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175)
180화. 수라의 길 (1)
후욱, 덥석.
이벽이 살아있다.
사내가 나타난 그 순간, 언미희가 한 줄기 바람이 되었다. 사내의 어깨를 붙들었다.
꽈악.
“말해요. 공자를 찾았다구요? 그래서 지금 어디에 있대요? 상태는요? 위급하진 않나요? 어서요.”
“켁… 끄윽!”
언미희에게서 서릿발 같은 기세가 흘렀다. 어깨를 짓이기는 듯한 압력 속에서 사내가 신음을 흘렸다.
“언니, 일단 침착해요.”
“…핫.”
공손수가 다가와 언미희의 손 위에 손을 포개었다. 그제야 언미희가 손을 놓았다.
“미, 미안해요, 제가 그만…….”
그대로 땅에 널브러진 사내가 잠시 헥헥대며 숨을 고르다가는 퍽 힘겨운 기색으로 말을 꺼냈다.
“그, 그게… 정확한 상태까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운남의 곤명 인근에서 모습을 드러내셨다고…….”
“…뭐, 뭐라구요?”
콰앙!
언미희의 발이 땅을 파고들었다.
“히, 히익!”
“그럼 바로 이 근처잖아요—!!”
이벽이… 같은 운남땅에 있다.
“그래요. 역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군요. 지금 당장—”
“언니, 언니.”
덥석.
공손수가 다시 손을 붙들었다.
“우리 좀 침착해져요. 네? 기분은 십분 이해하지만… 우린 아직 앞으로의 향방에 대해 아무것도 정하지 못했잖아요?”
“…….”
“우리가 함부로 경거망동하면, 그게 오히려 오라버니를 더욱 위험하게 만들어요.”
공손수의 목소리는 진중했다.
툭, 언미희가 고개를 떨구었다.
혈교에게 습격을 당했고 이벽은 행방불명되었으며 사파무림은 뒤집혔다.
내력을 되찾고 새로운 힘을 얻었음에도 정작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신경은 퍽 날카로워져 있었다.
“…미안해.”
“나한테 미안할 건 없구요.”
훗, 공손수가 가볍게 웃었다.
그리고 하오문의 사내를 향했다.
“죄송해요. 많이 놀라셨죠? 하던 말씀 계속해주세요. 그래서… 오라버니께선 지금 어떤 상태란 거죠?”
“…네, 네이!”
말마따나 하오문 사내의 말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오히려 시작에 불과했다.
“그게 실은… 비룡대주께서 신 사패련주 맹철극에게 ‘전쟁’을 선포하셨다고… 합니다요.”
“…네? 뭐라구요?”
공손수가 되물었다.
그리고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저기, 지금 제가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전쟁이라고 하셨나요?”
“그게… 그렇습니다요. 굳이 자기를 찾지 않아도 개파식에 맞춰 사패련을 되찾으러 갈 생각이니, 잠자코 가다리고 있으라고…….”
“…혼자서요?”
“일단은 그렇다고… 합니다요.”
공손수의 표정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그리고 일행들은 서로를 돌아보았다.
상황은 이미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꼬여 들어서 더 놀랄 일도 없을 것 같았으나… 그렇지도 않았다.
“…핫.”
문득 양호명이 코웃음을 쳤다.
“비룡대주, 역시 대단해. 남궁세가를 털어먹고 나니 일인 도장깨기에 재미라도 들렸나 보군 그래.”
“…….”
그리고 깊은 정적이 흘렀다.
그것은 농담이라고 하기에도 바보 같은 이야기였다.
이벽이 대체 어떤 상황을 거쳐 그러한 심중을 품게 되었는지는 선뜻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혹시 우리 때문 아니냐?”
이내 파진성이 입을 열었다.
“……!”
그리고 공손수는 이해했다.
신 사패련은 비룡대주 이벽을 비롯한 자신들 비룡대에게 가능한 한 ‘생포’하라는 단서와 함께 추포령을 내렸다.
허나.
냉정히 생각하면, 이벽을 제외한 자신들 따위를 굳이 생포씩이나 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단지… 자신들의 ‘용도’는 그저 비룡대주 이벽을 유인하기 위한 인질에 불과한 것이다.
하지만 이벽이 스스로 사패련에 출두하려 한다면, 당연하게도 굳이 인질에 매달려야 할 이유는 사라진다.
“잠깐.”
그때 월향이 앞으로 나섰다.
“왕양, 수고했어요. 헌데… 그게 대체 어디서 나온 소식이죠? 정말로 믿을 만한 이야기인가요?”
“예, 예이?”
“애시당초 우리 하오문조차 그동안 소협의 동향을 파악하지 못했는데… 대체 누가 있어 소협의 의사를 사패련에 전달했단 말이에요?”
“……!”
일행의 시선이 월향을 향했다.
그것은 퍽 날카로운 지적이었다.
‘선전포고’이건 뭐건, 그러한 이야기가 사패련에까지 전달되었다는 건 즉, 누군가가 이벽의 ‘전령 역할’을 했다는 뜻이었다.
“즉, 이건 어쩌면 우리를 바깥으로 끌어내기 위한 사패련 측의 함정일 수 있—”
“그게… 실은 당가입니다요.”
허나 왕양이라 불린 하오문의 사내가 답했다.
“…당가요? 사천의 그 당가?”
월향이 되물었다.
사내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케헤… 진짜로 알 수가 없네. 산동으로 떠났던 녀석이 대체 왜 당가랑 같이 나타나냐고?”
파진성이 다시 중얼거렸다.
물론 언미희와 공손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은 심정이었다. 무엇보다 당가라면… 그리 좋은 인연은 아니었다.
“…왕양, 거듭 같은 걸 되물어서 미안하지만… 그것도 확실한 이야기인가요?”
“그것이…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요. 그냥 당가인 정도가 아니라… 서신이 무려 독왕의 이름으로 전달되었다고 하는지라…….”
“……!”
독왕 당평세.
그 이름은… 그 자체로 공신력을 지니고 있었다.
제아무리 맹철극이라 한들, 뒷일을 생각한다면 감히 천하십대고수의 이름을 멋대로 들먹일 이유는 없는 것이다.
“…독왕이라고? 의혈맹의 절대고수가 비룡대주를 위해 움직였단 말인가? 대체 왜? 사돈이라도 맺은 게 아닌 이상에야—”
흠칫.
양호명이 중얼거리다 말고 말을 멈추었다. 바로 옆에서 이글거리는 살기를 느낀 탓이었다.
“…설마 그년이 또 꼬리를?”
공손수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망할 년, 역시 죽여버릴걸.”
훅, 공손수의 신형이 사라졌다.
한순간 잔상을 남기며 저만치로 멀어졌다. 탓, 언미희가 황급히 땅을 박찼다.
“으악! 수야! 잠깐 침착해!”
* * *
이벽은 당평세와 헤어졌다.
그리고 혼자서 길을 나섰다.
동쪽으로 운남을 가로지른 뒤 마침내 귀주와의 경계 지역에 들어섰다.
타닷.
마을이나 도시에 들르는 일 없이, 노숙만을 반복하며 몇 날 며칠을 달리고도 발끝은 가벼웠다.
그것은 물론 이벽의 경신법이 진일보했기 때문이었지만, 또한 육신이 한계를 넘어섰기 때문이기도 했다.
심, 기, 체는 함께 성장한다.
심이란, 이벽에게 있어 낙검진천신공을 의미하며, 취풍신개는 이를 두고서 이미 ‘완성’에 가까운 경지라고 하였다.
또한 기란, 기예를 말한다.
이벽은 마침내 선우세가의 모든 것에 해당하는 ‘창공비검’을 얻어냈으며, 당평세는 그러한 이벽에게 ‘목천의 끝에 이르렀노라’고 말했다.
즉, ‘사다리를 완성했다’.
취풍신개와 독왕.
두 절대고수의 가르침이 이벽에게서 교차했고, 앞서나간 마음과 성장한 기예에 힘입어 육신은 스스로를 재구성했다.
이벽은 다시 강해졌다.
이제는 목천의 영역에 접어드는 것조차 그리 어렵지 않게 되었으며, 스스로도 성장폭을 가늠하기 힘들었다.
허나.
사다리를 얻었으되.
여전히 하늘에 오르지는 못했다.
때문에 승리를 자신할 수 없었다.
신 사패련주, 흑천뇌왕 맹철극의 존재는 미지의 그림자처럼 느껴졌다.
상대를 알지 못하며, 그 힘을 유추할 근거는 그저 ‘혁군악을 베었다’는 막연한 정보뿐이었다.
‘죽을 수도 있다.’
그것은 당연한 이야기였다.
“…….”
이벽은 쓴웃음을 지었다.
공교롭게도, 이벽이 찾고자 했던 무림행의 결말은 파국 속에서 마침내 뚜렷한 형태를 드러냈다.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혼자 걷는 걸음은 마음을 고요하게 했다. 이벽은 지난 일들과 인연들을 헤아리며 나아갔다.
“도, 도와주시오……!”
허나 그때였다.
어느 산기슭을 지나던 와중, 어느 다급한 목소리가 이벽의 고요함을 깼다.
“누구 없소?! 부, 부탁이오!”
“…….”
이벽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저만치 가파른 기슭 아래에 사내 한 명이 나무줄기에 걸쳐진 채 쓰러져있는 것을 발견했다.
훅, 이벽은 땅을 박찼다.
단번에 사내에게로 다가섰다.
“사, 사람이다…! 다행이오, 제발 날 좀 살려주시오…! 기슭에서 굴러 일어설 수가 없소!”
“…….”
이벽은 사내를 부축했다.
훅, 그리고 다시 땅을 박차자 가볍게 날아오른 두 사람의 몸이 다시 기슭 위로 내려앉았다.
“고, 고맙소! 소협께서는 이놈의 생명의 은인이시오!”
“…신경 쓰지 마시오.”
“허, 헌데… 참으로 면목이 없소만 내 다리를 다쳐서… 마, 마을 어귀까지만 나를 좀 부축해줄 수 있겠소……?”
이벽은 사내를 바라보았다.
사내의 안색은 퍽 창백했다.
“제, 제발 부탁이오! 어떻게든 내 반드시 사례는 할 테니……!”
“…마을이 어느 쪽이오?”
“고, 고맙소! 참으로 고맙소!”
이벽은 사내를 들쳐 업었다.
탓, 그대로 몇 발을 떼자 이벽의 신형이 다시 하늘을 날 듯 산길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불과 일각이 채 지나지도 않아 산골에 위치한 마을의 목책이 나타났다.
탓.
이벽은 입구에 내려앉았다.
“그럼.”
“자, 잠깐……!”
사내를 내려준 뒤, 이벽은 다시 갈 길을 가려 했다. 그러나 사내가 또 이벽을 붙들었다.
“어… 어딜 가시오. 내 아직 아무런 사례도 못 했는데! 날도 늦었으니 부디 내 집에 묵고 가시오!”
“…….”
이벽은 다시 사내를 향했다.
사내의 얼굴에 서린 절박함을 읽었다. 그리고 사내와 함께 마을 안으로 들어섰다.
몇 개의 집채와 논밭 따위를 가로질렀다.
나무 그늘 아래에는 빈 바둑판이 있었고, 가축들이 이따끔씩 긴 울음소리를 내었다.
일상의 흔적들은 여기저기에서 묻어나고 있었다.
허나.
공기는 퍽 적막하게 느껴졌다.
마을 사람들은 흘끗흘끗 두 사람을 곁눈질했다. 일상적이지 못한 시선이었다.
덜컥.
“여, 여기가 내 집이오…! 어서 들어오시오! 여보, 나 왔네! 귀한 손님을 모시고 왔어!”
그리고.
마침내 여느 집 앞에서 사내가 걸음을 멈추었다.
이벽과 사내가 안으로 들어서자 상 위에는 기다렸다는 듯 한가득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이… 이놈의 여편네, 측간이라도 갔나 보오. 자, 시장하실 테니 은인께서는 마음껏 드시오!”
그것은 퍽 진수성찬이었다.
산골 마을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음식일 테다. 이벽은 자리에 앉은 뒤 물잔을 들었다.
벌컥, 한 모금 들이켰다.
사내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
우웅, 선천의 힘이 흔들렸다. 물 한 모금에 담긴 독은 그 즉시 이벽의 몸 안에서 종적을 감추었다.
“이젠 되었소?”
“…무, 무슨 말이오?”
“그럼 말해보시오. 필요한 게 내 목이라면 물론 내어줄 생각은 없소만, 얘기 정도는 들어주지.”
“크… 크으!”
사내가 당황하며 뒷걸음질 쳤다. 덥석, 벽 한켠에 세워져 있던 괭이를 집었다.
타다닷.
“흐아아앗—!”
다음 순간, 다리를 다쳤다던 사내는 멀쩡히 땅을 박차며 이벽을 향해 달려들었다.
서걱.
괭이의 날이 반듯이 베어졌다.
퍼억, 쿠당탕!
“…커억!”
그리고 이벽이 가슴께를 걷어차자 사내가 저만치 벽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다가오지 마시오.”
이벽이 검을 거두며 말했다.
어느덧 이벽의 등 뒤에는 중년의 여인네가 서 있었다. 이벽을 겨눈 부엌칼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다.
“하… 하지 마! 하지 말라고, 이 사람아! 도망쳐!”
쓰러진 사내가 악을 썼다.
“…….”
저벅.
사내와 여인을 일견한 이벽은 다시 문밖으로 나섰다. 길을 가로지른 뒤 마을의 중앙에 섰다.
이내 여기저기서 하나둘, 마을 사람들이 나타나며 이벽의 주위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젊은이와 노인이 섞여 있었으며, 모두가 병장기, 혹은 농기구를 쥐고 있었다.
후욱.
이벽은 적파심공의 기운을 흘렸다. 그 순간, 이벽에게서 응축된 살기가 뿜어졌다.
털썩, 털썩.
“히익……!”
“으아아악……!”
몇몇이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누군가는 눈물을 흘렸고, 오줌을 지리기도 했다. 혹은 벌벌 떨면서도 꿋꿋이 서 있기도 했다.
허나.
누구도 도망치려 하지는 않았다.
모두 평범한 마을 사람들이었다.
허나… 무림인이 아닌 이들이 무림의 논리에 억지로 끼어있는 모습은 기괴하기까지 했다.
“혹시 가족을 붙잡혔소?”
“……!”
이벽은 정면의 노인에게 물었다.
부르르, 노인의 눈빛이 흔들렸다.
“…….”
이벽은 자신을 데리고 온 사내의 집안을 포함해 마을에 들어선 이후 여태껏 단 한 명도 젊은 여인이나 어린아이를 보지 못했음을 떠올렸다.
타앗.
이벽은 땅을 박찼다. 그나마 버티고 서 있는 몇몇을 향해 다가섰다. 촌민들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걱정 말고 휘두르시오.”
“……!”
“…이, 이야압!”
휙, 휘익.
눈먼 날붙이들이 휘둘러졌다.
이벽을 가볍게 스치고 지나갔다. 살갗이 긁혔으며, 피가 흐르고 옷자락이 헤졌다.
탓.
그리고 이벽은 달아났다.
인파를 지나 마을을 벗어났다.
“허억, 쿨럭!”
그리고 이벽은 피를 토했다.
털썩, 주저앉아 중독을 연기했다.
휙, 휙.
그때, 암기가 날아들었다.
푸욱, 이벽의 몸에 꽂혀 들었다.
“커억……!”
이벽은 쓰러졌다.
땅 위에 엎드렸다.
“핫하! 비룡대주, 꼴불견이구나! 겨우 그 정도 술수에 진짜로 당하다니,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이다! 하핫, 크하하하!”
“…….”
그리고.
마침내 ‘무림인’들의 기척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이벽은 엎드린 상태로 품 안에서 조용히 검을 잡았다.
죽이지 않아야 할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았으나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