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201)
207화. 잘못된 생각 (2)
콰앙, 콰앙.
도끼가 공기를 갈랐다.
쩌저적, 쩌적.
능숙한 도끼질이 나무 기둥의 같은 곳을 연신 두드렸고, 이내 서너 번 만에 나무가 기울어졌다.
쿠우웅.
쓰러진 기둥이 땅을 두드렸다.
“…….”
혁대웅은 정말로 나무를 했다.
허나 물론, 이 새벽에 ‘나무를 하러 나왔다’는 말이 진심일 리는 없었다.
아마도.
바깥으로 뛰쳐나가는 이벽의 뒷모습을 우연찮게 발견하고서 부랴부랴 쫓아온 것일 터였다.
쩌억, 쿠웅.
“후우~ 상쾌하다, 상쾌해. 새벽에 힘쓰는 것도 그렇게 나쁘진 않단 말이지.”
“…….”
“사저 말마따나 말야. 요새 날이 더워서 땀을 좀 덜 흘렸더니… 몸이 만두처럼 푹 퍼져서 말이야.”
두 그루의 나무를 쓰러뜨린 뒤 혁대웅이 이벽을 돌아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횃불에 비치는 표정은.
퍽 능청스러운 웃음이었다.
저벅.
어쨌거나 이벽은 다가섰다.
가만히 보고만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이므로, 혁대웅이 쓰러뜨려 놓은 나무를 손질하려 했다.
물론 여분의 도끼는 없으나.
내력을 쓰면 어려울 것은 없는—
“벽아, 뭐 하는 거야?”
허나 그때였다.
“…나무를 다듬어야 하지 않나?”
“아니, 아무것도 하지 마, 너는.”
다시 혁대웅이 말했다.
목소리는 퍽 단호했다.
“예전에… 너랑 같이 나무하러 갔었을 때 말야. 내가 말하는 도중에 네가 갑자기 픽 쓰러져버렸던 적이 있었잖아?”
“……!”
이벽은 기억을 돌이켰다.
퍽 오래전 이야기같이 느껴졌으나, 실상은 채 일 년이 채 지나지 않은 이야기였다.
그날.
두 사람은 함께 나무를 하러 낙검문을 나섰으며, 혁대웅은 이벽에게 ‘사형제란, 사 자 붙은 형제’라는 말을 해주었다.
—그러니 네가 우리를 지켰듯, 앞으로도 나는 너를 지킬 거야. 왜냐하면, 형제가 서로를 지키는 건 당연하니까.
허나.
채 극복하지 못한 기억에 시달리고 있던 이벽은 그날 이후 깊은 잠에 빠졌고, 몇 개월을 악몽 속에 빠져있었다.
“나 원, 내가 그때 얼마나 식겁했는지 알아? 사저한테도 된통 털리고… 그니까 우리 허약한 사제, 이제 아무것도 하지 마.”
“…….”
이벽은 말문이 막혔다.
엉거주춤 서 있다가 이내 베어낸 나무의 그루터기 위에 주저앉았다.
쿵, 쿠웅.
도끼를 휘두르는 혁대웅의 뒷모습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단련된 등의 움직임은 여전히 역동적이었다.
문득 생각 하나가 스쳤다.
어쩌면 그때와 마찬가지로.
‘나무를 하러 왔다’는 것은… 혁대웅에게 있어 ‘무언가 할 말이 있다는 것’의 완곡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벽아.”
그리고 생각대로.
혁대웅이 목소리를 달리했다.
“미안해. 정말로.”
“…갑자기 무슨 말이지?”
“사실은… 네가 무림에서 ‘어떤 길’을 걸었는지 대강은 알고 있어. 나도, 사저도.”
“……!”
“그야 모르기도 어렵지. 회택 시내에만 나가도 혜성같이 나타난 사파의 신룡 비룡대주의 이야기가 온통 떠들썩한데 말야. 하하…….”
혁대웅이 힘없이 웃었다.
알고 있으나 모른 체한다.
그것은… 화정촌이나 낙검문에는 어울리지 않으며 또한 필요하지도 않은 이야기이기 때문이었다.
허나.
모두가 모른척한다고 해서 그 모든 일들이, 또한 ‘수라의 길’이 없었던 일이 될 수는 없다.
문득 이벽은 혁대웅의 시선을 피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쩌적, 쿠웅.
또 한 그루의 나무가 쓰러졌다.
“그러니까… 네가 무림에서 무슨 일을 겪었건, 그건 결국 다 내 탓인 거야.”
“…그건 또 무슨—”
이벽은 다시 혁대웅을 향했다.
허나 그 순간, 말문이 막혔다.
퍼억, 우지끈!
혁대웅은 주저앉아 있었다.
베어낸 나무를 손질한다. 허나.
도끼는 한켠에 내팽개쳐져 있었다. 말인즉슨, 혁대웅은 ‘맨손’으로 나뭇기둥을 쪼개버린 것이다.
“……!”
“나는… 내 할 일을 내팽개쳤고, 단전과 내력을 잃었단 핑계로 내 자리에서 도망치려 했어.”
혁대웅이 담담히 말을 이었다.
“그리고 가능하면 평생 이 마을에 머무르고 싶었어.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이 마을을, 아이들을, 문주님을, 그리고 사저를 정말 좋아하니까.”
“…….”
콰앙, 쩌적, 쩍!
그리고 혁대웅이 맨손으로 나무를 잡아뜯기 시작했다. 나뭇기둥은 혁대웅의 손가락에 의해 종잇장처럼 갈기갈기 쪼개어졌다.
물론, 타고난 용력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한들 단순히 힘만으로 그러한 일이 가능할 리 없었다.
그 손에서 느껴지는 것은.
명백한 내력의 기척이었다.
“하지만.”
“…….”
“그래선 안 됐던 거야. 아무리 잊으려고 해도… 나는 철탑패왕 혁군악의 아들이고 패왕가의 혈통임을 부정할 수는 없으니까.”
콰아앙, 쩌억!
그리고 혁대웅의 우악스런 손이 나뭇기둥의 일부를 짐승의 거죽마냥 길게 ‘잡아뜯었다’.
뜯어낸 파편을 쥐고서.
저벅,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에게 내 일을 떠맡겨버렸어.”
우우웅.
파편이 잘게 진동했다.
희미한 빛을 품기 시작했다.
“내가 흘렸어야 할 피를 대신 흘리고 있을 너를 생각하면서, 나 자신의 나약함을 알았어. 그리고… 내 안에 ‘막혀있던 것’을 깨달았어.”
“…낙검진천신공을 얻었군.”
이내 이벽이 답했다.
마침내 막힌 말문을 다시 열었다.
“그렇게 됐어. 하하.”
그리고 두 사람은 눈을 마주쳤다.
이벽은 혁대웅의 몸 안에서 끊이지 않는 내력의 고리를 형성하고 있을 선천의 힘을 생각했다.
마음의 돌을 치우고.
관계 속의 자신을 받아들인다.
“축하한다, 혁대웅.”
“…아핫, 머쓱한걸. 뭐, 사저에겐 아직은 비밀이지만 말야. 너뿐 아니라 나까지 앞서나간 걸 알게 되면… 그 성격에 식음을 전폐하고 기절할 때까지 칼질만 해댈 게 뻔하잖아?”
“그것도 그렇군.”
킥킥, 혁대웅이 웃었다.
두 사형제는 마주 웃었다.
우우우웅.
그리고 다음 순간, 혁대웅이 쥐고 있는 파편 위로 서린 빛줄기가 보다 선명해졌다.
물론, 명백한 강기였다.
훗, 혁대웅이 어깨를 으쓱했다.
“벽아, 부딪혀 볼래?”
“……!”
“한 번 해보자. 사실은 어제 맨몸으로 너한테 된통 깨지면서 은근히 분했거든. …그렇다고 너무 세게 하지는 말고. 하핫.”
휘오오오.
그리고 다음 순간.
이벽을 향해 뻗어진 나뭇기둥의 파편이 서서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강기의 빛이 완전한 원을 형성했다.
‘…패왕의 수레바퀴.’
이벽은 혁대웅을 바라보았다.
여러 복잡한 감정들이 교차하는 가운데, 숨길 수 없는 호승심을 읽어내었다.
또한.
이벽 역시 비슷한 감정이 스쳤다.
사패련의 지하 속에서 ‘죽음’을 위장한 채 혈마에게 붙어있던 혁군악의 위용을 떠올렸다.
저벅.
이벽은 다시 일어섰다.
철컥, 검자루를 잡았다.
휘오오오오.
침묵 속에서 이벽은 회전과 함께 바람과 나뭇잎 따위를 빨아들이는 수레바퀴를 잠시 바라보았다.
타앗.
이벽이 땅을 박찼다. 뽑혀 나오는 검신 위로 푸른 강기가 맺혀들었다.
청강유엽검식(淸江流葉劍式).
발검제삼식(拔劍第三式).
강검(强劍).
콰아아아아앙.
거친 충돌음이 어둠을 흔들었다.
“…큭!”
그리고 그 순간, 혁대웅이 들고 있던 나무 파편이 폭발하며 사방으로 비산했다. 혁대웅이 두어 걸음 뒤로 물러섰다.
허나.
이벽의 승리라 할 수는 없었다.
터엉, 달려든 기세만큼 튕겨나듯 뒤로 밀려난 이벽의 몸이 일장 바깥으로 착지했다.
“…….”
결과는 비긴 것에 가까웠다.
허나 이벽은 생각했다. 혁대웅의 병기가 그저 나무파편이 아닌… 좀 더 제대로 된 창이었다면.
“어때? 꽤 단단하지?”
혁대웅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군. 단단하군.”
이벽 또한 마주 웃었다.
철컥, 검을 거두었다.
단 일합에 불과했으나 서로에게 알고자 하는 것을 확인하기에는 충분했다.
그리고.
이후 약 이각에 걸쳐 혁대웅은 베어낸 나뭇기둥들을 손질하고 밧줄로 동여매었다.
“벽아, 이 정도면 안심이 되니?”
그리고 문득.
대수롭지 않게 혁대웅이 말했다.
“네게는 폐만 잔뜩 끼친 못난 사형이지만… 네가 짊어져야만 하는 은원이 있다면, 이제부터는 내가 같이 짊어질게.”
“……!”
“싸울 일이 있으면 내가 싸워줄게. 그리고 혹시 무림으로 다시 나가야한다면… 다음 번에는 내가 나갈게. 그러니까…….”
“…….”
“여기 있어도 돼.”
끙차, 혁대웅이 손질한 나무 묶음들을 어깨에 얹고 도끼를 챙긴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도 불안하다면, 강해지자.”
그리고 이벽을 돌아보았다. 체구와는 어울리지 않는 앳된 얼굴이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보다 강해지고 더 강해져서, 말도 안 되게 강해져서, 천하의 어느 누가 와도 소중한 우리 마을과 사문에 손가락 하나 대지 못하도록… 우리가 지키는 거야.”
그것은.
퍽 광오한 말이었다.
허나 혁대웅의 눈빛에는 흔들림이 없었으며, 창 한 자루로 사파의 질서를 만들어냈던 패왕의 그것을 닮아있었다.
“가자. 얼른 횃불 챙기고. 이러다 날 새겠다. 사저한테 들키면 할 말이 궁하단 말야~”
“…알았다.”
이윽고.
두 사람은 마을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처소에 누운 순간, 이벽은 마음을 어지럽히던 피 냄새가 사그라들었음을 깨달았다.
“…….”
그 많은 목숨을 베고도, 무림을 벗어난 평화로운 마을에서 살아갈 자격이 자신에게 있을지는 여전히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허나.
아예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모르되, 인연의 끈은 깊고 질겨서 마을에서 눈을 뜬 순간, 이벽은 다시 그 관계 속의 일원이 되었다.
또한.
‘함께 짊어져주겠다’고 했다.
고작해야 그 한 마디에 떠나야만 한다는 결심이 무색하게끔, 마음이 편해지는 자신이 있었다.
이벽은 언제였는지도 모르게 잠에 들었다. 그리고 문득 잠결 속에서 목소리가 스쳤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죠. 가능하다면… 무림에서의 나쁜 일 같은 건 어떻게든 잊어버리는 게 제일이라 생각해요.
그것은 언제였던가.
언미희가 해주었던 말이었다.
“…….”
번뜩, 이벽은 눈을 떴다. 새소리와 함께 창밖으로 해가 뜨고 있음을 확인했다.
잠에 든 것은 한 시진 안팎에 불과했으나 이벽은 퍽 상쾌한 기분을 느꼈다.
이벽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으로 나온 뒤 빗자루를 잡았다.
슥슥.
아무도 없는 마당을 쓸었다.
덜컹.
그리고 일각이 지났을 즈음, 제갈소미가 밖으로 나왔다. 하품을 하다말고 이벽과 눈이 마주쳤다.
“…얼씨구?”
제갈소미가 눈을 껌뻑였다.
“좋은 아침이다, 사저.”
“…….”
잠깐의 침묵이 맴돌았다.
이내 제갈소미가 배시시 웃었다.
“우리 막내, 이제야 좀 대가리… 는 아니고 제정신이 드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