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315)
323화. 화정봉의 시험 (1)
다그닥, 다그닥.
마차는 사흘을 나아갔다.
“이럇!”
도시에 다다를 때마다 양호명은 지친 말을 새 말로 교체했고, 이른 새벽부터 늦은 저녁에 이르기까지 바쁘게 마차를 달렸다.
그리고 어두워질 때마다 일행은 대개 노숙을 했다. 허나 물론, 노숙에 이골이 난 일행들에게 있어 새삼 고될 것은 없었다.
이내 마차는 사천을 벗어났다.
섬서, 서안의 시내를 지나쳤다.
허나 그 즈음 문제가 발생했다.
“…양 문주, 그래서 대체 우린 어딜 향해 가고 있는 거요?”
이벽이 물었다.
흠칫.
어쩐지 소태를 씹는 듯한 얼굴로 주먹밥을 삼키던 양호명의 어깨가 작게 흔들렸다.
“…….”
정오 무렵, 일행은 마차를 세운 채 외진 길목에서 요기를 하고 있었다.
허나 오전 내내 마차의 창밖으로 같은 풍경이 몇 번이고 반복되었음을 눈치채지 못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설마… 길을 잃은 건 아니죠?”
“…….”
공손수가 조심스레 물었다.
허나 여전히 대답은 없었다.
“…딱히 대협께 타박을 할 입장은 아니지만요. 대협, 길 안내가 맡은 임무라더니… 본인이 길을 잃으면 어떻게 해요?”
“…커험!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길을 잃다니, 그런 일은 없다! 그냥 조금… 지름길을 찾아 돌아왔을 뿐이다.”
“그럼 다행이지만요. 뭣보다 우리… 지금 천하무림의 명운을 건 일전이 채 한 달도 안 남은 거 아녜요?”
공손수가 어깨를 으쓱했다.
“뭐, 솔직히 우리 측 잘못은 아니니까… 며칠 정도 지각하더라도 천마가 너그럽게 이해해주겠죠?”
“케헤헤, 암! 천마를 자칭하려면 그 정도 배포는 있어야지. 쩨쩨하게 굴면 안 되지!”
“…하핫.”
파진성이 맞장구를 쳤고 혁대웅이 쓴웃음을 흘렸다. 양호명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어쨌거나 다른 방법은 없다.
일행은 다시 마차에 올랐다.
다그닥, 다그닥.
일찍이 양호명은 이벽을 섬서로 데려가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 했으나, 정확히 섬서의 어느 곳인지를 밝히지는 않았다.
허나 서안에 접어든 순간부터 일행들은 대강 눈치를 챘다. 서안에는 화산이 있다. 그리고.
화산에는 화산파가 있다.
화산파는 근래에 들어 이렇다 할 고수를 배출하지 못했고, 따라서 여타 도문들에 비해 그 존재감이 다소 옅어진 세력이었다.
허나 물론 그럼에도.
구 무림맹의 구파일방 시절에서 현재의 정도맹에 이르기까지, 정파무림을 대표하는 명실상부한 주축 중 하나임에는 틀림없었다.
다그닥, 다그닥.
“으럇―!”
덜커덩 덜커덩.
양호명은 거칠게 말을 몰아붙였고, 그 초조한 마음을 반영하듯 마차는 마구 덜컹거렸다.
다시 두 시진 가량을 달렸다.
이내 서산에 노을이 저물었다.
히히힝.
그리고 다시 마차가 멈춰 섰다.
정확히는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왜 여기에 물이?”
망연자실한 얼굴로 양호명이 중얼거렸다. 말마따나 일행의 앞을 가로막은 것은 ‘물’이었다.
저무는 햇빛을 받아.
붉게 물든 강물이 소리도 없이 일행의 발 앞을 흐르고 있었다.
허나 그런 강물을 바라보는 양호명의 얼굴은 외려 시퍼렇게 물들었다.
“…엄청난 지름길이네요, 대협. 남은 건 마차로 물을 건널 수만 있다면야 모든 게 완벽하겠어요.”
“이, 이럴 리, 이럴 리가…….”
양호명이 넋이 나간 목소리를 냈다. 이내 다급한 몸짓으로 강가의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
타앙.
다음 순간, 양호명의 몸이 땅을 박찼다. 저만치에서 낚싯대를 드리우는 노인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험, 어험! 길 좀 묻겠소, 노인장!”
“으응? 뭐라고~?”
“길 좀 묻겠노라 하였소! 혹 화산으로 가려면 예서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알고 계시오?!”
“…하아.”
“…하하.”
일행은 잠시 눈을 마주치며 저마다 어깨를 으쓱했다. 허나 이내 양호명에게로 다가섰다.
“으으응? 화산? 알지 그럼.”
노인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여기가 바로 화산이잖수? 이 일대가 전부 화산인데… 왜 화산에 와서 화산을 찾고 계시오?”
“…크윽.”
양호명이 침음했다.
말마따나 화산이라고는 해도.
그것은 산뿐만이 아니라 일대의 지역 전체를 아우르는 말이며, 또한 화산에 속한 봉우리 역시 한두 개가 아닌 것이다.
흘끗.
다음 순간, 양호명이 일행의 눈치를 살폈다. 이내 무언가를 결심한 듯 노인의 귓가에다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허나.
“뭐라고~? 잘 안 들리는데?”
“크아아아!”
마침내 양호명이 기함했다.
“화정봉! 화정봉을 찾고 있소! 빌어먹을 화정봉 말이오!”
인내심이 한계에 달한 듯, 고래고래 소리를 내질렀다. 쩌렁한 목소리가 강가 위를 메아리쳤다.
“…정도맹과의 비밀접선 장소를 저렇게 큰 소리로 말해도 되는 거예요?”
“케헤헤! 저 아저씨 예전에도 그랬지만 보면 볼수록 골 때리는 구석이 있다니까?”
공손수와 파진성이 헛웃음을 흘렸다. 반면, 이벽과 혁대웅의 얼굴에는 묘한 기색이 스치고 지나갔다.
‘…화정봉이라.’
그것은 양호명이 외치는 지명이 퍽 익숙하게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물론, 큰 의미 없는 우연에 불과할 터였다.
“아, 화정봉~? 그야 물론 알고 있지. 진작 그렇게 말하지 그랬소? 흘흘!”
노인이 주름진 웃음을 보였다.
“예서 그리 멀지는 않소. 한 두 시진이면 충분하지. 허나 우선은 이 강을 건너야만 한다오.”
“…크윽, 역시나.”
양호명이 다시 침음했다.
“끙차!”
그때, 노인이 낚싯대를 거두었다. 허리를 두드리며 앉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보아하니 꽤 다급한 모양인데… 저만치에 내 배를 묶어두었으니 괜찮다면 태워다 드릴 수 있소만.”
“……!”
“뿐만이겠소? 뱃삯이라도 좀 챙겨주신다면 이 늙은이가 기꺼이 화정봉까지 안내해드리리다.”
양호명의 눈이 치켜 떠졌다.
노인의 턱짓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이내 저만치 강가 상류에 묶여있는 작은 낚싯배를 발견했다.
덥썩.
양호명이 노인의 손을 붙잡았다.
“고, 고맙소, 노인장! 아니, 어르신! 어르신이야말로 이 난세의 영웅이시오!”
“흘흘! 영웅은 무슨. 날마다 오는 손님도 아닌데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 아니겠소?”
휙, 양호명이 일행을 돌아보았다.
“하하핫! 자 뭐 하고들 있나? 어서들 마차에서 짐을 챙기지 않고! 이 어르신께서 우릴 강 건너까지 배로 실어다 주실 것이네! 그러니 내 지름길이라 하지 않았나?! 아하하핫!”
“…….”
일행은 잠시 침묵했다.
허나 따르지 않을 도리도 없었으므로 이내 말마따나 마차에 실었던 각자의 짐들을 꺼내어 어깨에 짊어졌다.
“…하아.”
공손수가 한숨을 내쉬었다.
“케헤헤, 왜 한숨이냐, 쥐방울? 너 설마… 아직도 뱃멀미하냐? 왜, 오 년 전에도 장강을 건너면서 한복판에 물고기밥을 왕창―”
“…….”
뻐억.
“케흑―!”
다음 순간, 공손수의 손끝이 파진성의 갈빗대를 소리도 없이 파고들었다. 파진성의 몸이 새우처럼 휘어지며 공중에 떠올랐다.
풍더엉.
그대로 강물에 빠졌다.
허나 공손수는 그쪽으로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외려 이벽과 혁대웅을 돌아보았다.
“자, 가요 오라버니, 대주님~”
“…….”
* * *
스윽, 슥.
노인이 노를 저었다.
작은 배가 강폭을 가로지르며 나아갔다. 허나 배는 거의 흔들리지 않았고, 공손수 역시 뱃멀미를 하지 않았다.
“공손수, 괜찮나?”
“…그러게요. 신기하네?”
공손수가 눈을 껌뻑였다.
끼익, 끼익.
이벽은 잠시 노를 젓는 노인을 바라보았다. 메마른 두 팔에서는 물론 내력이나 무공의 기척 따윈 느껴지지 않았으나 솜씨는 퍽 감탄스러웠다.
“헹, 재미없구만. 쩝.”
파진성이 입맛을 다셨다.
“어르신, 재촉하여 죄송하오만… 조금만 더 속도를 낼 수는 없겠소?”
반면 양호명은 여전히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물론, 제아무리 능숙하다고 해도 노인의 깡마른 두 팔이 낼 수 있는 속도는 고작해야 느릿한 걸음 수준이었다.
“흘흘, 미안허이. 나도 최선을 다하고 있소만 사람이 많으니 늙은 몸이 힘에 부쳐서…….”
“…그, 그럼 이럴 게 아니라 차라리 내가 노를 젓겠소. 어서 이리 내어주시오.”
다음 순간, 양호명이 노인에게서 노를 건네받았다. 그리고 마구잡이로 물살을 휘젓기 시작했다.
첨버엉.
허나 배는 의외로 빨리 나아가지 않았다. 외려 제자리에서 뱅글뱅글 돌기 시작했다.
“흘흘, 노를 젓는 게 보기와는 달리 쉬운 일이 아니라오. 힘에만 의존하면 금세 물살에 휩쓸리기 마련이지.”
“…이익!”
양호명이 다시 거칠게 노를 저었다. 그러자 배가 좌우로 마구 요동치기 시작했다.
“…우욱!”
공손수의 안색이 흔들렸다.
“대협! 그만둬요! 우욱!”
첨벙첨벙.
“…으읍! 그만두라고!”
“케헤헤헤! 에헤헤헤! 그래! 이래야 재미있지! 허나 해남에서는 이 정도 물살은 애들 장난 수준―”
“넌 좀 닥쳐, 파진성!”
뻐어억.
“케흑!”
“…….”
그때 이벽은 시선을 느꼈다.
이내 노인을 마주 바라보았다.
“어디, 젊은이 자네가 한 번 저어보겠는가? 흘흘.”
“…알겠소.”
이벽은 양호명을 향했다.
첨벙, 첨벙.
“크아아―!”
점창의 검법을 펼치듯 물살을 마구 쑤셔대는 양호명에게서 노를 빼앗듯 건네받았다.
스윽.
점차 배의 흔들림이 가라앉았다.
이벽은 침착하게 물살을 갈랐다.
이내 공손수가 조용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배는 다시 건너편의 올바른 방향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래, 곧잘 하는구먼. 흘흘.”
“…….”
노인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채 반 시진이 지나지 않아 일행은 강을 건넜다. 배를 매어두기 무섭게 양호명이 대뜸 등을 내밀었다.
“업히시오, 어서!”
몸이 불편한 듯, 노인은 한쪽 다리를 절고 있었다. 때문에 양호명은 노인을 업고 달리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타다다닷.
그리고 노인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일행은 빠르게 나아갔다. 허나 결국 이름 모를 산기슭 어딘가에서 해가 떨어지고 말았다.
“흘흘, 이거 미안하오들. 내 늙어서 그런가… 밤눈이 옛날 같지 않구먼. 이렇게 어두워서야 다 그 봉우리가 그 봉우리 같아서…….”
“…크으.”
양호명이 이를 악물었다.
허나 이내 체념의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어떻게든 하루를 더 지체할 수밖에 없는 모양이었다.
허나 물론.
근본적으로 자신의 탓이었다.
“뭐… 어쨌거나 이 근방이라고 하니 내일 아침에 날이 밝는 대로 도착할 수 있지 않겠소?”
이벽이 양호명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리고 양호명의 등에 업힌 노인을 향했다.
“그보다 이렇게 날이 늦었는데 노인장께서는 댁에 돌아가지 않아도 괜찮소?”
흠칫.
그제서야 양호명의 시선이 흔들렸다. 마음이 다급하여 노인의 입장에 대해선 생각조차 하지 못한 것이다.
“흘흘! 상관없다네. 어차피 혼자 사는 늙은이라 기다려주는 사람도 없고 말일세. 적적하던 찰나에 오히려 재미있게 되었구먼. 흘흘.”
“…어르신께도 퍽 죄송하게 되었소. 내 뱃삯은 물론 섭섭지 않게 챙겨드리리다.”
양호명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타닥, 탁.
이후 일행은 노숙을 준비했다.
여지껏 그래왔듯 자리를 찾아 불을 피웠고 이내 산속에서 빠르게 어둠이 찾아왔다.
일행의 음식을 나눠 먹은 노인은 불가에 드러누운 채 코를 골며 잠에 빠져들었다.
타닷, 닷.
“…후우.”
양호명이 한숨을 내쉬었다.
“쉬시오. 양 문주.”
“아니, 불침번을 서겠네.”
“…대협, 며칠 동안 거의 쉬지도 않고 마차를 몰았으면서 무슨 소리예요? 그 정도는 당연히 우리가 해야죠.”
“괜찮네. 시일이 다소 지체된 것도 내 탓이니. 자네들이야말로 당가에서 일전을 치른 뒤 얼마 쉬지도 못했잖나? 좌우간 면목이―”
스르륵.
허나 다음 순간.
채 말을 마치지도 못한 양호명의 몸이 한켠으로 무너져내렸다. 잠에 빠져들듯 눈을 감았다.
“흘흘!”
그리고.
바로 조금 전까지 저만치에 드러누워 있던 예의 노인이 양호명의 등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노인은 절정고수인 양호명의 등 뒤를 점한 것도 모자라, 눈치조차 채지 못하게 수혈을 짚은 것이다.
채앵, 스륵.
허나 그 즉시 파진성의 검이 검집에서 뽑혀 나왔고, 공손수의 소매 안에서 비수가 미끄러지듯 흘러나왔다.
“…호오. 놀라지 않는가?”
두 자루의 칼끝이 노인을 향했다.
허나 노인은 태연하게 웃었다. 차례대로 일행들을 한 바퀴 둘러본 뒤, 마지막으로 이벽을 향했다.
“그래, 언제부터 알고 있었나?”
“…평범한 촌부치고는 노 젓는 솜씨가 지나치게 신기에 달해있더구려. 애초에 별로 숨길 생각도 없지 않았소?”
“흘흘흘!”
“그래, 노인장께선 누구시오?”
노인이 어깨를 으쓱했다.
“누구랄 건 없고… 그냥 집주인이네. 실은 우리가 있는 이 봉우리가 바로 화정봉이란 말이지. 늙은이의 집에 온 것을 환영하네, 젊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