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317)
325화. 화정봉의 시험 (3)
팔랑.
이벽의 나뭇잎이 ‘베어졌다’.
이내 반으로 쪼개진 나뭇잎이 힘없이 땅에 떨어졌고, 이벽의 옆구리에 붉은 실선이 그어졌다.
“……!”
청성제일검 공능자의 쾌검이.
이벽의 나뭇잎을 베고 육신에 상처를 입힌 것이다. 허나 그것은 본래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공능자는 목천의 경지를 완성한 초절정의 고수였으나, 등천의 영역에 눈을 뜬 절대자가 아니었다.
즉, ‘고작해야 강기’가.
등천의 영역을 베어낸 것이다.
“어때? 아직도 ‘고작 진법’인 것 같나?”
“…….”
후우, 검존이 재차 담뱃대의 연기를 뿜어내었다. 퍽 유쾌한 듯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했다.
“이래서 편견이 무섭다는 걸세. ‘천하제일의 힘’이란 게… 꼭 검이나 권의 형태를 띠고 있을 이유는 없는데 말일세.”
그리고 일단 공세는 멈추었다.
단 일 검을 끝으로, 공능자는 이벽의 등 뒤를 점거한 채 추가적인 공격을 가하지 않았다.
허나 그것만으로도 이벽으로 하여금 일대를 점거한 진법의 공능을 체감하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사락.
이벽은 재차 나뭇잎을 일으켰다.
허나 이번에도 의지에 반응하는 나뭇잎은 고작해야 몇 장 정도에 그쳤고, 그마저도 시든 것마냥 힘이 없었다.
우우웅.
심지어 현기증이 일었다.
등천의 영역을 고작해야 두어 번 끌어올렸을 뿐인데도, 심력에 압박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진법의 범위 안에서.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힘’을 필요로 하는 것은… 비단 육신의 움직임에 그치지 않았던 것이다.
“기가… 순환하지 않는다.”
이내 이벽은 눈치를 챘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진법이라고 해도 그 공능은 과거의 이벽이 겪어왔던 환영이나 악몽같은 것과는 완전히 궤를 달리했다.
또한 무거워진 것은 자신의 육신이 아니라 주변을 감싼 ‘자연의 기운’ 그 자체임을 이해했다.
“핫, 역시 소도장께서는 멍텅구리는 아니로군. 뭐,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이네만. 허헛!”
“…….”
등천의 영역이란.
마음의 눈을 뜸으로써 ‘나 자신’이라는 한계를 벗어나 육신 바깥의 기운마저도 의지로써 다스리는 절대자의 힘이었다.
허나.
본래 물과 같이 아무런 형체를 지니지 않은 ‘자연의 기’는 이 순간 마치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렸고, 좀처럼 이벽의 의지에 호응하지 않게 되었다.
“어때? 놀랍지 않나?”
다시 검존이 어깨를 으쓱했다.
“만류일원진(萬流一元陣)이라 하네. 지금 이 자리에는 없네만… ‘환야’라는 친구의 절기지. 자네도 이름 정도는 들어 알고 있겠지?”
“…환야.”
이벽은 이름을 되뇌었다.
그 이름은… 천하십대고수 중의 일인으로 꼽히기도, 혹은 꼽히지 않기도 하는 이름이었다.
사패련의 철탑패왕 혁군악.
무림맹의 취풍신개와 북두천존.
의혈맹의 권왕 황보혁과 독왕 당평세, 검왕 남궁한일.
정도맹의 태극검존 태허, 서천무존 정룡, 매화검선 소청.
전후 오십여 년, 천하무림은 그와 같은 아홉 명의 절대자들을 묶어 ‘천하십대고수’라는 위명을 붙여주었으며.
비록 그들간의 우열에 관해서는 저마다의 생각이 다르다 할지라도, 누구 한 명 ‘자격이 모자란 이’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이는 당금에 이르러 아무도 없었다.
허나.
천하십대고수의 마지막 한 자리에 관해서는 퍽 의견이 분분했으며, 자신이 속한 세력에 따라 서로 다른 이름으로 그 자리를 채우곤 했다.
그리고 ‘환야’란.
정도맹 측 무인들이 내세우는 ‘열 번째 천하십대고수’의 이름이었다.
“잠깐이나마 대자연의 흐름을 붙들어놓다니, 흐르는 물을 제자리에 묶어두는 것만큼이나 말도 안 되는 일이지. 허헛!”
“…….”
“허나… 우리 무인들이 천대하는 진법과 술법을 통해 하늘의 경지에 이르면 이런 일마저 가능하게 되는 모양이네.”
“…그렇구려.”
이벽은 침음했다.
환야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이름 외에 알려진 것이 거의 아무것도 없으며, 지난 무림사에서 이렇다 할 활약을 펼친 적조차 없었다.
다만 마교와의 싸움에서 맥이 끊긴 것으로 알려진 도가계열의 술파, 모산파의 마지막 후예라는 이야기만이 알려져 있을 뿐이다.
허나 그럼에도.
그가 정도맹 소속 무인들 사이에서 천하십대고수의 일인으로 거론되곤 하는 이유는 퍽 명백했다.
눈앞의 정도맹주 태극검존이.
행적조차 불분명한 그 환야를 일컬어… ‘자신보다 더욱 지고한 경지에 이른 도인’라는 말을 일삼곤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내 이벽은 그 의미를 이해했다.
애당초 등천의 영역을 ‘원천봉쇄’할 수 있는 진법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믿을 수 없는 일이었으며.
기나긴 무림사에서도 이와 같은 터무니없는 힘이 모습을 드러낸 적은 이벽이 알기로 단 한 번도 없었다.
조금 전, 검존의 말마따나.
직접 겪어보지 않은 채 그저 이야기만을 전해 들었더라면… 이벽은 분명 납득하지 못했을 터였다.
“물론, 무공을 펼치듯 간단한 일은 아니네. 우선 상당한 준비를 해야 하는 데다… 우리 정도의 수준을 갖춘 고수가 스스로 진의 핵심이 되어줘야 한다는 게 난점이네만.”
“…….”
이벽은 매화검선을 바라보았다.
자리에 앉아 운기를 통해 등천의 힘을 일으키고 있는 노인이야말로 역시 진의 ‘동력원’인 듯했다.
“보게. 이렇듯 요건이 전부 갖춰지고 적을 원하는 장소로 불러낼 수만 있다면야… 어떤 의미로는 환야야말로 진정한 ‘천하제일인’인 걸세.”
후욱.
검존이 담뱃대를 흔들었다.
다음 순간 연기가 태극의 형태를 따라 원을 그렸고, 검존의 주변 기운이 물결처럼 일렁였다.
“물론, 적의 영역을 봉쇄하되 ‘아군’의 경우에는 본래의 힘을 무리 없이 끌어다 쓸 수가 있지. 허헛!”
“…기가 차는구려.”
“허헛! 그러게 오죽했으면 내 황보혁의 머리를 베어낼 수 있노라 그리 장담했겠나?”
검존이 어깨를 으쓱했다.
“우리는… 이미 지난 시간 동안 온갖 노력을 들여 황보세가와 그 일대에 이 진법을 펼칠 준비를 마쳤다네. 물론 쉽지는 않았네만.”
“……!”
“황보혁… 스스로 천하제일을 자처하다 못해 이제는 천마가 되어버린 미친놈이네만, 놈은 이제 곧 ‘진짜 천하제일’의 힘을 맛보게 될 걸세.”
* * *
상대의 힘을 약화시킨다.
일대의 기운을 제압하여, 등천의 깨달음이 영역으로 발현되는 것을 강제로 틀어막아 버린다.
그리고 한순간, 그러한 처지에 놓인다면 천하의 어떤 절대자라 한들 당황하지 않을 수 없을 터였다.
아니, 오히려 절대자이기에.
스스로의 힘이 진법 따위에 묶여버린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기 어려울 터였다.
하물며 지난 여정 속에서 적지 않은 진법을 겪어오고 충분히 주의를 기울여온 이벽조차 한순간 ‘진법 따위’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것은 분명.
감히 천하제일을 자신할 만한 기예이자, 스스로의 힘을 맹신하는 자의 깊숙한 허를 찌르는 천고의 계책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앙.
“…크아악!”
그때였다.
저만치 하늘에서 굉음과 함께 고통에 억눌린 신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혁대웅!”
후욱.
이벽은 즉시 위를 향했다. 저만치에서 힘없이 추락하는 혁대웅의 몸을 발견한 뒤, 땅을 박찼다.
타앙, 덥석.
“괘, 괜찮나, 혁대웅?!”
허공에서 혁대웅의 몸을 받아낸 뒤 착지했다. 이내 다급하게 물었다.
“큭, 커억… 제기랄―!”
혁대웅이 한 움큼의 피를 토했다.
“벼, 벽아, 조심해! 잘 싸우고 있는데 갑자기 온몸에 힘이… 커억―!”
“……!”
이벽은 자초지종을 이해했다.
만류일원진이 마침내 저 하늘에까지 영향을 미친 순간, 혁대웅의 등천의 영역인 패왕의 물레바퀴가 산산이 부서진 것이다.
스윽, 탁.
“클클!”
그리고 다음 순간.
나머지 하나의 인영이 이벽의 코앞에 착지했다. 물론 서천무존 정룡이었다.
“좀 재밌으려나 했더니… 이놈의 괴물딱지 같은 진법이 눈치 없이 방해를 하는구만 그래?”
철컥.
무존이 검을 거둬들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무존의 빈손이 이벽을 향해 뻗어졌다.
흠칫, 이벽의 미간이 흔들렸다.
툭툭.
허나 그 손에는 더 이상 적의가 없었다. 다만 이벽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을 뿐이었다.
“뭘 새삼 쫄고 그러나? 안 죽이니 걱정 말게. 어쨌거나 저쨌거나 지금은 ‘같은 편’이 아닌가? 물론 자네도 그 녀석도 건방진 애송이지만, 난 건방진 걸 좋아하거든. 클클클!”
“…….”
이내 이벽은 이해했다.
검존과 무존이 이 자리에서 자신들을 죽이고자 마음먹었다면… 이미 진즉에 목이 달아났을 터였다.
‘대등한 것’까지는 아니라 해도.
자신과 혁대웅이라면 얼추 승산을 점쳐볼 수 있을 만한 전력이었으나, 진법의 영향으로 무게추는 완벽하게 기울어져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와 마찬가지로.
황보세가와 의혈맹이 어둠 속에 힘을 얼마나 감추고 있건… 이와 같은 진법이 성공한다면 전쟁은 말 그대로 ‘너무 쉬운 일’이 되어버리라는 것을 납득했다.
“자, 그래서 말인데… 얘기가 퍽 길어졌네만, 동맹에 대한 자격의 시험은 다음과 같다네.”
그리고 다시 검존이 말했다.
“뭐, 어렵게 생각할 것은 없네. 조금 전에 말했던 대로… 이 두 사람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뒤 늦지 않게 황보세가에 당도하면 그만이라네!”
“…….”
철컥.
그리고 그와 동시에.
마침내 송영영이 검을 뽑았다.
또한 이벽은 조금 전 일검과 함께 자신을 스쳐 지나갔던 공능자가 등 뒤에서 다시 기세를 일으키는 것을 감지했다.
물론, 평소라면 그리 어렵지 않은 상대였을 터였다.
허나 등천의 영역이 봉인되고 심신의 운용마저 몇 배로 어려워진 진법의 영역 속에서.
‘목천의 끝이자 등천의 시작’에 다다른 두 사람은 더할 나위 없는 ‘난적’이 되었다.
저벅.
“그럼 나는 이만 가보겠네, 소도장! 이래 봬도 해야 할 일이 많아서 말일세. 허헛!”
“클클! 소청 선배도 강녕하시오! 내 마교 개새끼들의 씨를 말린 후 곤륜의 산삼이라도 한 뿌리 캐서 보내드리리다!”
저벅.
검존과 무존이 돌아섰다.
“살펴들 가시게. 흘흘!”
또한 운기를 통해 진법을 유지하면서도 검선은 태연하게 입을 열어 답했다.
“…참, 그러고 보니 말일세.”
그리고 두어 발자국 멀어지던 검존이 불현듯 다시 뒤를 돌아 이벽을 향했다.
“환야 그 친구가 소도장 자네에게 꽤 흥미를 보이더군. 오래전… ‘검치 선배’의 부탁으로 만들어놓았던 진법을 자네가 부숴 먹었다고 말일세.”
“……!”
이벽의 미간이 흔들렸다.
이내 검치 선우명과 우호법 풍마와의 일전의 기억이 진법으로 남겨져 있던 서산의 동굴을 기억했다.
또한 예의 진법을 통해.
이벽은 등천의 힘을 얻었다.
“어쩌면… 우리와의 얘기와는 별개로 환야가 따로 자네를 찾아갈지도 모르겠네. 좌우간 건승을 비네 소도장. 허헛!”
그리고 마침내.
나타났던 것과 마찬가지로, 검존과 무존은 순식간에 숲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 *
훅, 서걱.
“하하핫! 이렇듯 자네와 설욕전을 치르게 되어 기쁘기가 한량없군 그래!”
“…큭!”
청성제일검 공능자의 신형이 바람처럼 이곳저곳을 누볐다. 범인의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속도였다.
서걱.
반면 등천의 영역은커녕, 내력의 운용조차 원활하지 못한 이벽은 이내 조금씩 뒤처졌고 자잘한 상처를 입기 시작했다.
애당초.
아미에서 일전을 치렀던 당시, 공능자의 극쾌는 등천의 영역을 사용하지 않은 이벽보다 반수 정도 앞서 있었던 것이다.
“…흥, 나는 나설 필요도 없겠네. 꼭 당해봐야 안다니까. 바보 멍청이 대주 같으니.”
이내 송영영이 말했다.
“저어기, 송 소저……?”
“케헤, 오랜만이네. 저기, 상황은 좀 이상하지만… 그동안 밥 잘 먹고 잘 지냈―”
공손수와 파진성이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휙, 그 순간 송영영의 고개가 소리 나게 꺾어졌다.
“입도 뻥끗하지 마, 너희들.”
“…에.”
철컥, 검이 겨누어졌다.
“나한테 말도 걸지 마. 숨도 아껴서 쉬어. 만약에 허튼짓하면 그 즉시 베어버릴 거니까.”
“…케헤. 옛정이 있지, 너무하네.”
과거와 같이 송영영의 표정은 옅었으나, 두 사람은 눈빛에 담긴 감정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명백한 ‘분노’였다.
이내 공손수와 파진성은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여전히 두 사람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너무 약했다’. 허나.
지난 오 년간.
또다시 발목을 붙잡는 짐덩이가 되기 위해 그 고난의 시간을 견뎌온 것이 아니다.
스윽.
이내 공손수가 입술을 움직였다.
암영각, 남촌 공손가 비전의 전음술을 타고 공손수의 목소리가 파진성의 귓가에 닿았다.
끄덕.
파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말게나, 젊은이들. 흘흘!”
허나 그때였다.
운기에 열중하던 매화검선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흠칫, 두 사람의 눈빛이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