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37)
37화. 친선비무 (2)
이벽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찰나의 부딪힘. 그러나 손끝에 저릿함이 감돌았다.
‘…그런 건가.’
그저 닿는 것만으로 충격을 준다.
맹우강의 도에 어린 검붉은 기운을 바라보았다. 성가신 기공이다. 하지만… 떠오르는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시험해볼 가치는 있겠지.
탓, 이벽이 다시 파고들었다.
청강검식, 발검식 쾌의 묘리가 쏜살처럼 파고들었다. 그러나 살갗에 닿기 직전 맹우강의 도가 검로를 막아섰다.
후욱!
검과 도가 부딪히려는 찰나, 이벽은 검을 꺾었다. 회검식 유의 묘리로 검을 회수했다.
챙, 스윽.
“큭, 이 쓰레기가!”
회수되는 검이 도신을 스치며 맹우강의 팔에 생채기를 냈다. 그리 대단한 상처는 아니다. 그러나.
‘생각대로 먹히는군.’
타닷, 이벽은 연엽보를 밟아 거리를 조절했다. 회수된 검이 다시 연달아 회검식 유의 경로를 밟았다.
챙, 채챙! 챙!
격돌이 누적되기 시작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조금 전 파진성과의 양상과 같았다.
지켜보는 모두가 곧 이벽이 흑천뇌도의 기운에 나가떨어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맹우강은 느꼈다.
무언가가 이상하다. 검의 움직임이, 무언가가 흑천뇌도의 기운을 흩어버리고 있다.
들어올 듯하다 부드럽게 빠져나가는 검은 마치 미꾸라지와 같아 기운이 닿기 전에 털어내는 것 같다.
닿을 듯 닿지 않는다.
제대로 충격을 못 주고 있다.
‘이, 이 새끼가?’
맹우강은 내심 놀랐다.
이런 적은 처음이다. 여태껏 만난 모든 상대는 흑천뇌도를 꺼내든 순간 그것으로 이미 끝이었다.
그저 공방을 나누며 가만히 버티는 것만으로, 상대는 흑천뇌도의 기운에 잠식되어 서서히 자멸에 늪에 빠졌던 것이다.
파진성조차 예외는 아니었다.
챙, 채앵!
“오냐!! 누가 이기는지 해보자!!”
빠득, 맹우강이 이를 갈았다.
자존심이 상했다. 허나 흑천뇌도가 먹히지 않는다면 먹힐 때까지 버티면 그만이다.
맹우강은 내력에 있어서도 절대적인 자신이 있었다.
천고의 기연을 얻었다. 덕분에 감히 꿈꾸지도 못했던 막대한 내력을 손에 넣었다.
제깟 놈이 재주가 있다고 한들, 그 압도적인 격차를 어떻게 할 수는 없다.
챙, 채앵, 챙!
맹우강은 미친 듯이 도를 휘둘렀다. 그러나 전적인 수세였다. 공방의 주도권은 이벽에게 있었으며, 공격 따윈 엄두도 낼 수 없다.
이벽 역시 흑천뇌도로 인해 섣불리 파고들지는 못했으나, 회검식 유의 묘리는 상대의 기공을 흘려보내어 자신을 보호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챙, 채앵, 챙!
순식간에 백여 합이 흘렀다.
맹우강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오직 자신의 몸에만 일방적으로 자잘한 생채기가 늘어가고 있다.
무엇보다 이쯤 되면 지쳐서 나가떨어져야 마땅하다.
그러나 상대하고 있는 하오문의 잡놈은 안색조차 변하지 않는다.
허세인가? 물론 그럴 것이다.
자신조차 팔이 뻐근한데 지치지 않을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럴 수밖에 없고 그래야만 한다.
‘나쁘지 않다.’
그러나 이벽은 허세가 아니었다.
검을 나누고 있는 지금 이 순간조차 선천의 힘은 스스로 움직이며 소모된 내력을 채워준다.
청강검식으로 소모되는 내력 정도는 이벽에게 있어 한 호흡 만에 돌려받을 수 있는 수준에 불과했다.
챙, 챙!
오히려 이벽은 이 공방을 기회 삼아 스스로의 검을 시험하고 있었다.
그리고 백합을 넘어서면서 마침내 필요한 확신을 얻게 되었다. 청강검식이 더는 흔들리지 않는다.
심마는 적파심공 속에 단단히 봉인되어 가라앉아 있다. 살심은 격리되어 쉬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벽은 만족했다.
사력을 다해 자신의 청강검식을 백여 초나 버텨준 맹우강에게 고마움을 느낄 지경이다.
“…….”
그러나 이벽은 슬슬 눈치챘다.
맹우강의 도는 이상한 데가 있다.
흑천뇌도는 분명 상대하기 껄끄러운 기운이며, 맹우강의 내공 역시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뿌리가 깊다. 그러나.
‘초식이 얄팍하다.’
그러한 내력과 기공을 지녔음에도 방어에만 급급한 도의 움직임은 어딘가 깨달음이 불균형하다는 인상을 준다.
흑천뇌도를 상대하는 이벽의 청강검식이 발검식 쾌와 회검식 유, 단 두 개의 무리로 고정되어있음에도 제대로 반격하지 못한다.
…어디까지 가나 볼까.
챙, 채앵!
이후 지루한 공방이 거듭되었다. 그리고 지켜보는 이들의 예상과는 달리, 균형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건 오히려 맹우강 쪽이었다.
“크—”
맹우강은 짜증이 솟구쳤다.
“크아아악!!”
후웅!
다음 순간, 맹우강의 도가 횡으로 크게 휘둘러졌다.
나름대로 적응한 맹우강이 회검식과 발검식 사이의 틈을 비집은 것이다.
도는 거대했고 피할 곳은 없다.
어설프게 물러서려 했다간 앞서 언미희가 당했듯이 정면으로 저 힘을 막아서야 할 것이다.
타닷!
이벽은 오히려 다가섰다.
연엽보가 간격을 조절한다.
틈새를 찌른 건 좋았지만, 노림수가 드러나는 공격은 오히려 자신의 약점이 된다.
청강유엽검식(淸江流葉劍式).
회검제삼식(回劍第三式).
유검(柔劍).
살랑, 부드러운 바람이 검붉은 도기를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일순 맹우강은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여태까지와 똑같은 검식.
그러나 질적으로 다르다.
‘맞으면 끝이다.’
그 순간, 맹우강은 힘껏 내력을 짜내었다. 휘두르던 도를 포기한 채 비장의 방어초식을 끌어올렸다.
흑천호운강(黑天護雲罡).
파지직!
일순 검붉은 기운이 먹구름처럼 일어나며 맹우강의 몸 전체를 감쌌다. 흡사 호신강기와 같다.
아니, 그러나 강기라고 하기엔 얄팍하다. 제대로 완성되지 않은 초식이다.
찰나의 판단을 마친 이벽은 망설이지 않았다. 슥, 먹구름 위를 이벽의 검이 훑고 지나갔다.
찌릿!
“…….”
그리고 이벽은 일 보 물러섰다.
검을 쥔 오른팔이 작게 경련했다. 상대의 몸을 두른 구름 역시 도에 서렸던 기운과 같이 기혈을 역류하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
아니, 더욱 강하다.
청강유엽검식의 유검으로도 혈도에 스며드는 그 기운을 전부 다 털어내지는 못했다.
팟, 파밧!
그러나 다음 순간, 맹우강의 복부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회심의 방어초식을 둘렀음에도 이벽의 회검식은 구름을 흩어버리고 상처를 남겼다.
“…크.”
터벅.
맹우강 역시 뒷걸음질 쳤다.
상처는 그렇게 깊지는 않다.
그러나 절대적인 믿음을 품었던 흑천호운강을 둘렀음에도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 자체가 맹우강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고통은 날카로웠고 낯설었다. 자신의 몸에서 피를 본 게 얼마 만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가진 건 그게 다인가?”
이벽이 말을 꺼낸 건, 맹우강이 무의식적으로 세 걸음이나 물러선 후였다.
웅성웅성.
객석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여태까지의 공방은 최소한 당사자들 외에는 누구에게 주도권이 있는지는 알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번의 격돌은 물러선 걸음의 수만으로도 명백했다.
맹우강은 이벽을 바라보았다.
그 담담한 얼굴을 본 순간, 맹우강은 치솟는 수치심을 느꼈다. 스스로 뒷걸음질을 쳤다는 게 걷잡을 수 없이 화가 났다.
파지지직!
“크아아아! 잡놈의 자식이!!”
맹우강의 흑천뇌도가 크게 부풀어 올랐다. 쾅! 땅을 내려찍자 이벽이 서 있던 자리가 폭발했다.
흑천지뢰진(黑天地雷陣).
거리를 뛰어넘어 상대를 격하는 발군의 초식으로, 파진성을 쓰러뜨린 바로 그 공격이기도 했다.
탓!
그러나 그 순간 이벽은 이미 자리에서 벗어나 있었다. 멈추지 않고 움직인다.
쾅! 쾅! 쾅!!
“네까짓 게 감히 날, 날 모욕하느냣!!!”
걸음걸음마다 벼락이 뒤따른다.
그러나 이벽은 당할 듯 당하지 않는다. 벼락은 찰나와 같지만, 그 벼락을 이끌어 내는 맹우강의 도는 빠르지 않다.
이벽은 조금씩 거리를 좁혔다.
연엽보는 청강검식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진 무공으로, 속도는 빠르지 않아도 간격을 점하는 데에 있어 탁월하다.
쾅! 콰앙!
“크앗, 크아아아악!!”
비무대가 사정없이 터져나갔다.
흑천지뢰진은 강력하지만, 내력의 낭비가 심하여 남발해선 안 된다. 그러나 맹우강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벽에게는 닿지 않는다. 강물 위에 피어난 연잎을 밟듯, 이벽의 신형이 일보 일보 거리를 좁혔다.
“허억, 헉! 좋다, 와라!! 어디 한 번 또다시 부딪혀보자!!!”
파지직!
마침내 이벽과 맹우강의 거리가 일 보 차이로 좁혀진 순간, 맹우강의 온몸에서 기운이 일어났다.
맹우강이 또다시 사력을 다해 흑천호운강을 펼친 것이다. 마침내 그의 숨결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으로 안심이다.
놈의 검이 흑천호운강을 뚫어낼 수 있다면, 더 두껍게 두르면 그만이다.
“…….”
이벽은 생각했다.
저 구름과 같은 기운은 분명 만만하지 않았다. 앞서 유검식을 펼쳤음에도 일말의 상처만을 남겼다.
좀 더 강한 힘이 필요하다.
그러나 강기를 고려하지는 않는다. 또한 이제 갓 체득했을 뿐인 도살지도를 시험해볼 생각도 없다.
비무일 뿐, 죽일 이유는 없다.
하지만… 유검식이 아닌 다른 초식으로 저 구름에 닿았다간 자신에게도 만만치 않은 충격이 밀려올 것이다.
우웅.
그때, 선천의 힘이 흔들렸다.
찰나의 순간 이벽은 느꼈다. 때때로 그래왔듯이 선천의 힘이 몸 안에서 무언가를 속삭이고 있다.
“크하아압!!”
그 순간, 흑천지뢰진을 담은 도가 그대로 이벽의 머리 위로 내려찍어졌다.
판단은 짧게 이루어졌다.
이벽은 또다시 의심하지 않았다.
청강유엽검식(淸江流葉劍式).
발검제삼식(拔劍第三式).
강검(强劍).
카앙—!!
힘과 힘의 부딪힘.
파지직! 검과 도가 충돌한 순간, 흑천뇌도의 기운이 검을 타고 스며든다.
이벽의 손과 팔, 어깨를 타고 이벽의 기혈을 찢어발기려 했다. 그때였다.
우웅.
선천의 힘이 거세게 진동했다.
사이하게 변형되어 이벽에게 해를 입히는 내력 따윈 그 순수한 기운 앞에서 감히 발을 붙일 수 없다.
파지직!
다음 순간, 흑천뇌도의 기운이 도망치듯 이벽의 피부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파창!
맹우강의 도가 부러졌다.
훙훙훙, 반 토막 난 도신이 허공을 날았다.
쿠웅!
저만치 바닥에 틀어박혔다.
“웁, 커헉!”
그리고 맹우강은 객혈했다.
털썩,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이내 거구의 신형이 스르륵 무너져내렸다.
* * *
장내에는 다시 고요가 찾아왔다.
쓰러진 맹우강은 결국 일어서지 못했다.
그러나 이벽의 승리를 알리는 선언은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후에서야 이뤄졌다.
해남검파의 파진성도, 하다못해 암영각의 공손수도 아닌 하오문의 이름 모를 후기지수가 흑천방의 맹우강을 꺾어버렸다.
어느 누구도 그 의미를 쉬이 이해하지 못하는 가운데 사패련의 비룡대 결성을 위한 친선비무회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이후 그날 저녁, 묵룡당의 회의실에는 각 세력의 대표자들이 긴급하게 모였다.
“친선비무의 결과는 다소 예상 밖이었지만, 그 소협을 대원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것 같소.”
누구도 말을 꺼내지 못하는 분위기 속에서 묵룡당주 맹종수가 련의 입장을 대표하여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애시당초 하오문은 동맹관계일 뿐, 련의 가맹세력이 아니므로 그 후기지수를 비룡대원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강짜에 가까운 주장이다.
애초에 그랬다면 본 행사에 초청을 보내지 말았어야 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 주장에 반발하지 않았다.
모두가 흑천방의 뜻에 따른다.
해남검파조차 반발하지 않았다. 그러한 대표자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맹종수는 내심 황폐해진 마음을 바로잡았다.
마침내 패왕가의 그늘을 걷어내고 흑천방의 새 하늘을 열고자 했던 대회였으나, 그 상징성이 처참하게 퇴색되고 말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달라질 건 없다. 시간이 좀 더 걸릴 뿐, 늘 그랬듯 지금 이 순간만 참아넘기면 된다.
흑천방은 더 성장할 것이다.
결국 대세를 거를 수는 없—
드르륵.
“외부인이라니? 무슨 소리인가?”
그러나 그때, 누군가 회의실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아니, 들어서려 했다.
쿠웅!
“에이, 젠장할! 이놈의 문틀을 때려부수던가 해야지! 어험, 그래. 다들 오랜만이구만. 잘들 지냈는가?”
“…….”
거구의 인영이 나타났다.
맹종수의 안색이 폭삭 시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