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135)
# 40장 정파 무림맹의 귀빈 (3) #
서시(西施)나 왕소군(王昭君)이 있다면 이런 외모를 지녔을까.
피어오르는 연꽃과도 같은 미모.
부드럽게 내려오는 선이 뚜렷한 얼굴은 절세가인(絶世佳人)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그 아름다움이 도드라졌다.
가히 탄성을 불러일으키는 여인이었다.
일렁이는 등불에 비치는 그녀의 고운 자태에 장내에 있는 남자들의 대다수가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그녀의 옆에 있던 호위 무사 중 한사람이 가볍게 손바닥으로 박수를 쳤다.
-짝!
그제야 넋을 놓고 있던 이들이 민망하다는 듯이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일부 정파 무림맹 사람들의 표정을 보아하니, 그녀의 외모에 놀라는 좌중의 반응 덕분에 기세가 산 듯 했다.
천여운의 표정이 묘했다.
그는 정파 무림맹의 사람들이 누구인지 잘 몰랐지만, 이곳에 있는 종주들이나 장로들은 외부 정보에도 밝기에 그녀의 정체를 일찌감치 눈치 챘다.
왼쪽 눈 아래 찍혀 있는 미인 점은 그녀가 누구인지를 알려주고 있었다.
교주의 입에서 칭찬이 흘러나왔다.
“정파 무림맹주에게는 두 보물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 중 하나인 제갈 군사의 아름다움은 정파 제일이라고 불린다던데 과연 명불허전이로다.”
“과찬이십니다.”
그녀는 중원 삼미(三美) 중의 일인이자 무림맹의 제 이 군사인 제갈소희였다.
정파 무림맹주의 장남인 연부소의 연인이자, 무림맹의 군사로도 이름이 드높지만 역시 그녀를 상징하는 것은 아름다움이었다.
‘이게 바로 중원 최고의 미인이라는 것이다.’
칠웅주인 모용강의 아들이자 모용세가의 소가주인 모용유가 괜히 본인이 득의양양해했다.
물론 그 뿐만이 아니라 모용세가 사람들의 표정이 비슷했다.
‘마교인들이 아니랄까봐 미인을 보니 탐욕에 물들어서는 쯧.’
늘 스스로를 절제하는 화산파의 도인들과 달리 모용세가의 사람들은 적대적인 관계인 마교에 대해 멸시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그 감정이 얼굴로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저놈들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군.’
‘모용세가 녀석들이 건방지다더니. 쯧쯧.’
동맹을 맺는 자리였기에 내색하지 않았지만 연회장의 정원에 서있는 종주들이 혀를 찼다.
사실 이 연회 자리는 생각보다 위험한 자리일 수도 있었다.
수백 년 동안이나 전쟁을 벌였던 앙숙이나 다름없는 정파와 마도였다.
동맹이라는 명목 하에 그 감정이 쉬이 조절될 리가 만무했다.
‘동맹에 해가 되는 행동을 하는 자는 이 자리에서 일벌백계할 것이다.’
교주는 연회가 시작되기 전에 종주들에게 미리 경고했다.
물론 정파 무림맹 역시도 두 웅주들이 제자들과 세가 사람들에게 누차 당부했다.
‘작은 말다툼도 큰 화로 번질 수 있으니 주의하라.’
처음 이뤄진 공식적인 동맹 자리가 파탄 나지 않도록 양측은 계속 자제할 것이다.
다만 그것이 술이 들어간다면 어떻게 변할지는 모를 일이었다.
면사포를 벗은 제갈소희가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무림맹의 제 이 군사인 제갈소희가 교주님께 인사드립니다. 무례를 범한 것을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바랍니다.”
그녀의 그 말에 천유종이 누그러진 얼굴로 석좌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정파 무림맹의 사람들을 향해 가볍게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맹주께서 귀한 손님을 보내셨구려. 다시 한 번 인사드리겠소. 천마신교로 온 것을 환영하는 바이오.”
-착!
교주가 인사를 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연회장에 모여 있는 교인들도 무림맹의 사람들에게 일제히 포권을 취해서 인사를 했다.
이에 육웅주 풍청운이 너털웃음을 보이며 교주 천유종에게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허허허, 교주님의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연회를 기다리느라 빈도가 참으로 배가 고픕니다. 준비해주신 음식이 이러다 식겠군요.”
정파 무림맹 측의 가장 어른인 풍청운이 가벼운 농담을 하면서 나서준 덕분에 연회장의 분위기가 한결 밝아졌다.
“풍 장문인의 말씀이 맞구려. 어서 귀빈들을 모셔라.”
“충!”
연회장 정원에서 대기하고 있던 어여쁜 시종들이 무림맹 측의 수뇌부들에게 자리를 안내했다. 그 외의 일반 화산파의 문도들이나 모용세가의 무사들은 연회장의 정원에 준비된 원형 식탁에 착석했다.
모두가 자리에 착석하자 잠시 연주를 중지했던 악공들이 풍악을 울렸다.
이제야 연회다운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대청의 푸짐한 좌상에 앉은 양측의 수뇌부들이 서로의 신분을 소개하며 정식으로 인사를 해나갔다.
“대 천마신교의 십일 장로 환의라고 합니다. 후후후.”
가장 직위가 낮은 십일 장로인 환의를 시작으로 장로들이 직위와 이름을 밝혔다.
그런데 마교 측의 모두가 소개를 거의 마쳐갈 때까지도 약관 채도 되지 않는 청년이 일어나지 않자 무림맹 측 사람들은 그의 정체를 궁금해 했다.
‘흐음, 다른 자들은 맹의 정보망에서 한 번쯤 들어봤던 자들이다. 그런데 저 청년은 누구지?’
오랜 세월 동안 무림을 활보한 만큼 풍청운은 어지간한 사파, 마교의 인사들까지도 잘 알고 있었지만 마교의 수뇌부 측에 고작 약관의 청년이 있다는 정보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때 청년이 마지막으로 일어나서 포권을 취하며 스스로를 소개했다.
“대 천마신교의 소교주이자 십이 장로를 겸임하고 있는 천여운이라고 합니다. 무림맹의 귀빈들께 인사드립니다.”
‘소교주!!!’
좌상 앞에 앉아있던 무림맹 측 수뇌부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직까지 마교에 후계자인 소교주가 탄생하지 않은 걸로 알고 있었는데, 이런 중요한 자리에 떡하니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더군다나 십이 장로를 겸임하고 있다고 하였다.
‘장로까지 겸임하다니? 허어. 그러고 보니 괴독마장 백오와 쌍수마검 무진원이 보이지 않는구나.’
백오와 무진원은 정파 무림맹에게 있어서 악명이 높은 고수였다.
그런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으니 같은 세대에 활약한 화산파의 장문인 풍청운의 입장에서는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파 무림맹 측에 두 사람의 죽음에 의한 부재를 알려줄 필요가 없기에 밝히지 않았다.
‘이 녀석이 마교의 소교주인가?’
모용세가의 소가주인 모용유의 눈빛이 묘해졌다.
어떻게 본다면 이 자리에 모여 있는 자들 중에서 앞으로 자신과 같은 세대를 공유할 적이라는 말이었다.
‘…..제법 세 보이는데.’
인정하기는 싫었지만 무위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 역시도 약관에 초절정 초입에 이르러 세가 내에서도 뛰어난 인재라 불렸는데, 천여운을 보고 있자면 벽에 막힌 느낌이었다.
마교는 철저하게 실력 위주로 직위가 결정된다고 들었는데, 장로 직마저 겸하고 있을 정도면 분명 굉장한 무위를 지녔으리라.
‘마치 놈을 보는 듯하군.’
천여운을 보고나니, 정파 무림맹에서도 괴물이라 불리는 놈이 생각났다.
무림맹주의 장남인 연부소가 떠올랐다.
무림맹의 인재 육성 기관인 백운관을 가장 먼저 이수하고, 일곱 웅주들이 심혈을 기울여서 키웠다고 불리는 후세대 무림맹의 얼굴이 될 남자였다.
‘젠장. 남이랑 비교할 게 아니라 내 실력이나 키워야 겠군.’
현실을 돌아보게 되는 모용유였다.
자존심이 상해하는 아들 모용유를 바라보며 모용강이 피식 웃었다.
그저 무림맹 내에서의 같은 세대들만 보다가 적진이라 할 수 있는 마교에서 소교주를 보고나니 자극이 되었다는 것을 눈치 챘다.
‘데려오길 잘했군.’
라고 생각하는 한편으로 위험하게 여겨지긴 했다.
고작 약관 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소교주의 무위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마교는 마교라는 건가.’
마교에서는 소교주를 뽑을 때 철저한 경쟁과 강자존을 통해서 선정한다고 들었는데, 이 정도 괴물이라면 납득이 갈만 했다.
정파 무림맹 측에서도 소개를 마친 후, 교주가 이번 동맹이 맺어진 것에 대한 축사를 하는 것으로 본격적인 연회가 시작되었다.
가벼운 식사로 시작된 연회 자리는 어느새 술이 들어가면서 시끌벅적해지고 있었다.
“하하하, 제갈 군사께서는 정파 무림맹의 꽃이라고 불린 다더니, 그게 맞는 것 같소.”
“부끄럽습니다.”
“제갈 군사는 우리 정파 무림맹의 자랑이지요. 허허허.”
연회 자리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사람은 단연 제갈소희였다.
빼어난 그녀의 미모는 마교나 무림맹, 나이를 불문하고 남자들의 관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물론 모두가 그 아름다움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이런 상황을 유심히 살펴보는 눈이 있었다.
세심히 주위를 살피던 그 눈의 주인은 뭔가 탐탁지 않은 눈빛을 보였다.
‘장로들로는 부족하다.’
대청 위의 분위기를 살피던 그 자의 눈에 한 남자가 눈에 띠였다.
제갈소희에게 관심이 없다는 듯이 시선 한 번 주지 않고 술잔을 들이키는 모습에 입 꼬리가 올라갔다.
‘저 자라면 충분하겠다.’
그를 선택한 그 자가 술을 담은 옥병에 잔을 부딪쳤다.
-쨍!
시끌벅적한 연회 자리였기 때문에 누구도 그 행동을 의식하지 않았지만, 잔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제갈소희가 멍한 눈이 되어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갑자기 일어나서는 천여운의 곁으로 다가왔다.
“으음, 이게 뭘까요?”
다른 장로들과 달리 천여운의 곁에서 담소를 나누며 술잔을 기울이던 십일 장로 환의와 십 장로 연무화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제갈소희가 천여운의 우측에 앉아있던 연무화에게 말을 걸었다.
“연무화 장로님. 잠시 실례해도 될까요?”
한 마디로 표현하면 비켜달라는 말이었다.
예법에 어긋나는 행동에 주변 사람들의 표정에 의아함이 비추었으나, 연무화는 말없이 자리를 양보해주었다.
정파 무림맹과의 마찰을 없게 하라는 교주의 명도 있었고, 제갈소희가 상기된 얼굴을 보아하니 술기운이 제법 오른 듯 했다.
‘내공으로 해소시키지 않는 건가.’
천여운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자리가 자리인 만큼 서로 실수를 피하기 위해서 본교도 그렇고 정파 무림맹의 수뇌부 측도 내공으로 술기운을 해소시켰는데, 제갈소희의 붉어진 볼만 보더라도 그렇지 않았다.
-탁!
연회 자리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제갈소희가 천여운의 옆에 앉자 자연스럽게 시선이 그들에게로 향했다.
‘아…..’
조용히 연회 자리에 있다가 가고 싶었던 천여운의 심기가 불편해졌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그녀가 다시 자리를 옮겨서 장로들을 상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다음 제갈소희의 행동은 주위 사람들의 관심뿐만이 아니라 시기를 사게 만들어버렸다.
“소교주니이임. 정말 잘생기셨네요.”
‘엇?’
제갈소희가 갑자기 애교가 섞인 목소리로 교태를 부리는 것이 아닌가.
상기되긴 했지만 지금까지 장로들 앞에서 예를 갖추고 흔들리지 않던 모습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아리따운 그녀가 그런 행동을 하니, 가장 눈이 돌아간 것은 모용세가의 모용유였다.
‘뭐, 뭐야? 지금 뭐하는 짓이야?’
무림맹주의 장남인 연부소와 연인 관계였지만 내심 그녀를 연모하고 있었던 모용유가 눈을 부릅뜨고서 어이없어 했다.
“제가 싫으시나요오오?”
제갈소희는 작정하고 천여운을 유혹하려는 것처럼 가녀리고 예쁜 손으로 그의 팔목을 슬며시 잡으려고 했다.
천여운은 그녀가 취했다고 생각했는지 이를 몸을 젖혀 피했다.
그런데도 제갈소희는 더욱 천여운의 옆으로 엉덩이를 밀어붙이며 밀착해 왔다.
처음 겪어보는 여인의 유혹에 천여운의 얼굴에도 당혹감이 서렸다.
‘난감하군.’
이성에 대한 경험이 없는 그조차도 대놓고 유혹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할 정도였다.
그런데 자리가 동맹을 축하하는 연회 자리였고, 서로가 다른 세력에 속해 있기에 이런 행동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상하다.’
천여운이 달라붙으려는 제갈소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던 천여운이 제지하던 것을 멈추고 눈빛이 묘해졌다.
이를 지켜보던 예의 그 자가 지금이 적기라고 여겼다.
‘이때다.’
그 자가 술잔을 옥병에 두 번 부딪쳤다.
-쨍! 쨍!
바로 그 순간 천여운의 가까이로 붙으려고 하던 제갈소희가 좌상에 올려 있던 젓가락을 움켜쥐더니, 그의 가슴을 찌르려고 했다.
“앗! 제갈 군사!”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에 그들을 지켜보던 무림맹의 수뇌부들이 당황스러워했다.
그러나 기습이라고 해도 천여운이 이런 어설픈 공격에 당해줄 리가 없었다.
-팍! 탁!
“윽!”
젓가락을 쥐고 있던 손목을 내리쳐서, 그것을 떨어뜨리게 했다.
그러자 제갈소희가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공력을 끌어 모아서 천여운에게 복부에 쌍장(雙掌)을 날렸다.
-팟!
천여운이 뒤로 몸을 빼서 그것을 피했지만 제갈소희가 튕겨 나오며 살초를 이어갔다.
이 정도로 목숨을 노렸다면 당연히 방어가 아니라 상대를 공격할 수밖에 없다.
-꽉!
“헉!”
이어지는 천여운의 행동에 대청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천여운이 오른손을 뻗어서 그녀의 예쁜 얼굴을 손으로 움켜잡은 것이었다.
-꽈악!
“아흑!”
얼마나 세게 움켜쥔 것인지 그녀가 손이 풀려서 천여운의 팔목을 잡고서 고통스러운 신음성을 흘렸다.
먼저 공격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자인데 과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소, 소교주!”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에 화산파의 장문인 풍청운은 이를 어찌 말려야 하나 당혹스러웠다.
누가 보아도 제갈소희가 그를 먼저 공격했기 때문이었다.
“감히 본교의 소교주를 해하려 하다니, 귀 맹의 제갈 군사야말로 무슨 짓이죠!”
“그, 그건…”
십일 장로 환의의 일갈에 무림맹의 수뇌부들이 난처함을 금치 못했다.
양측이 서로 일어나서는 천여운과 제갈소희를 중심으로 대치하는 형태가 되어버렸다.
-웅성웅성!
대청이 소란스러워지자 시끌벅적했던 연회장이 일시에 조용해지며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대청으로 집중되었다.
‘됐다!’
여기서 자신이 나서서 소리만 친다면 연회 자리는 혼란으로 번질 거라 여겼는데,
-파치치치칙!
“꺄으으으으으으윽!”
뭔가 이상한 소리와 함께 천여운의 손에 얼굴이 잡혀있던 제갈소희가 전신에 경련을 일으키며 온몸을 뒤틀었다.
그렇게 경련을 일으키던 그녀의 몸이 추욱 늘어졌다.
“이, 이게 무슨 짓이오! 소교주!”
사 장로 자금경이 당혹감에 소리쳤다.
비록 제갈소희가 우발적인 행동을 벌였지만 자리가 자리인 만큼 차라리 제압해서 왜 그런 것인지 알아내는 것이 우선이었다.
‘흐흐흐, 더욱 잘 되었구나.’
그 자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알아서 상황을 악화시켜주니 굳이 소리를 질러서 판을 키울 필요가 없어보였다.
바로 그때였다.
“으으으음.”
추욱 늘어져 있던 제갈소희가 신음을 흘리며 정신을 차렸다.
천여운이 얼굴을 움켜잡고 있던 손을 뗐다.
비틀거리던 그녀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더니 어지럽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들어서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대, 대체 무슨 일이죠? 제가 술을 과하게 마신 건가요?”
제갈소희는 방금 전까지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녀의 달라진 반응에 상황을 지켜보던 그 자의 눈빛에 당혹감이 서렸다.
‘뭐, 뭐지? 어째서 암시(暗示)가 풀린 거지?’
그때 그 자의 귀로 전음성이 울렸다.
[제 이계(二計)로 넘어가라.] [아, 알겠습니다. 사형.]명령을 받은 그 자가 술잔을 옥병에 세 번 부딪쳤다.
-쨍! 쨍! 쨍!
그 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제갈소희를 걱정스러워하며 일으켜 세우던 모용유의 동공이 풀려서 천여운에게 달려들었다.
“제갈 소저를 건들다니! 죽어랏!”
이런 상황을 두 번씩이나 지켜볼 리가 없었다.
십일 장로 환의와 십 장로 연무화가 어느새 가로막아 단숨에 모용유를 제압해서는 바닥에 강제로 엎드리게 만들었다.
-쾅!
“어린 소협이 저희를 어지간히 우습게 여겼군요. 후후후.”
“크아아악! 놔! 놔랏!”
“흥!”
-퍽! 털썩!
거칠게 반항하는 그의 뒷목을 연무화가 손날로 내리쳐서 기절시켰다.
‘빌어먹을! 역시 처음에 실패한 것이 크구나.’
어떤 식으로든 문제를 일으켜야 하는데, 모용유가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제압되자 그 자의 얼굴이 거칠게 일그러졌다.
결국 제 삼계(三計)까지 갈 수밖에 없을 듯 했다.
‘어쩔 수 없구나.’
[사형 제 삼계를…]사형에게 전음을 보내는 도중이었다.
-팟! 꽉!
“컥컥!”
전음을 마치기도 전에 누군가 갑자기 날아와서는 그의 목을 움켜잡았다.
그는 바로 천여운이었다.
“소, 소교주! 대체 왜 이러는 것이오?”
“그, 그자는….”
모든 사람들이 천여운의 돌발행동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천여운이 목을 움켜잡아 들어 올린 자는 다름 아닌 제갈소희의 호위 무사 중 한 사내였다.
“크윽, 대, 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아무 것도 모르겠다는 눈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호위 무사에게 천여운이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못 찾을 줄 알았나?”
순간 심장이 떨어질 뻔했다.
대체 이 자가 자신의 정체를 어떻게 알아냈단 말인가.
그래도 최대한 내색해서는 안 된다.
“켁켁….도, 도통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건지.”
“수작 부리지 마라.”
-꽈악!
“끄아아악!”
어찌나 움켜잡고 있던 손아귀의 힘이 셌던지 얼굴이 터질 것처럼 빨개져서는 핏대가 섰다.
조금만 힘을 더 주면 목뼈가 부러져서 죽을 것만 같았다.
고통스러워하는 호위 무사에게 천여운이 낮게 깔린 목소리로 물었다.
“제 삼계가 뭐지?”
“헉!”
어떻게든 끝까지 발뺌 하려했던 호위 무사의 두 눈이 왕방울 만하게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