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196)
202화. 어색한 귀가
“커억… 커어억!”
혁군악의 창끝에 옆구리를 관통당한 ‘혈마’가 온몸을 버둥거렸다. 허나 그 목숨은 이미 끊어진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 모습은 차라리.
꼬챙이에 꿰인 물고기와 같았다.
“크, 크하핫! 크핫! 쿨럭!”
그리고 마침내 최후를 피할 수 없음을 스스로 인지한 듯, 혈마가 피를 토하며 웃었다.
“워, 원통하구나! 커헉, 그, 그러나 이대로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나의 대계는… 결코! 너희 버러지들 따윈… 감히 상상도 못 할—!”
“아, 뭐. 그러던가.”
서걱.
다음 순간, 이진천이 다가왔다. 그의 검이 번쩍였고, 혈마의 목이 툭 떨어졌다.
“상상도 못 할 암중모략 꾸미느라 수고 많았고 저승 가서 못다 한 대계 많이 펼치쇼~”
“…….”
“자, 이제 끝. 진짜 끝.”
마침내 혈마가 죽었다.
탁탁, 이진천이 손을 털었다.
스스로를 명왕이라 주장하던 악적임에도 역시 목이 잘리고 허리가 뚫린 채로 되살아날 힘은 없는 듯했다.
“…….”
이벽은 주변을 살폈다.
진짜 혈마가 죽었고, ‘가짜 혈마’이자 혈마의 부하로 추정되는 맹상태 또한 일찌감치 이진천에 의해 목이 달아났다.
또한 일찍이 강시가 되었던 흑천방주 맹철극도 기력을 다해 마침내 평범한 시신으로 돌아간 듯했다.
그리고.
터억.
이벽의 어깨에 솥뚜껑 같은 손이 얹어졌다.
“클클, 미안허이, 비룡대주. 조금 아팠지? 내 본의는 아니었다네. 어떻게든 혈마 놈이 눈치채지 못하게 하려다 보니…….”
“…….”
패왕 혁군악이 말했다.
안색은 여전히 초췌했으되 그는 강시도, 시신도 아니었다.
“고생했다, 막내야.”
그리고 이진천이 말했다.
허나 이벽은 두 사람에게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상황의 변화는 갑작스러웠다.
눈 깜짝할 사이.
모든 게 ‘저절로’ 해결되었다.
“쯧쯧… 아예 넋이 나갔구만. 무리도 아니지. 어린 것이 어찌 고생을 했으면…….”
혁군악이 혀를 찼다.
“막내야.”
그리고 이진천이 다시 말했다.
“…네, 문주님.”
쿡.
그리고 그 순간.
이진천의 손이 뻗어졌다.
“일단 자라, 자는 게 약이다.”
“……!”
수혈(睡穴)을 집혔다.
이벽은 선천의 힘에 의해 몸을 보호받는 자신에게는 점혈이 그리 유효하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허나.
후욱.
이진천의 손끝을 타고 내력이 파고들었다. 그리고 선천의 힘은 거짓말처럼 그에 저항하지 않았다.
스르륵.
이내 몸이 무너졌다.
눈이 감기며 시야가 깜깜해졌고 의식이 빠르게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다.
‘…안 된다.’
허나 이벽은 이를 악물었다.
마침내 위협은 끝났다고 해도.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이대로 잠들어선 안 된다는 직감이 스쳤다.
벌떡.
이벽은 눈을 떴다.
그리고 상체를 일으켰다.
“……?”
허나.
눈을 다시 떴을 때, 그곳은 이미 사투가 펼쳐졌던 지하 동공이 아닌 전혀 다른 장소였다.
낯선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아니, 낯설지 않다.’
그러나 곧 생각을 달리했다.
그것은 익숙한 천장이었다. 또한.
죽음의 냄새는 온데간데없었으며, 그 대신 주변에서는 약재의 냄새가 감돌았다.
그 또한 익숙한 냄새였다.
“……!”
이벽은 얼른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벽면을 가득 채운 목재 서랍들과 더불어 주렁주렁 매달린 각종 약재들을 보았다.
역시 기억에 있는 풍경이었다.
결코 잊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이곳은… 화정촌, 이진천의 약방이었으며, 이벽이 이진천으로부터 처음 낙검진천신공을 전수 받은 장소이기도 했다.
“…꿈인가.”
이벽이 말했다.
허나 그때였다.
덜컹.
약방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인영 하나가 들어섰다.
“…어?”
들어선 이가 목소리를 내었다.
이벽과 눈이 마주치자 잠시 침묵이 일었다. 싱긋, 이내 그녀의 눈이 호선을 그었다.
“꼬맹이. 드디어 눈 떴냐?”
“…사저.”
“오냐, 꼬맹아.”
그녀는 제갈소미였다.
낙검문의 대제자이자 이벽의 사저이기도 했으며, 화정촌을 나서던 이벽에게 무엇보다 목숨을 우선시하라며 신신당부를 했던 바로 그녀였다.
“사저가 왜… 내 꿈에 나오지?”
이벽이 무심코 말했다.
제갈소미가 허리에 손을 얹었다.
“글쎄, 네가 날 마음속 깊이 사모해서 그런 게 아닐까?”
“…….”
“농담이야, 꼬맹아. 꿈 아니니깐 정신 차려. 네가 바깥에서 무슨 짓을 하고 다녔는진 모르겠지만… 이젠 다 끝났어.”
* * *
달그락달그락.
“그래서 말인데, 벽이가 돌아왔으니 촌장님이 소를 잡아서 잔치를 열겠다고…….”
“아니, 그게 무슨 얼척 없는 소리야? 마을에 몇 마리 있지도 않은 송아지를 잡아버리면 내년 농사는 뭐 어떻게 하시려고?”
“아하하, 그러게. 내 뜯어말리느라 진땀뺐다니깐?”
혁대웅이 웃었다.
식탁 위에는 수저가 오고 갔고, 제갈소미와 혁대웅의 대화 또한 함께 오고 갔다.
“뭐, 그래도.”
혁대웅이 시선을 돌렸다.
“어떻게든 되겠지. 소보다 일 잘하는 우리 든든한 막내가 다시 돌아왔으니 말야.”
“…….”
“벽아. 근데 밥 안 먹고 뭐 해?”
“…….”
“…벽아? 듣고 있니?”
이벽은 고개를 들었다.
그제서야 혁대웅을 바라보았다.
낙검문의 사형인 혁대웅의 얼굴은… 당연하게도 패왕가주 혁군악을 닮아있었다.
“…하아.”
침묵 속에서 제갈소미가 한숨을 내쉬었다. 허나 이벽은 여전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자리에 적응할 수 없었다.
화정촌, 낙검문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은 늘 상상 속으로 그리던 일이었다.
허나 그렇기에.
막상 그것이 현실로 다가오자 이벽은 오히려 아직도 상상 속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마치.
같은 밥상에 앉아있음에도 두 사람과 자신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세워져 있는 듯했다.
“큰일이네. 이거 완전… 옛날 그때의 벽창호로 회귀했는데? 아니, 오히려 우리 마을에 처음 왔던 그때보다 더 심각하잖아.”
제갈소미가 말을 이었다.
“으이구, 일 년 넘게 걸려서 겨우 사람 만들어놨더니… 반년 만에 다시 빡대가리가 되어서 오면 어떡하냐?”
후욱.
제갈소미의 주먹이 뻗어졌다.
이벽을 쥐어박으려 했다. 허나.
훅.
“…얼씨구?”
이벽은 피했다.
공격에 몸이 저절로 반응했다.
“지금 피했냐? 피했어? 내력 좀 쓸 줄 안다고 이 못난 사저를 그렇게 괄시하고 천대하고 모욕감을 주겠다 이거지?”
제갈소미의 눈썹이 꿈틀했다.
훅, 후욱.
계속해서 주먹이 뻗어졌다.
허나 이벽은 피했다. 뻔히 보이는 공격을 가만히 앉아 허용한다는 발상을 떠올릴 수 없었다.
덥석.
“그만하지. 사저.”
“……!”
이내 이벽의 손이 제갈소미의 손목을 낚아챘다. 움찔, 제갈소미의 어깨가 흔들렸다.
“이벽… 너……?”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벽아.”
그때 혁대웅이 입을 열었다.
“그러지 마. 손 놔 얼른. 사저한테 그게 무슨 짓이야?”
“…….”
흠칫, 이벽의 표정이 흔들렸다.
“미안…하군.”
이벽은 제갈소미의 손을 놨다.
그리고 이벽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공간은… 더 이상 자신이 있어선 안 될 자리 같았다.
드륵.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처소로 향할 요량이었다. 허나.
우당탕, 쿵쾅.
그때, 요란한 소리와 함께 마당의 대문이 열렸다. 그리고 건장한 체격의 사내가 땅을 구르듯 뛰어 들어왔다.
“형님!! 형니이이임—!!”
아니, 사내가 아닌 소년이었다.
“드, 드디어 눈을 뜨셨군요!! 크허헝! 다행입니다—!! 호, 혹시 크게 다치셨나 해서……!”
그리고 그 소년은… 마을 촌장의 아들인 장석두였다. 건장하던 체격은 못 보던 사이 더 커져 있었다.
“……!”
이벽은 또다시 당황했다.
“벽아, 봐봐.”
허나 그때 이벽의 등 뒤로 혁대웅이 다가섰다.
“석두, 진짜 제법이야. 보면 깜짝 놀랄걸? 저 녀석이 네가 돌아오기만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니?”
목소리는 퍽 가벼웠다. 가라앉은 분위기를 어떻게든 만회하려는 듯했다.
“석두야, 뭐 하니? 네 존경하는 ‘형님’께 그간에 노력한 성과를 보여드려야지?”
“네, 네, 대웅이 형!”
장석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마당 한켠에 놓인 목검 한 자루를 꺼내 들었다. 꿀꺽, 긴장된 얼굴로 침을 삼켰다.
훙, 후웅.
“핫, 하압!”
이내 목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한낮의 햇살을 가르며 펼쳐지는 것은… 선우세가의 기초검공인 청강수련검식이었다.
물론, 가르친 사람은 이벽이었다.
또한 그 자세는 퍽 투박했으나, 아홉 개의 방위에 검을 얹는다는 검공의 핵심은 잘 담겨있었다.
훙, 후웅.
“……!”
허나 뿐만이 아니었다.
반복해서 휘둘러지는 검세에서 이벽은 희미한 내력의 기척을 느꼈다.
“어때? 내 말이 맞지?”
혁대웅이 말했다.
“고작해야 기초토납법만을 가르쳤을 뿐인데… 정말로 혼자서 내력을 깨우치고 다루기 시작했어.”
“…….”
무공에 입문하기에는 퍽 늦은 나이였으나, 장석두의 근골은 나쁘지 않았다.
그것은 이미 예전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허나.
“어쩌면… 석두의 재능은 우리 생각보다도 훨씬 대단한 걸지도 몰라.”
내력을 깨우치는 것은.
근골과는 별개의 영역이었다.
훅, 후욱.
그리고 장석두의 손끝에서 계속해서 익숙한 검로가 펼쳐졌다.
땀을 흘리자 서서히 긴장이 풀리는 듯, 마침내 일말의 어색함마저 사라졌다.
서걱.
“……!”
허나 그때였다.
장석두의 목검은 진검이 되었고.
알 수 없는 누군가의 몸뚱아리가 사선으로 베어졌다. 피와 내장이 분수처럼 솟구쳤으며.
푸슈욱.
장석두의 손이 붉게 물들었다.
움찔, 이벽은 고개를 흔들었다.
“…….”
그것은 물론 헛것이었다. 허나.
“…그만.”
이벽이 말했다.
“그만해라, 장석두.”
“네… 네?”
“당장 그만하라고 했다.”
이벽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멈칫, 장석두의 검이 멈추었다.
“…….”
그리고 마당에는 다시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훅, 이벽은 서둘러 돌아섰다.
“…피곤하군. 들어 가보겠다.”
* * *
이벽은 처소로 향했다.
낙검문 내에 자리한 그의 방은 그대로였고, 반년이나 자리를 비웠음에도 먼지 한 톨 없었다.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언제 돌아와도 쉴 수 있도록.
“…….”
이벽은 침상에 앉았다.
그리고 가부좌를 틀었다.
내기를 다스리기 시작했다.
사형제들의 말에 따르면 이진천에 의해 업혀 온 자신은, 대강 이틀 정도를 약방에 드러누워 있었노라 했다.
허나 귀주에서 이곳 낙검문까지의 거리를 생각하면, 얼마나 오랫동안 의식을 잃고 있었는지를 가늠하기는 어려웠다.
우우웅.
이내 선천의 힘이 흘렀다.
앞서 사패련에서의 연이은 격전으로 엉망이 된 기혈은 거짓말처럼 치유되어 있었다.
이진천의 손을 거친 모양이었다.
몸 상태는 굳이 운기를 통해 다스릴 필요도 없을 만큼 완벽했으나, 이벽은 운기를 풀지 않았다.
다스려야 할 것은.
몸보다도 오히려 마음이었다.
“…….”
어떤 미사여구를 붙인들.
검의 본질은 결국 사람을 베는 물건이며, 검 한 자루를 들고서 이벽은 수라의 길을 걸었다.
많은 이들의 목을 베었고 피를 묻혔다. 그리고 다시는 이곳, 낙검문으로 돌아올 수 없음을 받아들였다.
헌데 눈을 뜬 순간.
몸이 옮겨져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억지로 몸뚱아리를 이곳에 붙들어둔들… 이미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이벽은 알고 있었다.
피 냄새는 지워지지 않으며.
은원 역시 사라지지 않는다.
자신은 이미 무림의 논리 속에 말려들고 말았으므로, 끝끝내 ‘화정촌의 이벽’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우우웅.
마음에 불안이 차올랐고.
선천의 힘이 그것을 가다듬었다.
같은 운기를 몇 번이고 반복하며, 이벽은 생각을 정리했다. 더 늦기 전에 다시 마을을 떠나기로 뜻을 굳혔다.
스윽.
허나 그즈음이었다.
이벽은 불현듯 눈을 떴다.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과거 자신이 낙검문을 떠난 계기가 되었던 반년 전의 그날과 꼭 같은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