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cromancer Infinite Skill Player RAW novel - Chapter 220
10화
수백 명이 동시에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커다란 공간.
복도와 마찬가지도 회색 바닥과 흰색 벽으로 만들어진 이곳은.
벽면 전부가 알아보기 힘든 알파벳으로 도배된, 기괴하기 짝이 없는 장소였다.
물론 그 디자인만 보고 칼리드가 그리 반응한 건 아니었다.
입구 맞은편 벽.
그러니까 들어가자마자 칼리드의 시선이 닿은 그곳엔.
커다란 나무 바퀴 하나가 떡하니 걸려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자리 잡은 사제 한 명.
칼리드는 얼굴을 보지 않고도 양팔을 벌린 채 바퀴에 매달린 사람이 누구인지 대번에 알아챘다.
“하얀…!”
황금색 로브 위로 어지럽게 흩어져 내린 붉은 머리칼.
얼굴을 반쯤 가릴 만큼 흘러내린 토끼 머리띠와.
바닥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하트 지팡이는.
바퀴에 매달린 사제가 힐러 ‘하얀’임을 가리키고 있었으니까.
칼리드는 그런 힐러에게 다가가려다 멈칫-
‘피?!’
그 자리에 굳은 듯 멈춰 섰다.
머리, 손목, 발목에서 조금씩 조금씩 흘러내리는 피가.
하얀의 발치에 작은 웅덩이처럼 고여 있었다.
“힐러! 저거 힐러 맞지?!”
“하얀이잖아!”
뒤따라 들어 온 칸젤과 엘리온도 그의 모습을 보자마자 화들짝 놀라더니.
금방이라도 하얀에게 달려갈 것처럼 자세를 취했다.
-움직이지 마세요!
“시스템?!”
그리고 그런 세 사람에게 들려오는 시스템의 목소리.
아니, 정확히는 시스템의 음성이 셋의 머릿속으로 전송되었다는 표현이 조금 더 맞겠지.
-하얀 님은 이 세상을 위해 위대한 희생을 하셨습니다. 부디 그의 희생을 헛되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뭔 개떡 같은 소리야?”
대단한 일을 하는 것처럼 지껄이는 시스템의 말에.
칼리드는 한껏 얼굴을 구긴 채로 쏘아붙였다.
-새로운 세계를 위해 나아가기 위한 노력이 보이시지 않나요? 당신들은 그 변화에 훼방을 놓을 자격이 없습니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다.
칼리드는 시스템의 말에 픽 코웃음을 쳤다.
“그래서 멀쩡한 밀밭을 호수로 바꿔 버렸나? 사람들이 살던 집을 얼음 땅으로 바꿔 버리고.”
-그건 변화를 위한 자그마한 희생일 뿐입니다.
“그 변화인지 뭔지가 누구 좋으라고 하는 짓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동의 못 해.”
규율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규율을 바꾸면 될 일이고.
형식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형식을 바꾸면 될 일이지.
아예 뿌리부터 뒤집어엎겠다니.
그것도 다른 사람의 목숨과 삶에는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듯 말하면서 말이야.
-그렇다면… 불행하게도 당신을 막아설 수밖에 없겠네요, 칼리드 발데아.
그 말과 함께 칼리드 일행의 좌우에서 스르르 나타나는 너덧 명의 사제들.
길게 드리운 백색 사제복 아래로 보이는 붉은 손톱.
마치 칼날을 연상케 할 만큼 길고 날카로운 그것들을.
사제들은 마치 늑대인간처럼 다루고 있었다.
“뭐야, 이것들은!”
갑작스러운 사제들의 등장에 놀란 건지.
다급하게 검을 뽑아 들며 소리치는 칸젤.
엘리온 역시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양손에 마력을 장전했다.
그 순간-
캬아아악!
괴물 같은 소리를 토해내며 이쪽을 향해 달려드는 사제들-
아니, 좀비들.
사제복 너머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짓뭉개진 얼굴이 보일 때쯤.
사제들은 기다란 손톱을 휘둘러 덤벼들었다.
“이게 진짜 미쳤나!”
카강!
붉은 손톱의 첨단이 칼리드의 얼굴을 할퀼 듯 다가서자.
날렵하게 검을 휘둘러 와 그 사이로 난입하는 칸젤.
그는 크게 팔을 뻗어 사제를 떨쳐내고는 자연스레 칼리드의 앞을 막아섰다.
“제법인데? 반응속도가 나쁘지 않아.”
“헛소리 그만하고 너도 좀 도와. 이것들 힘이 장난 아냐!”
칼리드의 장난기 어린 말에 칸젤을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
공격을 쳐내고 흘려보내는 것까지.
제법 여유로워 보이긴 했지만, 녀석의 말마따나 조금 버거웠던 걸까.
검의 극에 이르렀다 할 만한 칸젤의 팔이 미미하게 떨려왔다.
‘칸젤이 고작 한 번 만에 저렇게 반응할 정도면…. 시스템이 생각보다 힘을 준 녀석들인가 본데.’
엘리온 쪽 역시 마찬가지.
“어딜 감히 이 몸에게 덤벼드느냐, 이 흉측한 것들아!”
콰릉!
노성과 함께 손에서 번개 줄기를 뿜어내는 엘리온.
상당한 마력이 담긴 뇌전이었지만, 사제들은 아무렇지 않게 몸을 날려 피해내는 것은 물론.
“위험하다, 엘리온!”
카앙!
타겟을 바꿔 엘리온을 노리는 민첩함까지 보이는 것이 아닌가.
덕분에 칸젤만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고군분투하는 중이었다.
“빌어먹을 마법사 새끼들아. 뭘 좀 해 보란 말이다!”
“이 근육 덩어리가… 지금 마법을 날려 대는 거 안 보이냐!”
“그럼 잘 좀 맞춰 보든가!”
파짓! 파짓!
엘리온도 이를 악물고 마법을 난사해 대고는 있었지만.
오히려 빈틈을 노려 할퀴어대는 사제들 덕에 오히려 이쪽이 밀릴 지경이었다.
“칼리드으으!!!”
“소리 안 질러도 알아.”
칸젤의 비명과 같은 외침에.
칼리드는 허리춤의 검을 뽑아 드는가 싶더니.
파앗.
곧장 두 사람을 제치고 내달렸다.
동시에 정면의 사제 하나를 향해 뻗어나가는 검격.
은빛은 사제의 모가지를 향해 유려한 호선을 그렸고.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사제는 몸을 잔뜩 뒤로 빼 공격을 회피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칼리드의 입꼬리가 미묘하게 말려 올라갔다.
“멍청한 놈.”
그는 검을 쥔 반대편 손을 들어 올리더니.
곧바로 사제의 심장을 향해 붉은 창을 쏘아 냈고.
푸학!
그 날카로운 마력은 불쾌한 파육음과 함께 사제의 몸에 바람구멍을 내놓았다.
“뭐, 뭐야! 방금 어떻게 한….”
두 사람이서 쩔쩔매던 사제를 눈 깜짝할 새 처치해버린 칼리드의 모습에.
황당하다는 시선을 던지는 칸젤.
그러나 칼리드는 그에 응답하는 대신 맹수처럼 시선을 틀어 다음 목표를 정했다.
“다음은 너다.”
호랑이나 사자 같은 맹수들이 이런 모습으로 사냥을 할까.
방향을 튼 칼리드의 몸이 공간을 이동하듯 순식간에 접근해 가더니.
서걱.
짧게 만들어낸 첨혈창의 끝으로 다음 타겟의 목을 베어냈다.
그러자 비명 한번 지르지 않고 흘러내리듯.
바닥으로 쓰러지는 두 번째 사제.
“부, 분명 사령술사라고 하지 않았소?”
마치 암살자처럼 매섭게 적을 참살하는 모습에.
엘리온이 혼란스러운 어투로 중얼거렸다.
그의 물음 아닌 물음에 칼리드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곧바로 다음을 향해 움직였다.
“뭘로 죽이든, 죽이기만 하면 그만이잖아?”
칼리드의 그런 모습을 몇 번 보지 못한 두 사람으로선.
그의 대답이 건방지다 못해 오만하게까지 들렸으리라.
그럼에도 무어라 한마디 하지 못하는 건.
정말로 자신이 말한 대로 행동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령술사라는 작자가 검을 저 정도로 쓸 수 있다는 건… 도대체 사령술을 본격적으로 다루면 얼마나 강하다는 걸까?’
엘리온은 저도 모르게 칼리드와 처음 만났던 때를 떠올렸다.
만약 그때 그의 오두막을 부쉈다고 칼리드에게 덤벼들기라도 했다가는-
‘적어도 이 자리에 있지는 못했으려나.’
그렇게 생각하니 온몸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칸젤 역시 엘리온보다 아주 조금 더 보긴 했지만.
생각하는 건 매한가지였다.
‘도대체 저 녀석은 얼마만큼이나 힘을 숨기고 있는 거지?’
칸젤이 칼리드에 대해 알고 있던 정보는 사령술사라는 것뿐이었기에.
당연히 자신들과 비슷한 수준의 힘을 가지고 있겠거니.
그리 생각했는데.
이건 자신의 판단이 틀려도 한참을 틀렸지 않나.
‘저놈과 적이 될 일은 없겠지만… 앞으로 조금 조심하는 게 좋으려나.’
앞에 적이 있기에 나섰을 뿐인데.
괜스레 두 동료에게 두려움을 심어줬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칼리드는 마지막 남은 사제의 머리통에 세 개의 첨혈창을 박아주고 나서야.
별일 아니라는 것처럼 자신의 옷 여기저기 묻은 먼지를 털어냈다.
“귀찮은 놈. 이런 것들 자꾸 보내 봐야 힘 낭비라는 걸 모르지 않을 텐데.”
정말로 칼리드를 이길 것이라 생각하고 보내는 걸까.
아니면 질 걸 알면서도 시간을 끌기 위해 이런 짓을 벌이는 걸까.
칼리드는 나자빠진 시체 다섯 구를 주욱 훑어보더니.
개중 가운데 녀석을 향해 허리를 굽혔다.
“…아주 크게 무리를 하시면서까지 말이야.”
오우거를 잡아냈을 때처럼.
반짝이는 무언가가 칼리드의 시야에 걸려들었기 때문이었다.
[XXX의 조각을 최초로 발견했습니다.]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시스템의 조각이 사제들의 몸 안에 숨겨져 있었다.
[스킬: 분노 증대를 획득합니다.] [시전자의 물리 공격 능력과 마법 공격 능력의 피해를 극대화합니다.]흥.
칼리드는 자신의 몸 안으로 흡수되는 스킬의 설명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비웃음을 머금었다.
‘이게 전부야? 이 정도면 시스템도 밑천이 드러난 것 같은데.’
오우거 따위에게 스킬을 덕지덕지 붙여 보냈던 게 언젠데.
이제는 고작 이거 하나뿐이라.
동일한 스킬을 계속해서 붙여 보내지 못하는 걸 보아하니.
시스템은 칼리드를 방해하기 위해, 그야말로 있는 것 없는 것 박박 긁어 보내는 게 분명했다.
‘이 정도면 이제 시스템은 고철 덩어리만 남아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웃기지도 않은 생각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을 즈음.
빠득.
빠드득.
문득 벽면에서 무언가가 부서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음?”
칼리드가 먼저 그쪽을 향해 시선을 던졌고.
덩달아 얼이 빠져있던 칸젤과 엘리온.
두 사람도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빠드드드득.
진원지는 힐러.
아니, 힐러가 묶여 있던 나무 바퀴.
사제들이 쓰러진 순간 군데군데 균열이 생겨나더니.
건물 무너지듯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서져 내렸다.
“크흑!”
덩달아 구속하던 힘이 풀린 탓인지.
매달려 있던 힐러의 몸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다행히 죽지는 않았네.”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거친 숨을 토해내는 하얀.
여기저기 피를 흘리고 있긴 했지만.
당장 목숨이 위급할 정도의 상처는 없는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괜찮나?”
칼리드가 다가가자 쓰러질 것처럼 비틀대던 힐러가 고개를 들었다.
뎅그랑.
비스듬하게 씌워져 있던 토끼 머리띠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누구?”
“나다, 사령술사.”
“아아….”
“전사와 마법사도 와 있다.”
힐러에게는 본래 이름보다 클래스의 이름을 말해주는 편이 조금 더 이해하기 쉽겠지.
칼리드의 말을 들은 힐러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큰 한숨 소리와 함께 바닥에 대 자로 누웠다.
“드디어 왔구나….”
“우릴 기다리고 있었나?”
“기다렸지. 물론 여기로 오는 게 너희 세 사람인지는 몰랐지만.”
바닥에 누운 채로 멍하니 중얼거리는 하얀.
그의 말은 마치 누군가가 이곳으로 올 줄 알고 있었다는 듯한 말투였다.
“일단은 무리하지 말게. 내 치유 마법을 줄 테니.”
어느새 다가온 엘리온이 다급하게 치유 마법을 펼쳤고.
힐러의 몸에 있던 상처들이 하나씩 아물기 시작했다.
거칠게 요동쳤던 하얀의 호흡이 조금씩 안정되어 가고.
피와 딱지로 엉망이었던 피부가 온전히 제 모습으로 돌아왔을 때.
칼리드는 차분하게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힐러 하얀, 맞나?”
“어떻게 제 이름까지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맞습니다.”
심리적으로 안정되었기 때문일까.
아까와 달리 중저음의 낮은 톤으로 격식을 차려 답하는 힐러.
그의 답에 칼리드는 칸젤과 엘리온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하얀. 우리는 시스템에게 접근할 수 있는 포탈이 필요하다.”
사령명가의 무한스킬 플레이어
지은이
: 대왕생
제작일
: 2023년 06월 27일
발행인
: (주)에이시스미디어
편집인
: 에이시스미디어 편집팀
주소
: 서울특별시 강남구 선릉로 428 11F 125호
전자우편
※ 본 작품은 (주)에이시스미디어가 저작권자의 계약에 따라 발행한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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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79-11-6976-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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