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Advent (Descent of the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240)
‘대, 대체 언제 들어온 거야?’
황태자 주치윤은 눈앞에 서있는 천여운의 모습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어느 순간 갑자기 앞에 나타났는데 황당할 따름이었다.
문제는 이것이 아니었다.
‘설마 우리가 하는 대화를 들은 것인가?’
이들의 대화는 국사, 즉 천여운을 죽이기 위한 계책을 나누는 중이었다.
그런데 당사자가 그걸 들었다면 최악의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얼마나 놀랐는지 눈앞에서 새끼 여우의 모습을 한 금모 구미호가 말을 하고 있는데도 인식을 전혀 못했다.
천여운이 입을 열었다.
“주치윤.”
“구, 국사. 지금 본 태자의 존함을 그대의 입에 담은….헉!”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주치윤의 몸이 위로 떠올랐다.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팔이 양옆으로 벌어지고 다리 역시도 벌려졌다.
‘말도 안 되는 진기다.’
겪어 본 적이 있었지만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진기였다.
그렇게 허공에 망치질을 한 것 마냥 고정된 주치윤이 당황해서 버벅거리며 소리쳤다.
“이, 이게 무슨 짓이오? 당장 내려주시오.”
이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였다.
최대한 소리 높이는 것.
그런데 여기서 큰 문제가 있었다.
‘이런 난감할 데가….’
호위 금의위들을 근방에서 물려두었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 은밀한 만남에서 흘러나오는 비밀을 숨기기 위해 황제 폐하가 오는 것이 아니면 누구도 다가오지 말라고 엄명을 내려놓았다.
이게 발목을 붙잡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나타나면 누가 막는단 말인가.’
물론 그것이 아니더라도 천여운의 손에서 그를 보호해줄 수 있는 자는 황궁 아니 중원 전역을 통틀어도 존재하지 않는다.
“재밌군. 나를 처리해?”
천여운의 입에서 나온 그 말에 주치윤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제발 못 들었기를 바랐지만 그것은 물 건너갔다.
“보, 본인은 이 제국의 태자요. 아무리 국사라고 해도 본 태자에게 조금이라도 위협을 가하…”
-우드득!
“끄아아아악!”
주치윤의 오른팔이 기이한 형태로 꺾여버렸다.
팔꿈치의 뼈가 튀어나왔는데도 천여운의 표정에는 조금의 변화도 없었다.
냉혹함 그 자체였다.
“그게 어쨌다는 것이냐?”
“끄으으으……네, 네놈 정말 미친 것이냐? 태자를 건드리다니 정녕 천마신교가 천만 대군의 앞에 몰살….”
-우드득!
주치윤의 왼팔이 반대로 꺾여나갔다.
마찬가지로 뼈가 튀어나올 만큼의 고통에 주치윤이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아악!”
양팔이 덜렁덜렁해진 주치윤이 오열을 하며 눈물을 흘렸다.
살면서 처음 겪어보는 고통이었다.
고귀한 혈통으로 태어난 그에게 누구 하나 뭐라고 하는 이가 없었고, 손 끝 하나 건드릴 수 있는 존재는 없었다.
“끄어어어! 이노오오오옴!”
처음 느껴본 고통은 주치윤에게 극도의 분노를 일으켰다.
누군가를 이렇게 증오해본 것은 처음이다.
다만 상대가 좋지 않았다.
“귀엽군.”
“뭐라!”
천여운이 피식 웃었다.
그 순간 주치윤의 두 다리가 동시에 앞으로 꺾이고 말았다.
-우드득!
“끄아아아아아아악!”
뒤쪽으로 살을 파고 튀어나오는 부러진 뼈들.
허공에 떠서 양팔과 양 다리가 기이하게 꺾여 있는 모습이 눈을 뜨고 지켜보기가 힘들 정도였다.
“끄어어어어.”
주치윤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분노도 분노였지만 눈앞에 있는 이 자는 앞뒤를 전혀 생각하지 않는 듯 했다.
자신을 전혀 태자로 여기지 않았다.
‘끄으으….이, 이 망할 놈….’
미칠 지경이었다.
당장이라도 금의위들을 불러서 천마신교와 관련된 모든 것을 싹 다 밀어버리고 그 삼족을 멸하라고 명하고 싶은 심경이었다.
그런 주치윤의 턱을 천여운이 움켜잡았다.
-탁!
“이…이금 어하은 지시냐?”
대체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고통도 이길 만큼 분노로 차있던 주치윤이 당혹스러워했다.
“턱이 뽑혀서도 그런 눈빛을 할 수 있을지 한 번 보도록 하지.”
‘턱?’
턱을 뽑는다는 말에 주치윤이 기겁을 해서 소리쳤다.
“아, 아은 항해자다! 이, 인엉 에노미 미헜구…..”
“황태자?”
“으….으래!”
“같잖은 신분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군. 그렇다면 오늘부로 네놈은 황태자가 아니다.”
“……뭐?”
주치윤이 어처구니가 없어했다.
제 놈이 뭐라고 이 대명제국의 황태자를 바꾸니 마니 하는 헛소리를 하는 것인가.
-꽈악!
“웁웁!”
천여운이 입을 더욱 오므리자 주치윤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런 그에게 천여운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네놈의 애비인 주태겸이 자존심 때문에 말을 하지 않은 것 같구나. 이깟 대명제국은 언제든지 지울 수 있다는 사실 정도는 알려줬을 법도 한데.”
‘!?’
그 말을 듣는 순간 주치윤의 두 눈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천여운이 하는 말이 전혀 허언처럼 들리지 않았다.
‘대…..명제국을 지워?’
당황해하고 있는 찰나였다.
그때 누군가 소리쳤다.
“마신! 당장 황태자 저하께 손을 떼지 않는다면 후회하게 될 것이다.”
그는 팔이 꺾여서 바닥을 뒹굴던 내관이었다.
아직까지 고통으로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지만 천여운을 견제하기 위해 어디다 숨겨뒀던 것인지 연도마저 빼들었다.
-탁!
천여운의 어깨로 냉큼 올라온 금모 구미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설마 그거 통할 거라 생각?
키득키득 웃는 모습에 내관의 두 눈이 커졌다.
“이, 이건 또 뭐….”
-쾅!
“끄억!”
뭐라고 따지기도 전에 그의 신형이 이내 떠올라 천장에 박히고 말았다.
들고 있던 연도는 재가 되어 사라졌다.
-파스스스!
손에서 사라진 연도에 내관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건 도저히 인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천여운이 눈짓을 하자,
-슥! 찌익!
내관의 상의가 찢어졌다.
그러자 관복에 가려졌지만 굉장히 잘 발달된 근육이 드러났다.
이를 본 천여운이 입 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누군가 했더니 극도육무문이었나?”
‘!!!’
그 말을 들은 내관의 표정이 완전히 굳어져버리고 말았다.
천여운의 말이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빌어먹을…..’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극도신무의 내공을 폐하고 새로운 심법으로 내공을 쌓았다.
그런데 이 괴물 같은 자는 자신의 근육 형태만 보고 무공의 연원을 파악해버렸다.
천여운이 그런 그에게 말했다.
“계속 숨어있지 뭐 하러 이런 귀찮은 짓거리를 하느냐?”
극도신이 죽은 이후로 자취를 감춘 그들이었다.
근 이십 여 년 동안 모습을 감추다가 이렇게 드러났다는 것은 뭔가 자신을 상대할 만한 패를 갖췄기에 등장했을 확률이 높았다.
물론 그 패는 이미 드러난 것 같지만 말이다.
‘별 수 없구나. 이렇게 된다면.’
내관이 입을 열었다.
“마신……순례를 떠난 네놈의 아들과 가장 아끼는 수하가 어디에 있을 것 같나?”
마신이 아끼는 소중한 사람들.
특히 마신 천여운에게는 아들이 하나뿐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
대를 이을 후계자가 자신들의 손에 있게 된다면 그의 이성적인 판단은 무너질 거라 여겼다.
“……..”
천여운이 말없이 인상을 찡그리더니 눈을 감았다.
그 모습에 내관이 회심의 표정을 지었다.
‘됐다! 이제 상황은 바뀌었다.’
마신의 유일한 약점.
자신의 소중한 이들을 극도로 아낀다는 점이다.
이를 이용하기 위해 수많은 준비를 했고 그 결실을 기다려왔던 그들이었다.
내관이 득의양양해져서 말했다.
“마신 나를 밑으로 내려라. 그렇지 않으면….”
그때 천여운이 눈을 뜨며 중얼거렸다.
“망자산에 있군.”
“그래. 망자산에 네 아들…..뭐?”
내관이 순간 당혹스러워했다.
위치를 발설할 생각은 일말도 존재하지 않았던 그였다.
‘……떠보는 것인가?’
단번에 위치를 맞추는 바람에 당황했지만 내관은 곧 이성을 되찾았다.
어차피 시귀가 노출되었기 때문에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설사 안다고 해도 상관없다.’
알면 어떻게 할 것인가.
어차피 그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것은 자신들이었다.
천여운은 개봉에 있는데다가 망자산에는 자신들의 총력이 집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흥! 안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 아들의 목숨이 아깝지 않….헉!”
-팍!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관의 몸이 밑으로 떨어지며 천여운의 손아귀에 잡혔다.
“무, 무슨 짓이냐?”
머리통을 움켜쥔 것이 불안했다.
천여운이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놈은 필요 없으니 그만 가라.”
“뭣? 네, 네놈 내가 하는 말을 허투루…”
-콰직!
내관의 머리통이 그대로 박살나고 말았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황태자 주치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버렸다.
자식이 볼모로 잡혀 있다고 하는데 귓등으로 듣지 않는 태도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이, 이놈 정말 미친 건가? 자식이 죽어도 좋다는 거냐?’
그런 그에게 천여운이 말했다.
“금방 돌아오마.”
-스륵!
천여운의 신형이 허공 속에 녹아들 듯이 사라졌다.
-털썩!
“끄억!”
허공에 떠 있다가 밑으로 떨어진 황태자가 부러진 팔다리 때문에 고통스러워했다.
하지만 그보다 천여운이 한 말이 더 신경쓰였다.
‘금방 돌아온다니?’
* * *
스산한 요기가 넘쳐나는 안개의 망자산.
그곳에는 괴이한 짐승의 소리를 내고 있는 시귀들로 가득했다.
시체처럼 보이는 그들의 숫자는 헤아리기조차 힘들었다.
마치 산 안에 작은 산이 존재하는 것 마냥 안개 사이로 보이는 날카롭고 거대한 푸른 눈동자.
그 푸른 눈동자가 섬뜩하게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백발의 중년인이 두 팔을 활짝 펴고서 말했다.
“시해의 왕이시다. 경배 드려라.”
“개소리 집어치워!”
워낙 거대해서 할 말을 잃고 있던 허봉이 그에게 소리쳤다.
자신이 무릎을 꿇고 경배할 자는 오직 단 한 사람 마신 천여운뿐이다.
“마신의 제 일 수하 다운 기개로구나. 하지만 본좌가 무릎을 꿇으라면 네놈들에게는 거부권 따윈 없다.”
-슥!
백발의 중년인이 손을 움직이자 얼음에 갇혀 있던 세 사람이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쿵!
“큭!”
“으윽!”
거의 억지로 절 받기 수준이었다.
-크크크크크.
허공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워낙 소리가 큰 것이 시해의 왕이라 불린 저 거대한 괴물이 내는 소리 같았다.
허봉이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대체 저런 괴물은 어디서 찾은 거지?’
그도 천여운과 함께 무림을 활보하면서 많은 경험을 했다.
무림인들이 평생을 찾아 헤매도 보기 힘들다는 오령을 셋이나 볼만큼 다양한 경험을 했는데, 이런 요사스러운 괴물은 처음이었다.
백발의 중년인이 자부심이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놈들은 다시없을 영광을 누리는 것이다. 왕께서는 죽은 자들마저 경배한다. 이분의 앞에서 죽음은 퇴색되며 모두가 영생을 공유할 수 있다.”
“크르르르르!”
“크아아아!”
감정이 없을 것 같은 시귀들이 손을 들며 환호했다.
그저 인육만 물어뜯을 것만 같았는데, 백발의 중년인을 따르는 것 같았다.
“저딴 게 영생이라니? 정말 얼토당토하지 않는 얘기로군.”
소교주 천우명이 넘어져서도 기가 죽지 않고서 비아냥거렸다.
명색이 마신의 아들이었다.
위기에 처해있어도 기세만큼은 죽지 않았다.
-쾅!
“컥!”
그때 누군가가 천우명의 머리를 잡고서 바닥에 내리꽂아버렸다.
몸이 얼음 속에 갇혀 있기에 천우명으로서는 그대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소교주님!”
“이놈들!”
허봉과 고왕숙이 동시에 분노했다.
특히 고왕숙의 분노가 어찌나 컸는지, 허봉조차 나오기 힘든 얼음이 갈라지며 균열이 일어났다.
“대단한 신력이로군.”
하지만 백발의 중년인이 얼음을 더 두껍게 하면서 부수는 데는 실패했다.
천우명의 머리를 바닥에 찍은 정체모를 시귀가 괴이하게 웃었다.
“케…케케케…케.”
스스로를 도주라고 밝힌 시귀처럼 자아를 가진 듯 했다.
시귀가 천우명의 머리를 들어올렸다.
-주르르륵!
안면이 찢겨진 천우명의 얼굴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우명은 신음 소리조차 내지 않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백발의 중년인을 노려보았다.
이에 백발의 중년인의 눈빛에 이채가 띠었다.
“범의 새끼는 범이 맞군. 이런 상황에서도 기가 죽지 않다니 말이야. 하지만 그 기개가 얼마나 갈까? 네 애비가 죽어서도 그럴 수 있을까?”
-뿌득!
그 말에 천우명이 이를 갈며 말했다.
“아버지를 함부로 입에 올리지 마라.”
“애비에 대한 충성도가 높구나.”
“웃기지 마라. 우리를 붙잡지 않고는 아버지를 어찌 해보지도 못하는 쥐새끼 같은 것들이 뭐가 어째고 저째?”
“….닥쳐!”
-쾅! 쾅! 쾅!
천우명의 머리를 움켜쥐고 있던 시귀가 여러 차례 바닥에 안면을 내리찍었다.
고통의 신음성을 낼 만도 한데, 천우명은 입 한 번 열지 않았다.
내려치는 순간에도 백발의 중년인을 노려보았다.
‘이놈 독기 봐라.’
이런 류의 인간들은 고통으로 기가 죽을 유형이 아니었다.
백발의 중년인이 수신호를 보내며 멈추라고 했다.
분노에 찬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시귀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죽이….지만….않으면….되지….않나?”
“네 심경은 이해한다만 사령 적당히 해라. 곧 네 손으로 복수할 수 있게 된다.”
“크르르르르.”
그 말에 짐승의 울음소리를 내던 시귀가 머리에서 손을 뗐다.
안면이 엉망이 된 천우명이 부러진 이빨을 내뱉었다.
“퉷.”
그리고 백발의 중년인을 올려다보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후회할 텐데.”
이에 백발의 중년인이 비웃음을 흘렸다.
“훗. 애비에 대한 믿음이 강하군.”
“아버지께서는 최강이시다.”
-슥!
백발의 중년인이 몸을 숙여서 천우명과 얼굴을 맞대고서 말했다.
“그 최강도 곧 무너진다. 네놈은 개처럼 본좌에게 혀를 핥으며 빌게 될 것이다.”
“웃기는 소리!”
“네놈이 자부심이 넘치니 알려주마. 굳이 시해의 왕이 나서실 필요도 없다. 네 애비가 아무리 대단해도 역대 무림에서도 그런 자들이 없을 것 같나?”
“역대 무림?”
알 수 없는 그의 말에 천우명이 인상을 찡그렸다.
“네 애비도 무림의 전설들 앞에서는 애송이나 다름없지. 후후후.”
백발의 중년인이 비웃음을 흘리면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어딘가로 걸어가며 손짓을 했다.
그러자 시귀들의 일부가 누군가를 질질 끌고서 데려왔다.
“윤형!”
그는 청성파 출신의 낭인인 윤자서였다.
“끄으으으….”
한쪽 팔이 잘려서 출혈이 심한 윤자서의 상태는 그리 좋지 않았다.
우려된 천우명이 백발의 중년인에게 소리쳤다.
“뭘 하려는 거지?”
“고작 며칠 새에 미끼들한테 정이라도 생겼나 보지.”
“그 자를 건드리지 마라!”
천우명이 그에게 경고를 했다.
물론 그 경고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백발의 중년인은 그런 천우명의 반응을 즐기기라도 하는 듯 웃으면서 위를 쳐다보며 소리높여 경건하게 말했다.
“왕이시여. 여기 제물을 바치겠나이다. 제물을 받으시어 부디 본문에 또 다른 은혜를 내려주시기 간청 드리옵니다.”
-크크크크크크크.
허공에서 섬뜩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백발의 중년인이 말했다.
“왕의 은총을 지켜보아라.”
-고오오오오!
안개로 짙은 허공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움직이려 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쾅!
허공에서 거대한 굉음 소리가 퍼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거대한 그림자가 걷히면서, 산처럼 우뚝 서있던 시해의 왕이라 짐작되는 존재가 뒤로 밀려나갔다.
-쿵! 쿵! 쿵! 쿵!
움직일 때마다 대지가 흔들릴 정도였다.
백발의 중년인이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에 이해할 수 없어했다.
“왕이시여?”
그때였다.
-슈우우우욱! 쿵!
허공에서 시귀들로 가득한 산 언덕의 한복판에 뭔가가 지상으로 착지했다.
‘!?’
검은 도포가 펄럭이고 있는 인영이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그 순간 태풍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이곳 망자산을 가득 메우고 있던 안개가 엄청난 속도로 하늘 위로 솟구쳤다.
-휘이이이이이이잉!
자욱한 안개가 걷히며 그 자의 모습이 드러났다.
이를 본 천우명과 허봉, 고왕숙 등이 동시에 소리쳤다.
“아버지!”
“주군!”
“교주님!”
시귀들의 한복판에 착지한 자는 다름 아닌 마신 천여운이었다.
백발의 중년인과 그의 주변에 있던 범상치 않은 모습을 하고 있는 시귀들의 눈이 동시에 천여운에게로 향했다.
“마신!”
설마 이 자리에 그가 나타날 거라고는 예상지 못한 백발의 중년인이었다.
중년인이 입술을 질끈 깨물더니 소리쳤다.
“제 발로 범의 아가리에 들어오다니! 쳐랏!”
그의 외침과 함께 천여운을 둘러싸고 있던 시귀들이 일제히 그를 공격하려 했다.
“카악!”
“크르르를!”
“크와아아아!”
천여운이 뒷짐을 진 상태로 한 발자국 내딛었다.
그 순간 천여운의 반경 10장 내에 있던 시귀들이 갑자기 뭔가에 부딪친 것 마냥 뒤로 튕겨나가더니, 재가 되어 흩어져버렸다.
‘!!!’
죽지 않고 말고의 개념을 떠나 완전히 소멸해버린 것이다.
그 광경에 백발의 중년인이 인상을 한 번 찡그리더니 소리쳤다.
“흥! 시귀들은 넘치고 넘친다! 죽여랏!”
이에 시귀들이 다시 한 번 천여운을 향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크와아아아아!
-두두두두두!
그 숫자가 얼핏 보아도 족히 수백수천은 되는 듯 했다.
얼마나 많은 죽은 자들을 부활시켰으면 이 정도 숫자가 되는지 짐작조차 힘들 정도였다.
“죽은 자들의 공포를 맛보아라. 마신!”
천여운이 뒷짐을 풀지 않고서 중얼거렸다.
“죽은 자들이라…..”
그런 천여운의 어깨에 웅크리고 있는 금모 구미호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제대로 된 걸 보여주는 게 어떠냐앙. 천마.”
“흠.”
그 말에 천여운이 귀찮다는 듯 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바닥에 한 발 내딛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쩌저저저저!
천여운이 내딛은 발을 중심으로 음산한 기운이 바닥으로 퍼져나가더니, 이내 새하얀 서리가 내린 것처럼 변해갔다.
-스르르륵!
그렇게 변한 바닥 속에서 새하얀 형체의 무언가가 올라왔다.
마치 유령을 보는 듯한 존재였다.
그런데 그것은 하나가 아니었다.
-스륵! 스르륵! 스륵!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숫자의 유령들이 지옥에서 기어 올라온 것 마냥 바닥에서 새하얀 입자를 흘리며 나타났다.
그 광경에 백발의 중년인의 입이 절로 벌어지고 말았다.
‘이, 이게 대체 뭐야?’
시귀들로 이루어진 군대보다도 더 섬뜩한 광경이었다.
당황해하고 있는 와중에 천여운이 유령 군단에게 명했다.
“처리해라.”
-스르르르르르!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유령들이 일제히 시귀들을 향해 새하얀 족적을 남기며 날아갔다.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