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95)
# 31장 천마검공을 완성하다(2) #
모두가 나간 관주 집무실은 그 주인인 좌호법 이화명만이 남아 있었다.
이화명은 책상에 걸터앉아 천여운이 반납한 은색 대주 패를 만지작거렸다.
‘제법 영글었군.’
삼 년 전과는 딴 판이었다.
분노에 타올라서 주체를 하지 못하던 모습은 사라졌다.
육 단계 시험이 열두 장로에게 도전할 수 있는 것을 알았는데도 스스로의 감정을 통제했다.
그 모습만 본다면 냉철한 교주와 꼭 빼닮았다.
‘도전하고 싶은 장로가 있는가?’
‘……조금 더 고민하고 말씀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신중해진 면모에 생각이 제법 깊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화 부인 때문에 당연히 망설이지 않고 독마종의 종주인 백오를 선택할 줄 알았다.
‘단순히 복수심만으로 도전하기에는 위험한 자이지.’
괴독마장(怪毒魔杖) 백오.
순수한 무공의 경지를 떠나서 살상 능력으로만 친다면 여섯 종파의 장로들 중에서도 수위 급에 꼽힐 만큼 위험한 자였다.
이 년 동안 뇌옥에 투옥되어 있던 백오는 불과 석 달 전에 장로 직에 복직했다.
물론 원래의 육 장로에서 십이 장로로 직위가 격하되었다.
독마종의 힘이 많이 약화되었고 순순히 징계를 받아들였기에 그것을 감안하여 장로로 복직시킨 것이었다.
화경의 고수를 그저 방치해두기에는 전력상의 손실도 컸다.
‘속내는 가까이서 지켜보시려는 것이지.’
죄수들의 역혈마공 사태가 벌어지면서 검마종이 대가를 치르면서, 여섯 종파는 삼 년 동안 날개를 접고 몸을 움츠린 상태였다.
약화되었다고 해도 여전히 그들이 가진 힘은 마교의 삼 할에 가까웠고, 경험 많고 암수에 잔뼈가 굵은 그 늙은이들이 언제까지 몸을 낮출 리가 없었다.
마도관의 종착이라 할 수 있는 사 년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기에 갈고 있던 발톱을 드러낼 것이다.
‘그때가 되면 본교에 엄청난 피바람이 불겠지.’
이제 천여운이 다가올 위험에 대처하고 준비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한편 본관 건물에서 나온 천여운은 마도관의 비급 서재 건물로 향하고 있었다.
천여운 역시도 관주 집무실을 나온 후부터 많은 생각에 잠겼다.
육 단계 시험이 설마 열두 장로들에 대한 도전권일 줄은 몰랐던 그였다.
화경의 경지에 오른 고수는 무림에서도 수위 급에 속하는 고수였기에 교내에서 장로의 자리에 도전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
만약 그가 장로를 실력으로 꺾게 되면 장로의 직위를 얻을 수 있게 된다.
혜택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이번 오 단계 시험을 통과하면서 마도관의 비급 서재의 숨겨진 층이라 할 수 있는 지하층을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한다.
마도관의 입관식 때만 하더라도 비급 서재에 지하층이 있다고 밝히지 않았는데, 천여운에게 육 단계 시험을 치를 기회가 생기자 그 사실마저 알려주었다.
하지만 천여운의 머릿속에는 어떠한 혜택보다도 공식적으로 장로들과 겨룰 수 있게 된다는 것이 중요했다.
‘여섯 종파의 장로를 노릴 수 있다.’
마도관이 끝나는 순간부터 여섯 종파와의 싸움이 시작될 것이다.
그 전에 공식적인 비무를 통해서 여섯 종파의 우두머리를 제거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미 머릿속에서 생각해둔 자가 있었지만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
그 자가 두렵다기보다는 득과 실을 고려해서 가장 치명적인 수를 놓기 위해서였다.
그러는 사이에 마도관의 비급 서재 건물에 도착했다.
추운 겨울에도 여전히 건물 앞에 책상을 두고 근무하고 있는 방명록 담당 교두의 모습이 보였다.
두꺼운 털옷을 입어도 추위를 숨길 수 없는지 코끝이 빨갰다.
“오오!”
오랜 만에 나타난 천여운의 모습을 알아본 방명록 담당 교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삼 단계 시험 이후로 드문드문 오는 생도들 덕분에 몇 년 째 방명록을 담당하는 근무가 지루해진 참이었다.
긴 폐관 수련으로 삼 년이 넘게 보이지 않던 얼굴을 보게 되자 반가운 듯 했다.
“천 대주 오랜 만이오.”
“오랜만입니다. 교두님.”
“아! 이제 대주라고 부르면 안 되겠구려.”
방명록 담당 교두는 눈치가 없는 자가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천여운이 왔을 때 사 단계 시험을 통과했을 때라는 것을 기억했다.
그렇다면 지금 그가 비급 서재 건물을 찾아왔다는 것은 분명 오 단계 시험을 통과한 게 틀림없었다.
-탁!
방명록 담당 교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히 포권을 취했다.
“천 단주님을 뵙습니다.”
마교에서 중요한 것은 나이가 아니었다.
철저하게 실력과 직위로 그 위치가 결정되었다.
천여운에게 예를 표하는 방명록 담당 교두의 얼굴에는 어떠한 시기심이나 불만도 없었다.
“오 층으로 올라가시는 거겠지요?”
“그렇습니다.”
“이곳에 작성하시면 됩니다.”
담당 교두가 내미는 방명록 종이를 바라보니, 앞서 오 층 비급 서재를 방문했던 자들이 이름이 차례대로 적혀 있었다.
천무연, 천경운, 사마착, 고왕흘, 문규, 극신, 백기.
총 일곱 명이었다.
이 일곱 명이 현재 남아있는 생도들 중에서 완숙한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 자들이었다.
이 중에 세 명이 천여운의 수하들이라는 것은 정말 큰 수확이었다.
‘사마착?’
사마착이라는 이름에 천여운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두 명의 소교주 후보자들 다음으로 가장 빨리 오 단계 시험을 통과했다.
그러고 보니 삼 단계 시험 때도 일반 생도들 중에서 유일하게 두 개의 노란 명찰을 획득했던 걸로 기억났다.
‘상위 종파인가?’
자주 이름을 보게 되니 익숙해져갔다.
천여운이 방명록에 있는 백기의 밑줄에 자신의 이름을 기입했다.
방명록 담당 교두가 천여운에게 초 두 개를 넘겨주었다.
그런데 시간이 더 늘었을 거라는 예상과 다르게 줄이 그어진 위치가 사 층 비급 서재에 올라갔을 때와 차이가 없어보였다.
“열람 시간은 세 시진입니다.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예상대로 사 층과 동일한 시간제한이었다.
“알겠습니다.”
천여운의 대답에 방명록 담당 교두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말씀 편하게 하십시오. 단주님.”
“……알겠소.”
초에 이름을 기입하고 불을 붙인 한 개는 진열장에 넣고, 남은 하나를 들고 천여운은 원통을 받아서 비급 서재의 오 층으로 올라갔다.
계단을 올라서 오 층에 도착하자 가장 공간이 작은 서재가 보였다.
탑처럼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내부의 평수가 작아지는데, 오 층의 비급 서재는 비급서의 양이 적어서 아래층들과 달리 벽면 외에는 책장이 없었다.
‘스무 권?’
얼핏 보아도 그 정도뿐이었다.
그 중에서는 천여운도 익히 알고 있는 무공의 비급서가 눈에 띠었다.
[접무도법(蝶舞刀法)]스승인 우호법 섭맹이 호언장담한 대로 접무도법은 오층 비급 서재에 있었다.
한 권은 생략해도 될 듯 했다.
드디어 고대하던 순간이 찾아왔다.
‘천마검공의 마지막 초식.’
오 층 비급 서재의 한 가운데에 청옥석 비석이 우뚝 서있었다.
천여운이 상기된 얼굴로 청옥석 비석의 앞면으로 다가갔다.
비석의 앞면에는 아래층에 있던 비석들과 마찬가지로 초식의 운기요결을 숨겨놓은 시조가 새겨져 있었다.
‘나노, 스캔해.’
[알겠습니다.]비석의 앞면을 스캔한 천여운이 뒷면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비석의 뒷면을 바라본 천여운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낼 뻔했다.
‘이게 대체 뭐야?’
당연히 검흔이 있으리라 여겼던 비석의 뒷면에는 어떠한 흔적도 없었다.
난잡하게 그어 있어야 할 파훼초식의 검흔도 없었고, 천마검공의 검식으로 추정되는 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있는 것이라고 해봐야 가운데 아주 작은 구멍뿐이었다.
‘왜 아무 것도 없는 거지?’
차라리 비석이 훼손되어 있다면 납득할 만 했지만 아무런 검흔이 없다는 것은 이상했다.
천여운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비석의 뒷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천마조사께서 아무런 검초를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파훼초식도 없는 것인가.’
그것 외에는 추측할 만한 것이 없었다.
고민을 거듭하던 천여운이 인상을 찡그리며 나노에게 물었다.
‘나노, 네가 보기에는 여기에 무슨 검흔이 남아있어?’
[비석에 한 사람이 남긴 걸로 추정되는 검흔이 남아있습니다.]‘뭐? 검흔이 있다고?’
[사용자의 시각 정보에 증강현실(增强現實) 개안(開眼)합니다.]천여운의 동공이 빠르게 흔들리며 흰 빛의 입자가 선을 그리며 증강현실이 개안되었다.
나노의 말과 함께 비석의 뒷면 부분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확대를 한 부분은 비석의 정중앙에 나있는 아주 작은 구멍이었다.
‘앗!’
구멍이 머리 크기만큼 확대되는 순간 천여운의 두 눈이 커졌다.
그 부분이 확대될 때까지도 몰랐는데, 작은 구멍의 결 부분에는 미세한 흠들이 있었다.
단순한 흠이라기보다는 간격이 일정하게 벌려져 있었는데, 그 숫자가 정확하게 스물네 개였다.
‘설마 이 흠들…..천마검공의 검식?’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보았다면 평범한 흠이다.
하지만 그 위치들이 천마검공의 검식을 펼쳤을 때의 방위들이었다.
스물네 개의 검식이 향해졌을 때의 원에 가까운 방위들의 요혈을 찌를 수 있는데, 이 구멍처럼 하기 위해서는 한 지점을 향해 검식을 전부 모아야만 가능했다.
‘이렇게도 검식을 펼칠 수 있단 말인가? 잠깐 그렇다면….’
천여운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앞면으로 가보았다.
시조에 가려져서 몰랐는데 이 작은 구멍은 반대편까지 관통되어 뚫려 있었다.
‘나노 확대해봐.’
[알겠습니다.]나노가 시야의 초점을 크게 확대하자 스물네 개의 흠들이 구멍을 중심으로 퍼져나가듯이 희미한 검흔이 그려져 있었다.
공력을 거의 쓰지 않았기에 이 정도의 흔적에서 그친 것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천여운은 그제야 이 검초의 비밀을 알 수 있었다.
이 흔적은 순수한 검 초식에서 일어난 검력이 하나로 집중되었다가 폭발적으로 퍼져나가면서 이런 위력을 낸 것이었다.
만약 여기에 일정 이상의 공력이나 강기를 썼다면 청옥석은 산산조각이 났을 게 자명했다.
‘천마 조사께선 정녕 인간이 맞단 말인가?’
화경의 경지에 오르면서 검(劍)에 대한 시야가 넓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이건 어떠한 검의 고수도 생각하기 힘든 발상이었다.
모든 검식을 하나로 집중시켜 공방일체가 가능하면서 폭발적인 위력의 최강의 검초를 만들어낸 것이었다.
이 최강의 검초를 과연 누가 파훼할 수 있을까?
청옥석 비석에 파훼검초가 없었던 이유는 천마검공의 검초를 발견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이것을 평범한 검식만으로 깨뜨릴 방법을 찾지 못한 것이 틀림없었다.
‘검을 풀어낸 것이 아니라 하나로 일원화 했다. 검식에 담긴 검의(劍意)마저 하나로 모으게 된다면 당연히 이런 폭발적인 역량을 일으키는 게 당연하다.’
천마검공의 마지막 검초에 숨겨진 비밀.
그것을 깨닫는 순간 예측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몰아(沒我)의 상태가 찾아온 것이었다.
‘검의를 하나로 집중한다. 검에 담긴 의지를 하나로 모은다. 뜻이 하나로 모아진다.’
때론 깨달음이라는 것은 불시에 찾아오기도 한다.
천마 조사가 남긴 마지막 검초에는 그가 말년에 깨달은 검에 대한 오의(悟意)가 집대성되어 있었다.
그 오의를 조금이라도 얻게 된다면 그 깨달음은 한계에 둘러싸고 있는 육신의 껍질을 깨게 만든다.
-털썩!
천여운이 바닥에 주저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몰아의 상태로 들어간 그의 전신에서 오색찬란한 빛이 흘러나오며 웅대한 진기가 사방으로 뻗어나가며 바람이 일어났다.
-솨아아아아아!
벽면의 책장에 꽂혀있던 책들이 넘어지며 난리도 아니었다.
“헉! 이, 이게 무슨?”
오 층 비급 서재를 담당하는 초절정의 고수 감궁이 놀라서 천여운을 바라보았다.
전신에서 휘황찬란한 오색 빛이 뿜어져 나오는 현상은 분명 큰 깨달음을 얻으면서 높은 경지로 올라가기 위한 현상이었다.
-타타타탁!
“대체 무슨…”
“쉿!”
오층 비급 서재를 지키는 또 다른 초절정 고수 두 명이 청옥석 비석이 있는 쪽으로 달려오자 감궁이 그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일렀다.
지금 시끄럽게 굴어서 천여운을 방해하게 된다면 대공을 깨뜨리게 된다.
[호법 대형!]감궁의 전음성에 두 명의 고수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천여운을 돕기 위해 그의 주위로 삼각대형으로 서서 호법 대형을 갖췄다.
-솨아아아아!
그들은 천여운의 몸에서 더욱 강하게 발하는 오색 빛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기에 호법을 서면서도 눈을 떼지 못하고 경악했다.
‘오, 오기조원(五氣造元)!’
진정한 화경(化境)이라 할 수 있는 그 극(極)에 이른 자가 오르는 마지막 단계가 바로 오기조원이었다.
천여운은 화경의 경지에 오르면서 천지인의 기운을 아우르는 삼화취정(三化聚頂)을 이루면서 임동양맥을 타통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같은 화경은 반쪽짜리라고 할 수 있었다.
오기조원을 통해서 체내에 있는 오행의 기운마저 하나로 일원화시킬 때, 진정한 경(境)에 오른다.
반 시진의 시간이 지났을 무렵,
휘황찬란하게 빛나던 오색 빛이 천여운의 몸으로 완전히 스며들며, 새하얀 하나의 빛으로 일원화되더니 몸에서 들썩거렸다.
-뿌드드드득! 뿌드드득!
뼈와 근육이 재구성되면서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일 각 가량 동안 들썩이던 천여운의 몸에서 새로운 현상이 일어났다.
-쩌저저저저적!
‘앗!’
천여운의 얼굴 피부에 실금이 가자, 세 명의 고수들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리가 없었다.
‘환골탈태(換骨奪胎)!!!’
할 말을 잃은 세 사람이 입을 벙긋거렸다.
자신들의 눈앞에서 환골탈태를 보는 날이 올 거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한 번 갈라지기 시작한 실금은 이내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조금만 건드려도 그대로 깨져버릴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꿈틀! 쩌저적!
천여운의 몸이 움직이는 순간 그의 전신을 두르고 있던 균열이 간 껍질들이 일어나 사방으로 흩날리며 먼지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오 층 서재를 엉망으로 만든 진기의 바람이 수그러들었다.
천여운이 감고 있던 두 눈을 떴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 같은 엄청난 진기를 내뿜어대던 사람이라고 믿기 힘들 만큼 전신의 기운이 잘 갈무리 되었다.
지금이라면 좌호법 이화명이라고 해도 천여운의 기운을 절대로 감지할 수 없을 것이다.
천여운은 자신에게 벌어진 일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아아! 화경……화경의 극에 이르렀다!’
천마 조사의 마지막 심득인 천마검공의 제 오 초식을 깨닫게 되며, 그는 진정한 화경(化境)을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