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177)
182화. 수라의 길 (3)
저벅.
이벽은 모개에게 다가갔다.
“끄으으… 으으……!”
몸을 떨며 신음을 흘리고 있었으나 여전히 의식은 없는 듯했다. 안색은 백지처럼 창백했다.
물론, 다리를 잘린 채 피를 철철 흘리며 줄곧 방치되어 있었으므로 이상할 것은 없었다.
허나 다른 모든 칠독문 제자들의 숨통이 끊어진 이상, 모개마저 죽어선 곤란하다.
쿡, 쿡.
이벽은 모개의 다리를 지혈했다.
그리고 턱을 붙잡은 뒤 입을 벌렸다. 오른쪽 어금니 사이로 독단이 끼워져있는 것을 발견했다.
콰드득.
“흐… 끄으아아악!”
이벽이 손끝으로 잡아당겼다.
독단과 함께 어금니 두 개가 생으로 뽑혀 나가자 대번에 모개의 눈이 떠지며 비명이 터져 나왔다.
“조용히 해라.”
“흐으으, 억! 어억…….”
이내 모개의 시야가 돌아왔다.
그리고 이벽의 서늘한 눈빛을 마주한 순간, 악몽은 악몽이 아닌 현실이었음을 깨달았다.
“눈을 떴으면 주변을 살피도록.”
“…헉, 히익!”
모개의 동공이 정신없이 움직였다. 이내 외당주 모산을 비롯한 동문사형들의 시신들을 발견했다.
사지가 멀쩡한 이는 누구도 없었으며, 대개는 독으로 자결했으나 몇 개의 머리가 몸에서 분리된 채 땅을 구르고 있었다.
딱, 따닥, 딱.
그리고 모개의 윗니와 아랫니가 맞부딪히기 시작했다. 살고 싶다. 아니, 죽고 싶다. 아니,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다.
콰득.
그 순간 이를 악물었다. 허나.
“소용없다.”
툭, 이벽의 손에서 무언가가 떨어졌다. 땅에 부딪히며 튕긴 것은 모개의 어금니와 독단이었다.
콱, 이벽이 독단을 짓밟았다.
“독단은 이미 제거했으니 그리 편하게 자결할 수는 없을 거다. 혀를 깨물겠다면 말리지는 않겠다.”
“…히, 흐헤, 흐헤헤…….”
모개는 마침내 현실을 인지했다.
비룡대주는 맹수이며, 자신은 먹잇감이다. 그 앞에서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권한조차 없다.
부르르.
몸이 경련했다.
그리고 모든 게 후회되었다.
스스로 맹수의 입안에 머리를 들이민 과거의 어리석음이 저주스러웠다.
또한 당장의 고통보다도 닥쳐올 고통을 생각하자 정신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모개는 혀를 빼물었다.
하지만… 깨물 수 없었다.
“살고 싶나?”
허나 그때였다.
문득 비룡대주가 말했다.
모개는 황급히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맹수의 눈빛에서 일말의 희망을 읽어내었다.
끄덕끄덕끄덕.
모개는 맹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
이벽은 모개를 내려다보았다.
돌이켜보면, 과거 사패련에서도 이벽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살려달라며 애원을 했었던 자다.
정신이 그리 강하지 않다.
퍽 다행한 일이었다. 허나.
행여 딴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사전에 방지할 필요는 있었다.
서걱.
“끄… 으아악, 아악……!!”
이벽의 검이 번뜩였다.
그 순간 모개의 오른손 엄지손가락이 잘려 나갔다. 잘린 상처를 부여잡은 채 모개가 몸부림을 쳤다.
“이쪽을 봐라.”
“…으, 으으으!”
“그 손으론 더는 암기나 비수를 쥐지 못하겠지. 죽이지 않기 위한 가장 최소한을 베었다. 이해했나?”
끄덕끄덕끄덕.
모개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고문하는 법을 잘 모른다. 그러니 내가 고문을 하게 된다면 아마도 서로에게 편치 않은 결과가 것이다. 이 말도 이해했나?”
끄덕끄덕끄덕.
“너희들이 마을의 여인과 아이들을 납치했나?”
끄덕끄덕끄덕.
“어디 있는지 위치도 알고 있나?”
끄덕끄덕끄덕.
모개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이지 않는 순간, 자신의 신체부위 어딘가가 또다시 몸통으로부터 잘려 나갈 것임을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군. 그러면 지금부터 그곳으로 안내해라. 납치한 이의 안위가 확인되면 그때 너를 풀어주겠다. 단.”
훅.
이벽이 적파심공을 일으켰다.
“흐, 흐헤… 헤헤…….”
모개의 아랫도리가 흥건해졌다. 이벽은 즉시 살기를 거두었다. 미쳐버리는 것 역시 곤란하다.
“엄한 짓을 시도하면 죽는다. 관계없는 곳으로 안내해도 죽는다. 이해했나?”
끄덕끄덕끄덕.
“말로 해라. 어디로 가야 하나?”
“나… 나나, 남쪽… 남쪽…….”
* * *
타다닷.
이벽은 모개를 들쳐 업었다.
그리고 남쪽을 향해 내달렸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서 이벽은 종종 모개에게 방향을 되물었고, 대답은 지체 없이 이어졌다.
“…….”
그리고 한 시진 가량의 시간이 지나자 이내 이벽의 가슴 한켠에서 스멀스멀 위화감이 피어올랐다.
다수의 목숨을 빼앗았다.
잔혹한 짓을 서슴없이 저질렀다.
살기에 휩쓸려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판단으로, 해야 할 일임을 알았기에 행한 것이다.
후회할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칠독문도들의 독기어린 눈빛은 기억에 남았고 가슴은 서늘해졌다.
이벽은 미간을 찌푸렸다.
상대가 악인이건 아니건.
살인의 본질은 가려지지 않는다.
답이 없음은 진즉부터 알고 있다.
그 어떤 깨달음을 얻고 그 어떤 경지에 이른다 해도, 결국 마음이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허나.
‘적을 죽일 각오.’
당평세의 말을 떠올렸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
그것이 전쟁이다. 또한.
혈혈단신인 자신이 신 사패련에 맞서 ‘전쟁을 치를 자격이 있음’을 증명해야만 하며.
그것은 피로써 이뤄진다. 즉.
사패련으로 향하는 내내 ‘수라의 길’이 펼쳐질 것임을 알면서도 이 길을 선택한 것은 또한 자신이었다.
타다닷.
이벽은 박차를 가했다.
다시 두어 시진 정도가 흘렀다.
시각은 어둠이 깔린 야심한 새벽이 되었으며, 이내 저만치에 담장과 연결된 대문이 나타났다.
“끄으으… 으으!”
등에 업힌 모개가 신음했다.
[칠독문七毒門]이벽은 대문 위에 걸린 현판을 읽었다. 잘못 찾아오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사람들을 문 내에 가둬두었나?”
끄덕끄덕끄덕.
이벽이 묻자 모개가 끄덕였다.
저벅.
이내 이벽은 다가섰다.
야심한 시각임에도 대문의 양옆으로는 불이 피워져 있었으며, 두 명의 위사가 서 있었다.
“머, 멈춰라—!”
“누구냐, 신원을 밝혀라!!”
훅, 털썩.
이벽은 모개를 집어던졌다.
“끄으으… 으어, 으어어어!!”
지익, 지익.
땅에 떨어진 모개가 팔꿈치로 땅을 끌며 필사적으로 나아갔다. 덥석, 위사의 바짓가랑이를 붙들었다.
“미, 미친 씨발! 뭐—?!”
“자, 잠깐!”
바지를 붙들린 무사가 모개를 걷어차려는 순간, 다른 한 명이 가까스로 만류했다.
횃불을 들어 모개를 비추었다.
“으으으……!”
“사… 사형! 사형이다!”
저벅, 이벽이 다시 다가섰다.
“비룡대주 이벽이다.”
“……!”
“당신네들이 내게 용건이 있는 듯하니 직접 먼 길을 걸어 찾아왔다. 문을 열어주겠나?”
위사들의 눈이 흔들렸다.
외당주 모산이 제자들을 이끌고서 행보를 드러낸 비룡대주를 치러 갔다. 그 사실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었다.
허나.
피칠갑을 한 비룡대주와 함께 처참한 몰골의 모개만이 되돌아왔다. 의미는 명백했다.
“비, 비상……!”
“적습—!”
서걱, 툭.
이벽이 검을 잡았다.
두 위사의 가슴이 쩍 벌어지며 그대로 허물어졌다. 동시에 정문이 사선으로 갈라졌다.
쿵, 콰앙.
그리고 그대로 무너졌다.
“힉, 히익……!”
“…….”
이벽은 쓰러진 모개를 잠시 바라보았다. 사시나무처럼 떠는 몸을 일견한 뒤, 없어져 버린 문 너머로 들어섰다.
저벅.
담장의 안쪽은 퍽 넓었다.
몇 개의 집채가 있었으나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정면에 자리한 거대한 전각이었다.
저벅.
사방에는 불이 서 있었기에 대낮처럼 밝았으나 딱히 막아서는 이는 없었으므로 이벽은 계속해서 나아갔다.
전각의 몇 보 앞에 섰다.
흡, 크게 호흡을 들이켰다.
“칠독문주우우—!!”
내력을 실어 외쳤다.
“나 비룡대주 이벽이오! 어서 이리 나오시오, 그리도 날 만나고 싶어 하지 않았소?!”
이벽의 목소리가 새벽의 어둠을 가르며 칠독문 내로 우렁하게 메아리쳤다.
“…….”
허나 이렇다할 반응은 없었다.
이벽은 잠시 제자리에 서 있었다.
훅.
그때 작은 기척을 느꼈다.
사방 곳곳에서 암기가 쏟아졌다.
슥.
허나 암기가 지척까지 도달한 순간, 이벽의 몸이 잔상처럼 흔들렸다. 변의 묘리가 발끝에서 펼쳐진 것이다.
훅.
암기는 모두 빗나갔다.
그것은 마치 이벽의 몸을 물처럼 통과해서 지나가 버리는 듯한 모양이었다.
“……!”
기척들이 흔들렸다.
이벽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내 야행복을 입은 채 집채 사이사이로 몸을 감춘 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성가시군.”
휙.
다시금 암기가 쏘아졌다.
이벽은 만월무변심공을 일으켰다.
팔절구궁필법(八節九宮筆法).
만월(滿月).
달이 떠올랐다. 그리고.
휙, 푸욱.
“컥!”
“커윽……!”
쏘아진 암기들의 방향이 왜곡되었다. 이벽의 의지에 따라 그 끝이 오히려 서로를 향했다.
암기에 당한 무인들이 주춤했다.
이내 암기 세례가 멎었다. 이벽에게 박히기는커녕 오히려 아군의 피해만 늘어가는 공격을 이어갈 이유는 없다.
휙, 털썩.
다음 순간 이벽에게로 자루 몇 개가 던져졌다. 훅, 가루가 비산하며 일거에 이벽을 둘러쌌다.
이벽은 미간을 찌푸렸다.
시야가 흐려지고 호흡이 탁해졌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 선천의 힘이 해독을 시작했다.
훅.
그 순간, 이벽은 흐릿한 시야 너머로 소리 없이 다가오는 몇 개의 인영을 확인했다.
챙, 채앵.
뿌연 독 안개 속에서 날과 날이 부딪히는 소리가 몇 번 일었다.
서걱.
“…끅!”
“커억……!”
파육음과 신음이 이어졌고.
훅.
다음 순간 독 안개가 옅어졌다.
이벽의 검이 청강검식 유의 묘리를 펼치자 안개가 기운을 따라 사방으로 흩어진 것이다. 그리고.
참상이 드러났다.
누군가는 팔과 다리가 잘렸으며, 누군가는 흘러나온 창자를 손으로 틀어막고 있었고, 누군가는 척추까지 허리를 베인 채 경련하고 있었다.
서 있는 것은 이벽 뿐이었다.
“칠독문주, 제자가 그리 많소?!”
다시 이벽이 외쳤다.
“그래, 제자와 식솔들 전원이 간장을 쏟고 쓰러질 때까지 나오지 않을 생각이라면 내 얼마든지 기다려드리지—!”
이벽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그리고 이벽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타나는 이들은 없었으나, 공기에서는 동요가 느껴졌다.
“…….”
이벽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내 움직이려 할 때였다.
“쯧, 오밤중에 시끄럽게 하는군.”
누군가가 말했다.
* * *
이벽은 고개를 들었다.
저 멀리 어둠 속에서 전각의 지붕 위에 서 있는 인영 하나를 발견했다.
“그래, 내가 칠독문주 모간이오.”
인영이 말했다.
목소리는 나지막했으나 은은한 내력이 실려있었다.
“그래, 비룡대주. 그대가 여기 있다는 건… 우리 외당주, 그리고 함께 나선 제자들은 전부 그대의 손에 죽었단 얘기가 되겠군.”
“…….”
이벽은 굳이 답하지 않았다.
“과연, 대단하오. 인정하겠소. 본문이 그대의 역량을 많이 얕봤나 보오.”
목소리는 퍽 태연했다.
자파의 제자들이 몰살당했다고 함에도 이렇다 할 감흥이 없는 듯했다.
허나 그것이 진심인지 태연함을 가장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으며, 딱히 이벽이 알 바 역시 아니었다.
“그래, 무슨 일로 오셨소?”
다시 칠독문주 모간이 말했다.
“듣기로 사패련을 되찾으러 간다고 하지 않았소? 살아남았으면 갈 길이나 마저 갈 것이지, 천하의 비룡대주께서 이 누추한 동네까지는 뭣 하러 오셨느냔 말이오? 혹 이 모간의 목이라도 챙겨 가려 오셨나? 응?”
목소리는 퍽 뻔뻔했다.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진 않았소만, 이야기에 따라선 못할 것도 없지.”
“핫! 크하핫!”
모간이 코웃음을 쳤다.
“과연! 애송이 홀로 사패련과 전쟁을 한다길래 웬 미친 소린가 했더니 포부 하나는 하늘을 찌르는구려!”
“…….”
이벽은 생각했다.
더는 이야기를 섞을 것도 없다.
“아이와 여인네들은 어디 있소?”
그리고 이벽이 말했다.
“…응? 그게 무슨 소리요?”
“당신네들이 귀주 인근의 마을에서 납치한 이들을 이야기하는 거요. 미리 말하건대 모르는 척은 안 하는 게 서로에게 이로울 거요.”
“…아아, 그렇군. 분명 그랬었지.”
모간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게 된 거였군. 비룡대주, 그럼 그치들을 돌려주면 순순히 물러날 것이오?”
“…뭐, 생각 정도는 해보지.”
이벽이 답했다.
그리고 정적이 흘렀다.
“…푸핫!”
문득 모간이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핫! 으하하핫!”
불쾌한 웃음소리가 한동안 밤공기를 퍼져나갔다. 우뚝, 그리고 칼로 잘라낸 듯 멈추었다.
“그래, 유감이구만. 참으로 유감이야. 허나 비룡대주, 미안한 얘기이오만 이미 팔아먹고 없소.”
모간이 어깨를 으쓱했다.
“뭐, 이 근방의 뒷골목을 잘 찾아보시오. 운이 좋아 살아있다면 기방이나 암시장 따위에서 팔려나가고 있을 수도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