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316)
324화. 화정봉의 시험 (2)
이벽과 비룡대 일행은 양호명이 이끄는 마차를 타고서 섬서성 서안의 화산 인근에 다다랐으나, 다소 길을 헤맨 끝에 이름 모를 강 앞에 이르게 되었다.
이내 강가에서 낚시하던 노인의 배를 얻어타고서 강을 건넌 뒤, 노인의 안내를 따라 목적지인 화정봉을 찾아 나섰다.
허나 결국 산속에서 해가 저물었고, 일행은 언제나처럼 노숙을 준비했다. 그러나.
스르륵.
돌연 불침번을 자처하던 양호명의 몸이 한켠으로 무너져내렸다. 점혈에 당한 것이다.
“흘흘!”
그리고.
바로 조금 전까지 저만치에 드러누워 있던 예의 노인이 양호명의 등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채앵, 스륵.
허나 그 즉시 파진성의 검이 검집에서 뽑혀 나왔고, 공손수의 소매 안에서 비수가 미끄러지듯 흘러나왔다.
“…호오. 놀라지 않는가?”
두 자루의 칼끝이 노인을 향했다.
허나 노인은 태연하게 웃었다. 차례대로 일행들을 한 바퀴 둘러본 뒤, 마지막으로 이벽을 향했다.
“그래, 언제부터 알고 있었나?”
“…평범한 촌부치고는 노 젓는 솜씨가 지나치게 신기에 달해있더구려. 애초에 별로 숨길 생각도 없지 않았소?”
“흘흘흘!”
“그래, 노인장께선 누구시오?”
노인이 어깨를 으쓱했다.
“누구랄 건 없고… 그냥 집주인이네. 실은 우리가 있는 이 봉우리가 바로 화정봉이란 말이지. 늙은이의 집에 온 것을 환영하네, 젊은이.”
“…….”
말마따나.
노인은 여러모로 수상했다.
내력도 없는 앙상한 몸으로 다섯이나 되는 일행을 배에 실은 채 손쉽게 노를 젓는 노인의 모습을 본 순간, 이벽은 상대가 결코 시골 촌부가 아님을 확신했다.
다만 양호명이 이 노인과 한패인지 어떤지 알 수 없었으므로, 그저 상황을 지켜보았을 뿐이다.
그렇게 지금에 이르렀다.
“그렇다는 건… 노인장께선 화산에 적을 둔 선배님이시겠군.”
화산의 봉우리에 기거하는 노인이 화산파 출신이 아닌 외인일 가능성은 현저히 낮으며.
또한 이 정도의 경지를 이룬 전대의 은거 고수가 흔할 리도 없었다. 불현듯 이벽은 노인의 ‘정체’를 짐작했다.
천하십대고수.
매화검선(梅花劍仙) 소청.
그것은 정도맹주이자 무당의 장문인인 태극검존 태허보다도 한 세대 위의 절대고수를 가리키는 이름이었다.
허나 십수 년 이상의 은거를 통해 당금 무림에서는 사실상 존재감이 퇴색된 이름이기도 했다.
“처음 뵙겠소. 노인장의 정체는 대강은 알 것 같지만… 소란을 원치 않는다면 말을 아끼겠소.”
이벽은 다시금 노인을 살폈다.
이유는 짐작할 수 없으나… 노인의 몸 상태는 무인으로서 결코 정상이 아니었다.
내력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은 물론, 다리를 절었던 것 역시 결코 연기 따위가 아니었다.
소림의 혜공선사와 같이 아예 무공을 사용할 수 없는 것은 아니라도, 노인은 ‘망가져 있었다’.
“흘흘, 이 퇴물 늙은이가 누구인지가 뭐가 중요하겠나? 지금 자네들에겐… 신경 써야 할 사람이 따로 있을 것 같은데 말일세.”
노인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건 무슨 말씀이시오?”
“물론 나 역시 자네들을 한 번 만나보고 싶어 이리로 부르긴 했네만, 자네가 만나기로 한 건 내가 아니지 않나?”
우우우웅.
순간, 이벽은 현기증을 느꼈다.
또한 무언가 매끄럽고 거대한 짐승이 온몸을 스치고 지나가는 그 감각은… 이미 겪어본 적이 있었다.
훅.
이벽은 고개를 꺾었다.
그 즉시 하늘을 향했다.
“클클클! 그간 잘 지냈나? 응?!”
이내 밤하늘 저편에서.
쩌렁한 목소리가 울렸다.
“……!”
쐐애애애애액.
그리고 이벽은 이해했다.
어둠 저편에서 일행을 향해 쏘아지고 있는 것은… 용의 형상을 한 ‘거대한 구름’이었다.
서천무존 정룡.
곤륜파의 전대 장문인이자 서쪽 무림을 대표하는 천하십대고수가 처음 만났던 그 날처럼 일행의 머리 위로 내리꽂히고 있었다.
후욱, 타아아아앙.
이벽은 그 즉시 맞서려 했다.
허나 그보다도 먼저 땅을 박차며 날아오른 이가 있었다. 줄곧 한켠에서 운기를 하고 있던 혁대웅이었다.
우우우웅.
어느새.
그 등 뒤로는 패왕의 물레바퀴가 거칠게 회전하며 일대의 힘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흐아아아압―!!”
콰아아아아아아앙.
창끝이 용과 충돌했다.
우수수수.
밤하늘에 충격파가 번지며 산속의 나무를 일제히 뒤흔들었고, 이내 구름의 용이 산산이 흩어졌다.
후욱.
허나 그와 동시에 정룡의 신형이 허깨비처럼 휘어졌고, 혁대웅의 창은 빈 허공을 꿰뚫고 솟구쳤다.
“…크으―!”
“클클클! 이거 아주 기가 막히는군! 패왕! 애새끼 하나는 끝장나게 잘 싸질러 놨구만!”
“……!”
그리고 이벽은 갈등에 빠졌다.
정룡이 사용하는 곤륜의 무공은 하늘에 이른 곡의 묘리로써 적의 공격이 자신의 육신에 닿는 것을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패도적이되 정직한 투로를 지닌 혁대웅의 창과는 상성이 아주 좋지 않다.
즉, 다시 말해.
‘…승산이 희박하다.’
허나.
어찌 되었건 눈앞에는 또 한 명의 천하십대고수로 추정되는 노인이 있었다.
고로 이벽은 날아올라 혁대웅을 도와야 할지 혹은 이대로 지상에 머물러야 할지, 판단을 내리기 어려웠다.
부스럭.
“끙차!”
허나 곧 고민은 불필요해졌다.
정면에서 수풀을 헤치며 또 한 명의 노인이 태연하게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아이구, 이게 누구야? 시간 날 때 차나 한잔하자는 이 늙은이의 간고한 부탁을 매몰차게 거절해버린 소도장이 아니신가? 허허!”
“…태허진인.”
이벽은 침음했다.
* * *
“…푸하아!”
태허진인이 연기를 내뿜었다.
정도맹주, 태극검존 태허진인의 오른손에는 검이 아닌 담뱃대가 들려 있었다.
그것은 오 년 전, 어느 의방에서 마주쳤던 그때와 전혀 다를 바가 없는 모습이었다.
이내 이벽은 포권했다.
“…퍽 오랜만에 인사드리오. 설마 진인께서 예까지 직접 오실 줄은 몰랐소.”
“허헛, 그야 자네가 더럽고 치사하게도 무당에 오질 않으니 내가 직접 와야지 어쩌겠나?”
“…….”
부스럭.
그때, 검존의 뒤로 다시 수풀이 움직였다. 그리고 두 명의 인영이 추가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불가에 비친 그 모습 역시.
양쪽 모두 눈에 익은 이들이었다.
좌측에 선 것은 이벽이 아미에서 검을 나누었던 청성제일검, 천풍쾌검 공능자였다.
그리고 우측의 인영은.
“…송영영.”
“…….”
콰아아아아아아앙.
그때, 재차 충격파가 일대를 휩쓸었다. 다시금 무존과 혁대웅의 공격이 정면으로 충돌한 것이다.
“…진인, 이게 대체 무슨 의미요? 이 판국에 우리끼리 부딪쳐서 대체 뭘 얻겠다는 거요? 어서 무존을 멈춰주시오. 그렇지 않으면―”
“아, 오해하지는 말게나. 저건… 어디까지나 무존의 독단적인 행동일 뿐, 나는 저런 부탁을 한 적이 없다네.”
검존이 이벽의 말을 끊었다.
“무존 저 친구가… 예전에 패왕과 얽힌 과거가 좀 있어서 말일세. 그냥 재밌자고 저러는 거지, 진짜로 자네 벗을 해치려는 건 아니니 심려치 말게나.”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아마도 말일세.”
“…….”
그리고 침묵이 내려앉았다.
태극검존 태허진인과 서천무존 정룡, 그리고… 매화검선으로 추정되는 노인에 이어 청성제일검 공능자와 태극무봉 송영영에 이르기까지.
삽시간에 세 명의 천하십대고수와 더불어 그에 버금가는 이들에게 둘러싸이고 말았다.
어찌 되었건, 이벽은 웬만해서는 무력으로 해결을 볼 만한 상황은 아님을 이해했다.
‘…섣불렀나.’
그리고 이벽은 공손수와 파진성을 돌아보았다.
두 사람은 여전히 매화검선을 향해 검을 겨누고 있었으나, 물론 어떤 행동도 섣불리 나설 수는 없을 터였다.
“…마교와의 일전을 앞두고 대체 왜 서로 힘 빼는 짓을 하는지 도통 이유를 모르겠군. 허나 어찌 되었건.”
판단을 마친 이벽이 이내 재차 말을 꺼냈다.
“할 이야기가 있다면 어서 본론을 말씀해주셨으면 좋겠소. 피차 시간이 넉넉지 않으니 말이오.”
“허헛, 그야 물론 자네가 제안해온 ‘동맹’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하러 왔지 뭐겠나? 물론, 자네 또한 우리에게서 알고 싶은 게 있을 테고 말일세.”
검존이 어깨를 으쓱했다.
“상황은 물론 자네도 잘 알고 있겠네만… 우리에게는 황보혁의 머리를 ‘확실하게 베어낼’ 계책이 있다네.”
다시, 검존이 말을 이었다.
앞서 송영영은 머지않아 검존을 비롯한 정도맹의 우두머리들이 직접 산동으로 찾아가 황보혁의 머리를 베어낼 것이라 말했다.
그 어투에 담긴 무게는 마치.
길가의 돌멩이를 줍듯 가벼웠다.
“헌데… 놈이 갑자기 스스로 천마를 자처하며 온 천하에 친선 비무회 같은 헛소리를 퍼뜨린 바람에… 좀 난처하게 되었다네.”
“…….”
“사람을 모아 대체 뭘 하려는 건지, 허장성세인지 뭔지는 모르겠네만… 우리로서도 께름칙한 것은 사실이니 이렇듯 자네와의 동맹을 나선 게 아니겠나?”
그리고 그것은.
공손수가 짐작한 그대로였다. 허나 물론, 중요한 ‘본론’은 이제부터임을 이벽은 직감했다.
“허나… 그 ‘계책’이란 게 말로 설명하기가 좀 어려워서 말이네. 아무래도 자네가 몸소 겪어봐야만 이해를 시킬 수 있을 것 같더군.”
“…그렇소?”
“뭐, 하는 김에… 자네에게 정말로 우리 정도맹과 동맹 운운할 자격이 있는지 시험도 좀 해보고 말일세. 허헛!”
말을 마친 검존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이벽은 잠시 말의 의미를 헤아렸다.
“…그렇군.”
이벽은 어깨를 으쓱했다.
“양 문주의 말로는 기꺼이 동맹을 받아들이겠노라 결정을 하셨다더니… 거짓이었던 모양이오.”
“뭐, 딱히 거짓은 아닐세. 다만… ‘자신에게 힘이 있음을 증명하면 그만이지 않냐’는 말을 한 것은 외려 자네라고 들었네만?”
이벽은 다시 송영영을 향했다. 새삼 그녀는 이벽의 말을 퍽 충실하게 전달해준 모양이었다.
물론, 그녀는 이벽의 그런 안하무인을 검존이 결코 좌시하지 않을 거라는 경고 또한 남겼었다.
“…좌우간에 좋소. 시험인지 뭔지는 잘 알 수 없소만… 그렇다면 검존께서 나를 직접 상대라도 해주실 생각이시오?”
“아니, 상대하는 건 내가 아닐세.”
검존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여기… 내 제자, 그리고 청성의 공능자 도우께서 자네의 상대일세. 물론, 두 사람 모두 자네에게는 이미 구면이지?”
“…대체 뭐 하자는 거요?”
이벽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목천의 끝에 이른 송영영이나 공능자는… 분명 무시할 만한 상대는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이벽에게 있어 딱히 고전할 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이 대 일이라고 해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었다.
등천의 영역을 다루는 절대자를 상대로 초절정의 고수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버티는 것’ 정도가 최선일 뿐, 쓰러뜨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허나 물론, 천하의 검존이 그러한 ‘경지의 차이’를 모르고서 하는 얘기일 리는 없었다.
“사실은 말이네.”
“…….”
“말이 좋아 ‘계책’이지… 이쪽의 계획은 별로 대단할 게 없다네. 말 그대로 우르르 몰려 들어간 뒤, 기회를 봐서 황보혁의 목을 딸 생각이란 말이지.”
그리고 검존이 돌연 고개를 돌렸다. 공손수와 파진성 사이에 앉아있는 노인, 매화검선을 향했다.
“소청 선배, 그럼 부탁하겠소.”
“흘흘, 어련하시겠나?”
다음 순간 매화검선이 가부좌를 틀었다. 두 자루의 칼이 자신을 겨누고 있음에도 아랑곳 않고 운기를 시작했다.
우우웅.
그리고.
이내 노인의 주변으로 자줏빛깔의 희미한 안개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등천의 영역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후욱.
“……!”
허나 그뿐이 아니었다.
다음 순간, 검선을 둘러싸고 있던 그 안개가 돌연 소리도 없이 땅속으로 녹아들었다.
우우우웅.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벽의 몸이 무거워졌다.
‘이건… 무공의 힘이 아니다.’
다음 순간, 이벽은 직감했다.
이 압력은 매화검선의 힘이 아니며, 다만… 그 힘을 매개로 하여 ‘다른 무언가’가 이 공간에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진법일세. 어떤가?”
그러한 이벽의 내심을 짐작한 듯, 검존이 말했다. 이벽은 서둘러 몸을 움직여보았다.
팔다리가 물에 젖은 듯 무거웠다.
이내 간단한 동작에도 평소의 몇 배에 달하는 힘이 필요함을 이해했다. 허나 ‘움직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훅, 후욱.
잠깐의 움직임 속에서.
이벽은 왜곡된 감각의 정도를 이해했다. 그리고 본래의 움직임을 내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힘이 필요한지를 파악했다.
철컥.
이내 검을 꺼내 들었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군. 말인즉슨 천하의 정도맹주께서 고작해야 이런 진법을 믿고서 그리도 자신만만했단 말이오?”
“고작이라. 허헛!”
검존이 어깨를 으쓱했다.
“보아하니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군 그래. 이보게, 공능자. 부탁하네.”
“핫. 기다렸습니다, 맹주님!”
훅.
다음 순간, 공능자가 자리를 박찼다. 신형이 소리도 없이 날아들며, 극쾌의 일검이 이벽을 향해 쏘아졌다.
“……!”
이벽의 눈이 흔들렸다.
같은 진법의 영역 안에 있음에도.
자신의 몸이 무거워진 것에 반해, 공능자의 속도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듯했기 때문이었다.
‘…피하기는 어렵다.’
판단을 마친 순간, 이벽은 그 즉시 나뭇잎을 일으켜 몸을 지키려 했다. 허나.
사락.
“…?!”
그 순간, 이벽의 몸 주변에 모여든 나뭇잎은 평소의 몇 분의 일에 불과했으며, 그 형체마저도 흐릿하기 짝이 없었다.
후욱.
“…큭!”
그리고 그즈음.
공능자는 이미 검을 뽑아 든 채 이벽에게로 당도해있었다. 이벽은 황급히 몸을 틀었다.
서걱.
허나 완벽하게 피하지는 못했다. 이내 공능자의 검이 이벽의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그리고.
팔랑.
나뭇잎이 ‘베어졌다’.
이내 반으로 쪼개진 나뭇잎이 힘없이 땅에 떨어졌고, 이벽의 옆구리에 붉은 실선이 그어졌다.
‘고작해야 강기’가.
등천의 영역을 베었다.
“어때? 아직도 ‘고작 진법’인 것 같나?”
“…….”
후우, 검존이 재차 연기를 뿜어내었다. 퍽 유쾌한 듯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했다.
“이래서 편견이 무섭다는 걸세. ‘천하제일의 힘’이란 게… 꼭 검이나 권의 형태를 띠고 있을 이유는 없는데 말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