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387)
395화. 부처의 뜻 (2)
“어떤 것 같소, 시주? ‘부처님의 뜻’이란…, 참으로 오묘하다고 생각하지 않소? 흘흘.”
서광에 휩싸인 혜공이.
부처와 같은 미소를 보였다.
또한 그 머리 위로 떠오른 거대한 황금빛의 불상 역시 연꽃처럼 은은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노승이 이뤄낸 깨달음은.
이미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과 마음이 온전히 하나가 되어, 서로 구분되지 않는 경지에 이른 것이다.
허나 그와 동시에.
네 개의 관을 발아래에 깔아둔 채, 홀로 정좌하고 앉은 불상의 모습에서는 기이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조금 전, ‘부처님의 뜻’이란 말을 꺼낸 즈음부터 혜공에게서 느꼈던 그러한 위화감은.
불상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
조금 더 명징하게 다가왔다.
‘저게… 부처라고?’
이벽의 미간이 굳었다.
“흘흘, 그야 믿기지는 않겠지. 은인이자 스승이 실은 시주를 ‘이용하려 했다’는 사실을… 어찌 쉬이 받아들이겠소?”
허나 혜공은.
불상과 시신들을 바라보는 이벽의 시선을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허면 시주께서는 본인이 어떻게 내력을 되찾게 되었는지 이 늙은이에게 설명해줄 수 있겠소?”
다시 이벽은 혜공을 향했다.
물론, 이벽의 내력은 이진천에게서 전수받은 낙검문의 비전, 낙검진천신공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허나.
낙검진천신공이란.
처음부터 ‘말로 전수되지 않는 가르침’이었다. 단전을 잃고서 이진천에게 주워진 후, 함께 낙검문에 도착한 이벽은.
추궁과혈을 통해.
‘무언가를 주입’당했다.
그리고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마음의 돌을 치워내자, 선천의 힘은 마치 ‘살아 움직이듯 스스로’ 내력의 고리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즉, 다시 말해.
채 절정에 이르기도 전부터 이미 등천의 기예를 넘어서는 공능이 몸 안에서 저절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
그리고 그것은.
분명 스승의 힘이었다.
언제부터였던가, 이벽은 ‘스승의 일부’가 자신의 심신 어딘가에 똬리를 튼 채 자신을 돕고 있음을 어렴풋이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마도.
혜공의 말마따나 스승은.
이벽이 조금 더 성장을 이룬 이후, 일부가 아닌 ‘자신의 전부’를 이벽에게 넘길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때문에 이진천은.
‘심부름’이라는 알 수 없는 명목하에 이벽을 무림으로 내보냈으며, 그러한 무림행에서 이벽은 적잖은 성취를 이뤄내었다.
물론, 그 이면에는 눈앞의 혜공을 비롯한 ‘뭇 천마’들의 개입이 있었던 덕분이기도 했다.
개방주 취풍신개는.
혈마라는 정체를 감춘 채, 이벽에게 쾌보의 묘리를 비롯한 적잖은 가르침을 내려주었으며.
또한 권왕 황보혁은.
의혈맹주의 이름으로 이벽을 비롯한 비룡대 전체에 추포령을 내리며 시련을 겪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두 명의 천마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이벽에게 관심을 쏟았던 것 또한.
결국 이진천의 일부를 지닌 이벽에게서 자신과 같은 ‘천마의 존재감’을 느꼈기 때문일 터였다.
분명.
‘기연’과 ‘시련’으로서, 두 존재의 개입이 없었더라면 이벽은 지금과 같이 빠른 성장을 이루지 못했을 터였다.
그리고 그마저도 결국.
스승 이진천의 안배인 셈이었다.
“물론, 시주의 스승을 헛되이 모욕하려는 것은 아니오. 아마도 청천 시주께서는―”
다시 혜공이 말을 이었다.
“…아니. 더 이상은 됐소.”
허나 이벽은 말을 끊었다.
“이야기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 못해 지나치게 들었소. 스승에 대한 것은 물론, 그다음의 이야기라면 아주 잘 알고 있으니.”
즉, 스승 이진천은.
처음부터 ‘갈아탈 육신’을 만들기 위해 자신을 거둬들인 것이다. 허나 그러한 사실을 알았다고 한들 이제 와 딱히 충격적일 이유도 없았다.
애당초 그 당시.
스승은 ‘자신을 따라온다면 검을 가르쳐주되 언젠가는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고 분명히 말하였다.
즉, 이벽에게 선택권을 주었다.
그리고 그러한 얘기를 듣고 나서도 스승을 따라나선 것은 분명 자기 자신의 의지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패련의 싸움이 막바지에 접어들었을 무렵, 스승 이진천은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었고 사패련의 혈마를 자신의 손으로 해치웠다.
그리고.
이벽을 도로 화정촌에 데려다 놓았으며,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까지 ‘마을을 떠나지 말라’는 말을 남겼다.
결국 스승 이진천은.
‘새 육신을 통해 천마를 베고 천하를 구한다’는 처음의 소명을 저버린 채, 자신과 사형제들을 무림으로부터 멀찍이 떨어뜨려 놓으려 했다.
이벽은 이제서야 조금이나마.
스승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당신은… 최소한 내 스승의 죽음에도, 그리고 지금의 전쟁에도 직접 관여하지는 않았음을 잘 알겠소.”
“…흘흘.”
“그러니 이제 그만 말해보시오. 더는 시간을 끌고 싶지 않으니, 우리가 서로를 죽이지 않고 이 상황을 끝내기 위해 내가 뭘 어찌하길 바라시오?”
다시 이벽은.
관 속의 송영영을 향했다.
송영영은 스승 이진천의 심장을 꿰뚫었다. 허나 그것은 결국 천마의 씨앗에 잠식당하기 시작한 이진천을 해방시켜 준 것이기도 했다.
동시에 그 순간.
이진천의 씨앗은 송영영에게로 옮겨갔을 터이며, 이후 소림에서 다시 만난 송영영은 거짓말처럼 강해져 있었다.
―안 되겠다 싶으면 그냥 집으로 도망쳐. 정파무림은… ‘내가’ 어떻게든 알아서 할 거니까. 딸꾹.
‘마지막 천마’인 송영영이.
스승 이진천과 정확히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허나.
조금 전, 그녀는.
전쟁의 빈틈을 타 황보혁과 취풍신개, 환야의 심장을 관통한 뒤 마침내 스스로 죽음을 맞이하려 했다.
다섯 개의 씨앗을 모두 모아.
천마가 눈을 뜨기 전에 자기 자신을 멸해버린다. 즉, 이진천이 하려 했던 일을 ‘이어받은 것’이다.
다만 그녀는.
환야, 즉 혜공이 숨기고 있던 정체를 알지 못했고 또한 그가 어떠한 삶을 거쳐온 존재인지 미처 알지 못했기에.
지금과 같은 상황에 처했다.
그리고 그렇기에, 그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음에도 결국 이벽에게 있어 달라질 것은 없었다.
전쟁을 끝내고.
송영영을 구한다.
“…하기는 이야기가 필요 이상으로 길어진 감이 있구려. 흘흘, 늙은이의 노파심을 용서하시오.”
후우웅.
그리고 그 순간.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결국 이 늙은이는 청천 시주를 위한 밑거름이 되고자 했고, 청천 시주는 다시 시주를 위한 밑거름이 되고자 했소.”
사라락. 사락.
몇 장의 메마른 나뭇잎이.
두 사람의 주변으로 떨어졌다.
“저문 낙엽이 썩어 다음 세대의 거름이 되듯, 결국 부처님의 뜻은 흘러 흘러 시주에게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오.”
“…….”
“…그러니 궁극적으로 이 늙은이가 시주께 드리고자 하는 부탁은 오 년 전에도, 지금도 달라질 것이 없소.”
어찌 되었건.
혜공이 천하를 위하는 마음은 진짜였다. 노인은 ‘자기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천하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목표’를 눈앞에 두었다.
“시주, 이 늙은이의 존재를 포함한 모든 천마의 힘을 시주께 내어드리겠소. 그러니 부디… 천하만민을 구원할 부처이자 영웅이 되어주시오.”
* * *
말인즉슨.
부처의 얼굴을 한 노인은.
지금 이 순간, 이벽에게 천하제일을 넘어 감히 고금제일을 논할 만한 힘을 ‘거저 내어주겠노라’ 말했다.
그와 동시에.
이벽이 노인에게서 영웅이 되어달라는 이야기를 듣는 것은 어느덧 횟수로 세 번째가 되었다.
그 또한 거짓이 아님을.
이벽은 알 수 있었다. 허나.
“…그게 왜 나여야만 하오?”
잠깐의 고민 끝에.
이벽은 과거와 같은 것을 되물었다. 어찌 되었건 혜공은 이미 송영영의 몸을 차지한 상태이기 때문이었다.
“무얼 숨기겠소? 기실 지금의 이 몸은 천마의 힘을 온전히 받아들이기에는 분명 적잖은 무리가 따를 것이오.”
노인이 즉답했다.
“무엇보다 나는 고작해야 ‘하나의 씨앗’을 내 것으로 만들었을 뿐, 나머지 네 개가 모두 하나로 합쳐진다면… 그 존재에 잠식당하지 않으리란 자신이 없구려.”
“…….”
“허나 시주의 그 검.”
다시 노인이 말했다.
“검치 시주가 꿈을 꿨으나 결국 이루지 못했던 검, 그리고 청천 시주의 손에서 마침내 완성되었으나 정작 스스로는 사용할 수 없었던 그 검.”
창공비검의 역(逆).
낙검의 기예를 이벽은 완성했다.
“그리고 천마의 불꽃조차 능히 베어낼 수 있는 그 검을 지닌 시주라면… ‘온전한 천마’를 상대로도 능히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겠지. 나는 그렇게 믿소.”
“…그런 이야기로군.”
그 또한.
일견 납득이 가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일단 시주께서 천마의 힘을 오롯이 흡수하고 나면, 그 이후에는 태극무봉 시주의 의식을 잘라내어 이 육신에게로 되돌려주면 그만인 것이오.”
“…그런 일이 가능하다고?”
“흘흘. 그야 물론이오. 다시 말하지만, 시주께서는 무엇이든 베풀 수 있고 또한 무엇이든 빼앗을 수 있는 존재로 거듭나게 되는 거요.”
다시 혜공이 웃었다.
우우우웅.
그리고 그와 동시에.
불상이 은은한 서광을 뿌렸다.
“…….”
고금제일인.
분명 그것은, 검에 뜻을 둔 무인 대다수에게 있어 설령 목숨을 내어놓아야 한다고 한들 추호도 망설이지 않을 제안일 터였다.
또한 노인에게는 거짓 혹은 자신을 기만하려는 그 어떤 의도도 존재하지 않음을 이벽은 알 수 있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벽은.
그러한 제안을 받아들일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이유는 퍽 명백했다.
우우웅.
서광에 휩싸인 불상의 모습은.
분명 무엇인가가 잘못되었다. 그리고 이벽은 위화감의 이유를 찾아 불상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철그렁.
그리고 마침내.
이벽은 수인(手印)을 맺고 있는 불상의 손가락 사이로 몇 가닥의 ‘실’이 뻗어져 나와 있음을 발견했다.
그것은 너무 가늘어서.
좀처럼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허나 일단 존재를 눈치챈 뒤 안력을 기울이자 실이 아니라 미세한 굵기의 ‘황금빛 사슬’임을 알 수 있었다.
뻗어나간 사슬의 끝은 불상의 바로 아래에 자리한 네 개의 관을 칭칭 동여매고 있으며.
또한 그러한 사슬의 존재는.
단순한 환영 따위가 아니라 노승의 절대지경에 해당하는 불상이 지닌 ‘하나의 기예’임을 직감했다.
“…….”
허나.
어찌하여 이미 죽은 시신들을 굳이 사슬로 묶어둬야만 하는 것인지, 이벽은 알 수 없었다.
또한 무엇보다도.
송영영의 경우 다른 시신들과 마찬가지로 관속에 붙들린 채 여전히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으나.
그녀는 분명.
아직 죽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다른 시신들과 ‘똑같은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이다.
‘…왜?’
이벽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송영영, 그리고 스승을 포함한 나머지 세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돌아보았다.
네 사람은 모두.
창백한 안색을 하고 있었으나, ‘목숨이 끊어진 외상’의 흔적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때문에 보기에 따라서는.
아직 ‘살아있는 것’ 같기도―
움찔.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불현듯 한 가지 직감이 스쳤다.
어쩌면 정말로 눈앞의 시신들은.
비단 송영영뿐만이 아니라… 네 사람 모두가 ‘진정한 의미로 죽은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현재,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은 진법 속의 환영이자 혜공의 머릿속이 그려낸 풍경이었다.
그렇기에.
창백한 얼굴로 관 속에 누워있다고 한들, ‘죽은 사람’이라 섣불리 단정 지을 수 없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불상의 사슬에 붙들려있기에.
그 기예의 주인에 해당하는 혜공과 마찬가지로, 육신의 숨이 끊어졌음에도 의식이 진법 안에 남아 붙들려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강시술, 그리고 만류일원진.’
다시 이벽은.
조금 전의 일전을 되새겼다.
진법은 월향의 음공에 반응했고, 천마의 시신들은 피리 소리에 이끌리듯 하나씩 몸을 일으켰다.
허나 그녀는 그저 ‘매개’일 뿐, 시신들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결코 그녀의 힘이 아니었다.
애당초.
심혼이 사라진 빈 껍데기를 억지로 조종한들, 절대지경의 힘을 재현할 수 있을 리 없는 것이다.
어쩌면 눈앞의 시신들은.
진법 바깥에 있는 자신의 시신과 사슬로 이어진 채, 생전의 무학을 ‘착취당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으스스.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 가운데, 이벽은 다시 시선을 돌렸다. 스승 이진천의 얼굴을 향했다.
또한 그렇다면, 어쩌면.
스승의 의식은 지금 이 순간까지도 저 안에 남아… ‘심연 속을 헤매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쿠우웅.
일순 마음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자신의 직감이 그릇되지 않았다는 심증이 서는 순간, 이벽의 미간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내가 그 제안을 거절한다면 당신은 뭘 어떻게 할 생각이오?”
힘겹게 말을 짜내었다.
“…흘흘.”
노인의 눈썹이 팔자를 그었다.
“그렇다면야 싸워야겠지. 내 조금 전에도 말했듯이, 이 늙은이의 말이 듣기 정히 힘들다면 언제든 검을 뽑아도 좋소이다.”
“…….”
“허나 그것이… 시주를 포기한단 뜻은 아니오. 나는 천마와도 결판을 지은 적이 있는 몸이지. 그렇기에 반드시 시주를 ‘설득’할 자신이 있소.”
여전히.
혜공의 말에는 한 톨의 거짓도 섞여 있지 않았다. 허나 그것은 어쩌면, 혜공 본인조차 ‘속고 있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
사아아.
다음 순간.
공간이 소리 없이 요동쳤다.
마침내 이벽은 상대를 베어 없애야 할 ‘적’으로 규정했다. 허나 그와 동시에 자신이 상대의 영역 한가운데에 있음을 상기했다.
송영영을 구한다. 그리고.
스승을… 보내드려야 한다.
철컥.
이벽은 검을 잡았다.
허나 바로 그 순간이었다.
후우우우우우우웅.
거대한 황금빛 손이.
이벽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흘흘, 그야 물론 시주께서 ‘그 검’을 펼칠 만한 여유를 드릴 수는 없소이다.”
“…….”
후우우욱.
이벽은 발검했다.
동시에 자리를 박차며 일어섰다.
사라라락.
나뭇잎들이 회전했다. 그리고.
청강유엽검식(淸江流葉劍式).
패왕강검(覇王强劍).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금빛의 손과 패왕의 검이 부딪힌 순간, 거대한 충격이 일대를 휩쓸었다.
부르르르.
그리고.
두 기예는 잠시 막상막하의 경합을 이루었다. 이벽은 결코 권왕의 주먹 못지않은 극한의 압력을 느꼈다.
허나 그것은.
그저 시작에 불과했다.
후우우우욱, 후우우우우욱.
다음 순간.
이벽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어느새 일대의 빈 공간을 빽빽히 메운 ‘일천 개의 손’과 ‘일천 개의 눈’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