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270)
276화. 마음의 파편 (1)
혜공선사는 대환단을 삼켰고, 등 뒤로 모습을 드러낸 불상은 찬란한 서광을 흩뿌렸다.
번쩍.
이내 노승과 불상은 동시에 감은 눈을 떴으며, 부처의 투명한 눈동자가 이벽에게로 훅 다가왔다.
“……!”
‘눈동자’가 다가온다는 것은.
퍽 이상한 말이었으나, 그 순간 이벽이 보고 느낀 광경은 그렇게밖에 달리 표현할 수 없었다.
이벽은 반사적으로 등천의 나뭇잎을 일으켰으나, 이내 마음을 달리하고 저항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마침내 거울과 같이 투명한 부처의 눈동자가 이벽의 바로 앞을 가로막았다.
째앵.
다음 순간, 눈동자에 금이 갔다.
동시에 그 안에 비치고 있던 이벽의 모습 또한 ‘세 명의 서로 다른 이벽’으로 갈라졌다.
챙그랑.
마침내 거울이 으깨어졌다.
움찔.
그 순간, 이벽은 현기증을 느꼈다. 무언가가 머리를 파고드는 듯한 감각에 질끈 눈을 감았다.
그럼에도 현기증은 가시지 않았으며, 이내 머리 안쪽에 뿌연 안개가 이는 듯한 감각에 휩싸였다.
이벽은 다시 눈을 떴다. 눈을 감고 있던 것은, 말 그대로 찰나의 순간 불과했다. 허나.
“……!”
이벽의 눈이 흔들렸다.
다시 눈을 떴을 때, 혜공선사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 앉아 고요함을 지키고 있었다.
허나 그 눈은 다시 감겨 있었으며, 밤의 어둠을 밝히는 듯한 빛도, 부처의 형상도 온데간데없었다.
또한.
노승의 모습은 바로 눈앞에 자리하고 있었으되… 어째서인지 ‘아주 먼 곳’에 떨어져 있는 듯한 감각에 휩싸였다.
거기에 더하여.
장내에 일어난 ‘변화’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내 이벽은.
노승과 자신, 단 두 사람뿐이던 산문 안의 연무장에 조금 전까지 없었던 ‘두 개의 인영’이 늘어나 있음을 확인했다.
이벽은 상대의 모습들을 살폈다.
그곳에 서 있는 것은… 두 사람 모두 ‘자기 자신’이었다.
“…….”
세 명의 이벽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각자의 얼굴에 영문을 알 수 없는 듯한 표정이 스쳐 갔다.
‘…아니, 아니다.’
허나 이벽은 생각했다.
‘진짜 자신’은 물론 한 명뿐이다.
고로 눈앞에 선 두 명은 자신을 본뜬 환영에 불과하다.
부처의 눈동자에 투영되었던 모습이 대환단의 내력에 힘입어 ‘실체’를 이룬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오십여 년간의 참선과 수행을 통해 혜공이 이뤄낸, 거울로써 상대의 마음을 비추는 ‘등천의 힘’인 모양이었다.
“…크큭!”
그때였다.
“큭… 크핫, 크하하하핫—!”
돌연 좌측의 환영이 비틀린 웃음을 내뱉기 시작했다. 채앵, 그와 동시에 검을 꺼내 들었다.
후우욱.
이내 환영의 어깨 위로 피 냄새를 닮은 농밀한 살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적파심공.’
물론, 알고 있는 힘이었다.
타앙.
다음 순간, 혈기에 물든 환영이 땅을 박찼다. 그리고 반대편의 환영을 향해 달려들었다.
“……!”
그러자.
우측에 있던 환영의 얼굴에 일순 당황이 스쳤다. 채앵, 허나 그 역시 서둘러 발검했다.
후욱.
환영에게서 밤하늘처럼 은밀하고도 사이한 기운이 일어났다. 만월무변심공 역시 이벽이 잘 알고 있는 힘이었다.
챙, 콰아아앙!
이내 접전이 시작되었다.
“크… 크하하, 하하하핫—!”
적파심공의 환영이 도살지도를 펼쳤다.
만월무변심공의 환영이 원을 그리며 필사적으로 붉은 강기를 막아섰다.
허나.
콰아앙, 콰아아앙!
휘어지건 말건, 도살지도는 일 초식 난과 이 초식 륙을 거듭하며 마구잡이로 상대를 몰아붙였다.
공세와 수세는 뚜렷했다. 허나 물론, 우측의 환영 역시 일방적으로 밀리지는 않았다.
만월의 초식으로 어떻게든 공격을 비트는 한편, 빈틈마다 삭월의 초식이 은밀하게 치고 들어갔다.
석, 서걱.
두 환영의 몸에 상처가 생겼다.
승패는 쉬이 판가름 나지 않았다.
그것은 서로의 무공을 아주 잘 알고 있는 만큼, 서로의 약점 또한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콰아아앙!
“크하핫, 으하하핫!”
“…큭.”
허나.
혈기에 휩싸인 적파(赤派)의 환영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고로 만월무변(滿月無變)의 환영은 점점 더 수세에 몰렸다.
“…….”
그리고 이벽은.
불현듯 마음의 동요를 느꼈다.
자신의 모습과 무공을 본뜬 눈앞의 환영들을 향해 차오르는 마음은… ‘강렬한 증오’였다.
이벽은 혜공을 바라보았다.
이내 노승의 뜻을 이해했다.
이것은… 검치 선우명이 남긴 ‘진법’과 같은 맥락에서, 자신의 환영들을 쓰러뜨려야만 끝나는 일종의 시험인 모양이었다.
철컥.
이내 이벽은 검을 잡았다.
성큼성큼, 이내 환영들을 향해 다가서기 시작했다.
적파심공과 만월무변심공은, 각각 고 노야와 초연서에게서 전수받은 힘이다. 허나.
결코 자신을 이루는 뿌리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채앵, 콰아앙.
마침내 이벽의 검이 뽑혔다. 그리고 검이 가로막힌 적파의 환영이 일순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캉, 캉, 콰아아앙!
“…크핫, 으하핫!”
그러나 잠깐에 불과했다.
다음 순간, 만월무변의 환영에게서 이벽으로 목표물을 바꾼 적파의 환영이 다시 검을 내뻗었다.
고기를 난자하듯, 도살지도 일 초식 난과 이 초식 륙의 연계가 미친 듯이 불어닥쳤다.
“…….”
이벽의 눈에 비친 그 모습은.
과거, 적파심공의 혈기를 제대로 다루지 못한 채 역으로 휘둘리던 자신의 모습을 한없이 닮아있었다.
콰아아앙, 콰아앙!
허나 이벽은 상처 입지 않았다.
흉포하고 강맹하지만 그뿐이다.
도살지도는 ‘정직’하기 짝이 없으며, 정직함이란 여섯 개의 묘리를 다루는 청강유엽검식에게 있어 가장 손쉬운 상대였다.
서걱.
“…크윽!”
이내 적파의 환영이 일방적으로 상처를 입기 시작했다. 전황이 빠르게 기울었다.
“크… 으아아악!”
콰아아아앙.
다음 순간, 환영의 검에서 도살지도 삼 초식, 참이 휘둘러졌다. 이벽의 청강유엽검식, 발검제삼식 강검과 부딪혔다.
그리고 그 순간.
챙그랑.
환영의 검에 서려 있던 붉은 강기가 도자기처럼 산산조각 나며 이벽에게로 우수수 쏟아졌다.
“……!”
물러서거나. 혹은 맞서거나.
이내 이벽은 마음을 정했다.
후욱.
이벽은 유검을 펼쳤다.
파스스.
이내 붉은 파편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다만 유검의 묘리로도 무수한 파편을 모두 흩어낼 순 없었으며, 몇 가닥의 상처가 이벽의 몸에 아로새겨졌다.
허나 감안할 만한 수준이었다.
훅, 서걱.
그리고 다음 순간.
유검으로 회수된 이벽의 검이 쾌검으로 쏘아졌다. 푸욱, 환영의 어깨를 스쳤다.
휘청.
“크… 크아악!”
‘우선은 하나.’
환영의 빈틈이 크게 벌어졌다.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해도, 관절에 충격을 입으면 물론 균형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훅.
이벽은 그대로 목을 치려 했다.
움찔.
허나 그 순간.
타다닷.
서늘함을 느낀 이벽은 황급히 연엽보를 펼쳤다. 자리를 비껴 났으나 완전히 피하지는 못했다.
서걱.
소리 없이 다가선 삭월의 강기가 이벽의 옆구리를 할퀴고 지나갔다.
* * *
“…큭!”
이벽은 즉시 시선을 돌렸다.
또 하나의 환영을 바라보았다.
적파강기에 의해 만신창이가 된 상황임에도, 만월무변의 환영의 입가에는 작은 미소가 어려 있었다.
“…핫.”
환영이 웃었다.
울컥, 이벽은 살심이 차올랐다.
“크아아악!”
허나 그때, 도살지도가 재차 치고 들어왔다. 균형을 수습한 적파의 환영이 다시 검을 내뻗은 것이다.
타다닷.
이벽은 다시 연엽보를 밟았다. 훌쩍 물러나며 공격을 피하는 한편 판단을 수정했다.
적파의 환영은 언제든지 제압할 수 있으나… 자신에게 더욱 성가신 것은 오히려 만월무변의 환영 쪽이었다.
훅.
판단과 동시에 이벽은 쾌검을 뻗었다.
만월무변의 환영은 이미 너덜너덜한 상태였으므로, 손쉽게 숨통을 끊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허나 방심의 대가는 컸다.
후욱.
그 순간, 만월무변의 환영이 검끝이 원을 그렸다. 팔절구궁필법, 만월이었다.
휘익.
“……!”
쾌검의 경로가 흔들렸다.
그 순간 이벽의 몸이 휘청였다. 위기를 직감한 이벽이 황급히 균형을 되찾으려 했다. 허나.
“크… 크하하! 크하하핫!”
허나 다음 순간, 적파의 강기가 집요하게 이벽을 파고들었다. 이벽의 미간이 흔들렸다.
퍼어어억.
그러나 그때.
만월무변의 환영이 재차 삭월의 초식을 내뻗었고, 그 검끝은 이번에는 적파의 환영에게 틀어박혔다.
“…커어억!”
그리고.
챙, 콰앙, 콰아아앙!
다시 적파의 환영과 만월무변의 환영이 뒤엉켰다.
만신창이가 되어서도 두 환영은 서로의 존재를 부정하듯 맹렬하게 검을 뻗었다.
타앗.
이벽 또한 가만히 있지 않았다. 청강유엽검을 펼치며, 두 환영들을 향해 망설임 없이 쇄도했다.
그렇게.
세 개의 심법과 세 갈래의 마음을 지닌 세 명의 이벽이 뒤엉켰다.
콰아앙, 콰아아앙!
승패는 판가름나지 않았다.
어느 한쪽이 기세를 타는 순간 나머지 두 자루의 검이 그를 몰아붙였으며.
그 기세가 꺾일 무렵에는 다시 서로의 허를 찌르고 물러서는 일들의 반복이 이어졌다.
“…헉, 허억!”
이내 흩뿌려진 피도, 흐트러진 숨결도 어느 누구의 것인지 구분조차 되지 않게 되었다.
진작에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으나, 그 지경에 이르러서도 ‘이벽들’을 움직이는 것은 서로를 향한 증오심이었다.
콰아아앙, 콰아앙!
이벽은 계속해서 힘을 짜내었다.
허나 한편, 그 무렵 즈음에는 마음 깊숙한 곳에서 작은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뭘 하고 있는 거지?’
자신을 닮은 환영이건 무엇이건.
상대가 지닌 경지는 그리 대단치 않았으며, 고로 이 정도로 고전할 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허나 이벽은 무언가 안개와 같은 것이 머릿속의 생각을 가로막고 있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청강유엽공 이외의.
‘다른 힘’들이 떠오르지 않는다.
“…….”
이벽은 미간을 찌푸렸다.
머릿속에 답답하게 들어찬 안개를 파헤쳤고 생각의 단서를 붙잡아,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과거, 이벽은.
선우세가에서 비롯된 청강유엽검식과 청강유엽신법, 그리고 연엽보가 ‘하나의 흐름으로 모여드는 경지’를 이미 지나왔다.
그리고 그 이름을.
‘창공비검’이라 하였다.
후욱.
그 순간, 안개가 아주 약간 걷혔다. 동시에 환영들과 뒤엉키고 있던 이벽의 검로가 아주 미세하게 달라졌다.
타아아아아앙.
허나 그것만으로.
맞서고 있던 두 자루의 똑같은 검이 한꺼번에 밀려나 버렸다. 환영들의 얼굴에 당황이 스쳤다.
“…….”
마침내.
‘진짜’와 ‘가짜’를 판가름할 시간이다. 탓, 이벽은 가볍게 한발 물러섰다.
찌이잉.
목천의 영역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다시 나아가며, 두 개의 목을 일거에 떨어뜨리려 했다. 허나 바로 그때였다.
“크… 으으아아아악—!!”
적파의 환영이 괴성을 내질렀다.
휭, 휘잉.
몸부림을 치듯,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향해 마구잡이로 검을 휘둘렀다.
아니, 그러나.
그것은 무의미한 몸부림이 아니었다. 휘둘러진 검로를 따라 허공에 무수한 ‘붉은 획’이 그어진 것이다.
“……!”
그것은.
적파도결의 기예였다.
후우욱.
이벽은 당황했으며, 또한 만월무변의 환영 역시 당혹스러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끝없이 늘어난 붉은 강기들.
그다음에 어떤 기예가 이어질 것인지, 두 사람 모두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후우우우욱.
다음 순간, 적파의 환영의 검이 횡으로 무겁게 내려찍어졌다. 도살지도 사 초식, 압이었다.
일순 장내에 압력이 일었다.
우지직, 콰아아아아앙.
그리고 적파도결들이 으깨어졌다.
흡사 저무는 꽃잎처럼 무수한 강기의 파편들이 연무장 안으로 빽빽하게 퍼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