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184)
189화. 계속되는 수라의 길 (2)
도와 철퇴, 활과 채찍.
광인들과 함께 이벽을 습격한 네 명의 절정고수들 중 앞의 두 명을 죽였고, 뒤의 두 명이 남았다.
그리고 둘 모두 이벽의 정면에 모습을 드러낸 채 서 있었다.
저벅.
이벽은 걸음을 뗐다.
물론 ‘남은 할 일’을 마저 끝낼 생각이었다. 허나 그때 흠칫, 활을 든 이가 반응했다.
“자, 잠깐, 비룡대주!”
황급히 손을 뻗어 보였다.
“잘 알겠소. 우리는 절대로 그대를 이길 수 없소. 그러니 이만 물러서겠소. 부디 허락해주시오.”
“…….”
이벽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내가 왜 그래야 하오?”
“…자비를 부탁드리오. 아니, 그게 안 된다면 나를 데려가시고 내 의제만큼은 보내주시오. 그러면 내 아는 걸 전부 말해드리겠소.”
“대, 대형! 그게 무슨—!”
“닥치고 있거라—!!”
그 뒤에 서 있던 채찍을 든 이가 즉시 반응했다. 허나 활을 든 이가 다시 호통을 쳤다.
“…….”
훅, 적파심공이 끓어올랐다.
이벽은 강렬한 살심을 느꼈다.
그것은 상대가 단순히 적이라서가 아니라 그 언행에 대한 근본적인 불쾌함이었다.
“…….”
참는 것은 쉽지 않았다.
허나 목숨이 가볍지 않다면… 상대를 베기 전 최후의 요구에 대해 생각 정도는 해볼 수 있다.
이벽은 자신이 이 이상 ‘알아야 할 사실’들이 있는가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이 상황에서 무언가를 귀로 전해 듣는들 큰 의미가 있으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저 몸으로 부딪칠 뿐이다.
“알고 싶은 게 딱히 없—”
끼긱, 끼기긱, 타앙.
허나 그때였다.
등 뒤에서 광인들이 이벽을 덮쳤다. 이벽은 즉시 베어내려 했으나 일순 검이 멈추었다.
몰골들이 정상이 아니었다.
이벽을 덮친 것은 ‘살아있는 광인’이 아니라 이미 죽은 ‘광인의 시신’들이었던 것이다.
‘…강시!’
슈슈슈슉.
“지금이다 혈 매!”
그때 정면에서 화살이 쏘아졌다.
탓, 이벽은 측면으로 몸을 뺐다.
휘리릭.
허나 그 순간 뱀처럼 날아든 채찍이 다시 이벽의 검을 휘감았다. 검로를 봉쇄한다.
이벽은 즉시 강기를 부풀려 채찍을 끊어내려 했다. 그러나 그때 이미 피한 화살이 ‘허공에서 휘었다’.
“……!”
화살이 다시 이벽을 향했다.
타앙, 끼긱, 끼기긱.
이어 강시들 역시 땅을 박차며 다시 이벽에게로 쇄도했다. 죽은 자는 몸을 아끼지 않는다.
“뒈져버려 이 개자시이이익—!!!”
채찍을 든 이가 외쳤다.
“…….”
현재 이벽은 청강유엽공이 아닌 적파심공의 내력을 다루고 있으므로, 경신법을 펼치는 것은 여의치 않았다.
으득.
이벽은 이를 악물었다.
이내 결국 선천의 힘을 찢었고 목천의 영역에 접어들었다. 주변의 시간이 서서히 느려졌다.
도살지도(屠殺之刀).
사초식, 압(壓).
후욱, 퍼어엉.
압의 초식과 함께 적파심공의 강기가 산산조각 나며 동시에 검을 휘감은 채찍이 터져나갔다.
우우웅, 타앙.
내력이 일대를 짓눌렀다.
날아들던 화살이 훅 추락했다.
서걱, 서걱, 끼기긱.
또한 강기의 파편들이 강시들을 할퀴고 지나갔다. 허나 강시들은 온몸이 난자되면서도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이벽의 초식 역시 아직 끝난 것은 아니었다. 그 순간, 이벽은 화영지정을 떠올렸다.
휘이이.
기억 속에 각인된 곡조가 흘렀다.
화악.
그리고 화영검무의 꽃이 피었다.
혈기가 가라앉았으며, 적파심공의 강기는 모두 탐스런 꽃잎이 되어 하늘하늘 흩날렸다.
후욱.
꽃잎은 아무것도 베지 못한다.
허나 강시의 몸에 닿은 그 순간.
끼긱, 끼기긱.
살과 뼈를 가르는 강기에도 전혀 고통스러워하지 않던 강시들이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팔이나 다리, 혹은 어느 부위가 되었건, 꽃잎이 스치는 순간 강시의 몸이 축 늘어졌다.
그것은 마치 꽃잎에 닿은 그 부분만 다시 ‘시체로 되돌아가는 듯’했다. 또한.
스윽.
꽃잎이 어느 강시의 머리에 스쳤다. 풀썩, 강시가 쓰러졌으며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끼기긱, 끼긱.
강시들이 황급히 물러났다.
명백히 꽃잎을 두려워했다.
“이게… 대체.”
활을 든 사내가 중얼거렸다. 난데없이 피어난 꽃잎에 넋이 나간 듯했다.
“…….”
허나 이벽은 그러한 여유를 용납할 생각이 없었다. 청강유엽공을 일으켰고 그 즉시 땅을 박찼다.
타앙.
“헛?!”
사내가 부랴부랴 활을 당겼다.
허나 급하게 쏜 화살 따윈 굳이 피할 것도 없다. 이벽은 가볍게 쳐내었다.
타앙.
“이, 이리 와라, 혈 매!!”
활을 든 사내가 등을 보였다.
그대로 채찍을 든 이를 안은 채 도망치려 했다. 경신법은 예사롭지 않았다.
허나.
이미 목천의 힘을 끌어올린 이상, 의미 없는 추격전을 길게 끌 이유는 없었다.
우웅.
이벽은 용천혈을 비웠다.
타아아앙.
이벽의 몸이 벼락처럼 쏘아졌다.
그것은 앞서 취풍신개에게서 얻어낸 일보와 이벽의 청강유엽신법이 하나로 엮어진 ‘쾌보’였다.
서걱.
“…커억.”
그리고 이벽은 검을 뻗었다.
공간을 점하는 쾌보의 속도가 고스란히 실린 검이 활을 든 사내의 등을 베고 지나갔다.
“…….”
이벽의 목적은 두 사람을 한꺼번에 베어버리는 것이었다.
허나 베어지는 그 순간, 활을 든 이가 채찍을 든 이를 저만치 집어던졌다.
“대, 대형—!!!”
“도, 도망…쳐… 혈 매…….”
쿠웅.
허리를 베인 사내가 추락했다.
조금 전 죽은 이들과 마찬가지로 사내는 손에서 활을 떨어뜨렸으므로, 더는 활을 든 이가 아니었다.
이벽은 사내에게 다가갔다.
근육과 장기가 모두 끊어졌으며 척추뼈가 훤히 드러나고 있었다. 어찌 되었든 살 수는 없을 테다.
서걱, 툭.
이벽의 검이 떨어졌다.
그리고 사내의 목이 굴렀다.
“대, 대형… 대혀엉—!!!”
“…….”
그리고 채찍을 든 이가 절규했다.
저벅.
이벽은 다시 걸음을 떼었다.
흠칫, 채찍을 든 이가 흔들렸다.
허나 다음 순간 몸을 일으켰다. 두 발로 선 채 원독에 찬 눈빛으로 이벽을 노려보았다.
도망칠 생각은 없는 듯했다.
소용없는 짓임을 이해한 것이다.
“으… 으아아아아!! 이 개자식, 찢어 죽일, 젓갈로 담가버려도 시원찮을 새끼—!!”
휘익, 휙.
채찍이 마구 휘둘러졌다. 허나.
저벅, 서걱.
저벅, 서걱.
이벽이 한발 다가서며 검을 휘두를 때마다 그 끄트머리가 계속해서 잘려 나갔다.
채찍은 점점 더 짧아졌다.
그리고 이벽이 지척까지 이르렀을 때, 채찍은 이미 채찍이라 부를 수 없게 되었다.
“으악, 아… 아아… 으아아아!!”
툭, 손잡이만 남은 채찍이 손에서 떨어졌으며, 마침내 채찍을 쥔 이 역시 그냥 ‘여인’이 되었다.
“…….”
상대는 여인이었다.
앞서 적파심공의 혈기에 사로잡혀 있던 이벽은 그러한 사실조차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내력을 무리하게 운용한 듯, 여인의 입가에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풀썩, 여인이 다시 주저앉았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듯 눈을 감았다. 허나 여인을 벤 경험은 없었으므로 이벽의 검이 머뭇거렸다.
그리고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뭐해? 빨리 죽여, 개새끼야.”
“…….”
“의형들을 잃고… 내 너 같은 비린내 나는 애송이한테 눈물 콧물 짜면서 목숨이라도 구걸할 줄 알았더냐?”
핫, 여인이 웃었다.
목소리에선 원독과 체념이 교차하고 있었다. 이벽은 문득 궁금해졌다.
“의형제… 당신들에게도 그런 도리 같은 게 있소?”
“…뭐?”
“산적인지 혈교도인지, 당신들이 정확히 뭐 하는 이들인지는 모르겠소만, 의형제가 중하다면 저런 몰골이 되어 살지도 죽지도 못한 부하들에 대한 도리는 없소?”
이벽은 한켠을 돌아보았다.
살아남은 광인과 아직 죽지못한 강시들은 멀찍이 선 채 자신들이 왜 이곳에 있는지조차 모르는 모양이었다.
“핫, 미친 소리. 네놈은 가축에게 의리를 따지느냐? 하물며 죽인 것은 내가 아니고 네놈인데 왜 나한테 지랄이냐?”
여인이 코웃음을 쳤다.
“…….”
이벽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조금 전부터 감돌던 불쾌함의 정체를 이해했다. 그것은… 짐승 같은 악인들이 보이는 ‘나름대로의 도리’ 때문이었다.
그것은 마치.
오히려 이벽을 괴물이라고 주장하는 듯했다. 앞서 칠독문을 베었을 때와 다르지 않은 짜증이 감돌았다.
“퉤!”
여인이 이벽의 발치에 피 섞인 침을 뱉었다. 히죽 웃었다.
“왜? 꼴에 사내라고 죽이기 전에 재미 좀 보고 싶어졌냐? 물어뜯어 줄까?”
“…죽고 싶으면 다시 무기를 들고 덤비면 될 게 아니오? 말과 행동이 서로 어긋나고 있는 것 같군.”
“…뭐?”
이벽은 돌아섰다.
저벅, 멀어지기 시작했다.
“크—”
등 뒤로 분에 찬 신음이 이어졌다.
타앗.
“으으아악!! 이 건방진 새끼—!!”
여인이 달려드는 기척을 감지한 순간, 이벽은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여인은 어느새 다시 ‘비수를 든 이’가 되어있음을 확인했다.
후웅.
“으아아아아—!! 뒈져버려!!”
강기를 씌운 비수가 휘둘러졌다.
허나 그 순간 이벽이 몸이 곡의 묘리로 휘어졌으며, 비수는 허공을 갈랐다.
이내 이벽은 다시 적과 정면으로 마주했다. 그리고.
청강유엽검식(淸江流葉劍式).
회검제일식(回劍第一式).
곡검(曲劍).
회수되는 검이 함께 휘어졌다.
서걱, 잘린 목이 하늘을 날았다.
풀썩, 그리고 목을 잃은 몸뚱아리가 땅으로 추락했고 잠깐의 경련 끝에 널브러졌다.
“…….”
이벽은 잠시 시신을 내려다보다가 이내 돌아섰다.
다시금 계곡에 몸을 담그고 싶었으나, 우선은 남은 광인과 강시들을 마저 처리해야 한다.
또한.
물로 씻어낸다고 해서 피 냄새가 지워지리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 * *
사파무림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신 사패련이 개파식을 선언한 날이 하루하루 다가오며 각지의 세력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허나 본래부터 흑천방의 세력권이었던 광서무림을 시작으로, 이내 하나둘 사패련을 향해 대표를 파견하기 시작했다.
전 사패련주의 후계인 비룡대주가 사패련을 되찾기 위한 전쟁을 선언했다는 소문이 퍼졌으나, 누구도 그것이 가능하리라 생각지는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전(前) 사대세력 중 하나인 해남검파마저 대표를 파견했다는 소문이 사파무림을 강타했다.
일찍이 흑천방의 독단적인 움직임과 녹림의 사패련 합류에 불쾌한 기색을 보이던 해남검파였으나, 결국은 대세를 어찌할 수는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그리고 그 시점에서 이미 사파무림의 절반 이상이 신 사패련에 넘어갔다고 봐도 무방했다.
허나 아직까지도.
움직이지 않는 이들이 있었다.
이내 사파무림인들의 시선은 강서성을 향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전(前) 사대세력의 행방에 귀추했다.
“그래, 어찌들 생각하나? 흘흘!”
암영각주 천막심이 말했다.
“흑천방주… 아니, 신 사패련주 맹철극이가 우리더러 죽기 싫으면 알아서 기라는군. 허나 ‘애송이’는 사패련을 다시 뒤집어놓겠노라 선언했네.”
“…….”
암영각 오층.
그곳은 각주의 처소였으며, 둘러앉은 이들은 각각 암영각의 동서남북을 둘러싼 네 마을의 촌장에 해당하는 이들이었다.
“대체 애송이가 무슨 수로 독왕의 이름을 빌렸는지는 모르겠네만… 뭐, 당장에 정파무림 돌아가는 꼴만 봐도 그렇고 딱히 정파의 뒷배 같은 걸 믿고 뻗대는 모양새는 아닌 듯하더군.”
“…….”
하물며 본래 비룡대주의 뒷배라 할 수 있었던 하오문은 순식간에 종적을 감추었으며, 수상한 동향을 보이고 있었다.
즉, 비룡대주는 ‘혼자’였다.
그에 대해서는 이미 이곳에 자리한 모든 이들이 각자의 소식통을 통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니 우리도 슬슬 결정해야겠지. 신 사패련을 인정하고 머리를 조아릴지, 아니면 애송이와의 약조를 생각해 계속 뭉기적거리고 있을지 말일세.”
흘흘, 천막심이 다시 웃었다.
“자, 우리 촌장님들께서는 어서 의견을 좀 내보시게. 우리 암영각이 살아남기 위해선 대체 어떻게 하는 게 좋겠나? 응?”
“…….”
침묵은 좀처럼 깨지지 않았다.
결정을 내리는 것은 결국 각주의 뜻이며, 따라서 각주의 의향을 이해하지 못한 채 함부로 입을 열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각주님.”
그때였다.
마지못해 입을 연 것은 서촌의 촌장이자 천막심의 아들이며, 근래에 암영각의 3호가 된 천소진이었다.
“그래, 서촌장. 어서 말하시게.”
“아니… 전 이해가 안 되는데요. 그게 왜 고민거리입니까? 고민할 여지가 전혀 없지 않습니까?”
“으응? 어째서 그렇지?”
“애송이 하나가 혼자서 사패련을 뒤집어놓겠다니… 솔직히 어처구니가 없는데요.”
혼자서 사패련을 친다.
그것은 무모하다 못해 광오한 이야기였다. 또한.
천소진은 기억을 떠올렸다.
그야 나이를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재능을 지닌 녀석이었지만, 그래봐야 고작 암기 몇 자루에 애를 먹던 애송이였다.
겁도 없이 암영각의 등반에 도전한 놈과 붙었을 때는 자신이 먼저 패배를 인정하긴 했어도, 그것은 실력이 아닌 잔머리에 의한 결과였다.
“이보게, ‘그’ 혁군악이 고작해야 맹철극 따위에게 쓰러졌네.”
허나 천막심이 다시 말했다.
“실제로 일어나기 전까지,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으리라곤 누가 감히 예상이라도 했나?”
“그, 그야 물론…….”
“그렇지? 그렇다면… 이번에는 반대로 맹철극이 애송이에게 쓰러질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흘흘흘!”
“…….”
천소진은 입을 다물었다.
천막심은 그의 어머니이지만… 각주로서의 천막심은 언제나 그 속내를 쉬이 헤아릴 수 없는 존재였다.
“아니, 왜 그리들 말이 없누? 그래, 그렇다면야 지금은 누구보다도 자네의 의견이 듣고 싶군.”
그때였다.
천막심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우측에 앉아 있는 사내를 향했다. 그는 남촌장이자 암영각의 2호인 공손욱이었다.
“그래, 욱 서방. 자네 생각은 어떤가? 최근에는 딸아이 성화에 못 이겨 애송이를 돕는다고 무려 남궁세가까지 다녀오지 않았나?”
“…….”
공손욱이 쓰게 웃었다.
일찍이 사파무림의 세력판도에는 섣불리 ‘개입하지 않는 것’이 각주가 내린 방침이었다.
예의 사건은 비록 정파무림에서 일어난 일이었으나… 비룡대주를 도왔다는 점에서는 퍽 아슬아슬한 일이었다.
“자, 말해보게 남촌장. 몇 개월 만에 다시 만난 그 아이는 과연 어떻든가? 새끼 용의 앞다리라도 자라났던가? 응?”
“…제 생각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