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48)
48화. 무적파(2)
일행은 객잔 밖으로 나섰다.
소란의 진원지를 찾아 걸음을 옮겼다.
그리 멀리까지 갈 것도 없다.
관아의 개입이 신경 쓰이지도 않는 듯, 전투는 불과 몇 장 바깥의 대로 한복판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챙! 채챙! 퍼억!
“이… 이 비열한 정파 새끼들! 장막수 네놈이 그러고도 주둥이로 의니 협이니 하는 소릴 지껄이고 다니느냐?!”
“흥! 말 잘했다! 내 그동안은 눈을 감아줬다만 오늘이야말로 기어코 진정한 의협이 뭔지를 네놈에게 가르쳐주마!!”
전투는 난전이었다.
양측을 합해 약 오십 정도의 인원이 한 데 뒤엉켜 미친 듯이 싸우고 있었다.
다행히도 피아를 구분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한 무리는 일제히 검을 사용하는 반면, 다른 한쪽은 단련된 맨몸과 권각술로 부딪히고 있다.
퍼억, 퍼억!
“크윽!”
그러나 패기 좋게 부딪힌 것치고는 싸움은 퍽 일방적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맨몸의 사내들이 하나둘 땅에 쓰러졌다.
서 있는 이들도 그리 상태가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보아하니 전투가 벌어지기 이전부터 이미 어느 정도 부상을 안고 있었던 듯하다.
“…유감이지만 처참하게 지고 있는 쪽이 지금부터 우리가 찾아가려고 했던 무적파 같네요.”
그때, 공손수가 말했다.
정사 세력 간의 정면충돌.
이유는 알지 못하지만 보아버린 이상은 그냥 넘어갈 수도 없다. 하아, 작게 한숨을 내쉰 공손수가 언미희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언니, 저 칼 쓰는 정파놈들 우두머리는 언니가 해결해줄래요?”
움찔, 언미희가 흔들렸다.
전투가 벌어지는 대로의 중앙에서는 양측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이들이 서로를 상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동문제자들과 마찬가지로, 무적파 측의 민머리 사내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롭다.
장막수라 불린 정파 쪽 사내의 검이 민머리 사내의 몸 이곳저곳에 검상을 남기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일류 언저리는 되는 것 같은데… 저나 파 소협은 죽이지 않고 싸우는 게 어렵거든요.”
“…알았어요.”
마침내 정파를 상대한다.
조금 복잡한 표정의 언미희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벽도 한 발 나서며 칼을 꺼내려 했다.
“아, 오라버니는 가만히 계세요.”
“…왜지?”
“우리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아서요. 상황도 잘 모르는데 소 잡는 칼까지 꺼낼 필요는 없겠죠.”
“…….”
이벽은 머쓱해졌다.
공손수가 다시 언미희를 향했다.
“부탁해요, 언니. 언니가 빨리 끝낼수록 적들의 피가 적게 흐를 거예요.”
“…….”
타앗!
어느새 권갑을 장착한 언미희가 그 즉시 땅을 박찼다. 때마침 최후의 일격을 준비하던 장막수의 검을 막아섰다.
채앵!
“아, 아닛?!”
승리를 목전에 두고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던 장막수가 당황한 소리를 내었다.
“네, 네년은 뭐—?!”
챙, 챙챙!
언미희는 가타부타 입을 열지 않았다. 또한 상대에게도 입을 열 시간을 주지 않았다.
그녀의 온몸에서 뻗어지는 공격들이 쉴새 없이 휘몰아치며 장막수를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이야, 잘 싸우네요, 역시. 저 언니는 사람 목숨 걸리면 금방 진지해진다니까?”
“…….”
“자, 우리도 갈까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가급적 죽이지는 말아요. 피를 보면 뒷수습하기 어려워지니까.”
“케케케! 노력은 해보지.”
타앗!
이내 공손수와 파진성도 난전에 가담했다.
그리고 두 사람이 가세하자마자 전세는 급격히 역전되기 시작했다
챙, 서걱!
“케케, 케헤헤헤!!”
스물 남짓한 적들은 모두가 기껏해야 갓 이류 정도의 수준인 듯했다.
개개인으로도 공손수와 파진성의 상대가 될 수는 없다.
하물며 두 사람이 합을 맞추는 상태에선 더더욱 상처 하나 입히기 어려울 것이다.
“크윽!”
“크악, 으아아악!”
멋모르고 달려든 적들이 이곳저곳에 검상을 입은 채 쓰러지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걱정할 것 없다.
이벽의 판단으로는, 그저 버티는 것만이라면 스물이 아니라 배 이상의 적들에게 둘러싸여도 문제는 없을 것이다.
콰앙—!!
“커헉!!”
그사이 거센 충격음이 일었다.
이벽이 시선을 돌리자 적의 우두머리 사내가 주저앉은 채 낭패한 표정으로 가슴팍을 움켜쥐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제자들을 거두세요. 더 늦기 전에.”
맞은 편에는 언미희가 정권을 내지른 자세로 서 있었다. 조용히 주먹을 거둔다.
“네, 네 이년…! 감히!!”
정검문의 대제자 장막수는 그제서야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파의 제자들이 빠르게 쓰러지고 있음을 확인한다.
으드득, 이가 갈렸다.
거의 다 된 밥이었다.
그런데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 정체 모를 애송이들에 의해 승기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이미 기세는 명백히 저쪽으로 넘어가 버렸다. 이 자리에서 억지로 버텨본들 의미가 없다.
타앗!
장막수 가 몸을 빼냈다.
악에 바친 소리를 내질렀다.
“정검문(正劍門)의 제자들은 들으라!! 악적들이 원군을 불러들였다!! 차후의 승리를 위해 이 자리는 우선 물러나도록 한다!!”
“억?!”
“대, 대사형?!”
파진성과 공손수의 칼날에 정신없이 유린당하던 정검문의 제자들은 그제서야 뒤를 돌아보았다.
꽁무니를 보이는 대제자를 보며 헐레벌떡 뒤를 따른다. 쓰러져 신음하는 동문 사형제들을 돌아보지 않는다.
“헹, 대단한 정도문파 납셨구만?”
파진성이 어깨에 검을 얹으며 이죽거렸다.
일행은 뒤를 추적하지 않았다.
그렇게 제 발로 걸을 수 있는 정검문의 제자들은 삽시간에 모두 자리를 떴다.
뒤를 돌아보자 피투성이로 엉망이 된 무적파 사내들의 멍한 시선들이 일행들에게 쏟아졌다.
“소… 소협들은…?”
“처음 뵙겠습니다. 무적파의 제자분들이시죠?”
공손수가 나섰다.
“인사 올리지요. 저는 사패련의 신설 무력대인 비룡대의 공손수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쪽은—”
“사, 사패련?!”
“사패련이라고?!!”
웅성웅성.
공손수의 입에서 사패련이란 단어가 나온 순간, 소란이 번지기 시작했다.
쾅—!!
“크으으! 그것 봐라! 내가 말했잖아, 이 자식들아! 사패련이, 패왕가가 우릴 버릴 리 없어! 그럴 리가 없다고! 큽, 크헝헝! 으헝헝헝!”
그때, 민머리 사내가 주먹을 땅을 두드렸다. 그리고는 느닷없이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작에 불과했다. 민머리 사내를 필두로 여기저기서 대성통곡이 터져 나왔다.
“큽… 으헝헝!”
“크헝, 커허허허헝!”
“…에.”
울먹이는 거한들.
공손수가 난처한 소리를 냈다.
* * *
정도를 표방하는 신생무파 정검문이 회화에 터를 잡고 제자를 모집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이 년 전 일이었다.
그렇게, 이전까지 무적파를 위시한 사파의 영역으로 인식되고 있던 회화는 삽시간에 정사 중간의 땅이 되고 말았다.
당연히 무적파는 반발했다.
장강 이남의 땅에 정파가 발을 들이는 것은 악양지약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일이 아닌가.
그러나 정도맹으로부터 돌아오는 것은, 맹 내에 속하지 않은 문파의 일까지 일일이 관여할 수는 없다는 형식적인 답변뿐이었다.
“헹, 정파 놈들 특유의 시커먼 속이 뻔히 보이는 노릇이지요! 예! 정검문주가 점창(點蒼)의 속가 출신임을 하늘이 알고 땅이 아는데 어찌 관계가 없겠습니까?!”
탕! 무적파의 대제자 표왕호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두드렸다.
어쨌거나 점창의 맥을 이은 정검문의 무공을 인근의 중소 사파가 쉬이 당해낼 수 있을 리 없다.
정검문은 빠르게 세를 불렸고 이내 온갖 억지스런 빌미를 들이대며 인근 사파들의 영역을 야금야금 갉아먹기 시작했다.
한발 늦게나마 무적파를 중심으로 뭉친 사파세력들이 간신히 이를 막아섰으나, 정검문의 성장세를 꺾을 수는 없었다.
이에 무적파는 도움을 구하려 했다.
“하지만… 그즈음에는 이미 주변 어디에도 도움을 청할 만한 곳이 남아있지 않더군요.”
“…….”
본래 호남은 패왕가의 보호를 받는 영역이었으나, 패왕가는 사실상 문을 닫았다.
애초에 패왕가가 봉문 상태에 들지 않았더라면 정검문 따위가 호남 땅에 발을 붙일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호남 내 다른 지역의 상황은 무적파가 자리한 회화와 같거나 오히려 못한 상황이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호남의 거의 모든 지역에 정파의 세력들이 일제히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것.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사패련의 개입을 신경 쓰는 듯 점창파가 직접 지원을 나서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약 이 년에 걸쳐 호남 땅에는 정사 간의 위태로운 공존이 이어져 왔다. 그러나.
불과 보름 전의 일이었다.
대뜸 자파의 제자들이 의문의 흉수들에 의해 피습을 받았노라며, 정검문은 사파세력에 그 책임을 묻겠노라 선언했다.
제대로 된 대비조차 못 하고 있던 회화의 중소 문파들은 급작스런 습격에 의해 줄줄이 문파를 점거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에 격노한 무적파의 문주가 직접 제자들을 이끌고 탈환에 나섰으나, 그마저 정검문주에게 패배하고 간신히 몸만 빠져나온 채 기식이 엄엄한 상태가 되었다.
그 결과.
“으으, 끄으으…….”
“크흐흐, 비, 빌어먹을……!”
현재, 일행들이 자리한 무적파의 연무장에는 부상자들로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차 있었다.
무적파의 제자들 뿐이 아니다.
간신히 몸만 빠져나와 무적파에 몸을 의탁한 인근 중소사파의 제자들 대다수가 모여 있는 듯했다.
이른바 최후의 보루인 것이다.
그러나 물론, 엉망이 된 몸으로는 제대로 된 전력조차 될 수 없다.
앞서 정검문의 제자들과 싸우고 있던 무적파의 남은 제자들이 사실상 사파 측의 마지막 전력이었던 듯했다.
그나마도 부상을 입은 채였다.
“…아무리 그래도 믿기 어렵군요. 고작해야 생긴 지 이 년밖에 안 된 정도문파에 의해 지역 내 세력들이 일거에 이렇게…….”
공손수는 조금 전의 일전을 생각했다.
정검문의 제자들은 약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까지 까다로운 수준 또한 아니었다.
무적파 제자들의 상태가 괜찮았더라면 굳이 자신들이 없었더라도 충분히 해볼 만한 싸움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애시당초 적들은 멀쩡한 반면 어째서 무적파의 제자들만이 일방적으로 부상을 안고 있었을까?
“그, 그게… 참으로 면목이 없습니다만! 놈들이 비열하게도 선을 넘었습죠! 예!”
“그게 무슨 말이죠?”
빠드득, 표왕호가 이를 갈았다.
“저희는 오랫동안 놈들과 부딪치다 보니 좋든 싫든 놈들의 면면을 대강 알고 있습니다만… 이번만큼은 어쩐지 전혀 못 보던 놈들이 은근슬쩍 섞여 있었습니다. 예!”
“…….”
“조, 조금 전에는 없었던 것 같지만… 부, 분명히 점창에서 은근슬쩍 사람을 보내어 개입한 게 틀림없습니다요!”
“…그게 정말인가요?”
“그, 그러믄요! 크흑, 그렇지 않고서야 저희가 정검문 따위에게 이렇게 일방적으로 당할 리가 없습니다요!”
공손수의 안색이 살짝 굳었다.
점창, 위세 높은 구파일방의 일원.
결코 가벼이 넘길 이름은 아니다.
타앙!
“하, 하지만 괜찮습니다요! 예! 이 표왕호, 비록 문주님을 지키지 못했을지언정 아직 함께 싸울 수 있습니다요!!”
표왕호가 발을 구르며 외쳤다.
“말코 놈들 따위가 어딜 감히 이 호남 땅에서 사패련의 위명에 뻗대겠습니까! 저 비열한 정파 놈들을 벌하고자 소협들께서 오셨으니 이제는 모조리 쓸어버릴 일만 남았지요! 와하하!”
호기롭게 기함을 내지른 표왕호의 초롱초롱한 시선이 별안간 언미희를 향했다.
“구명의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대주님의 무공에 탄복했습니다!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모자란 몸이나마 선봉에서 간악한 정파놈들의 골통을 모조리 부숴 버리겠습니다요!!”
“…네? 저, 저요? 정파를요?”
표왕호가 대뜸 포권했다.
정검문의 대제자 장막수의 공격을 막아내고 물리치기까지 한 그녀를 대주로 인식하는 듯했다.
윽, 언미희의 표정이 복잡하게 일그러졌다.
“…하아.”
공손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말인즉슨 비룡대원을 모집하기는커녕 기둥뿌리가 박살 날 지경인 이들에게 오히려 도움을 요구받고 있는 상황이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기분 나쁘게 시의적절하다.
흘끗흘끗, 이곳저곳에 널브러진 부상자들의 시선이 일행들에게 쏠리고 있다.
눈빛 속에서 간절함이 읽혔다.
사문을 빼앗기고 가족과 동문들을 볼모로 잡힌 이들에게 있어 혜성처럼 나타난 사패련이란 이름은 그야말로 마지막 희망일 테다.
비록 그 이름을 달고 있는 이들이 약관도 못된 애송이들이라 할지라 해도.
“…응? 제가 뭔가 말을 잘못했습니까요?”
언미희와 공손수의 안색을 살피던 표왕호의 얼굴에 이내 의문이 떠오른다.
데룩데룩, 눈동자를 굴렸다.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본다.
“그, 그런데 그러고 보니 나머지 대원들은 모두 어디 계십니까요? 설마 여기 계신 네 분 소협이 전부인 건… 아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