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cromancer Infinite Skill Player RAW novel - Chapter 222
12화
‘저게… 차원의 틈?!’
절대로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
칼리드의 마력과 하얀의 신성력이 뒤엉키는 순간.
두 힘이 거칠게 충돌하며 만들어낸 파장.
그것은 일순간이지만 공간 단위에 작은 흠집을 만들어냈고.
이내 그 흔적이 네 사람의 눈앞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람의 손바닥만 한 크기로 벌어진 틈.
칼리드는 눈을 부릅뜨고선 저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보고자 했지만.
‘안 보여.’
내부의 무언가가 보이기는커녕.
가늠할 수 없는 정도의 검은색만이 그들을 향해 드러나 있을 뿐이었다.
마치 빛이 없는 우주를 들여다보는 기분이 이러할까.
칼리드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니까, 저 안에 시스템이 있다는 거지?’
점점 더 벌어지더니 어느샌가 사람 머리통만큼 커진 차원의 틈.
저 너머는 그야말로 불확실의 영역이다.
칼리드는 물론이고,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세계.
저 안에 무엇이 있는지.
혹은 어떤 일이 벌어질지 손톱만큼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야 해.’
여기에 머무를 수는 더욱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대륙은 시스템의 농간으로 어지러워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밭이 없어졌으니.
다음에는 집과 건물들이 없어질 테고.
그다음은 사람들 차례겠지.
거기에는 칼리드 자신은 물론 그가 아끼는 많은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을 터였다.
“열렸… 습니다.”
단번에 많은 신성력을 쏟아낸 탓인지.
끙끙대며 힘겹게 말하는 하얀.
그의 머리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는 것이.
딱 봐도 오랜 시간 이대로 버티기에는 힘들어 보였다.
“이대로 얼마나 버틸 수 있지?”
칼리드의 물음에 힐러는 찢어져라 입술을 깨물며 답했다.
“길어야 3분… 정도… 일 겁니다. 그 이상은 제 힘… 으로도 무리… 인데다, 차원 단위에서… 간섭을….”
알았다.
차원 간의 틈이 벌어진 건 상식선의 일이 아니니.
오랜 시간 틈이 벌어져 있다는 걸 차원이 인지한 순간.
스스로가 그 간극을 메우려 들겠지.
그렇다는 건-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뜻이구만.”
시간이 없다.
하얀의 말에 칼리드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머지 둘을 향해 몸을 틀었다.
“두 사람은 어떻게 할 거지?”
“무슨 소리야?”
“무슨 말이오?”
짜기라도 한 듯 똑같이 되묻는 두 사람의 말에.
칼리드는 픽 코웃음을 쳤다.
“여기서부터는 미지의 영역이다.”
“그건 나도 알고 있어.”
“들어가면 죽을 수도 있어.”
아이에게 으름장을 놓는 어른처럼 말하는 칼리드.
그 모습에 칸젤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래서, 뭐? 지금이라도 꽁지를 말고 도망치라는 이야긴가?”
“겁 안 나나?”
저 너머는 보이지도 않는다.
누구도 경험해 본 적 없다.
심지어 정말로 시스템이 있는 곳이라면.
어쩌면 절대자에 가까운 존재를 상대로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 곳으로 넘어가야 한다니.
두려움이 이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하지만 칸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애초에 한 번 죽은 목숨인데, 겁낼 게 있나?”
“뭐?”
“기억 안 나? 나를 죽인 건 너였잖아.”
칸젤을… 죽였다고?
칼리드가?
녀석의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칼리드.
그는 이내 무슨 말을 하는지 깨닫고는 아 하고 탄성을 내뱉었다.
‘설마, 이 녀석… 자신이 게임 캐릭터였던 걸 인지하고 있는 건가?’
처음에는 긴가민가했지만 엘리온이나 빈센, 하얀과 말을 섞어본 후에.
칼리드는 저들이 캐릭터로서의 자각이 있는 것이 아니라 판단했다.
심지어 아샨 역시 게임에 관한 건 조금도 몰랐기에.
이 세계에서 그 사실을 자각하고 있는 건 칼리드와 시스템뿐이라 생각했었다.
‘자신들을 성좌 비슷한 존재로 생각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니.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느낌에 칼리드는 멍하니 칸젤을 바라보았다.
“….”
“우리에게 있어 ‘캐릭터 삭제’는 죽음이나 다를 바 없으니까. 그렇잖아?”
“맞는 말이긴 하지.”
칸젤의 말에 가만히 듣고 있던 엘리온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모른 척하고 있었던 건가.
“애초에 우리를 만든 게 누구인데?”
“우리는 당신이고, 당신은 우리요. 비록 캐릭터의 몸을 빌려 따로이 움직이기는 하지만, 결국 모두 당신의 조각들이나 다름없소.”
그… 렇군.
게임을 끝내기 전에 사령술사만 남겨 놓았기에 잊고 있었지만.
직전에 삭제했던 전사며, 힐러며, 마법사.
모두 칼리드가 만들었고, 칼리드가 키웠으며, 칼리드가 플레이했던 존재들.
즉, 칼리드 바로 자신이었다.
“물론 이 세계에 떨어진 이후의 삶과 생각은 너와 단절되었기에 공유하지는 못했지만, 우리의 결정이 너와 크게 다르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칼리드.”
이번에는 칸젤의 말이었다.
녀석이 담담하게 뱉는 말에 칼리드는 잠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선 무언가를 고민하듯 턱을 매만지는가 싶더니.
차원의 틈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가자.”
짤막한 한 마디와 함께 앞서 걸어 나가는 칼리드.
그는 자신과 하얀이 만든 차원의 틈을 향해 다가갔다.
구우우.
가까이 다가가자 미지의 검은색이 칼리드를 빨아당기듯 가볍게 공명했다.
‘가야만 한다면….’
차원의 틈을 향해 팔을 들어 올리는 칼리드.
그의 새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그 끝에 닿을 듯 움직이자.
차원 너머의 마력도 자성을 가진 듯 반응해 움직였다.
‘시간 낭비할 필요 없지.’
조금 더 과감하게.
새까만 틈을 향해 손가락을 쑤욱 밀어 넣자.
팡.
수면처럼 가볍게 이는 파문.
고통이 따를 거라 생각했기에, 미리 이를 깨문 채였건만.
통증도, 이질적인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간다!’
이번에는 아예 몸을 움직여 팔을 통째로 집어넣는 칼리드.
그러자-
기이이이잉.
마나의 공명이 급격하게 빨라지더니 주변의 것들을 빨아당기기 시작했다.
덩달아 칼리드의 몸도 일그러지듯 말려들더니.
순식간에 차원의 틈 너머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
“큽!”
정신을 잃었던 걸까.
무언가가 몸을 때리는 감각에 천천히 눈을 뜨는 칼리드.
왜 그런 통증이 일었을까 하는 의문도 잠시.
“으갸갹!”
“켁!”
“으허헉!”
괴상한 신음을 토해내며 공중에서 우르르 쏟아져 내리는 사람들을 보고선.
칼리드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 수 있었다.
‘나도 저런 꼴로 떨어졌나 본데.’
다행히 정신을 잃지는 않았는지.
탑을 쌓듯 층층이 쌓인 채로 버둥거리는 세 사람.
“비켜, 인마!”
“내가 할 말이다!”
“저, 저기, 잠깐만….”
칼리드는 눈을 뜨자마자 으르렁대는 녀석들에게 손을 뻗어 일으켜 세워 주었다.
“괜찮나?”
“특별히 다친 데는 없긴 한데.”
“이 정도로 다친다면 그게 사람의 몸이라 할 수 있소? 유리잔도 아니고.”
“전 괜찮습니다. 혹시 치유가 필요하면 말씀해 주십시오.”
그저 약간 높은 곳에서 떨어진 정도이니.
수준급의 전투 능력을 지닌 저들에게는 치명상은 아닐 테지.
칼리드는 세 사람이 무사한 것을 확인하고 나서.
그제야 눈을 돌려 주변을 확인했다.
‘음?’
차원의 틈을 넘어 온 공간.
이곳이 어떤 곳인지는 두 눈으로 확인한 칼리드는.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이게… 대체 뭐지?’
다른 차원이라면 칼리드가 가진 침진공의 능력처럼.
아예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공간 같은 걸 예상했는데.
지금 그의 눈에 비치는 건.
“회로… 잖아?”
거대한 회로였다.
마치 전자기기의 기판처럼 알 수 없는 회선들이 마구잡이로 깔려있는 바닥.
군데군데 작은 미등이 깜빡이는 것마저 기계의 그것과 매우 흡사했다.
이번에는 고개를 들어 천장과 벽을 찾으려 했지만.
보이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무한히 넓은 공간이라도 되는 것마냥 벽과 천장이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건 오로지 까마득히 넓은 기판 같은 바닥뿐.
이를테면 기계 회로의 대평야 한가운데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여기가 시스템이 있는 곳인가?’
확신할 수는 없었다.
애초에 시스템이 어떤 존재인지조차 모르고 있지 않은가.
칼리드나 다른 녀석들처럼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아샨처럼 성좌의 존재가 되어 무형의 형태를 가지고 있지 않은 건지.
혹은 상상할 수조차 없는 어떤 외형을 하고 있을지.
“진짜 여기가 시스템이 있는 곳 맞아?”
“나도 몰라.”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세 사람을 향해 눈을 돌려 보았지만.
저들 역시 모르는 건 매한가지였는지.
호기심 넘치는 시선으로 이곳저곳을 살펴보고 있었다.
‘이거 골치 아프군. 방향조차 짐작할 수 없는 공간에서 시스템을 찾아내야 하는 건가?’
이쪽은 상대가 어떤 존재인지조차 모른다.
반면에 저쪽은 칼리드 일행이 어디에 있는지 훤히 알고 있을 것 아닌가.
어쩌면 지금도 저 멀리에서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르지.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어디에서 공격해 올지 알 수 없으니까.”
칼리드의 말에 검 손잡이 위로 손을 올리는 칸젤.
엘리온과 하얀 역시 언제든 스킬을 방출할 수 있도록 양손을 가슴께까지 들어 올렸다.
‘일단은 한쪽 방향을 정해서 벽 같은 게 나올 때까지 움직여 보는 게-’
사방이 어두운 공간 안에서 어찌 움직일 것 인가 고민하던 찰나.
치이이익.
갑작스레 들려오는 고약한 노이즈.
귀를 괴롭히는 불쾌한 소리에 칼리드는 한껏 얼굴을 구겼다.
“윽! 이건 대체 무슨 소리야?”
-결국 여기까지 오고야 말았구나, 이 더러운 배신자들아.
기괴한 소음과 함께 들려온 건.
다름 아닌 시스템의 목소리.
익숙한 그 음성에 칼리드는 다급하게 고개를 쳐들었다.
“시스템?!”
-이 장소는 너희에게 허락된 공간이 아닐진대, 어찌하여 함부로 발을 들이느냐!
화가 많이 난 걸까.
여태까지 시스템은 공손하기 그지없는 존댓말을 써 왔었는데.
지금에 와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저리 말하다니.
“왜, 오지 말아야 할 곳에 온 건가? 그게 아니면 뭔가 대단한 비밀을 숨겨 놓기라도 한 건가?”
칼리드는 시스템의 말에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너희는 나의 자식이 아닌가! 자식 된 이들이 어찌하여 나를 배반하려 드는가!
자식?
누가?
말 같지도 않은 소리에 들으라는 듯 콧방귀를 뀌는 칼리드.
나머지 세 사람도 생각하는 건 비슷한 모양이었다.
“저게 드디어 미쳤나 보네.”
“누가 부모라는 거냐?”
“확실히 제정신은 아닌 것 같습니다.”
“들었지? 이 친구들은 이렇게 생각한다는데?”
-우습군. 너희들은 크나큰 착각을 하고 있는 중이다.
아예 이쪽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나 본데.
‘어찌 됐건 싸움은 피할 수 없을 것 같군.’
몇 마디 섞어보지도 않았는데 저토록 완고한 태도라니.
칼리드는 속으로 그리 생각하고는 언제든 전투에 임할 수 있게끔 마나 스타들을 개화시키기 시작했다.
“착각? 착각은 네가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아니면 지금까지 왜 이런 짓거리를 해 왔는지, 우릴 이해시켜 보든가.”
뒤편에서 듣고 있던 칸젤.
그는 여전히 검 위에 손을 올려놓은 채로.
시스템을 향해 거친 말투로 내쏘았다.
그러자-
키잉.
아무것도 없이 시커먼 어둠만 있던 천장에서.
새빨간 불빛이 점멸하기 시작했다.
사령명가의 무한스킬 플레이어
지은이
: 대왕생
제작일
: 2023년 07월 03일
발행인
: (주)에이시스미디어
편집인
: 에이시스미디어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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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976-000-3
외전