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322)
330화. 각자의 사흘 (2)
“그렇게까지 확고한 아군의 자격이 필요하다면… 어떻게든 되어주면 그만이겠지.”
이벽이 말했다.
현재, 일행이 머무르고 있는 모옥을 제외한 화정봉 일대에는 온통 진법에 의한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는.
도가의 무공을 익히지 않은 무인의 경우, 진기의 자연스러운 흐름이 틀어막혀 버린다.
따라서.
이벽은 유검을 생각했다.
앞서 소림에서의 비무를 통해 이벽은 송영영의 태극 안에서 형언하기 어려운 현묘함을 목도했고.
이내 그 현묘함을 청강유엽검식, 유검에 담아 모방하기 시작했으며.
그와 같은 검은 당평세, 그리고 혈마와의 싸움에서도 톡톡히 힘을 발휘했다.
또한 지난밤의 일전에서.
여타의 묘리와는 다르게 유검 만큼은 진법 안에서도 제힘을 거의 잃지 않음을 확인했다.
고로.
예의 묘리를 궁구하여 등천의 영역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면… 이벽은 진법 안에서도 힘을 잃지 않는 ‘또 하나의 기예’를 얻게 될 터였다.
물론 이론적인 얘기일 뿐, 정말로 그러한 성취를 얻을 수 있을지 어떨지는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허나 발목이 붙들린 상황에서.
잠자코 가만히 있을 이유는 없다.
“…저기, 오라버니?”
그때, 다시 공손수가 말했다. 파진성 역시 숟가락을 놓은 채 이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야 우리가 별 도움은 안 되겠지만… 그래도 생각한 게 있으면 좀 가르쳐주면 안 되겠냐? 응?”
“…물론이다.”
또한.
이벽이 간밤의 고민을 통해 떠올린 해결책은 이뿐만이 아니었으며, 일행에게도 ‘줄 수 있는 도움’이 남아있었다.
이내 생각한 바를 설명하려 했다.
저벅, 탱그랑.
“커헉…! 헉……..”
허나 그때였다.
조금 전 ‘진법 속에서 사용할 수 있는 힘의 수준’을 확인하겠다며 울타리 밖으로 나섰던 혁대웅이 되돌아왔다.
그 잠깐 사이 안색은 창백해져 있었다. 또한 그 즉시 창을 내팽개진 채 마당 위로 드러누웠다.
“…혁대웅.”
“미안. 헉, 허억―!”
거칠게 호흡을 몰아쉬었다.
“…허억! 헉, 고작해야… 딱 한 번 힘을 썼다고 이 꼴이 되네. 나, 강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여전히 더럽게 약했구나.”
“…….”
사패련의 소패왕 혁대웅은.
원수인 혈마와 맞닥뜨리고도 결국 그 목숨을 빼앗지 못했고, 한낱 진법에 갇혀 무력감에 휩싸였다.
저벅.
이벽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니, 너는 약하지 않다. 이 진법이 지나치게 상식을 벗어나 있을 뿐이지. 또한.”
이내 혁대웅에게로 다가섰다.
“완벽하지는 않다 해도… 우리 모두 이 진법의 압박을 극복할 방법이 없지도 않다.”
“…그게 무슨 말이야 벽아?”
“안 그래도 마침 이제부터 설명할 참이었다.”
이내 공손수와 파진성 또한 혁대웅에게로 다가왔다. 혁대웅이 몸을 일으켜 앉았고, 세 쌍의 시선이 이벽을 향했다.
“우선… 나는 내 나름대로 도가의 무리에 어긋나지 않는 검을 ‘만들어볼 셈’이다.”
“……!”
세 사람의 눈이 흔들렸다. 이내 이벽은 유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간략히 설명했다.
혁대웅은 물론, 공손수와 파진성 역시 이벽의 청강유엽공에 대해선 이미 오 년 전의 이야기를 통해 알고 있었으므로 그리 긴 설명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필요하니까 없는 무공을 베껴다 만들어 쓰겠다고? 케헤, 케헤헤!”
파진성이 헛웃음을 흘렸다.
“그래! 이래야 우리 대주… 아니, 전(前) 대주답지! 솔직히 얼탱이가 나가는 소리 같긴 한데… 하지만 진담이겠지?”
“물론, 농담은 아니다.”
“케헤헤, 잘 알겠다! 그래, 불순한 사파 나부랭이인 우리는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응원이라도―”
이벽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새로운 무공을 익히는 건 나뿐만이 아니다. ‘우리 모두’ 극복할 방법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
“애당초.”
이벽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와 같은 검을 성취할 수 있을지 어떨지도 알 수 없고, 설령 성취한다 해도 검선을 넘어설 수 있으리란 보장은 없다.”
“…….”
이벽은 지난밤을 생각했다.
일찍이 혈마의 뱀을 일검에 흩어버렸던 화영변검의 기예는 검선의 매화 앞에 너무 쉽게 스러졌다.
물론, ‘상성’의 문제였다. 허나.
천하십대고수, 매화검선의 힘은 단시일 내에 성취한 검으로 쉬이 넘어설 수 있을 만큼 만만한 것이 아님은 분명했다.
“고로 나는 도움이 필요하다.”
다시 일행을 돌아보았다.
“그러니 세 사람 모두… 청강유엽공을 배워보지 않겠나?”
“……!”
다시 세 사람의 눈이 흔들렸다.
허나 이벽의 생각은 확고했다.
검치 선우명에 의해 창안된 청강유엽공은 껍데기이나마 도가 무공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그렇기에 지난밤에도 이벽은 일행들과 달리 진법 안에서도 최소한의 힘을 사용할 수 있었다.
“…아니 아니, 잠깐만요.”
공손수가 말했다.
“이제 와서 우리한테 새 심법을 익히라구요? 그게 가능해요? 아니 그보다… 무공을 그냥 내어주겠다니… 오라버니의 비전을요?”
“…딱히 비전이랄 것도 없다. 이제 와서 나한테 그런 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핫, 이벽이 작게 웃었다.
애당초 청강유엽공은 자신이 아니라 선우세가의 비전무공이며, 이미 화정촌의 장석두에게도 가르쳐 준 적이 있다.
필요한 것이 있다면.
함께 나누면 그만이다.
“…알았어, 벽아.”
그리고 혁대웅이 답했다.
“네 뜻에 따를게. 이 빚을 나중에 어떻게 갚아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선은 상황이 상황이니 뭐라도 해봐야지.”
“…딱히 빚이랄 것도 없다만.”
이벽이 어깨를 으쓱했다.
“사흘.”
그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그 이상 지체할 시간은 없을 것 같군. 고로… 사흘 안에 우리는 각자 더 강해진다. 그리고 검선을 쓰러뜨린 뒤 이 봉우리를 벗어나기로 하지.”
“응, 알았어. 그렇게 하자.”
혁대웅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의 정적이 스치고 지나갔다.
“…케헤헤, 이견 없다. 일단은.”
“아… 네. 열심히 해볼게요. 열심히는요. 아하하…….”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파진성과 공손수가 어설픈 웃음을 흘렸다.
* * *
이후.
이벽은 반나절에 걸쳐 세 사람에게 청강유엽공의 구결을 전수했다. 과정은 막힘없이 진행되었다.
혁대웅은 물론, 파진성과 공손수 또한 이미 절정의 완숙에 이른 무인으로, 무공에 대한 이해도는 후기지수의 수준을 아득히 벗어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정오를 지나.
태양이 한풀 꺾여 들었다.
덥석.
“응, 알겠어, 벽아. 다녀올게.”
그리고 구결의 전수가 끝난 순간.
혁대웅은 그 즉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을 움켜쥔 채 다시금 울타리 바깥의 안개 속으로 성큼성큼 나아갔다.
콰아아아아앙.
이내 저만치에서 굉음이 전해져왔다. 그리고 아침 무렵과는 달리,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콰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앙.
“우리 두 번째 대주님께선 벌써 뭔가 감을 잡은 것 같네요. 진짜… 괴물 아니야 저거?”
“케헤헤, 하루 이틀 일이냐?”
“…딱히 기죽을 건 없다. 혁대웅이 청강유엽공을 쉬이 이해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니.”
낙검문의 세 사형제는.
스승 이진천과 마찬가지로 모두 단전이 없으며, 낙검진천신공과 선천의 힘을 통해 내력을 운용한다.
그리고 낙검진천신공은.
청강유엽공의 ‘연장선상’에 해당하는 무공임을 이벽은 이미 깨달음을 통해 알고 있었다.
고로 혁대웅에게 있어 청강유엽공의 묘리가 그리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물론 당연한 일이며.
또한 이미 등천의 경지에 이른 재능으로 말미암아 청강유엽공을 다시금 하늘의 경지까지 끌어올리는 것 역시 불가능하지 않을 터였다.
“그보다 두 사람 말인데… 혁대웅과는 달리 지니고 있는 내공이 있으니 물론 지금 상태로 그냥 청강유엽공을 익히는 건 어려운 일이겠지.”
다시 이벽이 말했다.
청강유엽공은 그 특성상 다른 무공과 ‘섞이는 것’에 대해 반발이 크지는 않으나.
그럼에도 물론 서로 다른 내력 간의 충돌은 주화입마의 가능성을 동반하는 위험한 일이었다.
“그러니… 추궁과혈을 통해 너희들의 몸을 살핀 뒤 내력이 어우러질 수 있도록 청강유엽공의 경로를 조금 수정할까 하는데… 괜찮겠나?”
흠칫.
공손수의 표정이 흔들렸다.
“…그런 것도 가능해요?”
“할 수 있을 거다. …아마도.”
과거, 이벽은 이미 적파심공과 만월무변심공을 통째로 청강유엽공과 하나로 녹여낸 경험이 있었다.
고로 두 사람의 기혈과 내력을 살핀 뒤, 청강유엽공의 묘리 중 조화를 이루기 용이한 부분만을 취합하여 흐름을 ‘합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일 터였다.
“물론 내력의 성질이 다소 변할 테지만… 기존의 무공을 펼치는 데에 무리는 없을 거다. 그러니 나를 믿어줬으면 좋겠군. 허나 원치 않는다면 강요는 하지 않겠―”
“믿고 자시고… 오라버니야말로 예나 지금이나 우리에게 너무 퍼주는 거 아녜요?”
다시 공손수가 말을 끊었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인가?”
“와~ 이거 봐요. 파 소협, 혹시나 했지만 진짜로 기억도 못 하는 거 봐.”
“케헤헤, 목숨 빚을 졌는데… 정작 그 빚을 받을 사람이 기억도 못 하고 있으면 어쩌냐?”
이내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다시 이벽을 향했다.
“소환단 말예요. 소환단.”
“……!”
그것은 오 년 전의 일이었다.
이벽은 혜공에게서 받은 대환단을 북두천존 혜능에게서 소환단 다섯 알로 바꾸었고.
파진성과 공손수, 언미희에게 나눠주었으며, 또한 차례대로 추궁과혈을 통해 흡수를 돕기도 했다.
“그거… 오라버니한텐 별거 아니었을지라도 우리에겐 무인으로서의 삶이 송두리째 달라진 순간이거든요.”
“사실은 말야. 지금 이렇게 절정이니 뭐니 해도… 딱히 내 힘으로 이룬 성취는 아닌 것 같거든.”
문득 파진성이 진지한 목소리를 냈다.
“자세히 설명하긴 어렵지만 말야. 그날… 네 덕에 주화입마를 극복한 뒤, ‘무언가’가 계속 내 머릿속에서 나를 이끌어주고 있는 기분이 든다.”
“이하동문이에요~”
스륵.
공손수의 소매에서 비수가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 날붙이 위로 너무 쉽게 강기가 맺혔다.
“저, 암영각의 6호가 됐어요. 정신 차리고 보니까 엄마나 유모보다도 더 강해져 있고… 하지만 이건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거잖아요?”
“…….”
이야기는 갑작스러웠다.
이벽은 불현듯 과거, 낙검진천신공이 ‘지니고 있던’ 공능을 생각했다.
생각보다 앞서 스스로 움직이며 마음을 비추던 선천의 힘은… 기실 자신의 것이 아니라 스승에 의해 ‘부여된 힘’이었다.
그리고 그 힘에 의존하여.
과거, 이벽은 목천의 경지에 이르렀다. 어쩌면 지금 두 사람이 말하는 경험과 그리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뭐… 어찌 되었건 이래저래 빚은 쌓여만 가네요~ 솔직히 좀 부담스러울 정도예요.”
하아, 공손수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만큼이나 도움을 받아놓고… 정작 앞으로의 싸움에서 오라버니한테 머리털만큼이나 도움이 될런지 잘 모르겠어요.”
“이하동문이다. 케헤헤! 설마 절정이 되고도 아직까지 전력 외 신세라니, 솔직히 억울하지만 말야.”
“…아니, 그건 지나친 생각이다.”
이벽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장 어젯밤의 싸움에도 너희가 없었더라면 공능자나 송영영을 상대로 훨씬 더 애를 먹었겠지. 어쩌면 이기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
잠깐의 침묵이 감돌았다.
훗, 공손수가 어깨를 으쓱했다.
“말이라도 기분은 좋네요~ 좌우간에 이 몸뚱아리는 이미 오 년 전 오라버니께 내어드린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깊은 곳까지 마음껏 구석구석 살펴주세요~”
“…쥐방울, 그건 말이 좀 이상하지 않냐?”
핫, 웃음이 스치고 지나갔다.
우우웅.
이내 이벽은 두 사람에게 차례대로 추궁과혈을 시전했고, 예상대로 어렵지 않게 청강유엽공의 경로를 수정해내었다.
“뭔가… 기분 묘하지 않냐 쥐방울?”
“…그러게요. 이래도 되는 건가?”
그리고 날이 서서히 저물었다.
저무는 해가 비추는 두 사람의 얼굴 위로 설명할 수 없는 몽롱함이 감돌았다.
이내 서로의 눈을 마주했다.
“간만에 한 판 붙을래? 케헤헤.”
“모처럼 좋은 생각이네요.”
탓.
이내 두 사람 또한 자리를 박찼다. 혁대웅과 마찬가지로 울타리 바깥의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
그리고.
마당에 홀로 남은 이벽은 이내 가부좌를 틀고 자신만의 상념에 잠겨 들었다.
소림에서의 비무와 지난밤의 일전, 두 번에 걸쳐 체험한 송영영의 태극을 생각했다.
검이 그려내는 태극 안에는.
다시 무수히 많은 작은 태극이 자리하고 있다. 여러 겹의 태극이 겹쳐지고 맞물리며 다시 태극을 이룬다.
그리고 이벽은 유검을 통해 그와 같은 모양새를 모방하는 데에는 성공했다. 허나.
엄밀히 말하자면, 이벽의 유검이 그려내는 것은 태극이 아니라 그저 단순한 ‘원’에 불과했다.
송영영과 자신의 격차는.
바로 거기서 비롯되는 것이다.
허나… 이벽은 물론 무당의 태극을 배운 적이 없다. 그리고 지니지 못한 것을 원해봐야 소용없다.
고로 ‘가지고 있는 것’으로.
어떻게든 하는 수밖에 없다.
“…….”
다시 상념이 이어졌다.
이윽고 해가 저물고 밤이 되었다.
불현듯 이벽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행과 마찬가지로 모옥의 울타리를 떠나 안개 속으로 향했다.
몇 가지 작은 깨달음들이 스쳤다.
그리고 자신의 그러한 생각들이 ‘올바른 길’인지 아닌지는 물론, 정도와 외도를 판별하는 공능을 지닌 진법이 확인시켜줄 터였다.
훅, 훅.
이벽은 검을 휘둘렀다.
깨달음을 점검한 뒤에는 다시 모옥으로 돌아와 잠이 들었고, 일어나서는 다시금 깨달음을 점검한 뒤 안개 속으로 향했다.
또한 그것은 혁대웅과 파진성, 공손수 역시 다르지 않았다.
낮과 밤의 경계가 무너진 채, 네 사람은 저마다의 ‘새로운 무공’에 집중했다.
그렇게 각자의 안개 속에서.
사흘의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