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cromancer Infinite Skill Player RAW novel - Chapter 129
129화
“…쓰레기 같은 새끼들.”
벨톤은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수십 명의 사령술사들과.
그들이 앞세운 수백여 기의 해골 소환체들을 보며.
얼음처럼 차가운 냉소를 머금었다.
“말씀이 과하십니다! 저희는 그저 발데아 가문이 더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흥. 그래서 가문을 통째로 신성 제국에 팔아먹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명령을 듣던 수하 사령술사들인데.
하루아침 사이에 자신을 향해 칼을 들이미는 꼴이라니.
“관리관님께서 이런 난동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면 노하실 겁니다! 지금이라도 진정하시고 노기를 거두신다면 없던 일로 해 드릴….”
“진심으로 하는 얘긴가?”
달각.
일말의 표정 변화도 없이.
흘러내린 안경을 고쳐 쓰는 벨톤.
그의 보라색 눈동자가 주변을 훑기만 했을 뿐인데도.
사령술사들은 움찔 몸을 떨었다.
‘미친…. 벨톤 이 새끼… 제대로 화 난 것 같은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가문의 5대 사령술사 중 하나인 벨톤이다.
그가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는지는.
같은 사령술사인 자신들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7성급 사령술사.
그 말이 지니는 의미와 무게는 자못 모호할 수도 있었지만.
친절하게도 벨톤은 그들에게 직접 알려 줄 생각이었다.
“길을 열어라.”
짤따란 말과 함께 번져 나가는 검은 마나.
“큭!”
그 순간 짜기라도 한 듯.
그를 둘러싸던 사령술사들이 자신의 심장을 부여잡더니.
이내 바들바들 몸을 떨며 무릎을 꿇었다.
“이, 이게… 7성급 사령술사….”
동시에 허무하리만치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수백 마리 소환체들의 모습에.
벨톤은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이게 가문을 위해 모든 걸 바친 대가라니….”
웃음인지 울음인지 모를.
씁쓸한 표정과 함께.
살짝 손을 들어 올리는 벨톤.
까드득.
이내 그의 팔이 뼈로 만들어진 낫으로 변하는가 싶더니.
서걱.
그대로 무릎 꿇은 가문의 사령술사들을 향해 휘둘러졌다.
“자, 잠깐만….”
“고로 카라얀이 내 모든 것을 가져갔으니… 이쪽에서도 답을 해 줘야겠지.”
끈적한 액체와 함께 바닥을 구르는 고깃덩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잔혹한 광경에 사령술사들은 황급히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불가능했다.
“모, 몸이 어째서…!”
“가만히 있는 편이 좋을 것이다. 아무래도 그게 고통이 덜할 테니.”
이미 벨톤이 뿜어낸 마나에 자신의 마나를 잠식당한 지 오래.
도망치기는커녕 팔다리를 제대로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저 목을 길게 쭉 뺀 채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것 정도가.
벨톤에게 맞선 이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끄아아악!”
“커헙!”
일말의 자비도 없이 낫을 휘두르던 벨톤 발데아.
투둑. 툭.
그의 낫은 사령술사들을 모조리 베어 버린 후에야.
서서히 본래의 팔로 되돌아왔고.
그제야 그는 한 모금 숨을 내뱉을 수 있었다.
“하아….”
자신의 팔 끝에서 떨어져 내리는 역한 물방울을 보며.
복잡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한참을 서 있던 벨톤.
“벨톤.”
그는 뒤편에서 자신을 불러 세우는 익숙한 목소리에.
그제야 살짝 미소를 띠었다.
“가주님.”
“채비는 끝났느냐?”
“진작에 끝내고 가주님이 오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랬더냐.”
발데아의 가주 보르도 발데아.
그는 마치 도망자처럼 시커먼 로브 하나를 뒤집어쓴 채.
벨톤이 벌여 놓은 난장판을 바라보았다.
“썩 보기 좋은 장면은 아니군.”
“저놈들에게야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마는. 가만히 살려두었다가는 고로 카라얀의 수족이 될 놈들입니다.”
“그건 그렇지.”
“게다가 제국 사람들을 불러들이고 친 제국 성향의 사람들도 하나씩 가문 내로 들여오는 꼴을 보면…. 조금만 더 늦었어도 시체가 되는 건 저희였을 겁니다.”
“….”
부정할 수 없었다.
단순히 가문이 넘어가는 것을 넘어서서.
반 제국 파의 선봉이자.
신성 제국에 눈엣가시 같은 가주와 벨톤을 살려두려 할 리가 없지 않은가.
“행선지는 둘째치고. 발데아 영지를 벗어나는 게 우선입니다.”
“그 후는-”
“그 이후는 몸 둘 곳을 찾은 후에 고민해도 늦지 않습니다.”
“그래서. 먼저 향할 곳은 정해 두었느냐?”
보르도의 물음에.
벨톤은 조금 망설이는 듯하다가.
천천히 입을 뗐다.
“패배하는 땅. 거기라면 제국 놈들도 저희를 쉬이 찾지 못할 겁니다.”
“으음….”
“거기다 칼리드를 그곳에 보내 놓았으니. 운이 좋다면 녀석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지요.”
“칼리드….”
잊고 있었다.
자진해서 갔다고는 해도.
패배하는 땅은 잔인한 몬스터와 악랄한 정령들이 들끓는 곳 아닌가.
지금까지 살아남아 있기만 해도….
“아직까지 살아 있을지도 확신할 수는 없지만 말입니다.”
벨톤의 사족에 잠깐의 침묵을 지키던 보르도.
그는 곧 결심이 섰는지 단호하게 말했다.
“가자. 리톤으로. 네 말대로 우선은 살아남자. 그 이후의 일은 하늘에 맡기도록 하고.”
“…알겠습니다.”
“그리고… 칼리드 그 녀석도… 살아만 있어 준다면… 좋겠는데.”
흐릿한 말을 남기고선.
어두운 밤을 틈타 영지를 빠져나가는 벨톤.
그리고 그의 뒤를 따라.
발데아 가문의 가주 보르도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며 가문을 벗어났다.
***
“이 부근이었던 것 같은데.”
“어디로 가시는 거예요오?”
“리치를 찾으러.”
“리… 치요오?”
뭐, 정확하게는 리치를 찾는다기보다.
리치 소굴 근처에 똬리를 틀었다는 신성 제국 놈들을 찾는 것이 목적이지만.
어찌 됐건 방향은 비슷하니까.
리치를 찾아 나선 칼리드와.
무작정 그를 따라나선 리안.
두 사람은 한참을 어둠 속에서 헤맨 끝에 낡아빠진 사원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쯤이었던 것 같은데.”
리톤의 가장 중심부에 위치한 대형 신전, 베린 신전.
과거에는 악마들의 왕을 섬기는 신전이었다고는 하는데.
“와아…. 이 정도면 당장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겠는데요오?”
반쯤 기울어진 대리석 기둥과 흔들거리는 현판은.
그 이야기마저 반신반의하게 만들 만큼 조악하기 짝이 없었다.
“이 신전 안으로 들어가면 리치가 있을 텐데 말이지.”
가장 좋은 방법은 리치를 피해 가면서.
제국 놈들의 아지트를 발견해 내는 것이겠지만.
‘정확한 위치를 모르니 원.’
결국 지금의 칼리드로선.
리치에게 최대한 가까이 접근해 가면서.
주변을 뒤져 찾아내는 수밖에 없었다.
“네 생각은 어때?”
“네? 저, 저요오?”
“아니, 너 말고.”
칼리드가 부른 건.
자신의 몸 안에서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알카단이었다.
-리치라. 그 이름을 듣는 것도 오랜만이군.
“안에서 뭔가 느껴지는 게 있어?”
-리치를 찾는 거라면 너도 감지해내고 있잖아.
당연한 말이지.
리치의 마나야 굳이 감지하려 애쓰지 않아도.
저 신전 안에서 파도처럼 넘실대는 것이.
눈을 감고 귀를 막아도 느껴질 정도인데.
“내가 말하는 건 리치가 아니잖아.”
-그 빌어먹을 사제인지 뭔지 하는 인간을 찾고 있는 건가?
“그래. 너라면 나보다 훨씬 더 잘 찾아낼 수 있잖아.”
이렇게 붙잡아 놓았다고는 해도.
알카단은 명색이 최상급의 악령이다.
마나를 다루는 능력이나 감응력은 인간과 비견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타인의 마나를 감지해내는 능력과 감각 역시.
보통 사람의 그것을 월등히 상회했기에.
기감에 예민한 칼리드라도 알카단의 힘을 빌리는 편이 훨씬 정확하고 빠를 터였다.
-으음. 네놈도 알겠지만, 이 안의 마나는 다른 곳에 비해 훨씬 혼탁하고 복잡하게 얽혀 있다.
“리치 때문이겠지.”
-아니. 오히려 놈의 마나는 검은 마나 중에서도 정순한 편이다. 문제는 그 너머의 무언가다.
그 너머의 무언가?
“뭘 말하는 거지?”
-몰라. 그게 네가 말하던 거지 같은 사제 놈들인 건지. 아니면 나조차도 가늠하기 힘든 무언가인지.
알카단조차도 모른다라.
녀석의 말에 무언가 말을 꺼내려던 칼리드.
그는 다시금 말을 꺼내는 알카단 때문에 입을 다물었다.
-아. 하나 비슷한 걸 알 것 같군.
“비슷한 거?”
-네놈.
“뭐라고?”
-굳이 비슷한 걸 찾으라면…. 네놈이 풍기는 기운과 미미하게 비슷한 느낌이 저 안에서 느껴진다.
칼리드와 비슷하다니.
그게 무슨 뜻을 의미하는 걸까.
‘아마 이 녀석 말은…. 내가 과거에 썼던 장비에서 느껴지는 기운을 말하는 거겠지.’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최상급 악령마저도 가늠할 수 없는 기운이라면.
칼리드가 걸치고 있는 팔찌나 사령왕의 로브처럼.
저 너머의 물건이 있을 가능성이 컸다.
당장 붉은 산맥 일족에서 사제들과 마주쳤을 때도.
사령왕의 로브를 가지고 성좌 이식인지 뭔지 하는 요상한 짓거리를 하고 있지 않던가.
“넌 어때, 리안.”
“네?”
아, 그렇지.
리안에게는 녀석의 말이 들리지 않지.
“저 신전 안에서 뭔가 느껴지는 것 같아?”
“잘은 모르겠지마안…. 아까부터 느꼈던 그 느낌이… 신전 안에서 조금 강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오.”
이걸로 확실해졌다.
저 안에 빌어먹을 신성 제국 놈들이 있는 건 기정사실에 가까워졌다.
다만 문제는.
‘결국 리치와 부딪치는 건 피할 수가 없게 됐군.’
리치는 망자의 왕이라 불리는 존재.
놈을 상대로 이기느니 지느니 하는 건 둘째치고.
싸움이 벌어지는 순간 제국 놈들이 단번에 알아차릴 테고.
당연하게도 칼리드를 향해 칼을 들이밀 테지.
“일단 가 보자.”
그럼에도 다른 선택지는 없었기에.
앞장서서 먼저 베린 신전의 입구로 걸음을 옮겼다.
저벅. 저벅. 저벅.
그가 신전 안으로 들어가자 후다닥 뒤를 따르는 리안.
둘이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어두컴컴한 신전 내부가 요란스레 울렸다.
“이상하군. 이 안으로 들어오면 분명 리치가 반응하고 소환체들을 보냈던 것 같은데.”
본래 베린 신전 안은 오롯이 리치의 영역이다.
안에 들어서는 자를 모조리 적대하고 척살 대상으로 여기기에.
지금 당장에라도 해골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들어야 정상인데.
‘소환체는커녕 개미 한 마리도 안 보이네.’
다 쓰러진 기둥과 창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달빛에 의지해 걸어가길 한참.
두 사람이 신전의 가운데까지 진입한 순간까지도.
리치나 다른 존재의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았다.
“설마 리치가 그놈들에게 사로잡히기라도 한 건가?”
“아니면 한패가 된 게 아닐까요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
가당치도 않은 농담에 피식 코웃음 치던 칼리드.
그는 앞서서 한참을 걸어가다가.
“움직이지 마라, 리안.”
앞쪽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마나의 움직임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손을 들어 올렸다.
고작해야 열 걸음 앞에서.
허공이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는가 싶더니.
그대로 커다란 보라색 불꽃을 피워냈다.
화륵.
“어어어?!”
“리안, 초록색 가루를 쓰는 법은 잘 알고 있지?”
칼리드의 물음에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리안.
만에 하나 뭔가가 그녀를 덮쳐 온다면.
악마령의 힘을 지닌 리안은 스스로를 지킬 정도는 되리라.
다만 문제는.
‘저 커다란 불덩이가 그 정도를 훨씬 넘어선다는 게 문제지.’
처음에는 칼리드의 몸만 했던 보라색 불덩이는.
점점 위로.
그리고 옆으로 커지더니.
이내 거대 몬스터, 오우거만큼이나 덩치를 불렸다.
-거기 누구냐…!
빌어먹을.
어째서 리치가 직접 여기까지 나온 거지?
보통은 생명의 함이 부서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놈들은.
직접 움직이는 일이 그리 흔하지 않은데.
불구덩이 속에서 서서히 제 모습을 드러내는 리치를 보며.
재빠르게 마나 스타를 일깨우는 칼리드.
그는 바짝 긴장한 얼굴로 리치의 다음 행동을 기다렸고.
리치의 다음 말이 흘러나온 순간.
그대로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사령명가의 무한스킬 플레이어
지은이
: 대왕생
제작일
: 2022년 12월 29일
발행인
: (주)에이시스미디어
편집인
: 에이시스미디어 편집팀
주소
: 서울특별시 강남구 선릉로 428 11F 125호
전자우편
※ 본 작품은 (주)에이시스미디어가 저작권자의 계약에 따라 발행한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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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976-0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