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241)
247화. 아미의 위기 (1)
“어떻소, 두 분? 이대로 순순히 사문으로 다시 돌아가시는 것은?”
점창의 장로, 유암이 말했다.
“아직 늦지는 않으셨소. 별로 어려울 것도 없는 일이잖소? 그렇게만 해준다면야… 굳이 쓸데없는 피를 흘릴 이유도 없고 말이오.”
“…….”
“아니, 유암 도장께선 대체 무슨 말씀이시오? 순순히 돌려 보내주겠다고?”
허나 그때였다.
정연화와 금령사태의 등 뒤를 포위하고 선 청성 일행의 장로, 공명자가 즉각 반발했다.
“내 어떻게 여기까지 몰아붙였는데… 보내줄 때 보내주더라도 달아나려 한 본보기로 응분의 대가 정도는 치러야 하지 않겠소?”
“…이 여인들은 악적이 아니오. 굳이 필요 이상으로 해악을 끼칠 필요는 없지 않겠소?”
“허허, 쯧! 도장께선 여즉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이고 계시는구려. 마냥 무르다고 해서 도가 아니거늘!”
그리고.
각 세력을 대표하는 두 장로들 사이로 잠시 실랑이가 벌어졌다.
그것은 마치 다 잡은 사냥감의 처분을 두고 두 마리의 맹수가 서로 다투는 듯한 모양새였다.
하아, 정연화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금령사태와 눈을 마주했다. 두 여인 사이에서 잠시 처연한 미소가 오고 갔다.
허나.
이내 눈빛에는 서서히 비장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설령 이 자리에서 뇌수와 간장을 쏟으며 쓰러진다 해도.
도를 위장한 짐승들 앞에서.
아미의 이름을 더럽힐 수는 없다.
이내 금령사태가 눈을 부릅떴다.
“이 더러운—!”
힘껏 일갈하려던 찰나였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잘 모르겠군. 누구라도 좋으니 내게 설명을 좀 해주시겠소?”
불현듯 낯선 목소리가 말했다.
“……?!”
“누… 누구냣—!”
공명자가 즉각 반응했다.
훅, 모든 이들의 고개가 일제히 우측으로 꺾어졌다.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향했다.
“……?”
허나.
퍽 가까이에서 들렸던 목소리와는 달리 인근의 주변에서는 어떠한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절정에 이른 두 장로조차.
기감을 전혀 읽어낼 수 없었다.
“보아하니… 다들 정파에 적을 둔 무인들 같소만. 어째서 서로를 적대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군.”
그때, 목소리가 재차 속삭였다.
부스럭.
그리고 이내 한켠의 어둠 속에서 수풀을 헤치며 죽립을 눌러쓴 인영 하나가 나타났다.
일순 정연화가 기대에 찬 시선으로 인영을 바라보았다. 허나 곧 실망이 스쳤다.
나타난 인영은 고작해야 단 한 명이었으며, 검을 차고 있되 이렇다 할 기세 또한 전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누구냐고 묻질 않느냐—!!”
그때 공명자가 재차 다그쳤다.
“…그저 지나가는 무명소졸이오.”
“뭐, 뭐라…? 무명소졸?”
공명자가 황망한 목소리를 냈다.
한편 사내, 이벽은 퍽 난처함을 느꼈다.
다수의 무인들을 상대로 여인들이 핍박을 받는 모습을 보고서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허나.
소수이자 약자인 쪽이 무조건 옳다고 함부로 단정 지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고로 이벽은 섣불리 개입하기보다는 우선 대화를 통해 상황을 파악하고자 했다.
“빈도는 점창의 유암이라 하오. 동도들 사이에선 백금검이라는 과분한 별호로도 불리고 있소.”
그때, 유암이 말했다.
“…점창이라.”
“지나가는 과객이시라면 그냥 계속해서 지나가길 권하겠소. 이것은 정도맹의 행사이니 말이오.”
유암이 부드러운 웃음을 보였다.
무인이기 이전에 도인으로서, 그저 우연히 마주쳤을 뿐인 무고한 이에게 칼을 들이밀 이유는 없는 것이다.
그렇게.
유암은 고작해야 한 명의 사내를 상대로 별호와 사문에 정도맹의 이름까지 내세우는 스스로의 ‘본심’을 애써 무시했다.
사내는 눈앞에 서 있음에도.
기이할 만큼 기척이 옅었다.
“…….”
철컥.
다음 순간, 이벽이 검을 뽑아 들었다. 흠칫, 두 장로를 포함한 점창과 청성의 무인들이 일제히 반응했다.
저벅저벅.
허나 이벽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대로 공간을 가로지른 뒤, 한켠의 너른 바위 앞에 섰다.
푸욱.
대뜸 땅 위에 검을 꽂았다.
그리고 바위 위에 주저앉았다.
“자, 내가 먼저 검을 놨소.”
“…….”
“눈앞에서 여인들이 핍박받는데 못 본 척 넘어가는 것도 찜찜한 일이라서 말이오. 우선은 대화로 해결해보지 않겠소?”
“…….”
“그러지 말고 이리들 모여 앉아보시오. 보아하니 그쪽의 여인께선 치료가 퍽 시급해 보이는군.”
그리고.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점창과 청성은 물론, 아미의 두 여인들조차 상황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다.
“…핫. 하핫.”
다시, 공명자가 침묵을 깼다.
“웬 미친 작자가… 남의 일에 함부로 끼어들길 좋아하시나 보군. 대화라… 대화 좋지. 헌데 말일세. 우리는 무인이라 검으로 대화를 한단 말이지.”
채앵.
이내 검을 꺼내 들었다.
“자네가 멋대로 검을 놓는다고 해서… 우리가 함께 그래 줄 이유는 없지 않나? 응?”
“…….”
챙, 채앵.
이내 공명자를 따르는 청성의 무인들 또한 일제히 검을 꺼내 들었다.
“자, 마지막 경고일세. 대체 뭘 믿고 나서는지는 모르겠으나… 공연히 험한 꼴 보지 말고 썩 물러가시게.”
“…….”
그렇게.
공명자는 으름장을 놓았다.
허나 그 역시 유암과 마찬가지로, 사내에게 섣불리 달려들 생각을 하지는 못했다.
무엇인가 알 수 없는 스산함이 감돌았으며, 그것은 또한… 언제였던가 한 번쯤 ‘겪어본 것 같은’ 감각이었다.
“…….”
이벽은 답하지 않았다.
다만 여인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쪽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네, 네?”
흠칫, 정연화가 답했다.
“아무래도 저쪽은 대화할 생각이 없는 것 같은데… 그쪽은 스스로 그릇되지 않음을 주장할 생각이 있소?”
“…….”
정연화는 눈치를 살폈다.
사내에게선 분명 별다른 기세가 느껴지지 않았다. 허나 돌아가는 분위기는 무언가가 이상했다.
‘어째서 가만히 놔두는 거지?’
이 상황에 함부로 끼어든 시점에서, 이미 진작에 사내는 칼을 맞고 쓰러졌어도 이상하지 않다.
허나.
조금 전까지만 해도 위세가 등등하던 청성과 점창의 악적들은… 어째서인지 이 사내를 ‘그냥 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듯했다.
“…그쪽도 할 말이 없다면야 나는 끼어들지 않는 편이 낫겠군. 실례했소. 그럼 이만—”
“아, 아니요!”
허나 그때였다.
정연화가 다급히 외쳤다.
“…하, 할 말 있어요!”
“그렇소? 그렇다면—”
“아, 저, 헌데 얘기가 좀 길어서… 혹시 가능하면… 일단 살려주실 수 있을까요?”
“…….”
이벽은 잠시 침묵했다.
보다 강한 힘을 지니게 된 만큼 그 힘을 사용함에 있어서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
어느 한쪽의 말만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는 없—
타아앙.
“하! 어처구니가 없군!”
허나 그때였다.
마침내 공명자가 땅을 박찼다.
“스스로 화를 자초했으니 목숨을 잃더라도 손속이 무자비하다 원망하지는 말거라!”
쐐애액.
신형이 공중을 가르는 한편, 강기가 일었다. 청성 특유의 쾌속한 일검이 이벽을 향해 쏘아졌다.
타앙, 타앙.
그리고 나머지 제자들 또한 뒤를 이어 함께 땅을 박찼다. 열 자루를 넘는 검신들이 바위에 앉은 이벽을 향해 신속하게 파고들었다.
“…….”
훅, 서걱.
허나 그때였다.
“……?!”
사내를 바라보던 정연화의 눈이 거칠게 흔들렸다. 위기의 순간, 땅에 꽂혀있던 사내의 검이 ‘저절로’ 뽑혀 나왔기 때문이었다.
후욱.
그리고 그대로 적들을 향해 쏘아졌다. 달려들던 공명자의 허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커억!”
공명자가 신음을 토했다.
허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다음 순간, 사내의 몸은 거짓말처럼 이미 허공으로 뻗어져 있었다. 검을 낚아챈 뒤, 청성의 제자들 사이를 종횡무진했다.
슥, 서걱.
“커억—!”
“큭, 어억……!”
검신은 쾌속했고.
한없이 자유로웠다.
천하에서 쾌검을 논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청성의 검들이 더욱 빠른 쾌검 앞에 무참히 베어져 나갔다.
그리고.
털썩, 털썩.
다음 순간, 공명자를 포함한 청성의 제자들이 일제히 지면 위로 떨어졌다.
허나 두 발로 착지한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커억! 끄으윽…….”
전원이 땅을 나뒹굴었다.
그리고 신음과 함께, 각자의 검상에서 쏟아지는 피가 땅을 적시기 시작했다.
“…뭐야, 이게?”
정연화가 무심코 중얼거렸다.
말할 것도 없이, 자신들을 추적해오던 청성의 무인들은 결코 약자가 아니었다.
최소한 저런 식으로 쉽게 쓰러질 이들이 아닌 것이다.
아니, 그러나 그런 것보다도.
눈의 착각이 아니라면… 조금 전, 사내의 검이 아주 잠깐이나마 ‘스스로’ 움직였다.
탁.
이내 사내가 지면으로 내려앉았다. 청성의 무인들을 베어내고도 사내에게선 여전히 아무 기세조차 느껴지지 않았으며.
호흡조차 그대로였다.
“…….”
다시 정적이 감돌았다.
허나 그리 길지는 않았다.
“그쪽도 검을 뽑겠소?”
이벽이 반대편을 향해 말했다.
흠칫, 멍한 얼굴을 한 점창의 장로 유암이 그제야 반응을 보였다.
“…이거 터무니없는 무명소졸이셨군. 어쩐지 아까부터 느낌이 쎄하다 했소.”
훗, 쓴웃음을 지었다.
철컥, 이내 검을 뽑아 들었다.
“뭐, 그렇다고 제자들도 있는 판국에 나 혼자 죽어라 도망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말이오.”
“…….”
순순히 물러선다면 이벽은 딱히 쫓을 생각은 없었다. 허나 유암은 무언가 오해를 하고 있는 듯했다.
타앙.
허나 이벽이 채 뭐라고 말을 꺼내기도 전이었다. 유암이 그대로 땅을 박찼다.
“미욱하나마 한 수 부탁하겠소!”
후우욱.
그리고 이벽을 향해 직선의 검을 내뻗었다. 과연, 점창의 검수다운 정직함이었다.
츠츠츠츠.
그리고 다음 순간.
검끝에 강기가 서렸다. 그리고.
잔상이 분화하며 새떼와 같은 무수한 찌르기를 만들어냈다. 또한 백 마리의 새(百禽)란 별호에 걸맞은 일검이었다.
후욱.
허나 마주 내뻗어진 이벽의 쏘아지는 검은 단 하나의 직선에 불과했으며, 정연화의 눈에 비치는 그 선은 금방이라도 짓이겨질 듯 가냘펐다.
콰아아앙.
“…커헉!”
그러나 짓이겨진 것은.
오히려 유암의 검이었다.
충돌과 동시에 새떼의 환영은 무참하게 흩어졌고, 유암의 커다란 신형이 속절없이 뒤로 밀려 날아갔다.
탱그랑.
유암의 검이 부러졌다.
반토막 난 검신이 나뒹굴었다.
역시 천하일절의 직검으로 이름 높은 점창의 검조차 사내의 직검 앞에 두 동강이 나고 말았다.
“커헉… 쿨럭!”
“자… 장로님!”
그리고 주저앉은 유암이 피를 토했다. 이에 제자들이 황급히 주변을 둘러쌌다. 허나 동시에 유암은 직감했다.
그저 ‘파훼’ 당했을 뿐.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았다.
간접적인 내상을 제외하고서는 몸의 어느 한 곳조차 베이거나 부러지지 않은 것이다.
허나 그것은.
정체불명의 사내가 ‘그 정도에서 그치도록’ 손속에 사정을 두었기 때문임을 절실히 실감했다.
“허억… 헉.”
실력의 차이는.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저벅.
그때, 이벽이 한 걸음 다가섰다. 움찔, 유암을 둘러싼 점창의 제자들이 질겁했으나 물러서지는 않았다.
“…….”
주저앉은 유암과 이벽의 시선이 잠시 부딪혔다. 훅, 이벽은 턱짓으로 쓰러져 나뒹구는 청성의 제자들을 가리켰다.
“전부 수습해서 데려가시오.”
“……?”
철컥, 이벽은 검을 거두었다.
“…그, 그냥 가라는 말씀이시오?”
“애초에 대화를 하자고 했잖소? 뭣보다 점창이라면… 인연이 아주 없지도 않아서 말이오.”
“…….”
이벽은 과거, 남궁세가를 칠 무렵 잠깐이나마 도움을 받았던 정검문주 관일검 양호명을 떠올렸다.
점창의 제자와 맞서게 된다면.
한 번쯤은 넘어가 주기로 우스갯소리처럼 얘기했으나, 그것이 실제가 될 줄은 물론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고맙소.”
유암이 고개를 숙였다.
이내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한동안 점창의 제자들은 쓰러진 청성의 제자들을 수습했다.
타다닷.
행여 이벽의 마음이 바뀔세라 부리나케 장내를 떠났다.
“…큭.”
장연화와 금령사태가 분한 얼굴로 멀어지는 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허나 그에 대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으며,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저들이 아닌 ‘정체불명의 사내’였다.
“자, 그럼.”
그리고 이벽이 말했다.
움찔, 두 여인의 시선이 움직였다. 추적자를 베어낸 사내는 말끔한 모습으로 다시 바위 위에 앉아있었다.
“이야기를 듣고 싶소만.”
“아미…타불.”
금령사태가 불호를 읊었다. 상처를 움켜쥔 채 비척비척 사내에게로 다가섰다.
“저는… 아미파의 이대제자인 금령이라 합니다. 대협께는 참으로 씻을 수 없는 은을 입었습니다.”
“…저 역시 아미파의 삼대제자 정연화라 합니다. 구명의 은혜, 감사드립니다, 대협.”
“…….”
아미파.
불법을 따르는 여인들로 이루어진 무파로서 소림, 개방과 함께 구 무림맹의 한 축을 대표하는 정도세력이기도 했다.
허나 대체 왜.
아미의 여인들이 청성, 점창의 도인들에게 쫓기고 있었는지, 이벽은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설명해주실 수 있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