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271)
277화. 마음의 파편 (2)
콰아아아아앙.
이벽과 환영들 간에 혈투가 이어지던 한가운데, 적파심공의 환영이 적파도결을 마구 흩뿌렸고.
다시 도살지도의 사 초식 압을 내려찍었다.
이내 허공을 수놓은 적파도결들이 압력에 의해 으깨지며, 꽃잎과 같은 무수한 파편들이 연무장 안에 훅 퍼져나갔다.
후욱.
그 순간.
이벽은 다시금 유검을 펼쳤다. 몰려드는 강기의 파편들을 어떻게든 주변으로 밀쳐내려 했다.
서걱, 서걱.
“…커억!”
허나 파편들은.
밀쳐내기에는 ‘너무 많았다’.
유검이 정면에서 불어닥치는 파편을 쳐내는 동안, 나머지 방향에서 불어닥친 파편들이 이벽의 몸을 파고들었다.
휘청.
이벽의 몸이 흔들렸다. 급격히 흐릿해지는 시야 너머로, 환영들을 살폈다.
“……!”
이내 이벽의 눈이 흔들렸다.
만월무변심공의 환영이… ‘원’을 그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한 만월의 초식이 아니었다.
‘…잔월!’
그것은.
일찍이 초연서가 전해준 목천의 기예로서, 상대의 힘을 만월 안에 담은 채 삭월로 쏘아 ‘돌려보내는’ 초식이었다.
또한.
앞서 회택의 천향루에서 ‘수호대주의 자격’을 시험받던 때, 이벽은 지금과 같은 적파심공의 파편을 수호대원 안겸에게 쏘아 보냄으로써 싸움을 마무리 지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만월무변심공의 환영이 노리는 것은 그때와 다르지 않을 것이었다.
후욱.
이내 이벽의 예상대로 검끝에 맺힌 푸른 달이 몰려든 파편들을 일제히 끌어들였다.
파아아앗.
그리고 다음 순간, 한 줄기의 붉은 섬광이 다시 적파심공의 환영에게로 되돌아갔다.
퍼어억.
“커억… 크으으으!”
환영의 가슴을 관통했다.
털썩.
이내 적파의 환영이 무릎을 꿇었다. 훗, 그리고 이벽은 만월무변의 환영의 입가에 미소가 스치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물론.
‘최종 승자의 미소’였다.
울컥.
이내 유검의 기세마저 흐트러지고 파편에 온몸이 짓이겨지는 가운데, 이벽은 다시 분노를 느꼈다.
이대로 자신마저 쓰러진다면… 놈에게 ‘진짜’를 빼앗기고 말리라는 생각이 스쳤다.
놈은 이벽이 될 것이며.
자신은 ‘가짜’가 되고 만다.
‘그럴 수는 없다!’
타앙.
그 순간, 이벽은 창공비검을 펼쳤다. 방어를 도외시한 채 쾌보를 펼치자 몸이 쏜살처럼 쏘아졌다.
서걱, 서걱.
그리고 여전히 파편으로 가득 찬 장내 속에서 이벽의 몸은 ‘자신의 속도’에 의해 난자되었다.
허나 이벽은 멈추지 않았다. 핏덩이가 되면서도 가까스로 환영의 지척까지 도달했다.
“……!”
그제서야 상황을 눈치챈 만월무변의 환영의 얼굴에 당혹이 서렸다.
후욱. 서걱.
허나 대처하기에는 늦었다.
이내 이벽의 검이 쾌보의 기세를 담아 그대로 휘둘러졌고, 환영의 가슴팍을 파고들었다.
“…커억!”
환영이 신음했다.
손에 스치는 감각은.
명백히 ‘절명에 이르는 상처’였다.
“…훗.”
최후의 일격에 성공한 이벽은 이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마지막 생각이 이어졌다.
어쩌면.
다른 두 명의 환영과 마찬가지로… 자신 또한 ‘청강유엽공의 환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아닌 다른 환영이 ‘진짜’가 되는 것을 용납할 수는 없다.
두 환영의 눈이 교차했다.
함께 생명이 끊어져 가는 와중에도, 이벽들은 서로를 향한 증오를 숨기지 않았다.
털썩, 털썩.
그리고 두 명의 이벽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쓰러졌다. 세 사람의 몸이 그대로 등을 보인 채 널브러졌다.
허나.
이상한 것은, 그만큼의 파편이 장내에 흩날렸음에도 정좌하고 앉은 혜공에게는 작은 생채기조차 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훅.
이내 그 이유는 명백해졌다. 파편들은 그대로 노인을 ‘통과하듯’ 스치고 지나갔다.
‘…그렇군.’
그리고 ‘이벽’은 생각했다.
세 환영 간의 혈투는… 현실 위로 덧대어진 마음속의 풍경에 불과했던 모양이었다.
부처의 눈동자는 거울이 되었고.
거울은 이벽의 마음을 비췄으며.
그 거울이 ‘세 조각’의 파편으로 깨지는 순간, 그 안에 비치고 있던 자신들은 각각의 환영으로 자라났다.
물론, 마음이란 갯수로 헤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허나 심법이란 곧 ‘마음의 공부’이며, 자신이 익히고 있던 심법은 세 종류였다.
또한.
셋 모두가 숨이 끊어졌음에도, 그런 환영들을 머리 위에서 바라보고 있는 지금의 자기 자신은.
안개 속에 가려져 있던 등천의 자아이자, 그 모든 마음들을 살피는 ‘심안’이었다.
“…….”
이벽은 쓰러진 환영들의 등을 바라보았다. 세 환영의 등에는 모두 똑같은 흉터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것은.
혈육에 의해 등을 찔리고 단전을 잃어버렸던 흔적으로, ‘선우벽의 끝’이자 ‘이벽의 시작’을 알리는 지표이기도 했다.
다시 말해 셋 모두.
같은 뿌리를 지니고 있다.
용도에 따라, 그리고 마음을 다루는 심법에 따라 자기 자신을 임의로 구분지어 놨으나.
결국은 모두 자신의 일부이며.
어느 한쪽이 없었더라면… 그 많은 싸움을 거쳐오며, 지금에 이르기까지 살아남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즉, 서로를 증오한들.
별 소용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더 높이 날아오르기 위해 다시 ‘하나로 모여들’ 시간일 지도 모른다.
훅.
그 순간, 마침내 생각을 가로막고 있던 안개가 완전히 걷혔다. 그리고 이벽은 육신의 눈을 떴다.
이내 상처 하나 없는 몸으로 연무장 한가운데에 서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했다.
“…허억, 헉!”
허나 그때, 맞은편에 앉아있던 혜공이 호흡을 몰아쉬었다. 어느덧 노승의 안색은 창백해져 있었다.
“…선사!”
놀란 이벽이 외쳤다.
그것은 물론, 세월 속에서 굳어버린 기혈을 대환단으로 무리하게 운용한 대가임에 틀림없다.
“괜찮으십—”
탓.
이벽은 그 즉시 손을 뻗었다.
어서 노인을 의방으로 옮겨야만—
“…참선하시오.”
허나 그때였다.
노인이 갈라진 입술을 열었다.
“당장 참선하란 말이오—!!”
버럭, 노인이 소리쳤다.
흠칫, 이벽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시주께선… 허억! 내 지난 모든 세월을 대가로 내어드린 단초를… 수포로 돌릴 셈이오?!”
“……!”
또한 틀리지 않은 말이었다.
깨달음이란 간밤의 꿈과 같아 확고히 붙잡아놓지 않는 한 시시각각 풍화되어가기 때문이었다.
털썩.
이내 이벽은 그 즉시 제자리에 앉았다. 다시 눈을 감고서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았다.
부르르.
그 순간, 이벽은 몸을 떨었다.
조금 전, 죽음에 이르기까지 서로의 약점을 찾아 ‘물어뜯던’ 환영들의 기억이 머릿속에서 교차했기 때문이었다.
베는 쪽도, 그리고 베이는 쪽도.
모두 부정할 수 없는 자신이었다.
우우웅.
그 순간, 선천의 힘이 진동했다.
이미 익숙할 대로 익숙해진 세 갈래 마음의 경로 사이에서… ‘접점’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쿨럭!”
그리고 이벽은 피를 토했다.
서로 다른 심법들을 ‘하나로 합친다’는 것은 물론 말도 안 되는 일이며.
그것은 차라리 새로운 무공을 창안해내는 과정과 같았다.
우우우웅.
하물며 그 성질도 뿌리도 다른 세 심법의 기운은 마치 서로를 맹렬히 증오하는 것만 같았다.
“…….”
허나 이벽은.
계속해서 심안으로 마음을 들여다보았고, 기꺼이 환영들 간의 중재 역할을 떠맡았다.
하고자 하는 일들도.
지키고 싶은 이들도.
서로 다르지 않다면… 세 마음은 기꺼이 하나가 될 수 있다. 이벽은 환영들에게 검을 거두고 ‘손잡기’를 종용했다.
우우우우웅.
이내 조금씩, 아주 조금씩.
마치 어리석은 이가 산을 옮기고자 지게로 흙을 퍼 나르듯, 선천의 힘이 세 심법의 가운데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 * *
쿠웅, 철그럭.
쿠웅, 철그럭.
하남 불영촌.
숭산 소림으로 향하는 길목에 선 마지막 관문이자, 촌민들 모두가 소림과 관련한 생업을 통해 생계를 꾸려가는 마을이기도 했다.
즉, 불영촌은.
사실상 ‘소림의 구성원’이었다.
쿠웅, 철그럭.
쿠웅, 철그럭.
그리고 그런 마을 입구를 향해.
수백의 인파가 다가서고 있었다.
물론, 질서정연하게 땅을 울리는 걸음걸이와 더불어 허리춤에 달린 병장기들이 철그럭거리는 소리는 그들이 단순한 향화객은 아님을 말해주기에 충분했다.
그들은 물론.
남궁세가를 비롯해 안휘와 하남, 강소성 일대에 자리한 의혈맹 소속 무가의 무인들이었다.
쿠웅, 철그럭.
또한 일류 이상의 무인이 수백 명이나 모였다는 것은… 수만의 대군과 결코 다르지 않은 무게감을 지닌다.
그리고 어느덧.
무인들은 목책에 근접했다.
“당자앙! 걸음을 멈추시오—!!”
허나 그때였다.
쩌렁한 목소리와 함께 마을 안쪽에서 비대한 체구의 거지가 나타나 입구를 가로막고 섰다.
“이 앞으론, 지나갈 수 없소—!!”
개방의 절정고수, 비견개였다. 뱃심에서 비롯된 우렁한 목소리가 다시금 벌판에 울려 퍼졌다.
쿠웅, 철그럭!
그와 동시에.
다가서던 무인들이 일제히 걸음을 멈춰 섰다. 그 일사불란한 모습에서조차 위압감이 서려 있었다.
저벅.
그리고.
인파의 전면에 선 장년의 사내 하나가 앞으로 나아갔다. 이내 비견개를 마주하고 섰다.
“…푸핫! 우습군 그래!”
사내, 남궁청이 말했다.
그는 남궁세가의 무력대인 창검대의 대주이자 다음 세대를 대표하는 절정고수이기도 했다.
“동도들은 보시오! 소림에 용건이 있어 찾아왔거늘, 웬 볼썽사나운 돼지가 주제도 모르고 길을 가로막는군! 제 놈이 장판파의 장비라도 되는 줄 아는 모양이오!”
남궁청이 큰소리로 외쳤다. 와하하, 이내 잦은 웃음소리가 무인들 사이로 번져나갔다.
쿠우우웅!
“…푸헐헐!”
허나 그때, 비견개가 손에 쥔 대나무 몽둥이로 땅을 내려찍었다. 그리고 비견개가 마주 웃었다.
“그렇담 형장께서는 스스로 위무제 조조라도 되는 줄 아는 모양이오! 과연 진짜 주제도 모르는 게 어느 쪽인지 부딪혀보시겠소?!”
크흥, 비견개가 콧김을 뿜었다.
“…….”
이내 웃음소리가 잦아들었다.
그리고 남궁청과 비견개 사이에 자리한 삼 장 정도의 공터 사이로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스윽, 저벅저벅.
그즈음, 비견개의 등 뒤에도 하나둘 인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기척도, 소리도 크지 않았으나 불과 반각도 지나지 않아 어느덧 일백을 거뜬히 넘기는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행색은 물론.
거지, 혹은 승려였다.
“…하핫!”
다시 그때였다.
남궁세가 측의 무리들 사이 어딘가에서 험악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는 듯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허나 그 웃음소리는.
결코 가볍지만은 않았으며, 대치하고 선 모든 무인들의 귀를 똑똑히 스치고 지나갔다.
슥.
“이만 됐으니 물러서시게 대주. 그래도 우리가 ‘손님’인 입장이 아닌가? 상대가 거지라고 해서 우리까지 거지의 도리를 따를 필요는 없지.”
그리고.
반백의 중년인 한 명이 남궁청의 옆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훅, 남궁청이 그 즉시 고개를 숙였다.
“…네, 가주님!”
그리고 남궁청이 물러섰다.
이내 중년인이 비견개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훤칠함에 세월이 더해진 용모에서는 가히 영웅의 헌앙함이 느껴졌다.
“그래, 그쪽 걸개께선… 내 스치듯 본 기억이 있군. 아마도 과거, 본가에 발을 디딘 이들 중 한 명이겠지?”
“…….”
그 정체는 물론 남궁세가주, 천중일검 남궁천승이었다. 주륵, 비견개의 볼살을 따고 땀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퍼억.
“거 됐소, 형님! 저쪽 대가리가 나왔으니 충분히 할 일 하셨잖소? 하여튼 형님은 매사에 너무 앞뒤를 안 가려서 탈이오!”
허나 그때, 누군가가 비견개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 ‘누군가’는 이미 비견개의 앞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그래, 남궁 가주. 오랜만에 뵙는구려! 거두절미하고 말하지. 그 많은 똘마니들을 이끌고 예까지 무슨 용건으로 오셨소?”
마침내 개방주 철면개가 나섰다. 또한 그 옆으로는 침중한 안색의 무승 한 명이 따라붙었다.
그는 소림의 공진으로, 당대 백팔나한의 수좌를 맡고 있으며 또한 칩거에 든 북두천존 혜능선사를 제외한 소림 최고수로 인정받는 무승이었다.
“아, 벽암(碧岩) 공진스님이시군!”
다시 남궁천승이 말했다. 허나 그 눈빛은 말을 꺼낸 개방주 철면개가 아니라 공진을 향해있었다.
“이 남궁 모가 스님의 무명은 오래도록 들어왔소만… 이렇게 뵙게 되니 참으로 감개가 무량하기 그지없구려!”
“…….”
“이렇듯 찾아온 것은 다름이 아니라 소림에 향을 좀 피우러 왔소만. 방해꾼이 있어서 난처하군, 그래! 그 주제도 모르는 거지들 좀 치워주시겠소?!”
남궁천승이 어깨를 으쓱했다.
“…남궁 시주께서 정녕 향을 피우고 싶으셨다면야 홀로 오셔도 충분하셨을 터인데 말이오.”
이내 공진이 말했다.
침중하게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아, 그게 말이오. 실은 우리 의혈맹의 식구들 모두가 함께 뜻을 모아 향을 피워야 할 것 같아서 말이지!”
“…무슨 말씀이시오?”
“실은 이제부터 거지들의 피를 손에 묻히게 될 것 같은데… 하찮은 거지라도 목숨은 귀한 것이니, 극락왕생을 위해 부처님께 청을 드리는 것이 도리가 아니겠소?”
“……!”
큭, 공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하핫! 크하하핫!”
허나 그때였다.
철면개가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래도… 우리 천중일검께서는 몇 년마다 주기적으로 ‘싸대기가 마려운’ 중병이라도 앓고 계신가 보군 그래?”
“……!”
휘익.
그와 동시에.
남궁천승의 얼굴이 바람 소리를 내며 철면개를 향했다. 찰나의 순간, 흉신악살과 같은 표정이 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