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176)
181화. 수라의 길 (2)
후두둑.
또다시 암기가 날아들었다.
이벽은 일부러 피하지 않았다.
몸 곳곳에 틀어박히자 일제히 독기가 스며들었다. 물론, 활개를 치기도 전 선천의 힘에 의해 산산이 분해되었다.
“…큭.”
허나 이벽은 신음을 흘렸다.
핏자국과 암기에 절여진 채 웅크린 그 모습은 적어도 외관상으로는 충분히 만신창이처럼 보였다.
저벅.
마침내 일련의 무리가 나타났다.
마을로 난 길 양쪽의 숲속에서 열 명가량의 인영이 나타나 쓰러진 이벽을 포위했다.
저벅.
그중 한 명이 대뜸 다가왔다.
쓰러진 이벽 앞에 당당히 섰다.
“비룡대주, 나를 기억하겠느냐!”
이벽은 사내를 올려다보았다.
사내는 복면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덥석, 다음 순간 사내가 복면을 움켜쥐었다.
찌익.
“크하핫! 이 얼굴을 보고도 감히 잊었다곤 못하겠지!”
사내가 복면을 찢었다.
이내 맨얼굴이 드러났다.
“자, 내 얼굴을 봐라! 네놈이 만들어놓은 이 몰골을! 내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겠느냐!”
“……!”
말마따나.
사내의 얼굴은 퍽 흉측했다.
살점은 흉터투성이였으며, 안면의 뼈가 함몰되었다가 다시 붙은 적이 있는 듯 이목구비의 위치는 어긋나있었다.
“미안, 누군지 모르겠군.”
“…뭐?”
“우리가 정말 만난 적이 있나? 본 적이 있다면 그렇게 못생겼는데 기억이 안 날 리 없다.”
“이… 이 새끼가아아—!!”
빠악!
사내가 이벽을 걷어찼다.
웅크린 이벽의 몸이 흔들렸다.
퍼억, 퍼억!
“죽어! 이 찢어 죽일 놈! 산채로 똥물에 튀겨 죽일 새끼! 이 씨발 새끼야! 으아, 으아아아아!!”
“…….”
이벽은 잠자코 짓밟혀주었다.
이 못생긴 자를 제외한 나머지 적들은 여전히 거리를 유지한 채 퍽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무엇보다.
‘우두머리’는 아직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즉, 공연히 쓸데없는 시간을 끌지 않으려면 오히려 이편이 더 빠른 길이었다.
탓.
“그쯤 해둬라, 모개.”
그때였다.
저만치에 중년인이 나타났다.
마침내 이벽의 무력화를 확신한 적들의 우두머리가 정면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벽은 사내를 올려다보았다.
이내 본 적이 있음을 떠올렸다.
과거 이벽이 사패련에 도착했을 때, 당시 흑천방 측 대표였던 맹우강에게 달라붙어 알랑방귀를 뀌던 후기지수와 시비가 붙었던 적이 있었다.
심지어.
그 녀석은 몇몇 일행들을 데리고서 자신과 언미희를 습격했고, 마비산을 사용하여 언미희에게 암습을 가했다.
이후.
살심에 휩싸인 이벽은 가담했던 후기지수들을 모조리 죽기 직전까지 다져놓았고.
그로 인해 사패련의 행정기관인 묵룡당에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에 휩싸였다.
그리고 그 당시, 상대측 문파의 대표자로서 나섰던 중년인들이 있었다.
현재, 눈앞에 선 우두머리는 그중 하나였다.
“모처럼 사패련주께서 흡족해하실만한 큰 공을 세웠거늘, 전부 수포로 돌릴 셈이냐?”
“헉, 허억……!”
못생긴 사내가 숨을 씨근거렸다.
퍼억!
“네놈을 내 손으로 죽이지 못하는 게 천추의 한이구나! 내 네놈이 사패련주께 갈기갈기 찢겨 죽는 걸 즐겁게 지켜봐 주마!”
마지막으로 한번 더 이벽을 걷어찬 뒤, 이내 우두머리의 말마따나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저벅.
그리고 우두머리가 다가왔다.
“흐, 무지렁이 녀석들이 정말로 하독에 성공할 거라곤 큰 기대도 안 했건만… 운이 좋았군.”
“…….”
“혹은 세간의 평가가 지나치게 부풀려져 있었던 건가. 이봐, 어떻게 생각하나 비룡대주?”
이벽은 적들의 정체를 이해했다.
자신을 열심히 걷어차던 저 못생긴 자는… 아무래도 과거 자신에게 다져졌던 그때의 그 후기지수인 모양이었다.
즉, 못생김의 원인은 자신이다.
그 원한은 충분히 이해가 갔다.
“…그렇군.”
저벅, 이벽은 일어섰다.
쓰러져 있을 이유가 없어졌다.
“칠독문…이라고 했었나.”
광서의 칠독문.
흑천방의 우호세력.
이벽은 기억을 되짚어내는 데에 성공했다. 이벽이 멀쩡히 일어서자 우두머리 사내의 얼굴이 흠칫, 흔들렸다.
“묻겠다. 그쪽이 마을의 여인과 아이들을 납치했나?”
“……!”
타앗.
“하! 이 새끼가 아직도 허세를 부려?! 오냐! 덜 맞았구나! 우선 주제 파악부터 제대로 시켜주마!”
그때, 모개라 불린 못생긴 사내가 발작적으로 땅을 박찼다. 다시 이벽에게로 달려들었다.
“그만! 모개, 멈추라고 했다!”
“크하하! 알겠느냐? 네놈이 믿고 뻗대던 혁군악 그 늙은이는 이미 모가지가 잘려서 대롱대롱—”
휘익.
이벽을 향해 다시 발차기가 날아왔다. 허나 뻗어진 오른발은 이벽에게 닫지 못했다.
서걱, 툭.
채 이벽에게 닿기 전, 허벅지 아래가 잘려서 떨어져 나갔기 때문이었다.
“어… 어?”
허벅지 아래가 없어졌다.
당연하게도 균형이 무너졌다.
털썩, 모개가 그대로 주저앉았다.
“어, 어… 내 다리. 아아아……?”
“…….”
“끄아… 으아아악!”
뻐억.
“조용히 해라.”
이벽의 발이 뒤통수를 걷어찼다.
켁, 답답한 신음과 함께 모개의 몸이 흔들렸다. 그대로 고꾸라진 채 축 늘어졌다.
* * *
“……!”
중년인, 모산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한순간 비룡대주의 검이 모개의 다리를 베었다.
눈 뜬 채 당하고 말았다.
발검은 보이지조차 않았다.
“다시 한번 묻지. 너희들이 마을 사람들을 데려갔나? 아니, 그건 더 물을 필요도 없겠군. 데려간 이들은 어디에 가두었나?”
저벅저벅.
이벽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분명 툭 건드리면 쓰러질 듯 엉망진창이었으나… 일순 모산의 머릿속에 위험신호가 울렸다.
어쩌면… 독은 이미.
“…산개해라—!!”
모산이 다급히 외쳤다.
탓, 그와 동시에 열 명의 제자들이 일제히 비산했다. 사방으로 거리를 벌리는 한편, 이벽을 향해 암기를 내뻗었다.
슈슈슉.
“…하핫.”
이벽은 웃었다.
사방에서 암기가 날아든다.
반사적으로 독왕의 만천화우가 떠올랐고, 문득 눈앞의 공격이 너무 하찮게 느껴졌다.
저벅.
이벽은 걸었다.
검을 휘두르지도 않았다.
그저 산책하듯 앞으로 나아갔다. 허나… 암기들은 단 하나도 이벽의 몸에 도달하지 못했다.
“이, 이게 무슨……?!”
서걱.
“끄, 흐으아악!”
그리고 그때였다.
느긋하게 걷는 이벽의 몸이 한순간 칠독문 제자 한 명의 코앞까지 따라붙었고, 제자가 땅을 굴렀다.
이후엔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모개와 마찬가지로… 왼쪽 다리가 있어야 할 곳이 비어있었다. 허나 그마저도 시작에 불과했다.
슥, 서걱.
“끄… 으아아아악!”
이벽의 걸음이 다시 움직였다.
근처의 다른 제자에게 가까이 달라붙었고, 그 순간 또 한 개의 다리가 굴렀다.
“저, 접근을 허용치 마라! 멀리 떨어지라고! 아니, 달아나라!”
모산이 악을 썼다.
슈슈슉.
말마따나 제자들은 바삐 도망치며 암기를 날렸다. 허나 그저 ‘걸어올 뿐인’ 이벽에게서 달아나지를 못했다.
서걱.
“꺼윽… 흑!”
이벽은 한 명씩 따라붙었다.
그리고 한 개씩 다리를 베었다.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교훈을 얻는다. 생사야 어쨌건, 다리 하나를 잘라내면 도망칠 수 없다.
지체할 시간따윈 없다.
살심에 취해서도 안 된다.
마음은 차갑고 고요했다. 청강검식이 번뜩이며 칠독문 제자들의 다리를 차례대로 잘라놓았다.
후욱.
그때, 이벽은 배후의 기척을 느꼈다. 탓, 그 순간 이벽의 몸이 휘어졌다. 청강유엽신법의 곡의 묘리였다.
“…크! 망할 애송이 놈이!”
비수는 허공을 갈랐다.
제자들의 참상을 보다 못한 모산이 이벽의 등 뒤로 따라붙어 암습을 가한 것이다.
“크으윽… 으윽!”
우우웅.
모산은 내력을 쥐어짰다.
이내 비수에 강기가 서렸다.
그리고 그 즉시 이벽을 향해 파고들었다. 훅, 그 순간 이벽의 검에도 강기가 서렸다.
채앵, 퍼어엉.
강기와 강기가 부딪혔다.
“커… 헉.”
그 순간, 모산은 피를 뿜었다.
동시에 충격을 이기지 못한 그의 몸이 붕 떠올랐다. 단 일합 만에 내상을 입었고, 자신의 강기는 종잇장처럼 파훼되었다.
필생의 내력을 쥐어짰음에도.
그저 막아낸 것이 최선이었다.
아니, 그러나.
심지어는 그것마저도 착각이었다.
터엉, 풀썩.
이윽고 저만치로 날아간 모산의 몸이 땅에 널브러졌다. 모산은 얼른 다시 일어서려 했다.
허나 실패했다.
툭.
“……!”
하체에 힘을 준 순간, 왼쪽 다리의 무릎 아래가 힘없이 분리되어 떨어져 나갔다.
단면은 매끈했다.
“…끄으아아악!”
그제서야 신경을 쥐어짜는 고통과 함께 피가 솟구쳤다. 칠독문을 대표하는 절정고수는 한순간에 외다리 신세가 되었다.
‘막아내지도’ 못했다.
“그쪽이라고 다른 제자들과 뭐가 대단하게 다를 줄 알았나?”
이벽이 말했다.
* * *
이벽은 분노했다.
자신의 원한으로 인해 아무런 관계도 없는 마을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고, 여인과 아이들을 빼앗겼다.
이벽은 화정촌을 생각했다.
또한 산적에 의해 파괴되고 유린당했던 또 하나의 마을을 생각했다.
모든 마을들은 다르지 않다.
무림과 관계가 없는 평범한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라나는 공간이며, 어느 누구도 그 선을 넘어선 안 된다.
그것은 어쩌면.
이벽의 역린과 같았다.
살심에 휩쓸리지 않는다. 허나 휩쓸리지 않는다고 해서 마음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서걱.
“큭… 끄아악……!”
마침내.
우두머리 모산을 포함한 칠독문의 모든 제자들은 각기 하나씩 다리를 잃고 나뒹굴었다.
혹은 쓰러진 이후에도 암기를 던지며 공격을 감행하던 몇몇 제자들은 이내 팔마저도 잃어야만 했다.
모산 역시 그중 하나였다.
결국 누구도 빠져나가지 못했다.
저벅.
이벽이 다시 모산에게 다가섰다.
“말해라.”
“……!”
“납치한 여인과 아이들은 어디에 숨겼나?”
이벽의 눈빛은 퍽 담담했다.
허나 널브러진 채 그 눈빛을 마주한 순간, 사지가 잘려 나간 고통 속에서도 모산은 직감했다.
“모, 모르는 일이다……!”
그것은 ‘건드려선 안 될 것’이었다.
어떻게든 자신의 선에서 정리해야만 한다. 저런 괴물을 본문에 들여놨다간… 새 천하건 뭐건, 칠독문은 끝이 난다.
“…….”
저벅.
이벽이 순순히 물러섰다.
모산에게서 멀어졌다. 그리고.
툭, 서걱.
“커억, 그르륵!”
부지불식간의 일이었다.
다음 순간, 다리를 잃고 쓰러진 제자들 중 하나의 머리가 땅을 굴렀다.
“네, 네 이 노오옴……!”
“그렇군. 이만큼이나 머리가 많으으니… 몇 개쯤은 베어내도 누군가는 말을 해주겠지.”
“자, 잠깐…! 비룡대주! 어찌 그리 가볍게 목숨을 거두는가! 우, 우리가 졌소! 모, 목숨만은 거두지 말아주시오! 대, 대체—”
저벅, 서걱, 툭.
또 하나의 머리가 굴렀다.
단말마조차 내지르지 못했다.
“모… 모른다고! 모르는 일이라고 했잖나! 아, 아니, 정말이오. 제발… 제발, 비룡대주, 당신이 정녕 패왕가주의 후계라면 어찌 그리 목숨을 가볍게—”
“…이상한 얘길 하는군.”
툭, 또 하나의 머리가 굴렀다.
“그 패왕가주께서 당신들에 의해 돌아가셨고, 따라서 나는 전쟁을 선포했다. 그 와중에 제일 먼저 공을 세우겠다고 내게 달려온 당신들을, 내가 살려줄 이유가 뭐지?”
“…….”
모산의 말문이 막혔다.
“하물며 묻는 말에 대답조차 못 한다면 포로의 가치도 없으니 그 목이 어깨 위에 남아있을 이유는 아무것도 없지.”
툭, 또 하나의 목이 베어졌다.
그것은 잘 익은 과일을 따듯 쉬운 일이었다. 그래서 이벽은 내심 불편해졌다.
칠독문의 무인들은 공포와 고통에 절어서도 눈빛은 지독했으며, 목이 떨어지는 순간까지도 저항은커녕 입을 열지 않았다.
그 눈빛은 어쩌면.
분노가 가라앉은 이후에도… 평생 잊히지 않은 채 남아있게 될 것임을 직감했다. 허나.
‘할 일’을 멈추지는 않는다.
저벅, 이벽이 다시 걸음을 뗐다.
“끄… 으으아아아—!!”
그때였다.
모산이 처절한 괴성을 내질렀다.
“이… 천하의 악귀 같은 새끼! 오냐, 좋다! 내 기꺼이 귀신이 되어 네놈을 저주하며 지옥 밑바닥에서 기다리고 있으마! 크하하하!”
“…….”
“듣거라, 자랑스런 칠독문의 제자들아! 마지막 명령이다. 모두들, 내세에서 만나자!”
콰득.
“……!”
그때였다.
모산의 ‘명령’이 떨어진 순간, 남아있는 칠독문의 제자들이 일제히 입안에서 무언가를 씹었다.
“컥, 커윽………!”
“치, 칠독문… 천하……….”
입가로 피거품이 일었다.
이벽은 황급히 움직였다. 허나.
“크……!”
그때에는 이미, 모산을 포함한 모든 제자들의 숨이 끊어진 후였다.
최후의 수단.
입안의 독단으로 자결한다.
독문을 자처하는 집단이라면 물론 그 정도의 수는 예측했어야 했다. 쾅, 이벽의 발이 땅을 굴렀다.
“끄으… 으으으…….”
허나 그때였다.
저만치에서 신음이 들렸다.
이벽의 고개가 움직였고, 저만치에 맨처음 다리가 잘린 채 뒤통수를 얻어맞고 기절했던 모개를 발견했다.
“…….”
다행히 하나가 살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