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114)
117화. 죽은 자의 습격 (3)
“아, 아버지… 맞죠?”
언미희가 말했다.
권갑에 쌓인 손끝을 뻗었다.
허나 그 손은 권법가의 강맹한 손이 아니었다. 그저 무방비하게 뻗어진 가냘픈 손일 뿐이다.
“맞죠, 맞잖아요? 아버지가 아니면 대체 당금의 천하에서 누가 언가권을 그렇게까지 쓸 수 있겠냐구요……?”
“…….”
목소리 끝이 떨리고 있다.
그것은 이벽을 포함한 비룡대 일행들에게 있어 여태껏 들어보지 못한 언미희의 목소리였다.
때문에 이 순간, 그녀를 제외한 어느 누구도 말을 꺼내지 못했다.
저벅.
언미희가 한 걸음 다가섰다.
“아버지, 뭐 하는 거예요, 이게…. 대체 어디 있던 거예요? 꼴은 왜 이래요? 왜 괴물이 됐어, 누가 이랬어……?”
스윽.
시신이 마침내 다시 움직였다.
“소저, 위험—!”
그 순간 이벽은 직감했다.
재빨리 박차고 일어서려 했다.
비틀.
허나 그 순간, 몸이 흔들렸다.
그것은 어처구니없는 실수였다.
심력은 생각보다도 더 많이 소모되었고, 목천의 영역에서 강제로 풀려난 순간의 현기증이 채 사그라들지 않았다.
퍼어엉—!!
다음 순간, 시신의 주먹이 붉은 궤적을 그었다.
휙, 터엉.
“아야야…….”
허나 언미희는 그곳에 없었다.
찰나의 순간, 언미희를 낚아챈 공손수가 저만치에서 언미희를 안은 채 땅을 뒹굴고 있었다.
탓.
한 번의 동작으로 튕기듯 일어선 공손수가 이벽을 향했다. 씩,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점혈했어요, 일단.”
“…….”
말마따나 언미희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수혈을 짚이며 잠에 빠져든 모양이었다.
물론, 언미희의 심신이 정상이었다면 공손수에게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터이다.
“상황이 많이 황당하게 됐지만… 좌우간 지금 이 순간 언니가 깨어있으면 엄청나게 골치 아플 것 같아서—”
그때 공손수가 ‘옅어졌다’.
이내 잔상이 되어 흩어진다.
“—요!”
툭, 투둑.
다음 순간, 암기 몇 자루가 시신의 몸을 두드렸다.
순식간에 거리를 점한 공손수가 시신의 머리 위를 제비처럼 스쳐 지나갔다.
“미친, 암기가 박히지도 않아…? 실화야? 이게 어떻게 사람 몸이야?”
훅, 훅.
공손수는 계속해서 움직였다.
주변을 맴돌며 암기를 날렸다.
단 하나도 틀어박히지는 않았으나, 그 끝이 집요하게 눈을 노리자 시신이 이내 손등으로 얼굴을 가렸다.
후욱.
붉은 안광이 공손수를 뒤따른다.
“공손수, 위험하다, 물러서라.”
이벽은 다시 일어서려 했다.
“아뇨. 시간 좀 벌 테니 오라버니야말로 잠깐 숨이라도 돌려요. 가만히 있어도 내력이 금방 찬다면서요?”
“아니, 그럴 필요는—”
“객기 부리지 말구요. 그 정도는 할 수 있어요. 오라버니가 유일한 희망인데, 그 상태로 계속 싸워봤자 이기기는 어렵잖아요?”
“…….”
그것은 조금 전 이벽이 철면개에게 한 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흐읍.”
공손수가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탓, 타앗, 탓!
공손수의 몸이 튕겼다.
땅과 벽면, 천장을 가리지 않은 채 이곳에서 저곳으로 종횡무진 ‘쏘아지기’를 반복한다.
‘…놀랍군.’
본래부터 경공에 있어서만큼은 비룡대원들 중에서도 가장 우위에 있던 그녀였다.
이제는 따라잡기는커녕 그녀가 마음먹고 도주를 결심한다면 제압하는 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후우웅!
“으아아, 위험~”
그때 시신이 주먹을 휘둘렀다.
공손수의 몸이 아슬아슬하게 권풍을 스치고 지나갔다.
사실상 공격수단이 전무하므로, 잡힐 듯 말 듯 시신의 주위에 머무르며 일부러 시선을 끄는 듯했다.
“…….”
목숨을 건 곡예.
불안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공손수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지금의 상태로 다시 한번 목천의 영역에 접어드는 것은 퍽 무모한 짓이다.
강기의 운용마저 겸해야 함을 생각한다면, 일검조차 제대로 펼치기 어려울 것이다.
‘믿고 의지한다.’
이벽은 무인이자 동료인 공손수의 판단을 믿기로 했다.
우우웅.
이벽은 상념을 지웠다.
선천의 힘의 흐름에 집중했다.
소모된 심력을 순식간에 회복하는 방법 같은 건 없지만, 이내 과열된 상단전이 서서히 식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필요한 것은 단 일검.
놓쳐버린 기회를 만회할 여력이 필요하다.
투두둑!
탓, 타앗.
호흡을 고르기 시작하는 이벽을 일견하며 공손수는 발놀림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투두둑.
암기를 던져 빈틈을 유도한다.
후웅, 후우웅!
한 대만 맞아도 뼈와 살을 곤죽으로 만들어버릴 강기의 주먹들이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이상하게도 두렵지는 않았다.
속도에 대한 자신감. 그리고.
“…후, 그래요. 그렇긴 하네요.”
공손수는 쓴웃음을 지었다.
언미희는… ‘아버지’라고 말했다.
사실 여부는 둘째치고 확실히 이 괴물의 움직임은 언미희의 그것을 빼다 박은 듯 닮아있었다.
그간 언미희와의 수많은 비무 경험이 아니었다면, 이처럼 시간을 끄는 건 쉽지 않았을 터이다.
문득 심경이 복잡해졌다.
털끝만큼의 차이로 목숨이 날아갈 수도 있는 위험한 순간임에도, 난처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후웅!
또다시 주먹을 피했다.
역시 눈에 익은 동작이었다.
‘…언니.’
문득 공손수의 시선이 쓰러진 언미희를 향했다. 아주 찰나의 순간, 시신의 움직임을 방치했다.
감히 방심을 했다.
후우욱.
“…어라?”
다음 순간, 발이 날아들었다.
피했다고 생각한 주먹은 어느새 땅을 짚고 있었으며, 거꾸로 선 시신이 그대로 도끼를 내려찍듯 다리를 휘두른다.
짓밟힌다.
“주, 죽는—”
카아앙!
“끼에에에에에엑—!!”
그 순간 시신의 몸이 튕겨 나갔다.
발길질이 아슬아슬하게 공손수를 짓밟으려던 순간, 괴성과 함께 날아든 파진성의 검이 그물을 그린 것이다.
청해십이검의 파랑격쇄 역시 시신의 피부를 뚫지는 못했으나 그 몸을 밀쳐내는 데에는 성공했다.
챙, 채앵, 카앙!
“죽어, 죽어, 죽어어어!!”
거꾸로 선 상태에서 공격을 받은 시신의 자세가 무너졌다. 그 위로 해남의 검이 무자비하게 몰아쳤다.
비틀, 괴인의 몸이 흔들렸다.
허나 일어설 기회를 주어선 안 된다. 파진성은 이를 악물고 검을 휘둘렀다.
“케헤, 상처도 안 나네. 왜 때리는 내 손이 더 아프—!”
덥석.
“…….”
칼끝이 주먹에 붙잡혔다.
그리고 시신이 파진성을 향하며 튕기듯 일어서는 순간이었다. 이번에는 반대로 파진성의 신형이 훅 아래로 꺼졌다.
털썩, 버둥버둥!
망설임 없이 검을 놔버린 파진성이 사정없이 땅을 뒹굴었다.
나려타곤(懶驢打滾).
이 순간, 게으른 당나귀가 땅을 구르듯 몸부림치는 금단의 생존절기가 파진성에게서 펼쳐졌다.
콰앙, 콰아앙!
“케헥, 케헤헥!”
적절한 판단이었다.
시신의 진각이 땅을 짓밟았으나 번번이 빗나갔다. 그 틈을 타 파진성은 힘껏 땅을 밀쳐내며 거리를 벌렸다.
그 또한 언미희와의 비무 경험을 토대로 발의 움직임을 예측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탓!
허나 그때 시신이 땅을 박찼다.
파진성의 검을 내팽개치고는 놓치지 않겠다는 듯 파진성의 뒤를 따라붙는다.
“으아아악!! 살려—”
콰아앙—!!
시신의 고개가 푹 꺾어지며 재차 바닥에 처박혔다. 철면개의 몽둥이가 관자놀이를 후려친 것이다.
“덤벼라, 이 망할… 우웁!”
허나 철면개의 상태는 과히 좋지 않아 보였다. 중상을 입은 상태에서 일격을 펼친 것만으로 무리인 듯했다.
후두둑!
“물러서요, 걸개! 어서요!”
다시 공손수의 암기가 쏟아졌다.
철면개가 그 즉시 취팔선보를 밟으며 물러서려 했다. 허나 기혈이 꼬였고, 보법은 일순 휘청였다.
후욱.
시신의 손이 뻗어졌다.
“크윽……!”
철면개를 이를 악물었다.
충격에 대비하여 다시금 몽둥이를 내뻗었으나 강기는 맺히지 못했다.
허나 그때, 주먹과 몽둥이 사이로 검 한 자루가 소리 없이 끼어들었다.
능유제강(能柔制江).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제압한다. 태극을 그리는 송영영의 검 끝에 한순간 희미한 빛이 스쳤다.
후우욱.
시신의 주먹에 맺힌 붉은 강기가 흐트러졌다. 기세를 잃은 주먹이 가랑잎처럼 옆으로 비껴나갔다.
“이, 이럴 수가, 소저……?”
철면개의 눈이 치켜 떠졌다.
돌이켜보면 한 번도 송영영이 전력을 다하는 것을 본 적은 없었다.
그간의 경험을 통해 분명 여타의 오룡삼봉들보다는 한 수 위에 있다는 것쯤은 짐작하고 있었으나 설마 이미—
“…….”
휘청.
그때 송영영의 몸이 옆으로 기울어졌다. 철면개가 얼른 그 몸을 받아들었다.
주륵.
그녀의 입가에서 피가 흘렀다.
주르르륵.
허나 시작일 뿐이었다.
이내 코에서도 마구잡이로 피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무리한 기의 운용으로 인한 출혈이었다.
“…아파.”
송영영이 말했다.
“장문인 보고 싶다…….”
후욱, 콰아앙!
그때, 시신의 진각이 뻗어졌다.
송영영을 안아 든 철면개가 황급히 자리에서 물러섰다.
후두둑, 후욱!
그리고 공손수가 다시 나섰다.
시신의 주위를 맴돌며 시선을 끌었다. 허나 그녀 역시 이내 호흡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쳇.”
공손수가 혀를 찼다.
자신만만했던 속도도, 소환단의 내력도 절정조차 웃도는 괴물을 상대로는 금세 한계를 드러낸다.
이내 눈에 띄게 속도가 떨어졌다. 그녀의 모습은 금방이라도 붙잡힐 듯 위태로워졌다.
* * *
“…….”
저벅.
이벽이 다시 일어섰다.
탓, 콰아앙—!!
그 즉시 시신의 등을 두드렸다. 공손수를 향해 주먹을 뻗던 시신이 두어 걸음 밀려났다.
“오, 오라버니, 벌써요? 허억, 아직은 할만한데요. 조금 더—”
“…아니, 덕분에 충분히 쉬었다.”
이벽은 검을 부여잡았다.
사실은 전혀 충분하지 않았다.
상황은 거의 변한 게 없다. 내력은 그럭저럭 회복되었으나, 심력이란 건 애당초 단기간에 회복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다만.
쾅, 콰앙, 콰앙—!!
이벽은 다시금 시신과 얽혀들었다. 일검 일검, 아낌없이 내력을 쏟아부었다.
의식을 잃어버리면 끝.
그렇기 때문에 더 이상은 목천의 힘을 쓸 여력이 없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아니, 오늘만의 일은 아니었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줄곧 일행을 ‘지켜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문득 생각이 바뀌었다.
목숨을 걸고서 엉망으로 시간을 버는 일행들의 모습은… 이벽의 마음에 묘한 안정감을 가져다주었다.
언미희의 돌발행동에서 흐트러짐이 비롯되었듯, 동료들의 싸움은 그 흐트러짐을 가라앉혔다.
설령 의식을 잃는다 해도.
할 수 있는 최선의 검을 펼친다면, 나머지는 일행들이 어떻게든 해주리라는 그런 믿음이 생겼다.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관계.
그 믿음에 근거가 있건 없건, 단지 그러한 누군가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곧 ‘마음의 힘’이 된다.
콰앙, 콰아앙!!
시신은 조금 전보다도 더 강해졌고, 더 빨라졌다. 허초를 드러내는 것도 더 이상은 통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버틸 뿐이다.’
이벽의 눈이 가라앉았다.
상대에게 적응하는 것은 시신뿐만이 아니다. 이벽 역시 그 움직임이 서서히 눈에 들어왔다.
언미희의 움직임을 기반으로 초식의 흐름을 이해한다. 이벽은 서서히 무아지경에 빠져들었다.
상대는 청강검식을 모르지만, 자신은 상대의 무공을 잘 알고 있다. 이벽은 초조함을 버렸다.
콰앙, 콰아앙!!
“케헤, 진짜 말도 안 나오네. 저딴 거랑 정면승부를 한다고? 대체 우리 대주님은 얼마만큼 괴물인 거야?”
“아뇨, 제 생각엔 처음 만났을 땐 저 정도는 아니었는데… 점점 더 세지고 있는 것 같아요.”
“케헤, 재능 차이 너무하네. 하지만 질 수 없지. 이봐 대주! 또 쉬고 싶으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해남의 별이 교체해줄게!”
피식, 이벽은 웃었다.
강기와 강기의 충돌은 그 자체만으로 충격을 남긴다. 두 팔에는 서서히 감각이 없어지는 것만 같다.
허나 일행의 실없는 목소리는 다시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다. 어째서인지 질 것 같지가 않다.
조금만 더 버티면 분명—
콰아앙—!!
허나 그때였다.
시신이 멀찍이 튕겨 나갔다.
흠칫, 이벽은 조금 당황했다.
충분히 버틸 수 있는 충격이었음에도 마치 일부러 거리를 벌린 듯한 기색이었기 때문이다.
쾅, 쾅, 콰앙—!!!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시신이 발광하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
벽을 두드리고, 땅을 구른다.
강기가 서린 팔다리가 사방에 틀어박히자 삽시간에 공간 전체가 흔들리며 굉음이 일기 시작한다.
“뭐야 저거 갑자기?”
“…글쎄요, 제 생각에는 슬슬 기세에서 밀리니까 아예 공간째로 묻어버리려는 거 아닐까요?”
파진성과 공손수가 말했다.
“그럼 안 되는 거 아니오?”
그리고 철면개가 말을 이었다.
“그러게요. 어쩌지…? 생각해 보니 아까 다른 출구를 찾아보자고 해놓고 우리 뭐 했죠?”
“…그래도 한 번씩은 싸웠잖아.”
송영영이 답했다.
일행들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쩌저저적.
사방의 벽이 금이 가기 시작한 순간 타앗, 일행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사방으로 산개했다.
“으아아아!! 빨리… 찾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