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113)
116화. 죽은 자의 습격 (2)
슥.
시신이 뒤로 돌아섰다.
마침내 일행을 마주했다.
뒷모습과 마찬가지로, 전면 역시 빈틈 하나 없이 붕대로 칭칭 감겨 있었다.
심지어는 얼굴마저도.
모든 빛을 차단하듯 철저히 감싸진 온몸에서 겉으로 드러난 것은 오직 두 개의 눈구멍뿐이었다.
번쩍, 섬뜩한 붉은빛을 발했다.
움찔.
우수수, 온몸의 털이 곤두선다.
일행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암습은… 시도 안 하는 게 낫겠죠? 제 칼은 박히지도 않을 것 같은데…….”
공손수가 말했다.
여타의 시신들과는 다르다.
움직임은 부자연스럽지 않았으며, 뼈를 마찰시키듯 끼긱거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섬뜩한 기가 느껴졌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시커먼 우물.
또한 그 안에서는 마치 살아있는 것과 죽어있는 것의 중간쯤에 걸쳐있는 듯한 냄새가 흘러나온다.
어쩌면 시신이 아닐 수도 있다.
“…물러서시오.”
그때 철면개가 앞으로 나섰다.
“아무래도 내 형제들을 이 꼴로 만든 장본인인 모양이군. 걱정 마시오. 내 이 자리에서 간장과 뇌수를 쏟는 한이 있어도 저놈만은 반드시 으깨버리겠소.”
“…….”
이벽이 함께 나섰다.
철면개의 왼편에 나란히 섰다.
“함께 합시다, 걸개.”
“아니오, 대주. 그대까지 이런 데에서 목숨을 걸 필요는—”
“내 생각에 지금은 객기를 내세울 때는 아닌 것 같소. 걸개가 당하고 나면 우리는 더 위험하오.”
“…….”
두 사람의 눈빛이 얽혔다.
이내 철면개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두 사람이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갔다.
“…우리는 탈출로를 찾아보죠.”
등 뒤에서 공손수가 말했다.
“상식적으로… 이런 땅굴 형태의 분타라면 출입구를 하나만 내어놨을 리 없어요.”
“케헤, 그것도 그렇네.”
파진성이 말을 받았다.
“주제 파악 하자 이거지? 괜히 어설프게 끼어들어서 발목 잡지 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
‘…출구라.’
이벽은 생각했다.
적은 단 일 권으로 일행이 들어온 길을 무너뜨려 버렸다.
설령 이 안 어딘가에 다른 출구가 있다 해도, 이 정도의 적으로부터 쉬이 도망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또르륵.
그때였다.
시신의 눈동자가 움직였다.
두 개의 동공이 따로 움직이며 하나는 이벽을, 하나는 철면개를 향했다.
후욱.
오른손에 붉은빛이 어렸다.
“가, 강기다! 조심—!”
타앙.
철면개가 외친 그 순간, 시신은 이미 땅을 박찼다. 신형이 쏜살처럼 쏘아진다.
콰아앙!
“커윽!”
철면개가 신음했다.
어느새 철면개 몽둥이에도 강기가 맺혀있었으나, 우열은 명백했다.
탓, 후욱.
이벽은 그 즉시 검을 뻗었다.
그 즉시 시신의 좌수가 당수의 형태로 뻗어지며 이벽의 검과 부딪혔다.
콰아앙!
‘…무겁다.’
이벽은 인상을 찌푸렸다. 어느새 시신의 좌수에도 당연하다는 듯 강기가 맺혀있었다.
끼긱, 끼기긱.
잠깐의 대치 상태가 이어졌다.
두 명의 절정고수와 맞서 양손으로 강기를 펼치면서도 시신은 전혀 힘에 부치는 기색이 없었다.
터무니없다. 하지만.
애초에 시신에게는 ‘힘에 부친다’는 개념이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시신의 손에 맺힌 그 흉험한 빛깔을 바라보며, 이벽은 문득 직감했다.
‘혈기?’
허나 생각은 길어질 수 없었다.
“흐아압!”
철면개가 기함했다.
일거에 힘을 짜내는 듯했다.
콰아앙!
그리고 충격파와 함께 시신의 오른팔이 튕겨 나갔다. 자연스레 온몸의 자세가 흔들린다.
“헉, 허억! 지금이오, 대주!”
이벽은 이해했다.
그 즉시 한 걸음 더 파고들었다. 시신이 자세를 추스르기 전에 청강검식이 빗발쳤다.
물론 강기가 휩싸여있었다.
탕, 타앙!
“……!”
이벽은 놀랐다.
강기는… 시신을 베지 못했다.
그것은 한때나마 살아있었던 인간의 육신이 아니라 마치 수도 없이 제련된 강철과 같았다.
검강이 훑고 지나간 곳들이 움푹 패여 들었지만, 그뿐이다.
“금강, 불괴……?”
철면개가 침음했다.
콰앙! 쾅!
이벽은 계속해서 검식을 펼쳤다.
설령 베지는 못한다 해도 분명히 충격은 누적되고 있다.
실제로 몸 곳곳에서 강기의 충격이 빗발치자 시신은 좀처럼 자세를 되찾기 어려운 듯 했다.
“크.”
이벽은 신음했다.
다만 선천의 힘이라 해도 강기를 무한정 사용할 수는 없다. 채워지는 속도보다 소모되는 속도가 빠르다.
‘부술 수 있을까?’
멈추면, 공세가 넘어갈 것이다.
그 전에 하다못해 팔 하나라도 끊어낼 수 있다면.
콰앙!
그때 몽둥이가 끼어들었다.
“내가 버티고 있겠소! 대주께서는 가능한 한 최선의 일격을 부탁하오!”
잠깐이나마 기력을 회복한 철면개가 공격의 흐름을 이어받았다. 이벽이 검을 거둔 순간, 몽둥이가 연계의 빈틈을 즉시 채워 넣었다.
퍼버벅, 퍼버벙!
“이노오오오오옴—!!”
타구봉이 빗발쳤다.
개방의 절기 타구봉법은 막아서든 피하든 끝끝내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집요함으로 유명하다.
시신이 두 팔을 허우적거렸다.
고통을 느끼지는 못하되, 몸에 가해지는 충격이 위험한 수준이라는 것은 인지하고 있는 모양이다.
허나 철면개 역시 삽시간에 얼굴이 진흙빛이 되었다. 내력이 모래성처럼 흩어져 내린다.
이벽의 낙검진천신공이 예외적일 뿐, 본래 강기라 함은 내력의 소모 면에서 연달아 펼쳐낼 만한 기교가 아닌 것이다.
“오라버니! 눈이요!”
그때 공손수가 외쳤다.
“……!”
이벽이 시신의 눈을 향했다.
생각해 보면, 몸이 단단한 것은 조금 전의 다른 시신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단지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어찌 됐건, 머리를 부수면 죽는다.
이벽은 판단을 마쳤다. 그리고.
청강유엽검식(淸江流葉劍式).
발검제일식(拔劍第一式).
직검(直劍).
후욱, 빗발치는 철면개의 몽둥이 사이로 직선의 검이 뻗어졌다. 시신의 붉은 눈빛을 향해 쏘아졌다.
콰아아아앙!!
다음 순간, 충격파가 일었다.
“…어렵군.”
이벽은 실패를 직감했다.
회심의 일격은… 시신의 왼쪽 무릎에 틀어막혀 있었다.
일격의 순간, 흡사 학처럼 뻗어 올려진 시신의 다리가 이벽의 검로를 틀어막은 것이다.
“허허, 말도 안 되는군.”
철면개가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일격이 막혔다는 그 자체보다도 약점인 눈을 노리자 시신이 적극적으로 방어를 펼쳤다는 것의 의미는 컸다.
마치… ‘의식’이 남아있는 양.
탓, 휘릭.
다음 순간, 시신이 뛰어올랐다.
오른발만으로 뛰었다고는 믿을 수 없는 표홀함. 그대로 허공에서 한 바퀴를 돌았다.
“조심하시오, 걸개!”
이벽은 외쳤다.
동작은 불현듯 눈에 익었다.
콰아앙—!!
“커헉!”
부랴부랴 철면개가 몽둥이를 위로 치켜들었다. 허나 그 위로 시신의 발꿈치가 내려찍어졌다.
휘청.
철면개가 주저앉았다.
“큭.”
이벽은 황급히 검을 뻗었다.
콰아앙!!
당연하다는 듯 시신의 왼팔에 가로막혔다. 허나 주의를 자신에게 끌어온 것만으로 충분—
타앗.
허나 그때였다.
왼발로 착지함과 동시에 시신은 다시 한번 가볍게 뛰어오르며 철면개를 향해 몸을 날렸다.
쐐애액!
오른발이 앞세워졌다.
세워진 발끝이 철면개를 향했다.
“뭐, 뭣—?!”
숨을 고르던 철면개는 대경하여 부랴부랴 강기를 끌어올렸다. 허나 내력은 슬슬 한계였다.
콰아앙!!
“커… 헉!”
화살처럼 파고든 오른발이 몽둥이를 두드린 순간, 철면개의 몸이 버티지 못하고 뒤로 밀려났다.
후욱, 덥석.
“…살아있어, 거지 아저씨?”
그때, 송영영이 몸을 날렸다.
날아가던 철면개를 부드럽게 받아들었다. 철면개의 안전을 확인한 순간, 이벽은 다시 시신을 향했다.
각법으로 철면개를 날려버린 시신은 땅에 착지하고도 한동안 계속해서 오른발을 들고 있었다.
자신의 발끝을 바라보고 있다.
발끝에서… 강기가 어른거린다.
“…….”
이벽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것은… 마치 오랫동안 잊어버리고 있던 ‘발을 쓰는 법’을 이제서야 깨우친 듯한 모습이었다.
* * *
철면개가 당했다.
전투 불능이 되었다.
허나… 이벽은 시신을 바라보았다. 적은 말 그대로 괴물이었고, 강기가 아니고서는 제대로 된 충격조차 줄 수가 없다.
즉, 이제 이 자리에서 싸울 수 있는 것은 자신뿐이다. 허나 싸우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반드시 이겨야만 한다.
짧은 순간, 이벽은 생각했다.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로는 적파심공이었다.
이벽은 기억들을 돌이켜보았다.
무엇보다도 적파심공은 ‘사파무공’이기에, 내력이 채워지는 속도는 청강유엽공과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빨랐다.
강기를 담아 초식을 난사해도 충분히 버텨진다는 것은 이미 팽무옥, 선우굉과의 일전에서 확인했다.
허나.
‘이성을 잃을 위험이 있다.’
산적을 베고 황보혁, 선우굉을 쓰러트렀으며, 제갈성의 진법을 파괴했고 백룡일, 백룡강을 베었다.
적파심공은 분명 위력적이다.
허나… 그 근간에 해당하는 혈기는 심마와 한 덩어리가 되어 제대로 통제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자신도 모르는 새에 자아를 빼앗기고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듯한 경험이었다.
정도와 양상은 매번 달랐으나.
좌우간 혈기가 폭주하고 나면, 이성을 잃은 자신이 행여 일행을 해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두 번째로는 목천의 경지였다.
선천의 힘을 가르고 의식의 속도를 가속화하여, 놈의 허를 찌른다. 방어를 뚫고 눈을 관통하여 머리를 파괴한다.
역시 가능성은 충분하다.
허나 이 또한 위험부담은 있다.
무리해서 심력을 쥐어짰다간 자칫 탈진하여 의식을 잃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즉, 이 자리에 있는 모두의 죽음과 같은 뜻이다.
‘두 번, 아니… 한 번.’
하물며 이미 일전을 펼치며 많은 심력을 소비했다.
목천의 영역을 활용하고도 무리 없이 의식을 붙잡고 있으려면… 기회는 고작해야 한 번뿐일 것이다.
“…….”
판단을 내려야 했다.
이벽은 뒤를 돌아보았고, 일행들을 보았다. 언미희의 창백한 얼굴을 마주한 순간 마음을 굳혔다.
지금의 그녀에게서 ‘박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따라서.
‘적파심공은 쓸 수 없다.’
타앗.
그리고 이벽은 달려들었다.
그 사이 선천의 힘은 소모된 내력을 빠르게 회복시켰고, 이벽은 강기를 일으킨 채 청강검식을 펼쳤다.
콰앙, 콰아앙—!!
시신은 그 즉시 맞부딪혔다.
그대로 몇 초식이 어우러졌다.
‘…성장했다.’
문득 이벽은 직감했다.
시신은 본인의 몸이 ‘베이지 않음’을 이해한 듯했고, 다소 어색했던 움직임은 놀랄 만큼 정교해졌다.
일방적으로 말려들지 않는다.
그뿐만이 아니다. 두 주먹과 두 발, 무릎과 팔꿈치, 어깨, 심지어는 머리에 이르기까지.
신체의 모든 부위가 병기와 같다.
그리고 전투가 이뤄지는 매 초식, 매 순간마다 그 사실을 깨우치며 더욱 강해지고 있다.
콰앙, 콰아앙—!!
이벽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아직까지는 우위를 점하고 있다.
시신의 움직임은 결코 가볍지 않았으나 어째서인지 그 동작은 퍽 눈에 익었다. 하지만.
‘그리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다.’
놈은 계속해서 강해지고 있다.
의미 없이 시간을 끌수록 기회를 잡기는 점점 더 힘들어질 것이다. 이벽은 결심했다. 그리고.
채앵—!!
다음 순간 검이 튕겨 나갔다.
이벽이 오른팔이 꺾이며 가슴이 훤히 드러났다. 허나 그것은 너무 갑작스러웠다.
어느 정도의 경지에 오른 이라면, 이벽이 일부러 드러낸 빈틈임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쐐애액!!
허나 시신은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고, 그 즉시 가슴 한복판으로 주먹이 뻗어졌다.
‘지금이다.’
쩌저적!
선천의 힘이 갈라졌다.
한 줄기가 이벽의 머리에 스며들었고, 이벽의 눈에 비치는 시신의 주먹이 물에 젖은 듯 느려졌다.
타앗.
이벽은 연엽보를 펼쳤다.
한발 물러서며 가까스로 주먹을 피해내었다. 후욱, 권풍에 말려든 이벽의 앞섶이 찢어졌다.
우우웅.
그리고 다음 순간, 이벽의 내력은 청강유엽공에서 만월무변심공으로 경로를 틀었다.
직검은 가로막힐 공산이 크다. 고로.
팔절구궁필법(八節九宮筆法).
삭월(朔月).
이벽의 검이 사라졌다.
스스로의 그림자 안에 스며든 검이 이리저리 휘어지며 주먹을 피했고, 발을 피했다.
마침내 무릎마저 피했다.
그렇게 검끝의 일점과 시신의 얼굴 사이를 가로막는 것은 더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우우웅.
그리고 검이 청아한 빛을 내었다.
초승달의 빛을 닮은 강기가 시신의 눈으로 쏟아지려던 바로 그때였다.
터엉.
“…어?”
다음 순간, 이벽의 몸이 옆으로 튕겨 나갔다. 회심의 일격이 어처구니없이 빗나갔다.
뿐만이 아니다.
집중이 흐트러지자 목천의 영역이 사그라들었고, 이내 시간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털썩.
밀려난 이벽이 땅에 쓰러졌다.
격한 현기증 속에서 입을 열었다.
“…대체 왜?”
말할 것도 없지만, 느닷없이 측면을 가격당할 거라곤 전혀 생각조차 못 했다.
이 땅굴 안에 현재 ‘살아있는’ 모든 이들은 자신의 동료들 뿐이기 때문이다.
허나 동료에게 공격을 당했다.
이벽은 할 말을 잃은 채, 조금 전까지 자신이 서 있던 자리에 서 있는 이를 바라보았다.
언미희였다.
허나 이벽을 어깨로 밀쳐낸 그녀는… 이벽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그녀의 눈은 시신에 꽂혀있다.
일순간 움직임이 굳은 시신을 바라보는 언미희의 눈이 격랑처럼 흔들렸다.
“…….”
문득 이벽의 머릿속에 무서운 생각이 스쳤다. 시신의 동작들이 자신에게 익숙하게 느껴지던 이유는 어쩌면.
“아, 아아, 아…….”
언미희가 입을 열었다.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