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cromancer before awakening RAW novel - Chapter 18
18화. 스킬과 성장(1)
꾸와아아아!
입을 쩍 벌리고 자신을 향해 울부짖는 보스 몬스터를 응시하며 이유림이 정신을 집중하였다.
그녀가 응시하는 곳 위로 보스 몬스터의 이름인 ‘흡혈귀가 된 에이프’라는 글자가 떠올랐다.
흡혈귀가 되었다는 설명처럼 녀석의 눈은 피처럼 붉고, 몸은 혈관이 두드러지게 올라온 혐오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이 인정한 대장에게 가치를 증명할 기회였기 때문에, 혐오를 누르며 보스 몬스터를 공격하기 위해 더욱 가까이 접근하였다.
꾸워억!
족히 2m는 되어 보이는 긴 팔이 그녀를 향해 휘둘러졌다.
신속하게 고개를 숙여 팔을 피한 이유림이 땅을 박차고 앞으로 쏘아지듯 달려 나갔다.
팔이 긴 만큼 공격 거리도 길지만, 반대로 그만큼 수습까지의 시간도 길었기에 녀석은 그녀의 접근을 막을 수 없었다.
“흐읍!”
배에 힘을 준 그녀가 두 자루의 단검으로 가슴을 난도질하였다.
단도가 휘둘러질 때마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났다.
키아아앙!
한순간 그 소리가 몇 번이나 중첩되자, 마치 동그란 톱이 철근을 자르는 소리와 비슷하였다.
푸-에엑!
순간적으로 몇십 번의 공격이 한 곳에 중첩되자, 상처의 보습은 베였다기보다는, 갈린 듯한 모습이었다.
그 상처에서 피가 왈칵 쏟아져 내렸다.
꾸에아아-!
흡혈귀가 된 에이프가 입에서 피를 흘리며 분노의 괴음을 내질렀다.
그 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멀찍이 떨어져서 상황을 지켜보던 강사후도 영향을 받았다.
스킬, ‘마비의 함성’이 몸을 마비시킵니다.
마비에 대한 면역으로 인해 무효화됩니다.
강사후는 순간 몸이 조금 움찔했을 뿐.
바로 마비에 대한 면역력으로 인해 스킬 효과를 무효화하였다는 메시지가 뜨고, 아무렇지 않게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애당초 네크로맨서로서 강령술과 사령술뿐만 아니라 독에 대한 지식과 면역도 많이 키워둔 그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와 같은 마비의 면역력이 없는 이유림은 마치 목각인형이 된 것처럼, 몸을 삐그덕거렸다.
“으, 으읏!”
이유림이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 할 때.
잔뜩 화가 난 보스 몬스터의 주먹이 그녀의 배를 강타하였다.
꾸웅!
“아악!”
주먹을 내지르기 전에 피하려고 했던 그녀였으나, 생각보다 긴 팔의 거리로 완벽히 피하지 못하고 주먹에 맞아 뒤로 굴렀다.
“크윽, 흡! 전 괜찮습니다!”
그녀가 공격을 허용한 것을 본 강사후가 자신을 향해 걸어오자 이유림이 황급하게 외쳤다.
“그다지 아프지 않습니다! 더 싸울 수 있어요! 계속하게 해주세요!”
간절한 외침에 강사후가 걸음을 멈춘 것을 본 그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보스 몬스터 역시 아까 가슴에 공격을 받은 것이 컸던지, 그녀가 숨을 고르며 일어날 때까지 공격을 잇지 못하고 가슴을 움켜쥐고 있었다.
“후우-”
보스 몬스터를 보는 그녀의 눈이 차분해졌다.
하는 행동을 보니, 보스 몬스터가 자신보다 큰 타격을 입은 것이 분명해 보였다.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녀는 복부를 주먹으로 맞았으나, 죽을 만큼 아프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분명 아프긴 하나, 충분히 감당하고, 무시할 수 있을 정도의 통증.
만약 일반인이었다면 갈비뼈가 부러지고 파열되어 일어나지 못하였겠지만, 그녀는 각성한 헌터.
그것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등급이라는 A급 헌터인 만큼, 기본적인 신체 능력도 월등히 뛰어난 덕분이었다.
그녀가 단검을 쥐고 진중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마치 복싱선수가 스텝을 밟듯 통통거리며 가볍게 뛰는 모습이었지만, 한 번 스텝을 밟을 때마다 그녀의 몸이 순간이동 한 것처럼 순식간에 옮겨졌다.
꾸에? 꾸웨에에?!
심상찮은 분위기를 느낀 보스 몬스터가 위협하듯 양팔을 채찍처럼 휘둘렀다.
한번 휘둘러질 때마다 몽둥이가 휘둘러지는 것처럼 바람 소리가 무겁게 울렸다.
하지만 계속해서 통통, 스텝을 밟으며 접근하던 그녀는 두려워하지도, 섣불리 다가가지도 않은 채 사냥감을 바라보는 야수처럼 눈을 번뜩일 뿐이었다.
대치 상황이 이뤄지고, 잠시 후.
쉬지 않고 팔을 휘두르던 보스 몬스터가 아주 짧은 시간, 지쳐서 팔을 한 박자 늦게 휘둘렀다.
하지만 그 짧은 공격의 딜레이는 그녀가 파고들 틈을 만들었고, 공격로가 열린 것을 파악한 그녀가 다시 바람처럼 몸을 움직였다.
꾸께겍?!
놀란 보스 몬스터가 뒤로 펄쩍 뛰며 거리를 벌리려 하자, 이유림이 이를 악물고 달리는 발에 힘을 더하였다.
마침내 다시 훤히 열린 보스 몬스터의 가슴에 다다른 그녀가 가슴에 단도를 찔러 넣었다.
꾸께-!
갈비뼈를 뚫고 들어온 칼날에 보스 몬스터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 모습을 멀찍이서 보고 있던 강사후는 녀석이 단지 괴로워하는 것이 아닌, 그 속에서 무언가 희미한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의 느낌대로, 보스 몬스터는 자신의 가슴께에 있는 이유림을 긴 팔다리를 이용해 휘감기 시작하였다.
“이 녀석…!”
설마 자신의 목숨을 걸고 함정을 팠을 줄이야.
이유림이 놀라며 가슴에 박아 넣은 단검을 더 깊게 찌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각성했다고는 하지만 인간의 근력보다 월등히 강한 영장류의 팔과 다리가 힘껏 그녀를 압박하고 있고, 단도의 길이가 짧아 심장까지 닿지는 못하였다.
그녀가 당황하며 강사후를 보자, 그는 이미 그녀가 패배한 것이라 생각한 것처럼 빠르게 입을 움직이며 마법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안 돼…!’
이번에는 제대로 자신의 힘을 보여줄 기회였는데.
기껏 자신이 믿을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을 만났는데.
이렇게 어이없게 패배하고, 다시 그의 힘을 빌려 도움을 받는다니.
‘싫어…!’
지기 싫다는 생각과 강사후에게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그녀의 눈이 번뜩였다.
압박되어 움직이지 못하던 근육이 조여들고,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아아아-!”
꾸왁?!
자신의 팔다리에 묶여 아무것도 못 하고 있어야 할 이유림이 돌연 엄청난 힘을 내자 흡혈귀가 된 에이프가 크게 당황하였다.
품 안에 파고든 상황이니만큼, 손으로 잡아떼는 것조차 여의치 않은데 그녀의 힘은 점점 세져만 갔다.
“으아아아-!”
꾸, 꾸워어어!
단검의 뾰족한 촉감이 내장 깊숙이 파고들자, 본능적으로 죽음을 감지한 보스 몬스터가 최후의 결단을 내렸다.
보스 몬스터의 동공이 피처럼 붉어지고, 가슴에서 흘리던 피가 뭉글거리며 칼날을 밀어내려 애썼다.
꾸와아아-!
“이야아아아-!”
단검을 밀어 넣으려는 이유림과, 피를 움직이는 힘으로 밀어내려는 보스 몬스터 사이의 힘겨루기가 이뤄졌다.
그 힘이 어찌나 팽팽한지 단검은 한 치의 움직임도 없이 멈춰선 채 진동하듯 웅웅거리는 비명을 질렀다.
“……!”
준비를 마치고 마법을 사용하려던 강사후가 멈춰 서서 이유림을 놀란 눈동자로 바라보았다.
죽느냐, 죽이느냐의 절체절명의 갈림길.
그 기로에 선 이유림의 령이 물결치듯 울렁이며 커지고, 작아지기를 반복하는 것이 보였다.
강사후가 놀라는 사이에도 팽팽한 힘겨루기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그녀를 감싼 팔다리에 힘을 주면, 도리어 단검을 쑤셔 박는 그녀를 돕는 것이기에 어느새 팔다리에 힘을 푼 에이프는 스킬을 사용하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리고 힘의 줄다리기가 정점에 달한 순간.
쨍-!
맑은 소리와 함께 두 단검의 날이 부러지며 이유림의 몸이 튕겨져 나갔다.
꾸악, 꾸악, 꾸악!
자신이 이겼다.
단검이 부러져 그녀가 공격수단을 잃자 승리를 장담한 보스 몬스터가 기쁘게 울었다.
하지만 튕겨져 나갔던 이유림은 어째서인지 날이 부러져 손잡이만 남은 단검을 쥔 채로 다시 보스 몬스터에게 달려들었다.
꾸웍!
그 모습을 가소롭다는 듯이 비웃으며, 어디 해보라는 듯이 보스 몬스터가 양팔을 벌렸다.
그녀가 자신에게 접근한 순간, 팔다리를 찢어서 통째로 먹을 것을 떠올리며, 녀석이 긴 혀로 낼름, 인중을 핥았다.
손잡이만 남은 단도를 든 이유림이 팔을 휘두르는 순간.
분명 날이 부러져 손잡이만 남아있었을 단도로, 보스 몬스터가 흘린 피가 모여들었다.
스킬-‘혈인(血刃)’을 습득하였습니다.
스킬-혈인(血刃)이 발동합니다.
이미 칼날이 부러진 것도 깨닫지 못할 만큼 무아지경에 빠진 그녀가 단검을 휘둘렀다.
그녀의 부러진 날로 모여드는 피가 칼날이 되었다.
피로 이루어진 붉고 단단한 칼날은 원래의 단도보다 길었고, 또한 날카로웠다.
푹
칼날이 보스 몬스터의 몸 안에 박혔다.
거칠고 두꺼운 털과 가죽, 그리고 근육과 뼈까지 말도 안 되게 부드럽게 관통한 피의 칼날은, 심장을 꿰뚫고도 모자라, 등 뒤로 삐져나와 버렸다.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에 굳은 듯이 입을 쩍 벌리고 있던 흡혈귀가 된 에이프의 몸이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쿠웅-!
육중한 소리와 함께 무너진 흡혈귀가 된 에이프.
그 모습을 바라본 이유림이 가쁜 숨을 고르며 허리를 숙이고 무릎에 손을 올렸다.
“허억- 허억- 내, 내가 방금 뭘 한 거지…?”
그녀가 떨리는 눈으로 죽은 사체를 내려다보다, 어깨에 올려지는 손에 흠칫 놀라며 단검을 고쳐 잡았다.
그러나 그 손의 주인이 강사후라는 것을 깨닫자, 흥분으로 돌아가지 않던 머리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대, 대장님.”
“고생하셨어요. 많이 긴장하셨나 보군요. 아무리 불러도 못 들으시는 것 같기에 부득이하게 손을 올렸습니다.”
“부, 부르셨군요. 죄송해요. 잠시 딴 생각, 아니, 싸움에 집중을 하느라….”
횡설수설하는 그녀를 말없이 바라보던 강사후가 입을 움직여 빠르게 마법을 시전하였다.
그러자 토할 듯이 울렁이는 속과, 끓어오를 듯이 날뛰던 생각들이 놀랍도록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대, 대장님. 이건…?”
“가서 좀 쉬고 있도록 해요.”
“…네, 그럼 조금만 쉬겠습니다.”
그 차분한 지시에 그녀가 비척거리며 쉴 곳을 찾아 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쓰러지듯 큰 벽돌 위에 몸을 누이는 것이 보였으나, 강사후는 그녀의 상태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라면 알 수 없겠지만, 네크로맨서인 그의 눈에는 그녀의 날뛰던 령이 지금은 잠잠하게 가라앉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그 령의 변화였다.
‘령이… 커지고, 단단해졌다.’
령이란 그 존재의 힘과 가능성, 그리고 존재감과 성격 모두를 보여주는 거울과 같았다.
때문에 강사후는 지금의 그녀는 게이트의 들어오기 전보다 더 강해지고, 침착해졌으며, 존재감 역시 커졌다는 것을 느꼈다.
‘분명 무언가 변화가 있었어.’
단검의 날이 부러지고, 더 이상 공격을 할 수단이 없다고 판단된 순간.
분명 이전의 침착하였던 그녀라면 다른 방법을 찾거나, 자신에게 도움을 청했을 터였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녀는 단검이 부러졌음에도 이성을 잃은 것처럼 보스에게 달려들었고.
결국 스킬로 보이는 힘으로 녀석을 쓰러뜨렸다.
‘분명 이유림 씨는 이곳에 들어오기 전 그 스킬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굳이 죽을 위기를 맞아가면서 시간을 끌 이유가 전혀 없었다.
‘단순히 각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각성 이후에 성장을 이루는 것도 중요하다.’
령의 괄목적인 성장과 스킬의 습득.
전투를 하느라 집중하는 것이 아닌, 한 걸음 뒤에서 살펴봄으로써 보다 자세한 변화를 관찰한 강사후는 ‘각성자’라는 존재에 대하여 보다 깊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연관성에 대해 추론하던 그의 감각으로 잊고 있던 령들이 느껴졌다.
느껴지는 감각을 확인 그가 덤덤한 눈으로 자신에게 모여드는 령들을 바라보았다.
“완성되었군.”
이유림과 보스 몬스터, 흡혈귀가 된 에이프가 싸우던 40분 남짓한 사이.
강사후의 사령술에 굴복한 시체 먹는 에이프들의 령이 스스로 영혼기가 되어 그에게 몰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