 쑤셨다.
마침내 멈추는 것을 확인했다.
캉, 카앙! 캉!
“케헤헤, 죽어! 죽어! 죽어어!!”
이벽은 다시 파진성을 향했다.
시신의 공격을 크게 크게 쳐낸다. 그리고 그때마다 사지가 튕겨 나가며 일어나는 빈틈을 놓치지 않는다.
카앙!
파진성의 검이 목을 두드렸다.
단번에 베지는 못하되, 장작을 패듯 같은 곳을 연신 두드리자 서서히 균열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끼기긱!
목의 절반쯤을 파고들자 시신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 그때였다.
덥석, 쩌저적!
벌어진 균열 사이로 한 쌍의 권갑이 파고들었다.
두 손이 시신의 턱과 어깨를 붙잡고서 찢어발기듯 머리를 잡아 뜯었다.
“케엑, 뭐야?!”
통.
파진성이 움찔했다.
아랑곳 않고 머리가 땅에 내팽개쳐졌다. 그리고 그 순간, 콰앙! 진각이 그 머리를 짓밟았다.
콰앙, 콰앙, 쾅!
서너 번을 반복해서 짓밟자 이내 머리가 녹슨 바퀴처럼 찌그러졌다.
“…….”
언미희는 무감각한 눈으로 자신의 발을 내려다보았다.
그녀가 본래 마주하고 있던 방향에는 이미 머리가 으깨어진 다른 시신 한 구가 쓰러져 있었다.
“왜요, 오라버니?”
문득 공손수가 말했다.
이벽이 그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공손수는 퍽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도와줘야 한다는 건 착각이었다.
오히려 ‘머리를 부수면 된다’는 정보를 통해 도움을 받은 것은 자신 쪽이었다.
비룡대는 약하지 않다.
“크… 크으!”
쾅, 콰앙, 쾅!
오히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은 철면개 쪽이었다.
그의 병장기인 타구봉은 단단한 목각인형과 같은 적에게는 큰 효과가 없었다.
그저 쳐내고만 있을 뿐이다.
물론, 강기를 쓴다면 일거에 머리를 짓이기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허나.
투웅!
철면개의 미간이 흔들렸다.
시신들의 팔다리가 보이는 왜곡된 움직임에서 미약하게나마 개방의 흔적을 엿보았다.
차마 강기를 꺼내지 못했다.
후욱.
그때였다.
유려한 검이 철면개의 앞을 가로막았다. 검로가 원을 그리자 시신의 팔이 함께 미끄러졌다. 그 순간.
푸욱.
검로는 직선이 되었다.
그대로 검끝이 시신의 눈을 파고들었다. 슥, 송영영이 검을 회수하자 시신이 마침내 쓰러졌다.
“거지 아저씨, 정신 차려.”
언제나처럼 송영영은 표정이 옅었다. 허나 두 눈은 서늘하게 가라앉아 있다.
“그냥 시체야. 거지가 아냐.”
“…그렇구려.”
철면개가 쓰러진 시신을 바라보았다. 콰득, 타구봉을 움켜쥔 그의 손등에 핏줄이 일어났다.
“미안하네, 형제들. 내 형제들의 억울한 죽음을 잊지 않겠네. 무슨 일이 있었던 간에 반드시…….”
타앗.
또 한 구의 시신이 달려들었다.
철면개의 몽둥이가 바람처럼 휘둘러졌다. 뻐어억, 희미한 빛무리와 함께 머리가 으깨어졌다.
* * *
끼긱, 까드득!
시신들은 계속해서 일어났다.
허나 약점을 알아낸 이상 더는 상대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낄 이유는 없다.
빠르고 단단하지만, 그뿐이다.
죽은 자는 새로운 것을 배우지 못하지만, 산 자는 계속해서 생각하고 성장한다.
그 차이는 결정적이었다.
카앙! 쾅, 콰앙!
일행은 역할을 분담하게 되었다.
언미희와 파진성은 정면에서 적들의 움직임을 상대했다. 공격을 상쇄하고 맞부딪혀서 빈틈을 만들어낸다.
푸욱.
그리고 그 틈을 타 송영영의 검과 공손수의 비수가 파고들었다.
시신들의 눈을 쑤셔 박았다.
머리 안쪽을 헤집어놓고 나면, 시신들은 허무하리만치 쉽게 무너졌다.
콰앙, 콰앙!
철면개는 강기를 쓰되, 충돌의 순간 발현으로 내력의 소모를 최소화하며 머리를 으깨었다.
푸욱.
물론 이벽 역시 쉬지 않았다.
눈을 노리기로 마음을 먹자 청강유엽검식이 아닌 청강검식의 직의 묘리로 처리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끼기긱, 털썩.
시신들은 허무하게 쓰러지면서도 팔을 들어 ‘눈을 막는다’는 판단을 하지 못하는 듯했다.
일방적인 접전이 이어졌다.
입을 열어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으나, 일행들은 누구도 나서서 퇴로를 열지는 않았다.
그것이 가능하다고 해도, 평화로운 일상의 발아래 움직이는 시신들을 방치하고 도망칠 수는 없는 것이다.
“…….”
문득 이벽은 생각했다.
어려운 상대는 아니되, 시신들이 일어나고 쓰러지는 것을 반복하고 있는 이 광경은 틀림없는 지옥도였다.
어둠 속에서 빛은 희미하다.
이벽은 종종 몽롱함을 느꼈다.
퍼엉, 퍼엉!
“케헤헤, 케헤!”
허나 그때, 파진성이 웃었다.
“으아, 싫다, 진짜 싫다…….”
공손수의 질색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따금씩 언미희의 권풍이 머리칼을 스쳤고 송영영의 검에서는 희미한 도가의 향이 느껴졌다.
“편히 쉬시게, 형제. 미안하네.”
철면개는 종종 쓰러지는 시신들에게 말을 건네었다.
“…….”
등을 맞댄 일행들의 존재감.
일행들은 악몽 속에서처럼 나약한 존재가 아니었다. 제각각의 길 위에 선 무인들이었으며.
‘의지가 된다.’
존재감은 확고했다.
이벽은 빛을 보았다.
그리고.
푸욱, 털썩.
마지막 시신이 쓰러졌다.
어느덧 주변의 움직임이 잦아들었다. 머리가 멀쩡한 시신은 단 한 구도 남지 않았고, 시신더미 역시 더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
마침내 침묵이 감돌았다.
일행들은 숨을 가다듬었다.
“아, 목욕하고 싶다.”
그리고 공손수가 말했다.
그것은 뜬금없는 이야기였다.
“심각해요, 저. 마음 같아선 펄펄 끓는 물에 한 사흘 정도 계속 들어가 있고 싶은 기분이에요.”
그제야 일행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몰골에 가까웠다.
“케헤.”
파진성이 답했다.
“사골 끓이냐? 케헤헤! 쬐끄매서 몇 명 먹지도 못하겠구만. 케헤헤, 으헤헤헤! 케헤—”
“나도 들어갈래.”
문득 송영영이 말했다.
파진성이 뚝 웃음을 멈추었다.
허튼소리를 주고받기에는 파진성과 송영영의 사이에는 아직 어색함이 남아있는 듯했다.
“…나는 들어가면 안 되겠지.”
이벽이 말했다.
생각보다 먼저 말이 나가버렸다.
“어, 진짜요, 오라버니? 전 상관없는데요. 아니, 오히려 좋아요. 말 나온 김에 당장 나가자마자 가까운 온천을 알아볼까요?”
“신경 안 써. 나도.”
공손수와 송영영이 답했다.
“…케헤, 그럼 나도…….”
“입 닥쳐요, 파 소협. 미쳤어요?”
“죽어.”
“…….”
파진성이 입을 다물었다.
피식, 피식.
여기저기서 실소가 감돌았고, 이벽은 마침내 확고한 현실감을 되찾았다.
널브러진 시신들을 둘러보았다.
해야 할 일이 많다. 생각해야 할 것도, 판단해야 할 일도 많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우선.
“혈교 준동의 증거.”
이벽이 말했다.
“…그러게요, 지금의 이 풍경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있을까요?”
“…….”
“…오늘은 일단 돌아가도록 하지. 모두들 수고했소. 그리고… 형제들의 영면을 도와주어 고맙소.”
철면개가 말했다.
그렇게, 마침내 이 지옥도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일행은 무기를 거두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들어온 길을 향했다.
“엥? 뭐야?”
그러나.
일행은 출구 앞에 시신이 하나 서 있음을 발견했다. 일행들을 등진 채 출구 쪽을 향하고 있다.
“…케헤, 뭐야. 한 놈 남았었냐?”
파진성이 다가서려 했다.
슥, 이벽은 앞을 막아섰다.
“물러서라, 파진성.”
“뭐야, 왜?”
“잘 봐라, 다르다.”
“…….”
말마따나 그 시신은 특별했다.
사방에 널린 무수한 시신들 속에서 유일하게 거지의 복장을 하고 있지 않았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하얀 붕대로 감싸인 채, 그저 사내라는 사실만을 간신히 알 수 있을 뿐이다.
스윽.
시신이 주먹을 들었다. 그리고.
콰아아아앙—!!
출구를 향해 뻗어졌다.
그 순간, 실내 전체가 진동했다.
와르르르, 콰아앙!!
일행들이 들어온 통로의 천장이 무너져내렸다. 돌과 먼지가 일어나며 삽시간에 출구가 막혀버렸다.
단 일 권이었다.
“아, 젠장맞을.”
공손수가 말했다.
“저 주먹 좀 봐요. 어쩔 거야…….”
“…….”
시신의 두 주먹 역시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붕대에 쌓여있었다. 허나 그 끝은 말라붙은 피의 흔적으로 시커멓게 물들어있다.
문득 이벽은 생각했다.
여지껏 상대했던 시신들은 모두가 거지의 옷을 입은 개방도들의 시신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본래는 살아있었을 그들을 누군가가 때려죽였기 때문에 시신이 된 것이다.
“…위험하네.”
송영영이 말했다.
“미안. 죽을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