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388)
396화. 낙검진천 (1)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이벽이 검을 잡은 그 순간, 집채와 같은 황금빛 손이 기다렸다는 듯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이벽 또한 패왕강검을 펼쳤다.
부르르르.
이내 검과 손이 경합을 이루었다.
후우우우욱, 후우우우우욱.
허나 다음 순간.
이벽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어느새 일대의 빈 공간을 빽빽히 메운 ‘일천 개의 손’과 ‘일천 개의 눈’을 바라보았다.
“…….”
이벽은 침음했다.
말인즉슨, 고작해야 천 개의 손 중 단 하나와 자신이 지닌 가장 강인한 기예가 동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흘흘, 혜공이 웃음을 흘렸다.
노승은 천마마저도 능히 탐낼 만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 소림 제일의 기재로 키워졌으며.
자신의 의지로 단전과 오른팔을 끊어낸 뒤로는 수십 년씩이나 면벽수련을 거듭해온 존재였다.
그 깨달음의 깊이는.
바닥이 없는 우물과 같으며.
또한 지금 이 순간, 진법이 비추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은 그 자체로 노인의 ‘등천의 영역’과 같다.
‘…그렇군.’
이내 이벽은.
낙검의 기예가 아니고서는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싸움임을 이해했다.
허나 물론.
혜공 또한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이벽으로 하여금 낙검을 끌어올릴 여유를 주지 않을 터였다.
“흘흘, 너무 걱정은 마시오. 나는 시주를 멸할 생각이 없으니. 다만 말로써 뜻을 전달할 수 없다면, 조금 다른 ‘대화’가 필요할 뿐이지.”
끼기기기기기긱.
급기야.
이벽의 검이 휘어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나도 하나 묻지. 설령 내가 천마의 힘을 삼킨다고 한들, 대체 그것으로 어떻게 만민을 구원하라는 말이오?”
이벽의 시선이 혜공을 향했다.
“마교의 핏줄을 이은 이를 전부 죽여없애서? 혹시 마인이 될지도 모르는 모든 가능성을 지닌 아이들의 목을 잘라서?”
“…뭐라?”
“말해보시오, 선사. 대체 누가 베어야 할 악적이고 누가 구해야 할 중생이오?”
“…흘흘! 그런 건 물론―”
일순, 혜공의 얼굴에 멍한 표정이 스쳤다. 그것은 마치 스스로가 ‘그러한 것조차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은 듯한 얼굴이었다.
청강유엽검식(淸江流葉劍式).
취풍쾌검(醉風快劍).
타앙, 쐐애애액.
그리고 그 틈을 타.
나무의 형상이 이벽의 몸을 감쌌고, 이내 폭발에 튕겨지듯 신형이 우측으로 빠져나갔다.
콰아아아아아아앙.
그 즉시 황금빛 손이 내려앉으며 두 사람이 마주 앉아있던 반석을 산산조각으로 으깨버렸다.
파아앙, 파앙.
이벽의 신형이 허공을 박찼다. 가속을 끌어모으며 그 즉시 혜공을 향해 쇄도했다.
후우우우욱.
허나 물론.
황금빛 손은 아직도 구백구십구 개가 더 남아있었다. 그 즉시 그 모든 장과 권들이 이벽을 향해 쇄도했다.
파아앙, 파아아앙.
이벽의 몸이 급격히 방향을 틀었다. 거듭 취풍쾌검의 묘리가 펼쳐지며 작은 물고기처럼 무수한 손아귀들을 비껴 나갔다.
스으윽.
허나 그 사이.
혜공 또한 허공을 미끄러지듯 물러서며 거리를 벌렸고, 이내 불상의 가슴께에서 멈춰 섰다.
“…다소의 피는 흐를 수 있소.”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당연하지 않소? 무림이란, 풍진세상이란 본디 그러한 것이오. 허나 죽음은 결코 끝을 의미하지 않소. 결국 모든 중생들은 윤회를 통해 다시 태어나게 되지.”
“…….”
“그리고 시주에게는 무한한 시간이 주어질 것이오. 그러니 결국 언젠가는… 그 모든 중생들을 불성(佛性)으로 이끌 수 있을 터요.”
이내 혜공이 미소를 되찾았다.
타아앙, 타앙.
멈추지 않고 몸을 놀리는 한편 이벽은 노승의 미소를 일견했다. 일순 ‘안타까움’이 스쳤다.
타아앙, 쐐액.
어찌 되었건.
이벽은 서서히 손들의 움직임을 읽어내었다. 취풍쾌검의 방향 전환은 물처럼 자유로웠고, 속도는 빛살과 같았다.
이내 다시 조금씩.
혜공과의 거리를 좁혀들었다.
우우우우웅.
허나 다시 그때였다.
“…흘흘, 역시 대단하시구려.”
결국 손만으로는 이벽을 몰아세울 수 없음을 이해한 듯, 하늘을 메운 ‘천 개의 눈’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
청강유엽검식(淸江流葉劍式).
만월무변곡검(滿月無變曲劍).
사라락.
불길한 예감이 스친 순간, 나뭇잎들이 주변으로 뻗어나가며 크고 작은 원을 이루었다.
파아아아아앗.
파아아아아앗.
그리고 그 즉시.
천개의 눈에서 일제히 금빛의 안광(眼光)이 쏘아졌다. 마치 만물을 비추는 햇살과 같았다.
허나 그에 노출되는 순간.
육신은 장작처럼 부서질 터였다.
파아아아아아앙.
이내 만월무변곡검의 원들이 빛을 흡수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임계점을 넘어버렸다.
후욱.
이벽은 그 즉시 검을 뻗었다.
파아아아아앗.
그리고 검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모여든 빛줄기가 일제히 혜공을 향해 되쏘아졌다.
스으윽.
“흘흘.”
허나 그 순간.
불상의 오른손이 움직였다.
일대를 감싼 무수한 손 중에서도 가장 거대한 손이 혜공의 앞을 가로막았다.
스르륵.
그리고 이벽이 쏘아 보낸 광선은.
그 손등에 닿는 순간, 마치 물처럼 녹아서 사라져버렸다. 애당초 불상은 ‘빛의 결정체’이기에, 같은 종류의 기운에 충격을 입지 않는 것이다.
후우우욱.
그리고 그 틈을 타.
다시금 천 개의 손들이 포위망을 좁혀왔다. 이벽은 아무런 충돌도 없이 빠져나가기에는 늦어버렸음을 직감했다.
쩌쩌저적.
그 즉시 왼팔에 나무를 둘렀다.
터어어어어어엉.
“…큭!”
그리고 정면의 일권을 향해 스스로 몸을 내던졌다. 금강불괴의 공능이 무색하게끔, 충돌과 동시에 나무는 산산조각으로 부서졌다.
쐐애애액.
허나 어찌 되었건.
그 충격으로 말미암아 이벽의 신형은 아래를 향해 쏘아졌고 가까스로 포위망을 벗어났다.
파아아앙.
다시, 취풍쾌검을 펼쳤다.
땅을 박차며 뒤따르는 손들의 사이를 헤집고 파고드는 한편 고개를 들어 혜공을 바라보았다.
“다시 태어나면 그만이라. 참으로 편리한 사고방식이로군. 대체 언제부터 당신에게는 그렇게 목숨의 무게가 가벼워졌소?”
천하만민을 걱정하던 노승은.
‘대의명분’을 위해 피를 흘리는 것에 지극히 무감각해졌다. 물론,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벽 또한 적지 않은 피를 흘려 왔다.
허나 목숨의 무게를.
경시하려 하지는 않았다.
“혜공 선사, 당신이 지금껏 해왔고 하려는 일은 그 무엇도 부처의 뜻이 아니오.”
“흘흘, 그럼 시주께선 이 모든 게 그저 우연일 뿐이라 말하는 게로군. 물론, 낮게 나는 새의 눈으로 보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
파아앙, 쐐애애액.
다시 이벽과 혜공의 거리가 좁혀졌다. 조금 전, 안광을 쏘아 보낸 하늘의 눈들은 일제히 눈꺼풀을 닫고 있었다.
그와 같은 공격을 다시금 쏘아 보내기 위해서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즉, 다시 말해.
지금 쳐야만 한다.
“뭐, 걱정할 것은 없소. 흘흘! 결국 이 모든 눈과 손 또한 시주의 것이 될 것이니.”
허나 혜공의 표정은 태연했다.
천 개의 손이나 천 개의 눈보다도, 등 뒤에 자리한 불상을 더욱 믿고 있기 때문일 터였다.
파아앙, 쐐애애액.
어찌 되었건.
유영하는 손들 사이로 찰나의 길이 보인 순간, 이벽은 망설이지 않았다.
혜공을 향해 정면으로 쇄도했다.
후우우우우웅.
그러자 그 순간.
불상의 일권이 내뻗어졌다.
“……!”
서서히 다가오는 웅대한 주먹은.
이벽이 앞서 겪어온 그 어떤 절대자의 일격과도 감히 비할 수가 없는 공격이었다.
허나 ‘피한다’는 선택지는 없다.
시간을 끌면 하늘의 눈들이 다시금 공능을 되찾을 것이며 결국 똑같은 상황이 반복될 뿐이다.
청강유엽검식(淸江流葉劍式).
적파직검(赤派直劍).
쩌저저저저적.
그 즉시 십여 개의 붉은 검들이 이벽의 주변에 맺혀 들었고 이내 주먹을 향해 마주 쏘아졌다.
콰아아아아앙, 퍼어어어억.
허나 적파직검은.
불상의 주먹에 맞닿은 순간, 그 위력을 견디지 못하고 그 즉시 산산조각이 났다.
타앙, 쐐애애액.
그럼에도 이벽의 몸은 멈추지 않고 쏘아졌다. 그리고 으깨어진 적파직검의 파편 속에 다다른 순간이었다.
청강유엽검식(淸江流葉劍式).
화영변검(花影變劍).
화아아아악.
그 순간, 붉은 파편들이.
일제히 꽃잎으로 화했다.
스르륵.
허나 그것은 형체를 지니지 못한 꽃잎이었으며 불상의 주먹에 닿은 순간, 마치 녹아들듯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사라라락.
그리고 이내 ‘금빛 꽃잎’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화영변검의 기예가 일 권의 위력을 흐트러뜨리며 주변 바깥으로 분산시키기에 이른 것이다.
후우우우웅.
“…흘흘!”
허나 그럼에도.
혜공의 웃음은 꺼지지 않았다.
두 개의 기예로 말미암아 적잖은 위력을 깎아내었음에도, 불상의 주먹에는 여전히 가공할 힘이 서려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이벽의 코앞에 이르렀다.
청강유엽검식(淸江流葉劍式).
일엽유검(一葉柔劍).
후욱,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충돌 직전의 순간.
이벽의 검끝이 원을 그었다.
비틀.
“…큭!”
그리고 원과 주먹이 충돌했다.
단 일 권을 막아내기 위해 세 개나 되는 기예를 연달아 펼쳤음에도, 이벽은 마치 심혼이 짓눌리는 듯한 충격에 휩싸였다.
허나 의의가 없지는 않았다.
일엽유검은 깨어지지 않았다.
으득.
이벽은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스으윽.
이내 원은 타원으로 휘어졌다.
퍼어어어어어어어억, 우드득.
그 순간 남은 충격이 불상에게로 되돌아갔다. 손목이 기이한 각도로 꺾어지며 움직임이 굳었다.
그리고 그 너머로.
미소를 띤 혜공의 모습이 드러났다. 불과 일 장도 되지 않는 짧은 거리였다.
타아앙.
이벽은 다시 땅을 박찼다.
사라락, 사락.
그리고 검끝에는 나뭇잎이 서렸다. 가장 익숙하면서도 가장 빠르게 이끌어 낼 수 있는 기예가 맺혔다.
청강유엽검식(淸江流葉劍式).
창공비검(蒼空飛劍).
쐐애애애액, 터어엉.
“흘흘!”
“……!”
허나.
검신이 목을 파고드는 순간, 혜공의 ‘오른손’이 뻗어졌다. 엄지와 검지가 수인을 맺으며 이벽의 검신을 붙들었다.
멈칫, 부르르르.
그리고 메마른 손가락 사이에 끼인 검의 전진이 거짓말처럼 막혀버리고 말았다.
소림칠십이종절예, 관음수였다.
“내 말했잖소? 나도 시주의 나이 무렵에는… 마냥 학승이 아니었단 말이오. 흘흘.”
이곳 진법 안에서.
노인이 ‘되찾은 손’은 비단 허공을 맴도는 천 개의 손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우우우웅.
이벽은 서둘러 검을 빼내려 했다. 허나 그보다 혜공의 왼손이 뻗어지는 것이 조금 더 빨랐다.
후우우우욱.
퍼어어어어어어억.
백보신권이 뻗어졌다.
이벽의 복부를 파고들었다.
“…크.”
찰나의 순간, 이벽은 나무의 기예를 일으켜 복부를 보호했다. 고로 충격은 그리 치명적이지는 않았다. 허나.
찌이이이잉.
신형이 속절없이 밀려나며.
한순간 움직임이 마비되었다.
후우우우욱.
그리고 그 틈을 타.
다시금 천 개의 손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또한 그것을 눈으로 보고 있음에도 이벽은 제대로 반응할 수가 없었다.
쩌저저저적.
이벽은 서둘러 나무를 둘렀다.
터어어어엉.
그리고 마침내 지척까지 당도한 손들이 망설임 없이 이벽을 감싸 쥐었다.
터어엉, 터어어어어엉.
순식간에 이벽의 전방위가 손아귀에 뒤덮여버렸다. 허나 그러고도 손은 잔뜩 남아있었고, 손등 위로 다시금 손이 덮어지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이내.
겹겹이 밀려든 천 개의 손들이 황금의 벽이 되어 이벽을 가둬버렸다.
* * *
스으으으.
이벽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끝끝내 혜공의 손아귀에 둘러싸이고 말았다. 허나 주변은 결코 어둠에 휩싸이지 않았다.
외려 시야는 새하얗게 물들었다.
눈이 부시다 못해 아예 멀어버릴 듯한 서광이 손아귀 속에서 뻗어져 나오고 있는 탓이었다.
―사사로움을 버리시오, 시주.
그리고 다시 그때였다.
―시주께는 능히 천하만민을 고통으로부터 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거늘… 어찌하여 자신의 소명을 거부하려 하는 것이오?
혜공의 목소리가.
다시금 귓가로 파고들었다.
과거, 이벽에게 ‘깨달음’을 전수해주었던 소림의 절기, 혜광심어가 다시금 펼쳐진 것이다.
―나는 처음 시주를 만났을 때부터 시주가 의인임을 알고 있었소. 검치 시주의 피를 이었으나 분명히 그와는 결이 달랐지.
“…….”
―그렇기에 청천 시주 또한… 시주를 택했던 거요. 그러니 이만 참된 지혜로부터 눈을 돌리지 마시오. 그리고 받아들이시오.
우우우웅.
목소리는 마치.
빛 그 자체와 같아 눈을 감아본들 어떻게든 이벽의 뇌리로 직접 파고드는 듯했다.
물론, 손가락조차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된 지금의 상황에서는 그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허나.
“…….”
지금의 상황마저도.
예상치 못한 일은 아니었다.
이벽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조금 전의 일전을 통해 이벽은 이제껏 익혀왔던 여섯 개의 기예와 창공비검을 모두 사용했다.
그러고도 결국 혜공을 이길 수 없었으나, 기실 그것은 이미 접전을 펼치기 전부터 예상했던 바였다.
그리고 그렇기에.
매 순간 기예를 펼칠 때마다 이벽은 ‘한 장의 나뭇잎’을 몸 안에 소리 없이 간직해두었다.
그리고 그것은 즉.
‘준비를 마친 것’이나 다름없었다.
사라락, 사락.
다음 순간, 서로 다른 여섯 장의 나뭇잎이 이벽의 몸 바깥으로 조용히 새어 나왔다.
우우웅.
나뭇잎이 겹쳐졌다. 그리고.
이내 찬란한 빛 속에서 ‘작은 어둠’이 피어났다. 또한 그 어둠은 검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스윽.
이내 실낱같은 어둠이.
빛무리 위를 가로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