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164)
169화. 완패
만천화우를 파훼했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무수한 암기들은 이벽을 추월했고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다시 이벽을 포위했다.
“…….”
마침내 이벽은 도주를 포기했다.
자신의 생살여탈권은 상대에게 있다. 아니, 어쩌면 본래부터 알고 있었던 사실을 재확인한 것에 불과하다.
그저… 어차피 죽일 마음이었다면 무슨 짓을 한다 해도 죽은 목숨이므로, 할 수 있는 한의 몸부림을 쳐본 것이다.
“…왜 죽이지 않소?”
마침내 이벽이 말했다.
당평세가 다시 수염을 쓸었다.
“허헛, 그게 무슨 소린가? 어째서 내가 자네를 죽일 거라 생각하는 거지?”
“황보혁은 나를 죽이겠다고 했소. 당신은 황보혁의 명령을 따른다면 당연한 판단이 아니오?”
훅.
그 순간 당평세의 눈빛이 번뜩였다. 그리고 이벽을 둘러싼 암기들이 바짝 조여들었다.
“…….”
움직이면 반드시 찔린다.
옴짝달싹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소협, 말을 할 때에는 우선 상대와 자신의 입장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생각을 하고 입을 열게나.”
“…….”
“내 자네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네. 실상 많은 이들이 입이 화근이 되어 가진바 재능을 펼치지도 못하고 유명을 달리하곤 하니 말일세.”
당평세가 뒷짐을 졌다.
여유로운 걸음걸이로 이벽에게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또한 거듭 얘기하네만, 나는 내 뜻으로 여기에 온 거지, 딱히 누구의 명령에 따르는 것은 아닐세.”
훅.
당평세가 소매를 휘둘렀다.
후두두둑.
그 순간, 이벽을 둘러싸고 있던 무수한 암기들이 일제히 땅에 떨어졌다.
“그 증거라고 하긴 이상하지만, 내 자네를 죽이지 않겠네. 그러니 순순히 검을 거두고 이리 오시게.”
“…….”
이벽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말인즉슨 지금 말고 나중에 황보혁의 손에 의해 맞아 죽으란 말과 뭐가 다르오?”
“허헛, 내 설마 그런 뜻으로 얘기를 꺼냈겠나? 죽이지 않는다는 건, 살길을 열어주겠단 뜻이네.”
“……!”
“그래, 맹주께선 자네란 핏줄을 손에 넣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없애버릴 생각이신가 보네.”
당평세가 미소를 지었다.
달빛 아래에 선 노인의 흰 머리와 수염, 그리고 백의가 자르르 빛을 내었다.
“하지만 나는 자네가 죽는 걸 원치 않네. 때문에 내 천릿길을 마다하지 않고 예까지 온 것일세.”
“…….”
말인즉슨, 살려주기 위해 왔다.
허나 이벽은 그 말의 진의 여부에 대해 선뜻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돌이켜보면, 처음 마주친 순간부터 자신을 바라보던 당평세의 눈빛은 퍽 복잡한 감정을 띠고 있었다.
허나 분명 ‘호의’의 일종이었다.
“…내가 그 말을 어찌 믿소?”
“믿지 않으면? 이 상황에서 자네에게 다른 방법이라도 있나?”
“…….”
그 역시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문득 당평세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참으로 어렵네. 물론 어제오늘 일은 아니네만, 이 무림에선 죽이는 것보다 죽이지 않는 것이 훨씬 어려운 일이지.”
“……!”
그것은… 언제였던가 이벽이 품었던 생각이었다. 아니, ‘언제’가 아니다. 다름 아닌 당가의 무인들을 상대했던 바로 그때였다.
“허나 그럼에도 자네는 내 조카와 손녀딸을 한 번 살려주었지. 그렇지 않나?”
노인이 다시 웃었다.
“만일 그 아이들이 목숨을 잃었거나 혹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상처를 입었다면… 물론 우리가 이렇게 얼굴을 마주하고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는 못했겠지.”
“…….”
일수멸혼 당청.
잠영난봉 당려옥.
이벽은 두 사람을 생각했다.
생살여탈의 순간, 이벽은 두 사람을 비롯한 당가의 무인들을 해치지 않았고 무사히 치료를 받게 한 뒤 돌려보냈다.
“손녀딸이 말하길, 자네더러 ‘사마외도의 협객’이라더군.”
“…….”
“까탈스러운 아이인데… 자네가 꽤 맘에 든 모양일세. 무림의 일이란 참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지. 그렇지 않은가? 허헛!”
노인이 소탈한 목소리를 내었다. 이벽의 마음에 약간의 동요가 일기 시작하던 그때였다.
푸욱.
“……!”
종아리에 고통이 스쳤다.
땅에 떨어진 무수한 암기들 중 하나가 다리에 파고든 것을 확인했다.
“컥.”
그리고 독이 스며들었다.
털썩, 이벽은 무릎을 꿇었다.
다리에서부터 시작해 일순 몸이 돌덩이처럼 무거워졌다. 끈적한 독이 혈관을 타고 몸 안을 파고든다.
우우웅.
그때, 선천의 힘이 일었다.
당연하다는 듯 독을 몰아내었다.
“허억, 쿨럭!”
이벽은 피를 토했다.
썩은 피가 입밖으로 터져 나왔다.
“호오, 나의 내독을 버티는가?”
“…하는 말과 행동이 다른 건 당신네들 당가의 집안 내력이오?”
노인이 두 손을 들어 올렸다.
“뭘, 그냥 재우려 했을 뿐이네. 그렇다고 이대로 자네를 풀어줘 버리면 결국 자네는 맹주에게 붙잡혀 죽게 될 테니 말일세.”
“…….”
“또한 조카가 그러더군. 내독이고 외독이고 자네의 몸에 독이 전혀 통하지 않아 마치 만독불침과 같았다고 말이네.”
노인의 미소는 여전히 인자했다.
허나… 그의 별호는 독왕이었다.
“허헛, 흥미롭군 그래. 어떻게 그런 몸을 손에 넣었나? 어지간한 무인이라도 즉시 중태에 빠지는 게 정상인데 말일세.”
훅, 퍼벅.
다음 순간, 두 자루의 침이 동시에 이벽의 몸에 꽂혀 들었다. 피하고 자시고의 찰나조차 없었다.
우우웅.
다시 선천의 힘이 일었다. 허나.
후욱.
두 개의 침을 타고 파고든 서로 다른 종류의 독이 이벽의 몸 안에서 마주친 순간, 폭발적으로 터져나갔다.
퍼어엉.
독성이 서로 만나 ‘증폭’되었다.
파도처럼 이벽의 몸을 휩쓸었다.
“커헉!”
찰나의 순간 의식이 끊겼다.
풀썩, 이벽은 주저앉았다. 허나 다음 순간, 시커멓게 물든 시야가 다시 돌아왔다.
우우웅.
선천의 힘이 전에 없이 빠르게 움직였다. 밀려드는 독기를 태우고 몰아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쉽지 않은 듯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독공의 고수의 내력은 그 자체로 독성을 품게 되며, 경지가 위로 올라갈수록 그 정도는 강해지고 마침내 내력과 독은 같은 의미가 된다.
하물며.
독공에 있어 천하제일이라 할 수 있는 독왕의 내독이다. 당장에 숨이 끊어지지 않는 것만으로 대단한 것이다.
비틀.
그때, 이벽의 몸이 흔들리며 다시 두 발로 일어서기 시작했다. 움찔, 당평세의 허연 눈썹이 흔들렸다.
“…과연. ‘유사 만독불침’이라. 이래서야 우리 아이들이 손도 발도 못 쓸 만도 하구만.”
푸욱.
“커헉!”
세 자루째의 독침이 파고들었다.
주춤하던 독기가 다시 폭발적으로 퍼져나가고, 선천의 힘이 기세에서 밀려났다.
“자네, 대단한 거 잘 알겠네. 허나 나로서도 슬슬 숨이 끊어질까 걱정이 되니 버티지 말고 그냥 잠들게.”
털썩.
이벽은 무릎을 꿇었다.
완벽한 무력감을 느꼈다.
어떻게든 이겨내려고 할 때마다 몸에 틀어박히는 독침의 개수가 늘어난다. 선천의 힘이 지닌 해독력조차 한계는 있었다.
과거 당청을 상대할 때처럼, 선천의 힘을 찢어 해독과 내력 운용을 동시에 하는 것은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내력을 찢는 그 찰나의 순간.
몸 안에 숨어든 독사의 어금니가 자신의 숨통을 끊어버릴 것이라는 확신이 스쳤기 때문이다.
“…….”
무엇보다도.
마침내 이벽은 정말로 독왕에게 ‘죽일 생각이 없음’을 이해했다. 독의 강도는 ‘의식을 잃되 죽지는 않게끔’ 섬세하게 조절되고 있었다.
그것은… 백 마디의 말보다도 더 큰 설득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내 서서히 의식이 흐려지고 손발이 감각이 희미해졌다.
“그래, 편히 잠들게나. 다시 깨어나고 나면 말끔할 테니 아무 걱정도 하지 말게.”
“…….”
이벽의 두 손이 땅을 짚었다.
그대로 쓰러지려던 찰나였다.
“독왕, 왜 장난을 치고 있나?”
문득 누군가가 말했다.
낯익은 목소리였고, 이벽은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독왕의 것이 아닌 두 발을 확인했다.
그것은 취풍신개의 헤어지고 뜯어진 신발이 아니었다. 이벽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두 발의 주인을 확인했다.
“…….”
권왕 황보혁.
의혈맹주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말끔하던 몰골은 퍽 헝클어져 있었고, 일그러진 미간은 어딘가가 꽤 불편한 듯했다.
허나.
취풍신개가 아닌, 권왕이 왔다.
실낱같은 의식 속에서 이벽은 그 의미를 생각했다.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 걸개는……?”
이벽은 입을 열었다.
목구멍을 불로 지지는 듯한 고통과 함께 쇳소리 같은 목소리가 새어나갔다.
“그게 왜 궁금하지?”
툭, 권왕이 무언가를 내던졌다.
데구르르, 물건이 땅을 굴렀다. 이벽의 눈이 빠르게 쫓았다. 그것은… 부러진 뼈 몽둥이의 일부분이었다.
“놈의 최후가 어땠는지는 이제 곧 네가 직접 만나서 물어보면 되지 않나?”
“……!”
—알겠나? 여차하면 바로 뒤돌아서서 튀게.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말일세.
울컥.
이벽은 분노했다.
감정은 벼락과 같았다.
그 즉시 이벽은 적파심공을 끌어올렸다. 아니, 끌어올린 것이 아니라 내력이 스스로 일어났다.
“쿨럭!”
피를 토했다.
멋대로 해독을 멈추고 내력을 운용하자 독이 몸 안을 갉아먹기 시작한 것이다. 허나.
치이이.
이벽의 피부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혈기가 들끓으며 독을 불태운다.
스윽, 이벽은 일어섰다.
두 발로 서서 권왕을 마주했다.
“…….”
말없이 맹수를 바라보았다.
그럴 리 없다. 그런 일이 있을 수는 없다며, 따져 묻고 싶었다. 허나… 그 냉막한 얼굴에서는 어떠한 반론의 여지조차 없었다.
울컥.
다시 한번 감정이 치솟았다.
제갈소미는 목숨을 최우선으로 하라며 신신당부했었다. 허나 어차피 이제 살길은 없다.
“으… 으아아아아—!!”
가슴이 터져나갈 것 같은 순간, 이벽은 입을 열었다. 기함과 함께 타앗, 땅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후우욱.
이벽의 몸이 쏜살처럼 움직였다.
그리고 허공을 가르는 이벽의 검 위로 핏빛과 같은 불온한 강기가 선명하게 피어올랐다.
목천의 힘을 펼칠 여력따윈 없었고, 그럴 이유도 없다. 상대를 해치지 않는 화영검무 따윈 아무짝에 쓸모없다.
목표는 단 하나.
황보혁의 목을 친다.
“…흥.”
그 순간, 권왕의 오른쪽 어깨가 뒤로 뻗어졌다. 그리고 천하제일이라 일컬어지는 주먹이 이벽에게로 쇄도했다.
그리 빠르지는 않았다. 허나.
퍼어어엉—!!
그리고 검과 주먹이 부딪혔다.
채앵.
그 즉시 이벽의 강기가 산산조각 났다. 그리고 파편이 된 조각들이 황보혁에게로 파고들려던 찰나.
채앵, 채앵, 채앵.
또다시 으깨졌다.
그리고 또 으깨졌다.
단 일 권에 강기들은 무수히 작은 파편으로 으깨어지기를 반복했고, 이내 가루가 되고 연기가 되어 허공으로 흩어졌다.
완벽하게 무산되었다.
터어엉.
그리고 이벽의 몸이 튕겨 나갔다.
“커헉!”
이벽은 피를 토했다.
툭, 검을 손에서 놓치고 말았다. 독과 내상, 그리고 누적된 육체의 한계 속에서 이벽은 마침내 일어날 수 없음을 직감했다.
저벅저벅.
“부러지지 않나. 좋은 검이군.”
그리고 마지막 의식 속에서 황보혁이 다가오는 기척을 느꼈다. 쓰러진 이벽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밤하늘은 무심하다.
그리고… 시야가 가려졌다. 자신의 얼굴 위로 들어 올려진 황보혁의 발바닥이 밤하늘을 가렸다.
“허나 내게는 필요 없다. 검치의 핏줄은 아깝다만 우수한 핏줄도 좋은 검도 이미 차고 넘친다. 그럼 죽어라.”
“…….”
이벽은 눈을 감았다.
쿠우웅, 진각이 내리찍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