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163)
168화. 월야의 만천
쿠우우웅.
충격파가 일었다.
취풍신개와 황보혁.
극한으로 응축된 무리와 무리가 부딪힌 순간, 이벽은 지축이 흔들리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우직, 우지직, 콰앙—!!
정자의 기둥 하나가 부러졌다.
허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이내 정자 전체가 흡사 태풍에 휩쓸리듯 우르르 무너지기 시작했다.
타앗.
그 순간 이벽은 몸을 던졌다.
정자 바깥을 향해 뛰쳐나갔다.
오는 내내 취풍신개가 신신당부했던 것처럼, 미련 없이 도주를 선택했다.
재해와 재해의 충돌.
하늘로 나아가기 시작한 무의 충돌 앞에서 자신은 여전히 한낱 땅에 붙어있는 인간에 불과했다.
쿠웅, 쿠우우웅.
‘…격이 다르다.’
소림에서 목도 했었던 취풍신개와 북두천존의 충돌이 떠올랐다. 그리 ‘아득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허나 그것은… 이제 와 돌이켜보면 충돌이 아닌 그저 친우 간의 ‘투닥거림’에 불과했던 것이다.
타앙.
어찌 되었건 이벽은 장내를 벗어나려 했다. 허나 그때, 당연하다는 듯 인영이 앞을 가로막았다.
슥, 당평세가 수염을 쓸었다.
“허헛. 현명한 판단이네만, 내가 온 이상 그리 보내줄 수는 없—”
퍼억.
허나 그 순간, 당평세의 신형이 흔들렸다. 이기어뼈가 당평세의 옆구리를 두드린 것이다.
‘…걸개.’
타앗.
이벽은 그 즉시 땅을 박찼다.
두 사람의 천하십대고수를 상대로 취풍신개가 무얼 어떻게 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허나 줄 수 있는 도움은 없다.
그나마 가능한 멀리 도망침으로써 짐이 되지 않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 될 것이다.
우우웅.
이벽은 선천의 힘을 찢었다.
목천의 영역에 접어든 뒤 그 즉시 용천혈의 내력을 비웠다.
타앙, 쐐애액.
쾌보를 밟았다.
이벽이 쏜살처럼 튕겨 나갔다.
일직선으로 쏘아지되, 나무 따위의 방해물에 가로막힐 때마다 몸의 방향이 아주 조금씩 틀어지며 충돌을 피했다.
청강유엽신법의 힘이었다.
타앙, 탕, 타앙.
쾌보, 그리고 다시 쾌보.
이벽은 쾌보를 연달아 사용했다.
그 모습은 질풍과 같아 마치 땅을 멋대로 줄이고 늘이는 듯하던 취풍신개의 걸음을 닮아있었다.
쐐액, 쐐애액.
삽시간에 풍경이 달라졌다.
산에서 벗어나고, 숲을 벗어났다.
우웅.
“…….”
몇 발자국 정도를 나아갔을까.
마침내 이벽은 현기증을 느꼈다.
한계를 느낀 순간, 상단전에서 선천의 힘을 거둬들였다. 목천의 영역에서 벗어난다.
뒤를 돌아보자 어느새 산은 저만치의 작은 점으로 보일 만큼 멀어져 있었다. 허나.
쿠우웅.
“…….”
충돌의 여파는 흡사 벼락처럼 공기를 뒤흔들며 아직까지도 생생히 전해져왔다. 이벽은 경외감을 느꼈다.
‘…아니, 안심할 때가 아니다.’
어느 정도 거리가 벌어졌다곤 해도 상대는 천하의 모래알 같은 무인들 중에서도 열 손가락에 드는 존재들이다.
추적하려고 마음먹으면, 이 정도의 거리는 아무것도 아닌 게 될 것이다.
이벽은 이를 악물었다.
다시 전방을 향해 발을 뻗었다.
타다닷.
청강유엽신법이 펼쳐졌다.
동시에 발은 연엽보를 밟았다.
목천의 힘이나 쾌보를 사용할 수는 없다 해도, 경신법과 보법의 조화는 기예의 영역이 아니다.
이벽은 쾌의 묘리를 담아 발을 놀렸고, 다시 멈춰선 자리에서 쾌속하게 멀어지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야 하지?’
한편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어떻게든 충돌의 현장을 벗어났으나… 어디로 향해야 할지는 선뜻 생각을 정할 수 없었다.
우선은 개방의 본단을 생각했다.
허나… 개방으로 간들 취풍신개와 황보혁, 당평세의 싸움에 끼어들 수 있는 이가 있으리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같은 천하십대고수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북두천존.’
소림 방장, 천하십대고수.
그리고 개방의 오래된 우군.
타앗.
이벽은 그 즉시 남서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소림이 자리한 하남을 향해 발을 뻗었다. 그리고.
타다닷.
산과 들과 물을 건넜다.
마을과 도시를 그대로 스쳐 지났고, 성벽을 무시하며 달렸다. 이내 서산으로 해가 저물었으나 이벽은 멈추지 않았다.
몇 시진을 더 달렸을까.
온 천하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정확한 시각을 알 수는 없었으나, 어느덧 자정을 지나 더 이상은 밤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새벽이 되었다.
툭, 털썩.
이벽의 발이 꼬였다.
그리고 몸이 땅을 뒹굴었다.
“…….”
또다시 육체의 한계가 찾아왔다.
숨은 가쁘고 심장은 터질 듯이 요동쳤다. 이벽은 심(心)에 따라가지 못하는 육신이 원망스러웠다.
취풍신개는… 어쩌면 이미 도망쳐서 빠져나갔을 수도 있다.
자신이란 짐이 없는 이상, 돌아서서 달아나는 것 정도는 그에게 어렵지 않은 일일지도 모른다. 허나.
물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하아.”
모두가 의미 없는 생각이었다.
그들이 다다른 경지를 가늠조차 하지 못하는 이상, 싸움은 이미 이벽의 예측의 영역이 아니었다.
이벽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는 달과 별들이 무심히 빛나고 있다.
하남은 멀다.
단숨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는 아니다. 괜찮건 괜찮지 않건… 잠깐 정도는 쉬어가는 수밖에 없다.
이벽은 드러누운 채 한동안 숨을 골랐다. 불을 피울까 싶었으나, 장작을 모을 기력조차 나지 않았다.
찌르르르.
주변은 또다시 이름 모를 숲속이었다. 어둠 속에서 짐승과 벌레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꼬르륵.
배꼽의 울음소리도 들렸다.
“…먹어둘 걸 그랬군.”
이벽은 쓰게 웃었다.
황보혁과 만나기 전, 마지막으로 들린 마을에서 취풍신개가 권했던 동냥밥을 생각했다.
과연, 취풍신개는 거지였다.
혈교의 흔적이 곳곳에서 나타나는 와중에도, 천하십대고수라 일컬어지는 이들 중 어느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각자의 위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오직 거지의 취풍신개만이 개방을 움직였고, 자신에게 부탁을 해왔으며, 의혈맹이 뒤를 물고 늘어지자 직접 나서기까지 했다.
“…….”
일방적으로 은을 입었다고 말하기에는 관계는 퍽 복잡했다. 허나 인연임에는 틀림없다.
건방진 생각일지라도.
‘…구해야 한다.’
이벽은 기운을 냈다.
어떻게든 몸을 일으키려—
“……!”
허나 그 순간.
몸이 움츠러들었다.
다시, 기세에 짓눌린 것이다.
짐승도, 벌레도 숨을 죽였다.
이벽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이내 저만치의 나뭇가지 위에 선 인영을 발견했다. 뒷짐을 진 채 하늘의 달을 향하고 있었다.
“달이 밝구만. 그렇지 않나?”
“…….”
* * *
목소리는 귀에 익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인영이 가지 위에서 뛰어내렸다. 가지는 흔들리지 않았고 소리는 없었다.
그리고 달빛 속에서 희게 센 머리와 수염이 실처럼 흔들렸다. 독왕 당평세였다.
“소협께는 감탄하게 되는군. 과연 그분의 핏줄이라고 할까, 천리향을 묻혀두지 않았다면 하마터면 정말로 놓칠 뻔했다네.”
당평세가 수염을 쓸었다.
취풍신개의 이기어뼈에 밀려나던 찰나의 순간, 이벽의 몸에는 이미 모종의 향이 발라져 있었던 모양이었다.
“…….”
최선을 다해 도망쳤다.
그럼에도 따라잡히고 말았다.
몸을 짓이기는 듯한 기세와 함께 절망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상대는… 싸움의 상대가 아니다. 허나.
마냥 짓눌려 있을 수도 없다.
이벽은 청강유엽공을 일으켰다.
턱, 무릎을 짚고 비틀대며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두 발로 서서 상대를 마주했다.
“청강유엽공…….”
문득 당평세가 침음했다.
퍽 복잡한 표정으로 이벽을 바라보았다.
“…소협에게 일어난 일들은 내 진심으로 유감으로 생각하네. 요사이 선우세가에서 ‘그런 일들’이 생겼을 줄은 미처 몰랐어.”
“…무슨 말을 하는 거요?”
“그야 자네가 혈육의 손에 의해 배신을 당하고, 또한 자네 아비가 내공을 잃고 앓아누운 일이지.”
흠칫, 이벽의 눈이 흔들렸다.
선우세가주 선우각이 스쳤다.
“자네… 혹 아비의 일에 대해선 모르고 있었나?”
“…….”
“무림이건 아니건, 핏줄 간의 상쟁은 드물지는 않은 일이지만 말일세. 좌우간 자네의 숙부는 가주 대리가 되었고, 자네의 배다른 동생은—”
“…그만, 되었소.”
이벽은 검을 잡았다.
철컥, 검을 꺼내 들었다.
“이제 와서 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얘기요. 별로 알고 싶지도 않고 관여하고 싶지도 않소.”
“…그런가.”
당평세가 쓰게 웃었다.
우우웅.
이벽은 강기를 일으켰다.
그것은 마치 범 앞에서 송곳니를 드러내는 개와 같은 행동이었다. 허나… 지금의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그 정도뿐이다.
“허헛,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새삼 놀라우이. 겨우 그 나이에 말일세. 그런 날카로운 검으로 이 늙은이를 핍박할 작정인가?”
당평세가 너스레를 떨었다.
“…후우.”
이벽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선천의 힘이 흐르며 위축되는 몸과 마음을 서서히 이완시켰다.
터무니없는 도박이지만.
‘…하는 수밖에 없다.’
이벽은 순간을 재었다.
탓, 그리고 즉시 달려들었다.
땅을 박찬 이벽의 몸이 일직선으로 쏘아졌다. 당평세는 움직이지 않았다.
“허헛, 정직하구만.”
이벽의 강기가 코앞까지 닿자 그제서야 당평세의 팔이 움직이려 했다. 허나 그때였다.
우우웅.
이벽은 목천의 힘을 일으켰다.
휙, 그리고 몸의 방향이 휘었다. 청강유엽신법, 곡의 묘리가 펼쳐지며 방향을 꺾어버린 것이다.
타앗.
충돌 직전 방향을 바꾼 이벽이 옆으로 튀어 나갔다. 저만치의 나뭇가지를 디딘 순간, 다시 용천혈을 비웠다.
타앙.
쾌보를 일으켰다.
울컥.
무리해서 목천의 힘을 쓰자 금세 현기증이 일었다. 이벽은 다시 목천의 힘을 풀었다.
어찌 되었건 승산이 없는 싸움을 할 이유는 없다. 그렇다면 선택지는 역시 도망뿐이었다. 허나.
번쩍.
“……!”
그 순간, 무언가가 번뜩였다.
즉시 이벽은 자리에서 멈춰 섰다.
탓, 타앗.
그리고 제자리에서 다시 경신법이 펼쳐졌다. 이벽의 몸이 사방팔방으로 흔들리며 잔상을 남겼다.
변의 묘리였다.
그것은 마치 달빛 아래 검무를 추듯 퍽 화려한 모습이었다. 허나.
“…크.”
이벽은 침음했다.
머리털 같은 암기 한 자루가 몸의 주변을 맴돌고 있다. 어둠 속에서 그 움직임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저 기척으로 피해낸다.
허나 피해도 떨쳐지지는 않는다.
그것은 이기어뼈와 마찬가지였다. 이벽이 취풍신개의 공격에 적응되지 않았더라면 피하는 것조차 불가능했을 터이다.
“호오, 그 보법은…….”
당평세가 다시 다가왔다.
모호한 눈빛으로 이벽을 향했다.
“…얄궂기 짝이 없군. 선우세가의 숙원들이 어째서 자네에게서 펼쳐지고 있는 건지.”
“…….”
이벽은 다시 목천의 힘을 끌어올렸다. 이내 느려진 시간 속에서 암기의 자취를 읽어내었다.
청강유엽검식(淸江流葉劍式).
회검제일식(回劍第一式).
곡검(曲劍).
이벽의 검이 낭창하게 휘어지며 암기의 궤적을 쫓았다. 이내 검과 암기가 충돌했다.
채애앵.
“……!”
이벽의 검이 훅 밀려났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암기 한 자루에 담긴 힘은… 이벽의 검보다도 강했다.
치이익.
“…크.”
저만치로 튕겨 난 이벽이 서둘러 중심을 되찾았다. 다시 도망치려 했다. 허나 그때였다.
“그만.”
당평세가 말했다.
훅, 그의 소매가 흔들렸다.
“무의미한 짓은 슬슬 그만두지.”
“……!”
그리고 이벽의 발이 멈추었다.
붙들리지도, 짓눌리지도 않았다. 허나 이벽의 발은 사방의 어디로도 나아갈 수 없었다.
스스스.
온 천하가 암기에 휩싸였다.
어둠 속에서, 이벽은 자신을 중심으로 모든 방향을 포위해버린 무수한 암기들을 바라보았다.
만천화우(滿天花雨).
달빛을 받아 암기들이 은은히 빛을 내었다. 이벽을 향해 그 끝을 드러낸 채 서서히 다가서기 시작한다.
“어떤가, 그럴싸하지 않나? 내 퍽 기껍게 생각하는 수법이라네. 좌우간에 싸움은 되었으니 잠시 얘기를—”
“…….”
탓, 이벽은 땅을 박찼다.
마침내 모든 암기가 조여들어 꼼짝도 할 수 없게 되기 전에 먼저 정면을 향해 달려들었다.
무수한 암기라 할지라도 조금 전의 ‘한 자루’와는 다르다.
살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서서히 ‘쏘아지고’ 있을 뿐이다.
‘오히려 좋다.’
문득.
잠영난봉 당려옥이 떠올랐다.
과거, 궁지에 몰린 그녀는 이벽을 향해 ‘만천환’이란 암기를 던졌고, 그 안에서는 아흔아홉 개의 암기가 쏟아졌었다.
그 암기는 어쩌면… 이 한 수를 조잡하게 ‘흉내’ 낸 것에 불과했던 것이다. 허나.
어떻게든 파훼했다. 그렇다면.
“…….”
우웅.
이벽은 만월무변심공을 일으켰다.
이내 이벽의 검끝에 달빛을 닮은 은은한 강기가 서렸다. 이윽고 정면의 암기 다발을 향해 뻗어졌다.
팔절구궁필법(八節九宮筆法).
만월(滿月).
이벽의 검이 원을 그렸다.
그리고 압력을 일으키자, 정면의 암기들이 비틀어졌다. 쉽사리 빨려들지는 않았으되, 방향이 흔들린 것이다.
“허어……?”
당평세가 감탄했다.
어쨌거나 빈틈을 놓쳐선 안 된다. 타닷, 이벽은 다시 청강유엽신법을 펼쳤다.
직, 쾌, 강, 곡, 변, 유.
모든 무리를 동원하여 암기와 암기들 사이의 헝클어진 빈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챙, 채앵.
동시에 검을 휘둘렀다.
검으로 쳐내고 몸을 밀어 넣는다.
슥, 스윽.
그럼에도 무사할 수는 없었다. 온몸 곳곳에 암기가 스쳤고 당연하게도 피가 흘렀다.
허나 이벽은 멈추지 않았다.
설령 독이 있다고 해도, 선천의 힘을 믿는 수밖에는 없다.
탓.
그리고.
피투성이가 되었으나, 마침내 이벽은 만천화우의 포위를 벗어났다. 그대로 땅을 박차 다시 도주를—
“…정말로 대단하군 그래.”
훅.
당평세가 다시 소매를 휘둘렀다.
그러자 순간 암기들이 ‘빨라졌다’.
우수수수.
암기들이 이벽을 추월하고, 다시 돌아서며 둘러쌌다. 그리고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이벽의 온몸을 포위했다.
“자넬 보고 있자니 계속해서 옛날 생각이 나는군 그래. 어디, 한 번 더 파훼해보겠나?”
“…그만하시오. 못 해 먹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