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36)
36화. 친선비무 (1)
“큭!”
언미희는 땅을 박차고 일어났다.
황급히 맹우강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맹우강은 좀 전의 위치에서 한 발짝조차 움직이지 않았다.
어깨에 도를 걸친 채 느긋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
자신을 추격조차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회심의 일격을 먹였음에도, 맹우강에게서는 더 이상 충격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이길 수 없구나.’
언미희는 깨달았다.
도를 막아선 단 한 순간, 맹우강의 도에 서린 검붉은 기운은 권갑을 뚫고 파고들어 자신의 기혈을 엉망으로 만들어놓았다.
뿐만이 아니다. 잠깐이나마 몸으로 받아내었던 그 내력의 양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마치 시커먼 거목과 같다.
뿌리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다.
사파 제일의 후기지수. 앞서 이벽과의 비무에서 느꼈던 것과 비슷한 압도적 경지의 차이.
아니, 어쩌면…….
“더 하겠나, 계집?”
“…….”
언미희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나 더는 서 있는 것조차 쉽지 않다. 승산이 없는 싸움을 무리해서 계속해본들 의미는 없다.
언미희는 비무대에서 내려왔다.
“이번 비무는 흑천방의 맹우강 소협께서 승리하였소!!”
와아아아!!
흑천방 측 후기지수들 사이에서 터져 나오는 환호성을 뒤로하며 언미희는 퇴장했다.
객석의 지소약에게로 향했다.
“고생 많았어, 미희야. 설마 네가 흑천방과 직접 부딪히게 될 줄은 몰랐구나. 의약당에 가지 않아도 괜찮겠니?”
“…괜찮습니다.”
괜찮지는 않았다.
그러나 다음의 승부를 봐둬야만 한다. 그 승패의 결과에 의해 사실상 비룡대의 대주가 결정될 것이다.
언미희는 팔짱을 낀 채 잠자코 비무대 위에 선 맹우강을 바라보았다.
누군들 크게 다를 것 없겠지만, 가급적 저 녀석의 휘하에서만큼은 있고 싶지 않다. 그러나.
‘…어렵겠지.’
해남검파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전혀 알지 못하지만, 저 맹우강을 이길 수 있는 존재가 후기지수 중에 있을 것 같지 않다.
터벅.
와아아아아!!
그리고 다음 순간, 해남검파 진영의 환호성 속에서 한 사내가 당연하다는 듯 걸어 나왔다.
해남검파의 대제자 파진성.
마침내 모두가 고대하던 승부가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흑천방과 해남검파.
패왕가가 존재감을 잃은 지금, 가깝게는 비룡대의 대주를, 멀게는 차기 사패련의 향방을 정하는 승부가 될 것이다.
비무대 위에 마주하고 선 두 사람이 몇 마디 대화를 나누었다. 다만 객석에서는 그 내용까지 들리지는 않는다.
타앗!
비무의 시작을 알리는 심판관의 선언과 함께 파진성이 먼저 파고들었다.
뽑아 든 검은 특이하게도 왼손에 들려 있었다.
“해남검파의 청해십이검(靑海十二劍)이구나.”
지소약이 말했다.
요동치는 파도의 모습을 본떠 창안된 검식으로, 좌수에서 펼쳐지는 기괴망측한 전진과 후퇴는 감히 예측하기 어렵다.
“차핫!!”
챙, 채앵!
청량한 기합과 함께 파진성의 검이 파도처럼 흔들리기 시작했다.
반면 맹우강은 제자리에 선 채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공격을 막아낸다.
챙! 챙! 채앵!
파도가 바위를 깎아내듯, 파진성의 지속적인 연격이 이어졌다. 조금씩 맹우강의 손이 꼬여든다.
짐짓 파진성이 우세를 점하는 듯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파지직, 맹우강의 도에 검붉은 기운이 어리기 시작했다.
“…흑천뇌도(黑天雷刀).”
지소약이 침음성을 흘렸다.
“역시, 잘못 본 게 아니었구나. 미희야, 지금이 아니더라도 이 비무가 끝난 후에는 꼭 의약당에 들러야 한다.”
“…네?”
“저 기공은… 상대의 병기와 부딪히는 것만으로도 상대의 기혈에 상처를 입힌다고 하더구나.”
“…….”
언미희는 자신의 감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이해했다. 양팔에는 아직도 저릿함이 남아있다.
“하지만 저 나이에 비전절기를 실전에 써먹을 만큼의 성취를 이루다니… 보고도 믿기 어렵네.”
쾅! 쾅! 쾅!
다시 충돌이 이어졌다.
의외로 파진성은 흑천뇌도 앞에서도 그리 쉽게 기세를 빼앗기지는 않았다.
그러나 고통스럽지 않을 리 없다. 다만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으리란 직감을 느낀 것일 테다.
파지지직!
그러나 누적되는 기혈의 손상 앞에서 파진성의 검은 조금씩 날카로움을 잃었다.
그리고 그만큼 맹우강의 도에는 여유가 서리기 시작했다.
언미희는 승패를 직감했다.
설령 계속해서 버티고 버틴들, 맹우강의 무기는 흑천뇌도뿐만이 아니다.
그 압도적인 내력의 양 앞에서는 지구전조차 의미가 없다.
타앗.
다음 순간, 그 사실을 느낀 파진성이 물러서고 말았다. 거리를 벌린 채 오른손으로 왼팔을 붙든다.
“하! 고작 이 정도인가, 파진성?!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군! 오히려 하오문의 계집이 네놈보단 더 쓸만했다!”
맹우강이 큰소리로 외쳤다.
일부러 객석까지 들으라는 듯 내력을 담아 소리를 내지른 것이다.
와아아아아!!
그와 동시에 흑천방 측에서는 환호성이 드높아졌다. 반면 해남검파 측에는 서서히 침중한 기색이 감돈다.
“크윽.”
파진성이 오만상을 찌푸렸다.
이럴 리 없다. 무언가가 잘못되었다. 설령 질 수는 있더라도 불과 몇 년 사이에 이렇게까지 격차가 벌어졌을 리 없다.
“…….”
그러나 곧 현실을 받아들였다.
어쩌겠나. 일이 그렇게 된 것을.
그저 자신의 검을 믿는 수밖에 없다. 부딪힐 때마다 손해를 본다면, 단 한 번의 부딪힘으로 승부를 낸다.
파진성은 지금의 자신이 펼칠 수 있는 가장 강한 초식을 떠올렸다. 아직은 단 한 번도 실전에서 써보지는 못했지만.
타앗.
파진성이 뛰어올랐다.
그대로 허공에서 추락하며 맹우강을 향해 거리를 좁혔다. 손에 들린 검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아가고, 물러선다.
거듭되는 진퇴 속에서 검의 기운이 허공에 중첩되며 파도를 이루기 시작했다.
청해십이검(靑海十二劍), 파랑격쇄(派浪擊碎).
콰콰콰콰콰!!!
이내 격랑이 일었다. 파진성의 검이 해일과 같은 기세로 맹우강을 향해 짓쳐 들었다.
“흥, 한심하군. 누가 맞아 준다고 했나?”
파지직!
다음 순간, 맹우강의 도에 서린 검붉은 기운이 훅 두터워졌다. 그리고 한 발 내디디며 도를 휘둘렀다.
콰앙!
그러나 그 도는 파진성을 향하지 않았다. 아래로 내려찍어진 도가 애꿎은 땅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쾅, 파지직!
바로 그 순간이었다.
맹우강의 도가 땅을 두드림과 동시에, 파진성의 발밑에서 벼락이 솟구쳤다.
파지지직!
“커헉, 컥!”
파진성이 벼락에 휩싸였다.
파진성은 절초는 맹우강에게 닿아보지조차 못한 채 이내 허무하게 스러져갔다.
쿵, 털썩!
“컥! 이… 이런 씹—”
파진성이 추락했다.
* * *
장내는 고요함에 휩싸였다.
해남검파의 대제자이자 그 지지 세력을 대표하는 후기지수 파진성이 비무대 위에 늘어져 있다.
의식을 잃은 듯했다.
비무를 치렀다면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렇듯 압도적인 결과가 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흥, 하찮군.”
맹우강이 도를 거둬들였다.
“이, 이번 비무는 흑천방의 맹 소협께서 승리하셨소!”
와아아아아!!
파진성의 상태를 확인한 심판관이 마침내 결과를 선언했고, 흑천방 쪽에서 환호성이 일었다.
반면 해남검파 측에는 더욱 거대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양 진영의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린다.
“자자! 그밖에 맹 소협에게 더 도전하고자 하는 소협은 없소?!”
심판관이 외쳤다.
그러나 물론 있을 리가 없다.
뜻밖에 하오문의 언미희가 활약하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맹우강과 파진성의 비무가 너무 일찍 이뤄져 버렸지만, 이제 와서 그 누가 맹우강을 당해낼 수 있을 것인가?
해남검파 측의 후기지수들은 침묵했다.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지고 서로를 둘러보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
“허허, 축하드립니다, 당주!”
“마침내 흑천방의 노력이 결실을 맺으셨구려!”
여기저기서 축하 인사가 날아들었다. 하나하나에 포권으로 답하며 묵룡당주 맹종수는 쾌재를 불렀다.
‘이젠 되었다.’
패왕가의 그늘은 길었다.
이유도 없이 스스로 문을 걸어 잠근 그들이 못내 두려워서 몇 년 동안이나 큰 소리를 내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그동안 물밑에서 이뤄온 노력들이 마침내 양지로 올라올 때가 된 것이다.
애초에 오늘의 비무는, 그리고 비룡대는 처음부터 흑천방을 위해 꾸며진 무대였다.
이제 와서 해남검파가 뒤늦게 야욕을 부려본들 그동안 자신들이 쌓아왔던 노력을 어떻게 할 수는 없다.
만에 하나 오늘 맹우강이 파진성에게 패배했다 해도, 장기적으로는 결국 흑천방의 하늘이 열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었다.
그의 조카인 맹우강은 기대를 훨씬 웃도는 힘을 보여주었고, 덕분에 빠르고 편한 길이 열렸다.
‘자랑스럽구나, 우강아.’
맹종수는 기뻤다.
이변 따윈 없다. 이제 와서 패왕가가 다시 허리를 편다 해도 넘어온 대세를 어찌할 수는 없다.
잠자는 것은 사그라들 따름이다.
“맹 당주, 좋은 승부였소. 대단한 인재를 키워내셨구려.”
“허허! 이거, 몸 둘 바를 모르겠소이다. 다 제 놈이 노력한 것이지 이 몸이 무얼 했겠소?”
그때 맹종수에게 다가와 고개를 숙인 것은 사패련 호천대의 대주이자 해남검파 출신인 파호남이었다.
빠르게 이합집산이 이뤄진다.
어찌 되었건 흑천방이 해남검파와 그 휘하 세력을 쳐낼 순 없고, 해남검파 역시 사패련과 갈라설 수는 없다.
서로가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정파로부터 사파무림의 영역을 지켜내려면 결국은 함께 갈 수밖에 없는 것.
“자자! 그렇다면! 이대로 오늘의 친선 비무를—”
스윽, 저벅저벅
심판관이 종료를 알리려던 그때였다.
들것에 실려 운반되는 파진성과 교차하며 인영 하나가 비무대로 올라섰다.
인영이 맹우강을 마주하고 섰다.
그러나 장내는 아직 꺼지지 않은 환호성 속에서 비무대 위로 새롭게 등장한 인영의 존재조차 눈치채지 못했다.
“도전하겠소.”
인영이 심판관에게 말했다.
“도, 도전? 비무 말이오?”
“그렇소.”
“아, 아니, 대체…….”
일순 심판관의 곤혹스런 시선이 상석의 맹종수를 향했다. 그제서야 비무대 위의 상황을 파악한 맹종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새로 나타난 인영의 정체를 확인한 순간, 그의 머릿속에서 며칠 전의 일이 다시금 스쳐 지나갔다.
근 몇 년 만에 사패련주가 공식 석상에 나타났다. 바꿔 말하면 저 녀석이 그만한 의미를 가진다는 뜻.
좌우간 맹종수는 그 사실이 외부로 알려지는 것을 막았다.
다음 순간, 맹종수는 거짓말처럼 불안감이 치솟았다. 아니, 맹우강이 질 리는 없다.
이미 끝난 싸움이다. 하지만….
“소… 소협은 누구시오?”
심판관의 질문에 인영은 잠시 침묵했다. 생각에 잠긴 듯 미간을 구기다 이내 입을 열었다.
“하오문… 아니, 낙검문의 이벽이오.”
* * *
“흥, 도망치지 않은 것만으로 칭찬은 해주지. 물론, 그만한 대가는 치러야 할 것이다.”
“…….”
왜지?
이벽은 맹우강을 바라보았다.
마주 선 맹우강은 비무가 시작되었음에도 제자리에 선 채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손가락을 까딱거린다.
선공을 양보할 생각인가.
이유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굳이 마다할 이유도 없다. 이벽의 손이 허리춤으로 향했다.
타앗!
다음 순간, 이벽의 신형이 앞으로 뻗어나갔다.
채앵! 챙!
청강검식이 펼쳐졌다. 발검식과 회검식에 담긴 여섯 개의 묘리가 수놓아졌다.
“큭!”
짐짓 반복되는 검로.
그러나 매번 달라지는 검의 양상.
채 십여 합을 채우기도 전에 막아서는 맹우강의 도가 방향을 헤매기 시작했다.
파지직!
그때, 맹우강의 도에 검붉은 기운이 일었다. 흑천뇌도가 빛을 발한 순간 이벽은 위험을 감지했다.
채앵!
도를 쳐낸 뒤 일 보 물러섰다.
“핫! 도망치는 건 잽싸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