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392)
400화. 해후와 정리 (3)
타아앙, 쐐애액.
언미희는 달아나는 혈마의 뒤를 쫓았다. 날렵한 신형이 빠르게 거리를 좁혀들었다.
타아앙, 타앙.
허나.
혁대웅의 창에 몸통을 관통당하고도 혈마의 쾌속함 또한 여전히 녹록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새.
저만치로 뭇 무인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혈마의 신형이 그러한 전황 속에 섞여들었다간 마무리가 더욱 어려워질 것임은 자명한 일이었다.
타아앗, 우우우우웅.
이내 언미희의 오른손이 움켜쥐어졌다. 주먹 위로 은은한 빛무리가 어리기 시작했다.
퍼어어어어엉.
“하아앗―!”
백보신권을 쏘아 보냈다.
타아앙.
허나 그 순간.
마치 등 뒤에 눈이 달린 듯 혈마의 몸이 땅을 박찼다. 허공으로 솟구치며 백보신권을 피해버렸다.
“…크읏!”
언미희가 이를 악물었다.
허나 조금 전, 권왕과의 충돌에서 왼손이 부러져버렸기에 그 이상 공격을 이어갈 수단이 마땅치 않았다.
타아앙.
다만 재차 땅을 박찼다.
후우우우웅.
“크크크하하하하―!”
허나 그때였다.
낯익은 웃음소리와 함께 하늘 저편에서 메마른 신형이 날아들었고 발꿈치가 그대로 혈마의 등을 내려찍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혈마의 몸이 급격히 추락했다.
타아아아아앙.
허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날아든 인영은 그 즉시 주먹으로 혈마의 몸을 관통한 창대의 끝을 두드렸다.
퍼어어어어어억.
단 일권에 창끝이 땅속 깊숙이 파고들었고, 혈마의 몸은 못 박힌 꼬챙이 신세가 되었다.
휘리릭, 타앗.
“크크크, 아미타불!”
그리고 그제야.
허공을 한 바퀴 구르며 혈마의 정면으로 착지한 소림 방장 혜능이 합장하며 웃었다.
타앗.
“…하아, 선사님.”
이내 지척까지 당도한 언미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노인과 여인 사이로 눈빛이 오고 갔다.
“크크크! 그래, 놈은 어떻더냐?”
돌연 혜능이 물었다.
물론 ‘놈’이라는 것이 누구를 가리키는 말인지는 언미희 또한 알고 있었다.
“네, 뭐. 선사님 말씀대로 어떻게든 이겼네요. 아하하…….”
“크크크! 그러니 내 말하지 않았느냐? 마음까지 단련된 근육은 결코 잔바람에 무너지는 일이 없느니라. 크크크크!”
“…아하하.”
어색한 미소가 흘렀다.
카아아아아아아.
그 순간, 혈마가 울부짖었다.
훅, 혜능의 시선이 즉시 발 아래의 혈마를 향했다. 그리고 버둥치는 뱀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 노승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갈(喝)―!!”
퍼어어어어엉.
금강야차와 같은 얼굴로 노승이 일갈했다. 소림칠십이종절예, 사자후(獅子吼)가 터져 나왔다.
후두두두두둑.
그러자 혈마의 몸에 서린 비늘들이 마치 비에 휩쓸린 진흙마냥 우수수 떨어져 나갔다.
사아아아아아.
뱀의 형상이 울부짖었다.
어떻게든 비늘을 붙들어보려는 듯 몸부림쳤으나, 결국 뱀의 형상은 종적을 감추고 말았다.
그리고 이내 안쪽에서.
노쇠한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크크크! 늙은 거지 놈아. 이게 대체 무슨 꼴이더냐?”
혜능이 말했다.
쩌저적, 쩌적.
취풍신개의 고개가 힘겹게 위를 향했다. 탁한 동공이 마주한 노승의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흐…흐흐! 누군가 했더니만. 근육 땡중. 너야말로 그 잘난 근육은 어디 가고 웬 먹다 남은 생선 뼉다구만 남았느냐? 흐흐흐!”
“크크! 시끄럽다 이 버러지 같은 중생아. 대체 그 업보를 어찌 다 감당하려고… 죽어서까지 땅을 기고 있느냐?”
“누군 좋아서… 이리된 줄 아느냐? 실은… 아주 오래전에 뱀에 물려버려서…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다, 이놈아. 크크크… 으흐흐흐!”
쩌저적, 쩌적.
취풍신개가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추레한 얼굴에 그어진 주름의 결을 따라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후우우욱.
노승의 가사가 부풀어 올랐다.
“크크! 핑계하고는. 대가리나 딱 대거라, 이놈아. 내 한 방에 부처님 곁으로 보내줄 터이니… 자비는 알아서 구하던가 해라.”
“흐…흐흐! 빌어먹을 파계 땡중 같으니.”
노거지의 눈이 움직였다.
혜능의 등 뒤로 저만치에 모여든 무인들을 훑었다. 이내 그 사이에서 익숙한 그림자를 발견한 얼굴이 작게 흔들렸다.
“제, 제자한테는… 말하지 마라. 저 녀석은… 아무것도 모르고 놀아난, 그냥 멍청한 거지새끼다.”
“크크! 그렇게는 못 하지. 저 나이 먹고 천하의 개방주쯤 됐으면 제 스승의 업보 정도는 받아들여야지. 크크크!”
“…지미럴. 흐흐!”
잠시, 두 노인은 마주 웃었다.
퍼어어어어어억.
그리고 북두천존 혜능의 일 장이 뻗어졌다. 파스스스, 취풍신개의 육신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크크. 잘 가게나. 아미타불.”
노승이 합장했다.
찰나의 서글픔이 혜능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무엇보다도 업보의 무게를 감당해야 하는 것은 자신 또한 다르지 않음이었다.
* * *
파스스스스.
이진천의 육신이 흩어졌다.
마침내 진정한 안식에 들었다.
“…….”
이후, 이마를 기대고 있을 상대가 사라져버린 제갈소미는 잠시간 고개를 들지 않았다.
혁대웅 또한 잠자코 그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허나 그것은 말 그대로 잠깐에 불과했다.
“…마무리해야지.”
이내 제갈소미가 고개를 들었다.
저만치에 홀로 선 월향을 향했다.
기실 전투 내내 간헐적으로 멈추고 이어지기를 반복하던 피리 소리는 어느 순간부터 아예 끊겨버렸다.
그리고 예상대로.
먼 발치의 여인에게서 더는 산 사람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고 있음을 감지했다.
여인은 마지막 숨결까지 모두 곡조로 토해낸 뒤, 선 채로 숨을 거둔 것이다.
또한.
이진천이 다시 되살아난 시점에서 시신을 조종하고 있던 만류일원진은 이미 작동을 멈춘 후였다.
“…사, 사저! 벽이가!”
그때 혁대웅이 퍽 다급한 목소리를 내었다. 이내 제갈소미 또한 고개를 들어 위를 향했다.
후우우우욱.
어느새.
이벽과 송영영을 감싸고 있던 검은빛의 불꽃은 씻은 듯이 종적을 감춘 이후였다. 그리고.
스으으.
의식을 잃은 듯 축 늘어진 송영영을 부축한 채, 마침내 이벽이 두 사람을 향해 하강하기 시작했다.
“…자식, 오래도 걸리네.”
훗, 제갈소미가 웃었다.
어찌 되었건 자신들이 시신과 싸움을 펼치는 동안, 이벽 또한 예의 불꽃 속에서 ‘무언가’와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었을 터였다.
또한 아마도.
찰나의 순간이나마 스승과 다시 만날 수 있었던 것 역시, 이벽 덕분임을 제갈소미는 직감했다.
투욱.
이내 이벽이 내려앉았다.
세 사형제 간에 잠시 눈빛이 오갔다. 이벽의 담담한 눈을 마주하자 마침내 안도감이 스쳤다.
“저기, 벽아?”
그때 혁대웅이 말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응?”
“진법 속에서 천마와 싸웠다. 그리고 이겼다.”
“…….”
훗, 제갈소미는 작게 웃었다.
“…뭐, 아무튼 잘했다.”
자세한 자초지종 같은 건.
앞으로 얼마든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을 터였다. 다만 지금은 전쟁의 마무리를 해야 한다.
허나 그즈음에는 저편의 무인들 쪽에서도 더는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고 있었다.
타앙, 쐐애액.
“공자!”
그때, 인영 하나가 일행을 향해 날아들었고 찰나의 순간 지척에 착지했다.
물론 언미희였다.
혜능의 손에서 혈마의 최후를 맞이하는 것을 목도한 뒤, 다시금 일행을 돕기 위해 달려온 것이다.
“…아, 소저.”
제갈소미가 먼저 아는 체했다.
“어, 어떻게 된 건가요?”
“다 끝났어요. 뭐, 그럭저럭 죽은 사람 없이 잘 풀렸네요.”
“아… 아하하. 그렇군요.”
언미희가 머쓱하게 웃었다.
훗, 제갈소미가 마주 웃었다.
“좌우간 좀 전에는 도와줘서 정말로 고마웠어요. 소저가 와주지 않았더라면… 지금보다 더 큰 일이 났을 거예요.”
“아하하…….”
언미희가 다시 웃었다.
“아뇨, 저야말로… 공자가 아니었으면 이 자리에 살아있을 수도 없는 사람인걸요.”
힐끔.
언미희의 시선이 이벽을 스쳤다.
“…‘공자’라.”
제갈소미의 미간이 흔들렸다.
그것은 퍽 기묘한 호칭이었다.
“소저, 근데 우리 막내 사제 꼬맹이랑 무슨 사이에요? 서로 어떻게 알게 된 거죠?”
“……!”
흠칫, 언미희의 어깨가 흔들렸다.
저벅.
그때 이벽이 앞으로 나섰다.
“언 소저, 그쪽의 싸움은 어떻게 되었소?”
“아… 네, 공자! 저쪽도 다 끝났어요! 아군은 이미 부상자들의 수습에 들어갔고… 남은 적들도 모두 무기를 버리고 투항했어요.”
“…그렇군.”
혜능선사와 아미의 참전 이후.
거듭 수세에 몰리던 의혈맹 측은 언미희가 가세하고 권왕의 죽음을 천명함으로써 기세가 완전히 무너져버렸다.
“그리고… 모두들 공자를 기다리고 있어요.”
“…….”
낙검신룡 이벽.
사파와 구 무림맹의 대표로서 전쟁에 앞장섰고, 마침내 의혈맹의 절대자와 배후의 마교 세력을 꺾어 천하를 구해내기에 이르렀다.
분명 그 위명은.
새 무림의 중심이 될 터였다.
“핫, 우리 꼬맹이. 애송이 주제에 천하도 구하고 새삼 많이 컸네. 사실상 무림지존인가?”
“…….”
이벽은 답하지 않았다.
“흥, 까칠하기는. 왜, 예쁜 소저 앞에서 꼬맹이 취급하니까 갑자기 말하기 싫어졌니?”
피식, 제갈소미가 웃었다.
저벅, 그리고 한켠으로 돌아섰다.
어쨌거나 싸움이 완전히 끝났다면 운기 중인 검존과 중태에 빠진 무존을 이 자리에 계속 방치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었다.
“야, 곰탱이. 나는 맹주님을 챙길 테니 너는 저쪽에 무존 어르신 좀 부축해서―”
허나 그때였다.
스윽.
“잠시 송 소저를 부탁하겠소.”
“…네? 아, 네!”
돌연 이벽이 언미희에게 송영영의 신형을 넘겼다. 철컥, 그리고 다시 검을 쥐었다.
“그럼 잠시 실례하겠소. 남은 이야기는 전쟁의 마무리를 확실히 끝낸 후 나누도록 하지.”
“…어, 네?”
언미희에게서 의아함이 스쳤다.
“하, 하지만 남은 적들은 모두 이미 투항했으니 더는 마무리 할 싸움이―”
“그러니까 소저의 말은 아직 ‘살아있는 적’들이 꽤 많이 남아있다는 뜻이 아니오?”
다시 이벽이 말했다.
“한 번이라도 마공을 익힌 이들은… 살려둔다 한들 결국 나날이 마성에 빠져들 뿐이오. 무의미하게 포로로 삼느니 목숨을 거두는 게 외려 자비를 베푸는 일이겠지.”
“…어.”
다시 언미희의 표정이 흔들렸다.
타앗, 우우웅.
허나 아랑곳하지 않고 이벽은 땅을 박찼다. 이내 몸이 허공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후우욱, 스륵.
허나 그 순간.
비도가 지척까지 날아들었다.
“…잠깐, 이벽. 거기 서 봐.”
“왜 그러나, 사저?”
황급히 뒤를 돌아본 제갈소미와 담담한 이벽의 시선이 다시금 서로를 마주했다.
“…….”
일단 마공을 익힌 육신을.
‘완전히’ 되돌리는 것은 결국 불가능한 일이다. 고로 어쩌면… 이벽의 말은 틀린 말이 아닐지도 모른다.
허나 문제는 그러한 말을.
‘이벽이 했다’는 점에 있었다.
“…벽아?”
혁대웅이 낮게 뇌까렸다.
스스스.
그리고 장내에 자리한 일행들 사이로 공기가 무게를 더하며 소리없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타아아앙.
바로 그때였다.
이벽에게서 언미희에게로 옮겨진 채 잠자코 부축되어 있던 송영영이 돌연 땅을 박찼다.
언미희의 손을 뿌리치며.
그대로 이벽을 향해 파고들었다.
퍼어어어어어억.
“고, 공자―?!”
“…….”
허나 송영영은.
조금 전, 자신을 잠식하려 들던 마기와 싸우는 도중 손에서 검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렇기에 이벽을 두드린 것은 그저 맨손에 불과했으며, 하물며 그 순간 이벽은 이미 나무의 기예를 두르고 있었다.
쩌저적, 쩌적.
고로 이벽에게는.
아무런 충격도 전해지지 못했다.
“…아파.”
외려 송영영의 표정이 흔들렸다.
“송영영, 이게 무슨 짓이지?”
“…대주.”
송영영이 다급히 눈을 마주했다.
“대주, 잘 들어. 난 알 수 있어.”
“뭘 말인가?”
“네겐… 아직 천마가 남아있어.”
“……!”
흠칫.
이벽의 미간이 흔들렸다. 허나.
“…천마는 완전히 소멸했고, 내 몸에는 마기 같은 건 한 톨도 남아있지 않다. 송영영, 무언가 오해를 한 모양이군.”
이내 담담히 답했다.
사라락.
그리고 다시 날아오르려 했다.
“안 돼―!”
버럭, 송영영이 소리쳤다. 그리고 제갈소미와 혁대웅, 언미희를 황급히 돌아보았다.
“너희들, 나를 믿어야 해. 대주를 구하려면 아직 씨앗이 제대로 싹을 틔우지 않은 지금뿐이야.”
늘 표정이 옅은 그 얼굴에는.
전에 없이 다급한 기색이 여과 없이 드러나고 있었다. 다시 세 사람의 눈빛이 복잡하게 흔들렸다.
“…쯧.”
이내 제갈소미가 혀를 찼다.
분명 지금의 막내 사제에게서는 무언가 형언하기 힘든 위화감이 감돌고 있었다.
또한 그 모습을 유심히 살피자 이벽의 몸이 ‘이상할 만큼 멀쩡하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분명, 이벽의 무복은 기나긴 일전을 통해 이리저리 찢어지고 헝클어져 엉망이 된 상태였다.
허나 정작 그 몸에는.
작은 흉터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꼬맹이, 잠깐만 멈춰 봐.”
“…왜 그러나?”
“자세한 이야긴 나야 모르지만, 송 소저가 그렇다는데… 만일을 위해 기혈 안쪽에 뭐 이상한 게 있는지 확인 한 번만 하자고.”
“…내가 왜 그래야만 하나?”
“왜? 거리낄 게 뭐가 있는데? 이제 와서 이 사저한테 기혈 좀 보이는 게 부끄럽니?”
“…….”
사라락, 사락.
그리고 이벽의 주변으로.
나뭇잎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마땅히 할 일을 해야 한다. 막으려 한다면 사저라고 해도 참지는 않겠다.”
“…에이씨, 진짜.”
와락, 제갈소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눈앞의 막내 사제가 결코 ‘정상’이 아니라는 것이 서서히 명확해지기 시작했다.
“하루가 지랄맞게 기네.”
화아악.
다시 매화꽃이 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