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machines in Moorim RAW novel - Chapter 82
82. 이한, 관구양을 만나다.
처음에 관구양은 자신을 사로잡은 자들이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인생살이가 꽤나 험난했을 것 같이 생긴 3명의 남자들과 길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때는 어서 막북을 떠나려는 마음뿐, 주변을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
하지만 길에서 마주친 3명의 남자들은 자신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억센 손질로 붙잡아서 밧줄로 꽁꽁 묶은 후 입에 재갈을 물리고 수레에 실어 버렸다.
그들은 이미 자신의 얼굴을 알고 있는 모양이었지만, 자신은 그들을 본 적이 없었다.
상인답게 사람들을 알아보는 눈썰미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다.
과거에 보았다면 분명히 기억에 남을 만한 얼굴을 한 자들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들이 누구인지 알게 된 것은 영고 외곽에 있는 폐가의 한구석에 던져지고 난 후였다.
“분타주께서 오셨습니까?”
“그래. 관구양이라는 놈은 어떤가? 어디 크게 다친 곳은 없겠지?”
“거칠게 다루지 않았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멍이 든 곳은 있을 수 있겠지만, 상처는 입지 않았으니 그자들도 뭐라고 하지 못할 겁니다”
“그래. 그 정도라면 별문제는 없겠군. 조만간 그들이 와서 데려간다고 하니, 잘 묶어두고 물이나 몇 모금 먹이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관구양은 분타주라고 불린 사람이 누구인지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개방의 영고 분타주인 두지천이었다.
그제서야 자신을 잡아 온 자들의 정체도 알 수 있었다.
거지들임이 분명했다.
생각해 보니 그는 거지의 얼굴을 제대로 살펴본 적이 없었다.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거지, 음식을 얻어먹으려고 고개를 조아리는 거지, 양지에 앉아서 햇볕을 쬐는 거지, 다리 밑에 모여서 떠돌이 개를 도축하는 거지.
주변에 보이는 거지는 여럿이었지만, 마치 길거리의 나무처럼 풍경의 한 부분으로 무심히 보고 지나쳤을 뿐, 그들을 따로 기억하려고 한 적이 없었다.
그러니 저들은 자신을 알아봐도 자신은 저들을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깨달았다고 해서 관구양의 처지가 변하는 것은 아니었다.
관구양은 영고 분타주인 두지천의 명령대로 조만간 의뢰주가 찾아올 때까지 폐가에 억류되었다.
그런데 조만간은 사람마다 다른 의미로 쓰이는 것이 분명했다.
관구양은 조만간이라는 단어가 하루 이틀 정도를 의미한다고 알고 있었다.
그러나 거지들에게는 조만간의 의미가 다른 모양이었다.
벌써 4일이 지났음에도 그는 폐가의 한구석에 묶인 채 굶고 있었다.
하루에 몇 모금 마시는 물이 그가 입에 넣은 전부였다.
하루가 다르게 뼈와 가죽이 맞닿아 가고 있었다.
꽁꽁 묶어놓았다던 밧줄이 헐겁게 느껴질 정도였다.
관구양은 조만간 어디론가 끌려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어쩌면 조만간 밧줄을 풀고 탈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사이에서 말라가고 있었다.
그가 변화를 눈치챈 것은 1주일째 되는 날이었다.
관구양은 기력이 쇠한 채 바닥에 누워서 축 처져 있었다.
굶은 것이나 목이 마른 것은 행상을 하면서 충분히 겪어 보았기에 참을 만했지만, 이렇게 꼼짝도 못 하면서 묶인 채 시간을 보내는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하루하루 몸이 죽어가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도 어떻게 해서든지 밧줄을 풀고 밖으로 탈출하려는 생각으로 손에서 밧줄을 빼려고 노력하고 있을 때, 갑자기 무엇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관구양은 곧장 몸을 굴려서 억지로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허겁지겁 주변을 둘러보았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두 명의 사람이 멀지 않은 곳에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하나는 날카로운 분위기가 흐르는 문사풍의 젊은 남자였고, 다른 하나는 낭인 복색을 한 40대 초반의 남자였다.
그들 중 낭인 복색을 한 사람은 관구양도 얼굴을 아는 사람이었다.
복세기라는 이름으로 가진 낭인으로 가끔 돈이 될 만한 건수가 있다면 영고로도 와서 활동을 한다는 말이 특이해서 기억에 있던 자였다.
언젠가 한 번 같이 상행도 해 본 적이 있었다.
실력은 제법 뛰어났고, 생활력은 더 뛰어난 사람이었다.
관구양은 간절한 눈빛으로 복세기에게 고개를 숙여대며 자신을 구해달라는 호소를 보냈다.
꽁꽁 묶인 몸으로 꿈틀대는 것은 간절한 마음을 표현하기 위한 발악이었다.
“저자가 관구양이라는 상인이 맞나?”
“그렇습니다. 대인. 전에 같이 상행을 해 본 적이 있어서 확실하게 기억합니다. 기억보다 많이 마르기는 했지만, 저 눈매며, 머리 모양까지 변할 수는 없지요.”
“혈교의 의뢰까지 받다니 영고의 개방 분타주는 정말 미친 놈이었군. 자신이 몸을 담고 있는 곳이 어디인지 신경도 쓰지 않았던 모양이야.”
“한발 두발 선을 넘다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돌아올 수 없게 되는 법이지요. 개방의 총타로 이곳 영고 분타의 상황에 대해 전갈을 했으니 곧 법개가 올 겁니다.”
“단단히 뜯어내게. 개방은 부자니까 웬만해서는 티도 안 날 거야.”
“대인께 감사드릴 뿐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활동비가 간당간당했습니다.”
“그런데 그거 자네들만 쓸 건가?”
“말씀만 하십시오. 어디든지 보내드리겠습니다.”
육선문의 복세기는 경사에서 온 어사대의 고관인 이한에게 넉살좋게 달라붙었다.
제국의 변방에서 구르던 입장에서는 안면을 트게 된 경사의 고관이 어디 소속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경사로 끌어올려 줄 수 있느냐가 중요했다.
게다가 어사대라니!
그거 주로 경사에서 활동하는 관청 아니던가.
어떻게 생각해도 육선문보다는 나았다.
그러나 두 사람의 화기애애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관구양은 끼어들지 못했다.
상인의 경험상 이런 때에 끼어들어서 친분을 다지면 좋았겠지만, 그럴 만한 정신이 아니었다.
관구양은 눈치껏 얻어들은 말만으로도 머리가 돌아버릴 것 같았다.
혈교라고!
그 미친 놈들이 왜 나를?
누군가가 청옥의 출처를 캐기위해 자신을 목표로 삼은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것이 혈교였던가?
관구양은 저절로 몸이 떨리고 있었다.
막북 지역에서 혈교는 어둠을 지배하는 사교 집단이었다.
그들과 엮이면 좋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
혈교가 자신을 납치하도록 의뢰한 배후라는 것을 안 충격이 지나가자 이번에는 다른 의미에서의 충격이 뒤늦게 관구양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혈교는 물론이고 개방조차 아무렇지 않게 언급하는 저자들은 누구일까?
심지어 그들 중 한 명은 자신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물론 이제는 그가 단순한 낭인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지만 말이다 .
관구양은 돌아가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자신의 목숨은 앞에 있는 자들에게 달려 있었다.
관구양은 다시 한번 고개를 조아리고 몸을 꿈틀댔다.
자신의 간절한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다.
재갈에 묶은 입으로 열심히 끙끙거리며 무엇인가 말하고 싶은 내용이 있다는 것을 알리려고 했다.
그런 그의 마음을 알아주듯 문사품의 젊은이가 그를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순간 관구양을 묶고 있던 밧줄이 끊어졌다.
연이어 뺨에 무엇인가 스치고 지나가는 것처럼 섬뜩해지더니 재갈 역시 끊어져서 떨어졌다.
무림인이다!
그것도 지법으로 밧줄을 끊을 정도로 고강한 무공을 가진 내가 고수다!
자신을 구속하고 있던 밧줄에서 풀려나온 관구양은 아직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몸으로 비틀거리면서도 바닥에 부복했다.
이마와 손과 무릎을 땅에 대고 엎드렸다.
이미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살기 위해서라면 어떤 줄이든지 잡아야 했다.
“감사, 컥컥, 드립니다. 대인. 제게 원하시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지 말씀해 주십시오.”
목이 말라서 잠깐 컥컥거리기는 했지만,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었다.
몸이 너무 힘들고, 목숨까지 위협받는 상황이라서 시야가 좁아지기는 했지만, 관구양이 원래 눈치가 없는 사람이 아니다.
눈치가 없는 사람이 상인으로 몸을 일으킬 수 있을 리가.
자신의 이름을 딱 집어서 언급한 순간 이들이 자신에게 원하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 무엇인가를 무조건 주겠다고 몸을 낮춰야 했다.
그래야 원하는 것을 얻어낸 후 죽여서 입을 막는답시고 손을 쓸 가능성이 낮아진다.
살아 남을 수만 있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으니 어떻게든 저들의 비위를 맞춰야 했다.
과연 관구양의 노력과 눈치가 효력을 발휘했는지 젊은 문사풍의 남자가 관구양에게 질문을 해왔다.
“영고 근처의 사막으로 식량과 생필품을 공급하던 상인이 있다고 들었다. 몇 명에게 물어보니 자네를 지목하더군.”
“제가 식량과 생필품을 사막 지대로 공급하던 상인들 중 하나인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하필 저를 찾으신 이유가 있으실 텐데.”
“자네의 고객 중에 청옥을 대금으로 지불한 자가 있지 않았나?”
관구양은 속으로 청옥을 향해 저주를 퍼부었다.
처음에는 대박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재앙도 이런 재앙이 없었다.
지금까지 이룬 가산은 물론이고, 가족까지 모조리 잃은 이유가 청옥 때문인 모양이었다.
관구양은 이마를 땅에 박은 채 울음이 섞인 대답을 했다.
“맞습니다. 대인. 청옥을 대금으로 지급한 자가 있었습니다.”
*
이한이 막북에 들어선 것은 이미 보름 전이었다.
사천에서 막북까지 불과 한달 만에 도착했을 정도로 강행군을 한 끝에 도착한 것이다.
이한이 영고로 가지 전에 먼저 간 곳은 영고와 관도로 연결된 도시인 주천이었다.
주천은 영고와 바로 지척에 있는 도시로 영고에 비해 규모는 절반밖에 되지 않지만 농사가 가능한 땅이라서 제법 흥성한 도시였다.
이한은 주천에서 주변의 지리와 정보에 밝은 낭인을 비싼 값으로 고용해서 그가 영고와 관련해서 알고 있는 모든 것을 털었다.
이한은 물론이고 나노까지 그에게 질문하고 그의 생각을 읽었다.
그 후에 간 곳이 막북에 있는 육선문의 지부였다.
얼마 안 되는 육선문 소속의 무림인이 소속되어 있지만, 그나마도 대부분 밖에서 활동 중이라서 연락이 닿은 자는 몇 명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 중 영고에 대해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진 자가 복세기였다.
그에게 이한은 자신이 어사대의 어사판관임을 밝힌 후 자신과 동행할 것을 요구했다.
현지 안내인으로 삼은 것이다.
그렇게 하고 난 후에서야 이한은 막호의 소개장을 들고 영고의 개방 분타를 찾아갔다.
물론 막호의 소개장이 무슨 큰 역할을 해줄 것이라고 믿은 것은 아니었다. .
그리고 막호의 말을 그대로 믿은 것도 아니었다.
사회적 약속이라는 것이 이익 앞에서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 잘 알고 있는 이한의 입장에서는 영고의 분타주인 두지천이라는 삼결개의 신뢰도는 그다지 믿을 만한 것이 못되었다.
게다가 이리저리 정보를 수집해 보니 두지천이라는 자는 여러모로 뒤가 구린 자였다.
그의 옆에 있는 복세기부터 고개를 저을 정도였다.
그저 개방 소속이니 정보면에서 들을 만한 것이 있으리라는 기대뿐이었다.
그러나 두지천을 직접 만나본 순간 이한은 자신이 대박을 잡았음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